-
지난 7일 대부분의 언론들이 일제히 “우리 공군이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F-X 3차 사업)의 후보기종 중 가장 유력한 F-35를 타보지도 않고 결정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언론들은 ‘F-35만 타 볼 수 없다. 시뮬레이터로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가 F-35 구매에 맞춰놓고 다른 기종을 들러리로 세운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은 후보기종 세 가지 모두 우리 공군이 타보기 어렵다. 셋 다 중요한 성능검증은 서류와 시뮬레이터를 사용해야 한다. 왜 이 ‘사실’은 말하지 않고 F-35만 공격하는 것일까? 게다가 올해 어떤 기종을 계약하던 2016년이 돼서야 기체를 인도받을 수 있다.
F-35의 문제점은 뭘까
문제가 된 F-X 3차 사업의 후보기종은 록히드마틴이 주도하는 F-35 라이트닝Ⅱ, 보잉의 F-15SE, 유럽 EADS가 만든 EF2000 유로파이터 타이푼이다.
F-35는 1990년대부터 미국이 주도한 통합타격전투기(Joint Strike Fighter) 계획의 산물이다. F-35는 美육․해․공군과 해병대가 요구한 모든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고 각 군의 소요제기에 따라 조금씩 설계를 변경한다는 개념에서 시작했다.
-
이 개념계획에 따라 美공군이 2,036대, 해병대가 642대, 해군이 약 300대 배치와 함께 영국 해군용 약 60대 등 수출 모델까지 총 3,000대를 생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이 계획은 단거리이착륙(STOL)과 수직이착륙 기능을 포함한 항전장비(Avionics Control System)용 프로그램 개발이 늦어지면서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당초 미국은 F-35를 2008년부터 배치한다는 계획이었지만 2010년, 2013년, 2016년으로 계속 연기되고 있다.
계획이 차질을 빚자 미국 정부는 F-35 도입 축소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경제상황까지 나빠지자 실제 도입 대수를 크게 줄였다(F-22 랩터 도입 대수도 대폭 줄였다).
록히드마틴 측은 “현재 F-35용 항전 프로그램은 착실하게 개발 중”이라고 말하지만 도입을 원하는 국가들이 테스트할 수 있는 기체가 없다. 미국이 현재 개발 중인 기체 외에는 영국군이 도입하는 1번기 뿐이다.
여기다 F-35는 미국 정부가 도입 대수를 축소하면서 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F-35 개발이 완료되면 그 가격이 F-15K보다 훨씬 비싼 2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F-35가 이런 상태인 데다 우리 정부가 정권 말에 와서야 8조 원이 넘는 사업을 결정한다고 하니 우리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실체 없는 ‘사일런트 이글’, 공대공 전용 ‘유로파이터 타이푼’
그렇다면 다른 후보기종은 좀 낫지 않을까. 실은 F-35와 큰 차이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더 처진다.
보잉이 내세운 F-15 사일런트 이글(Silent Eagle)은 F-35나 F-22처럼 기체 안에 무기 장착창을 만들고, 기체에 스텔스 도료를 발라 제한적인 스텔스 성능을 확보한다는 개념이다.
-
보잉 측은 “한반도에서 공중전을 할 때 먼저 스텔스 전폭기가 북한의 대공망을 파괴하고, 다른 전투기들로 제공권을 장악하는 게 순서다. 이후에는 스텔스 전폭기 보다는 무장량이 많은 전폭기가 더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F-15SE의 실제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F-15SE를 타볼 방법은 없다. 태워준다는 기체는 지금 우리 군이 보유 중인 F-15K와 별 차이가 없다. 보잉 측이 우리나라에서 공개했던 건 그냥 모형(Mock Up)이다. 무슨 스위스제 명품시계도 아닌데 우리나라가 주문하면 만들어 보내주겠단다.
보잉 측의 말을 줄이면 “F-15K도 사고나서 타보지 않았느냐. 그냥 믿고 사라, 60대 모두 사라”는 것이다.
EF2000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도입해 운용 중이다. 가서 타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차세대 전투기는 공대공-공대지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트렌치 3' 버전이다. 하지만 EADS가 우리 공군에게 태워준다는 모델은 ‘공대공 전용’ 전투기다. 공대지 임무에 필요한 ‘다기능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한 모델은 현재 ‘개발 중’이다.
EADS 또한 우리나라가 유로파이터를 주문하면 ‘신형 버전(트렌치 3 버전)’을 개발해 납품하겠다는 것이다.
EADS는 우리나라가 자신들 기종을 사기로 결정하면 ‘일부 기술 이전, 가격 대폭 할인’ 등을 내세우는 한편 “일부 스텔스 성능도 있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후보 기종의 문제-업체들이 말하지 않는 사실들
이해를 돕기 위해 자동차와 비교해 본다. 자동차를 몰 줄 몰라도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가 ‘좋은 차’라는 걸 다 안다. 문제는 그걸 살 돈과 유지에 들어가는 유류비, 보험료, 각종 수리비 등이 더 큰 부담이라는 점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언론들은 "F-35는 타볼 수 없지만 다른 기종은 타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쉽게 비유하면 'YF쏘나타', K5를 태워주면서 "터보는 이보다 훨씬 좋아요, 3,000cc 급 수입차를 능가합니다. 반면 가격은 훨씬 싸요"라는 영업사원의 설명을 믿고 덜컥 사는 것과 비슷하다. F-15SE든 유로파이터든 우리나라에 필요한 기능은 테스트를 해볼 수가 없다.
유지비 또한 중요하다. 전투기도 운용유지비가 중요한 요소다. 우리나라가 연간 국방비로 1,000억 달러 정도 쓸 수 있다면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등을 종류 별로 골라서 ‘장바구니’에 담아 '클릭'해도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6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30조 원 남짓의 돈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때문에 공군은 전투기라도 공대지 임무도 가능한 기종을 사야 한다. 비행시간 당 유지비, 부품 가격도 비싸지 않아야 한다.
후보 기종 자체의 가격만 보면 F-35가 가장 비쌀 것처럼 보인다. 록히드마틴 측이 파격적으로 “7,000만 달러에 가격을 맞춰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지 부품 값이 비싸지면 말짱 ‘꽝’이다.
EADS 측도 우리나라에 “유럽 납품가격의 반값인 8,000만 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럴 바엔 3년도 쓰지 않은 영국군의 중고 유로파이터 53대를 사는 게 낫겠다.
F-15SE는 1억 달러가 넘는 F-15K 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유지비(CHFP. 비행 시간 당 유지비)는 어떨까. 외신들은 F-35의 유지비는 F-22 랩터 수준인 시간 당 4만 달러 선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직 개발 중이라는 점과 수직이착륙/단거리 이착륙 기능 때문에 더 높을 수 있다. 참고로 F-15K의 유지비는 2만~2만5천 달러 선이다.
F-15SE는 스텔스 도료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F-15K보다 유지비가 더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
EADS의 유로파이터는?
영국군이 왜 도입 3년도 안 된 유로파이터 대부분을 중고로 내놨을까. 바로 유지비 때문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유로파이터의 비행시간 당 유지비는 F-15K의 3배 정도라고 한다. 일각에선 비행시간 당 유지비가 6만 유로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유로파이터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조종사들은 지상에서 손가락이나 빨고 있어야 한다.왜 ‘생각의 틀’에 갇혀 있나?
이런데도 국내 대다수 언론과 ‘자칭 평화․인권 단체’들은 F-35에 대해서만 유독 쌍수를 들고 반대에 나선다. 이번 ‘시뮬레이터 시험’ 만이 아니다. 가격도, 개발 일정도, 성능도 모두 ‘쓰레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꼴’을 우리는 10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바로 F-15K를 도입한 'F-X 사업'이다. 당시 좌파 진영은 ‘종이비행기 F-15’라는 책까지 써 내며 F-15에 반대했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 닷소의 라팔을 찬양하고, 다른 이는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다수의 언론들은 이런 주장을 여과나 검증 없이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했다. 지금은?
사실 일부 언론들은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는 꽤 오래됐다. 후발주자인 EADS는 작년부터 최근까지 국방 담당 기자들을 유럽 본사로 초청했다. '견학'이라고 하지만 전투기 살펴보는 데 1주일 동안 유럽에 갔다 온 걸 '견학'으로만 생각하는 이는 없으리라.
EADS는 여기다 英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조종사가 “타이푼은 스텔스 성능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만큼 현지에서는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다'는 게 알려져 있음에도 우리나라에 와서는 “제한적인 스텔스 성능이 있다”고 허풍을 치기까지 한다.
이에 더해 종북좌파 진영은 노골적으로 이 사업에 대해 선동적 비난을 해댄디.
“한국군이 미군 무기 시험장이냐”
“구시대적 냉전 구도에 갇혀 있는 한국군”
“정권 말에 비리를 저지르기 위해 대규모 무기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과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여론이 될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 공군이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연평도 포격도발’과 같은 기습 공격을 받은 뒤 ‘보이지 않게 복수’할 수 있는 수단은 스텔스 전폭기 밖에 없다. 동북공정, 류큐공정을 추진 중인 ‘쭝궈(中國)’는 J-20 스텔스 전투기를 대량 포진할 예정이다. 일본은 F-35를 아예 면허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한적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자고? 그건 아니다.
생각의 틀을 아예 바꾸자. 지금의 사업을 전면 개편해 우선 F-22 랩터 1개 대대분을 도입하는 것이다. F-35는 모든 검증을 마친 뒤에 사면 된다. F-22를 이미 가진 나라에 F-35를 파는 건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다.
美공군이 F-22 랩터의 도입대수를 당초 750대에서 187대로 크게 줄이면서 그 생산라인은 2011년 폐쇄된 상태다. 美의회조사국은 이런 상황을 우려하며 2007년 7월 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F-22 생산라인을 멈추면 2만5천여 명이 실직한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라도 F-22를 일본에 판매하는 게 괜찮은 방법이다.”
물론 F-22는 '해외판매금지 무기'다. 하지만 여기도 ‘기한’이 있다. 2015년 말이면 끝난다.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이 ‘기한’을 연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다. 특히 핵개발을 하면서 ‘깡패국가’들에 기술을 전수하고, 심심하면 무력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에 맞서는 우리나라는 ‘예외’가 될 수 있는 명분을 가진 동먕국이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잊었나?
그런 시도가 가능하냐고? 가능성은 있다. 역사에도 나온다. 1967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F-4 팬텀을 도입했던 일이다.
-
오원철 수석의 회고록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당시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의 건의로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F-4 팬텀 수출을 요구했다. 그 전까지 미국은 이란 외에는 어느 나라에도 F-4 팬텀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외교력’에 못 이겨 팬텀기 16대를 한국에 팔았다. 당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F-104 스타파이터를 도입했을 뿐 F-4 팬텀 도입은 꿈도 못 꾸던 상황이었다.
공군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결국 1976년 F-4 팬텀을 대량 도입하게 된다. 당시 우리 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일명 ‘비둘기 작전’ 등으로 미군의 신형 장비를 몰래 본국으로 빼돌리고 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 기죽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북한과 중국, 일본을 응징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