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1
  • <43> 배신의 충격


    “은혜야, 너 요즘도 배가 많이 아프니?”
    “요 며칠 동안은 더 심했어. 내 배 좀 한번 봐봐.”
    “헉! 배가 없어. 뻥 뚫렸어.”
    “꽝포(거짓말). 일없지, 그치?”
    “아니야, 정말이야.”
    “그럼 네가 내 예쁜 배를 가져갔지, 그치?”
    “아니야, 난 아니야.”
    “요즘에 즘즛하더니(뜸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얼른 내 배 내놔. 얼른!”
    “아니야, 난 안 가져갔어. 정말이야!”
    “나한테는 꽝포가 안 통해. 그럼 네 배도 내가 가져갈 거야. 어서 내놔.”
    “은혜야, 이러지마. 나 무서워. 으악!”
    “별도망(혼줄이 빠져 도망치다) 가도 소용없어. 넌 절대 내 손을 못 벗어나.”
    “은혜야, 제발 살려줘. 난 아니야.”

    지난밤 지원은 밤새도록 울부짖었다. 그리고 새벽녘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악몽은 지원을 찾아왔다. 지원은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코끝까지 다가온 공포와 마주한 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이제 현우라는 보호막도 없었다. 오늘 악몽의 주인공은 아바지가 아니라 뜻밖에도 은혜였다. 은혜의 얼굴은 메마른 핏빛이었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공기도 차가운 잿빛이었다. 그래서 예상치 못했던 재앙처럼 더 무서웠다.
    “은혜는 그래도 내가 딱친구라고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꿈에까지 찾아오고.”
    거울 속의 지원은 굵은 눈물자국이 눈에서 입까지 이어져 마치 치타 같았다. 지원은 눈물자국을 손등으로 지우기 시작했다. 그런 지원을 거울 속에서 현우가 지켜보고 있었다. 지원은 거울의 표면에 흩어진 현우의 말을 손끝으로 따라가며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원의 손끝이 거울의 중간쯤에 다다르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그래, 인생은 원래 다 비극이라잖아. 그러니까 웃자.”


    동물세계에서 위장술은 최상의 무기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지원은 어제와 완전히 다른 최고의 위장술을 선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지원은 그랬다. 하지만 겉껍질을 한풀 벗겨내면 실상이 없는 지원의 애처로운 허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원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저히 현실의 무게감을 감당하고 지탱할 자신이 없었다.
    “어머! 사장님 오늘 너무 큐티하시다! 혹시 오늘 데이트 있어요?”
    “아니요, 훗!”
    “그 미니드레스 무척 비싸죠? 아무리 봐도 신상 같은데, 최소한 사, 오십?”
    “황수경 씨 의왼데.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내가?”
    “그래, 저 심플하면서도 과감한 절개선 좀 봐. 저런 감각은 아무나 흉내를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마치 알렉산더 맥퀸(Lee Mcqueen)의 의상작품을 보는 것 같잖아.”
    “그런가?”
    “맞다니까. 제 말이 맞죠, 사장님?”
    “훗! 아니에요.”
    “저희한테는 솔직히 말씀하셔도 돼요. 여자에게 명품은 자존심이잖아요.”
    “정말 아니에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싸게 구입을 했는데 저한테 조금 커서 수선을 했어요. 그랬더니 제가 봐도 생각보다 너무 예뻐요.”
    “민채림 씨. 뭐, 외국명품?”
    “호호호, 사장님이 워낙 예쁘셔서 내가 그만. 봐봐, 누가 봐도 모델 같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해. 계절은 사장님한테만 먼저 오나 봐.”
    “감사합니다.”

    화원의 한쪽에 마련된 임시 강의실에선 홍화가 강의를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오늘 강의는 물뿌리개를 든 것으로 보아 난(蘭) 심기 같았다. 이미 교육과정이 거의 절반쯤 진행된 상태라 지원도 수강생들과 낯설지 않았다. 수강생 모두에게 따스하게 눈인사를 건넨 지원은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책상 위에 곱게 접어 반듯하게 놓아둔 가드닝 앞치마를 걸쳤다. 지원은 서둘러 화원으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조간신문이 지원의 눈길을 끌어당겼다. 동시에 머릿속은 동영상을 편집하듯 빠르게 과거의 시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괴한에게 피습당해 중상! 분실된 소지품이나 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찰은 지역 불량배들에 의한 단순 사고로 추정. 의사의 소견으로는 경추골절에 의한 자율신경계 손상으로 의심.”
    신문기사의 내용은 지원을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지원은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고 보면 비록 아픔뿐인 과거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지원에게 현실을 이기는 힘도 주었다. 즉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의식이 불안한 패닉상태에 빠질 경우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뛰어넘어 단숨에 현실을 인정하도록 훈련시켰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바로 현우의 집 근처였다. 더 정확히는 공원입구였다. 지원은 약간의 빈혈증세와 더불어 손발이 저리고 가슴까지 두근거려 빗속을 불안하게 걸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결국 검은 그림자는 공중화장실을 지나치려는 순간 창공의 포식자처럼 뒤에서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
    “흐흐흐.”
    이제 지원은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포획된 먹이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잠시 당황하던 지원이 무의식적으로 팔을 풀려했지만 이성을 잃은 사내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사내는 지원의 목을 조른 채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정말 찰나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사내가 지원을 끌고 향한 곳은 공중화장실이었다. 공중화장실은 깨끗했다. 심지어 신선한 꽃과 음악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였다. 지원의 절규가 음악에 파묻혀 오히려 사내에게는 동물적인 감각만 자극할 것처럼 보였다. 하긴 지원도 이미 확인했지만 공원은 안개가 점령해 거니는 사람도 없었다. 남자화장실은 모든 칸막이 문이 조금씩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도 없는 게 확실했다.
    “으으으. 아, 아저씨, 저 숨 좀 쉬게 이것 좀 놔주세요.”
    “왜, 놔주면 도망가려고?”
    “아니요. 제가 도망가긴 어디로 도망을 가겠어요. 여긴 경비아저씨도 없는 공원인데요.”
    “호! 이것 봐라. 보통 똑똑한 게 아닌데! 일단 나를 안심시키겠다, 뭐 그건가?”
    “저 그렇게 똑똑한 여자 아니에요.”
    “잔말 말고 조용히 해! 아가씨가 협조만 잘하면 금방 끝날 거야. 하지만 계속 반항을 하거나 도망치려고 잔꾀를 부리면 나도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어.”
    “알았어요.”
    “오늘 일은 모두 아가씨가 자초한 거야.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비에 흠뻑 젖어 걷는 여자를 보고 어느 놈이 흥분하지 않겠어. 안 그래?”
    “!”
    “보아하니 아가씨도 실연(失戀)을 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위안이 되자고. 어때, 좋지?”
    “…….”
    “삶에는 멀게만 느껴지는 성공, 돈, 명예, 그딴 것만 있는 게 아니야. 가까이에 온몸을 전율케 하는 쾌락도 있지. 내가 지금 그 즐거움을 제대로 가르쳐줄 테니까 조용히 있어.”
    “으으윽.”
    잡은 먹잇감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사내의 굶주린 욕망과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지원이 접점을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더구나 사내의 사고는 이미 부패를 시작한 듯 역한 암모니아냄새까지 풍겼다. 사내는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는지 매순간 거친 단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화살처럼 날아온 단어들은 깨진 돌처럼 투박하고 스치기만 해도 생채기가 날만큼 그 끝이 예리했다. 하지만 일그러진 단어들이 혀에 말리어 약간 겉도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임은 분명했다.
    “아가씨, 마음이 이끄는 대로 순수한 영혼과 아름다운 키스를 해본 지 얼마나 됐어?”
    “그건 왜요?”
    “아마 언제인지 기억도 못할걸. 아예 그런 경험이 없었거나 말이야. 아가씨처럼 조건이 완벽한 여자들은 겉으론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서 온갖 조건을 다 갖다 붙이지.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졌는지, 잘생겼는지, 집안은 빵빵한지, 거기다 유머러스한 훈남까지. 그런데 그거 알아.”
    “뭘요?”
    “아가씨처럼 조건이 완벽한 여자들이 만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엄격하게 갖다 맞춘 ‘조건’이라는 거. 솔직히 아무리 인성(人性)이 좋고 영혼이 순수해도 조건을 뛰어넘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
    “한마디로 아가씨 같은 여자들은 속물근성이 몸에 밴 창녀라고나 할까.”
    “그래서요?”
    “난 지금 영혼이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를 범하는 게 아니라 거리에 넘쳐나는 창녀를 상대하는 거라고. 알겠어?”
    “!”
    지원은 잘 훈련된 관찰력과 분별력으로 사내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금방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사내가 행할 움직임까지도 정확히 예측했다. 역시나 흥분한 사내의 최종 목적지는 원초적인 공포심 때문에 사람들이 잘 들어가지 않는 구석의 후미진 칸막이 화장실이었다. 마침내 사내가 지원을 변기 위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한쪽 입꼬리를 낚싯줄에 걸린 붕어의 입처럼 치켜올렸다. 하지만 사내의 생각과는 달리 그 행동은 지원의 잠자던 전투의식을 눈 뜨게 하는 스위치 역할을 했다.
    “쾅!”
    “!”
    그때 충격음과 동시에 안에서 다급하게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뒤이어 칸막이화장실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소음은 예상과 달리 에로틱한 신음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절규(Der Schrei)> 속 주인공이 지르는 고통과 절망의 비명이었다. 아니 분노와 질시(疾視)였다. 지원은 먼저 양 손바닥으로 사내의 귀를 쳐 강한 공기의 압력으로 평형감각을 손상시켰다. 그러자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소음과 함께 엄청난 고통에 놀란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다시 사내의 목을 공격했다. 그러자 사내는 연골조직이 손상되어 목을 감싸 쥐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컥!”
    지원은 북한의 특수요원답게 살상을 목적으로 급소만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격술(擊術)을 사용했다. 아무튼 봄 햇살 같은 지원의 가녀린 몸에서 세상 밖으로 노도(怒濤)처럼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겨우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내에게 있어서는 한 시간만큼이나 긴 공포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원은 자신이 가진 극상의 살상기술은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다.
    “으으으.”
    “아저씨, 보아하니 평범한 직장인 같으신데 술 드시고 길 가는 여자들에게 이러시면 안 되죠?”
    “…….”
    “한 번의 실수로 아무 죄 없는 가족이 평생 아픔을 겪을 수도 있어요.”
    “죄, 송, 합, 니, 다. 윽! 컥!”
    “지금 이 시간에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고 아저씨를 기다릴 가족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가족들이 아저씨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지도요. 아셨죠?”
    “아, 예. 정말 죄송합니다. 술에 취해서 그만 저도 모르게.”
    “자신의 즐거움만 쫓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지 않나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이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도록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보람된 일을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술을 못이길 정도면 그건 아저씨에게 술이 아니라 독(毒)이죠. 제 말뜻 아셨죠?”
    “예, 이번 기회에 꼭 끊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믿어도 되죠?”
    “예.”

    아무튼 여기까지가 지원이 기억하는 어제 일의 전부였다. 물론 지원은 사내에게 최소한의 공격만 했기 때문에 경추골절에 의한 자율신경계 손상을 입히지는 않았다. 지원은 신문을 내려놓고 가드닝 앞치마를 다시 한 번 곱게 폈다. 그리곤 곧장 꽃삽을 들고는 장방형의 격자모양 통로를 따라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돼 지원이 주저 없이 뿌리를 내린 곳은 애플민트, 레몬밤, 라벤더 사이였다. 통로는 이미 허브향이 자욱해 눈이 시릴 정도였다.
    “아가들아! 언니 왔다. 우리 아가들 어제보다 훌쩍 더 자랐네.”
    “조장 동무, 좀 늦었소. 어젯밤 잠이 오질 않아 새벽녘에 술을 한 잔 했더니…….”
    “동무가 그랬소?”
    “판단은 조장 동무가 알아서 하시오.”
    “예상했던 대로 동무는 약자에겐 철저히 강하오.”
    “그게 바로 생존전략이니까. 하지만 어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소.”
    “그 소린 마치 나를 위해 한 행동처럼 들리오.”
    “맞소. 그것도 남조선 예수쟁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구원(救援)이었소.”
    “구원!”
    “그렇소! 그리고 어제 일은 조장 동무도 원인을 제공했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동무가 나대신 성폭행이라도 당했소? 아니면 내가 동무에게 도움을 요청했소? 그러니까 동무가 주제넘게 나서지 말란 말이오. 알겠소?”
    “잘 처리해서 일을 꼬이게 만들었소? 난 나보다 조장 동무의 판단에 더 큰 과오가 있다고 생각하오.”
    “그게 무슨 말이오, 동무?”
    “그 반동 새끼가 다시 조장 동무를 뒤따라가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오.”
    “그럴 리가…….”
    “그 반동의 손엔 어디서 구했는지 노끈까지 있었소. 물론 그것이 조장 동무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참을 수 없었소.”
    “그럼 내 앞에서 흘린 눈물은…….”
    “거짓 눈물이오. 본성은 죽을 때까지 절대 바뀌지 않소. 그래서 믿어서도 아니 되오. 더구나 매판적 자본주의에 물든 반동들은 처음부터 위선적이오. 그래서 예수쟁이처럼 벌거벗겨 용광로에 산 채로 집어넣어도 개조가 안 되오.”
    “…….”
    “그나저나 정말 아무것도 못 봤소?”
    “뭘 말이오?”
    “좋소. 아무튼 이번 기회에 최악질 반동 최정원의 친구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최근 들어 조장 동무의 과업수행에 최대 장애물은 바로 그 반동 같소. 그것이 조장 동무가 우리 조원들에게 사상의 건전성을 의심받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오.”
    “좋소! 그렇게 하겠소.”
    “그렇게 하겠다, 흠. 전혀 예상치 못한 아주 의외의 대답이오. 그것도 너무 쉽게, 가만!”
    “뭐요?”
    “그 남성 동무의 배신이 조장 동무에겐 그토록 큰 충격이었소?”
    “!”
    “혁명전투에서 패해 승전을 조국의 영광으로 돌리지 못한 것보다 더한 상처가 가슴에 남았냐는 소리요.”
    “아니오! 난 조국의 영광과 승전을 위해 스스로 총폭탄이 된 혁명전사요. 그깟 퇴폐적이고 시답잖은 남조선 동무에게 마음이 흔들릴 내가 아니란 말이오. 그 남성 동무는 그저 필요할 때 방아쇠를 당기면 바로 쏠 수 있는 나의 1호 장탄이었을 뿐이오.”
    “1호 장탄이었다. 좋소! 조장 동무의 그 말을 허심(虛心)하게 접수하겠소.”
    “물론이오.”
    “눈빛을 보니 거짓말로 날 업어넘기는 건 아닌 것 같군. 기대하겠소!”
    지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눈처럼 완전히 녹아내린 것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의 상황이 지원을 대신해 피오기를 설득했다. 피오기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탓인지 손끝으로 가볍게 꽃잎을 스치며 통로를 빠져나갔다. 피오기가 작업실로 사라지자 이내 지원의 눈가에선 원망과 분노가 현실이라는 둑을 허물고 쏟아졌다. 그 불타는 적개심은 비단 피오기가 자신의 지시를 벗어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피오기의 도전과 항명은 현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