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화 장편소설 '레드'-2
  • <52> 흑마법


    “무슨 소리야. 작전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저……. 제가 팀장님의 포켓에 도청장치를 심었는데 언제부턴가 먹통이 됐어요.”
    “그건 팀장님의 신분이 발각됐을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가만! 그런데 지금까지 왜 도청장치는 말하지 않았어?”
    “임무수행에 도움이 될까 해서 제가 임의로…….”
    “히~유! 제대로 한 건 했군.”
    “…….”
    “계속 그렇게 풀 죽어 있을 거야.”
    “그럼요?”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우선 팀장님의 안전부터 확인해.”
    “그게 저…….”
    “왜?”
    “불가능해요.”
    “아니, 왜? 지금까지 호텔 내 모든 상황을 감시했잖아.”
    “여기서 모니터링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는 현장의 정확한 상황판단이 불가능해요.”
    “그건 어째 팀장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사실은 그래요. 걸러지지 않은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한마디로 최악이군. 그렇다면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인가. 조용한 수사를 포기하고 대담하게 현장으로 달려갈 건지 아니면 팀장님이 마에다 유주루의 총에 맞을 때까지 모니터만 쳐다보며 시간만 죽일 건지.”
    “선배는 당연히 현장 침투에 창(槍)을 던지겠죠?”
    “당연하지. 현재 상황 자체가 이번 작전의 최대 위기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팀장님의 안전이고.”
    “저 역시 그래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또 무슨 문제?”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눈과 귀를 모두 닫으라는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거든요.”
    “마지막 희망까지 허무하게 사라지는군. 젠장! 이럴 때면 정말 팀장님이 다르게 보인다니까.”
    “어떻게요?”
    “신중한 게 아니라 치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말이야. 멋있는 건 혼자 다해.”
    “…….”
    “그럼 다음 계획은?”
    “없어요. 지금으로선 팀장님의 문제해결능력을 믿고 상황을 주시하며 기다릴 수밖에는.”
    “팀장님이 우리에게 존재감 하나는 확실히 심는군. 하여간 지나친 열정도 문제지만 천재의 집착 역시도 시뻘건 불덩어리야.”
    “그러게요.”
    “대체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1차 접촉은 처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됐어요. 팀장님은 마에다 유주루에게 자신을 인터폴의 직원이라고 소개했어요.”
    “조심성이 많고 빈틈이 없는데다가 외부인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마에다 유주루가 팀장님 말씀을 그대로 신뢰했단 말이야?”
    “일단은 믿는 척했어요. 하지만 아주 교활해 보였어요. 때론 지나치게 진지했고요.”
    “그렇겠지.”
    “하지만 팀장님이 건네준 파일을 보고는 조금씩 믿기 시작했어요.”
    “파일! 무슨 파일?”
    “인터폴의 SLTD(분실·도난 여행서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마에다 유주루의 인적사항과 인터폴의 소재 파악 요청서예요.”
    “하여간 팀장님은 알면 알수록 정말 미스터리라니까.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언제 또 그런 자료까지 인터폴에 요청한 거야?”
    “요청한 적 없어요.”
    “뭐?”
    “서류는 팀장님이 직접 만드신 가짜예요. 하지만 저라도 속을 만큼 완벽했어요.”
    “히~유! 그야말로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는 말이로군.”
    “아무튼 1차 접촉 직후 팀장님과 통화한 내용에 의하면 생김새, 걸음걸이, 화법이 예상대로 전형적인 사무라이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파일을 이용해 의심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한 거로군. 그럼 팀장님과 마에다 유주루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우선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약간의 협박성 멘트부터 날렸어요. 인터폴이 파악한 마에다 유주루는 나코-테러리스트이자 시칠리아 마피아의 헤로인조직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전문적인 딜러(업자)라고 말이죠.”
    “마에다 유주루의 반응은?”
    “예상외로 무관심한 척했어요.”
    “압박감과 긴장감을 이겨내고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마에다 유주루도 상당히 강심장이군.”
    “오히려 애매한 말로 불안과 위기를 조장한 건 마에다 유주루였어요. 때문에 팀장님은 잠시도 경계를 풀 수가 없었고요.”
    “처음부터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험악했겠는데?”
    “아니요.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프로들답게 사려 깊고 신중했어요.”
    “그래, 팀장님은 그런 마에다 유주루를 어떻게 궁지로 몰았지?”
    “궁지로 몬 것이 아니라 거래를 했어요.”
    “거래?”
    “예, 테러와 마약거래는 인터폴이 분류한 국제적인 범죄다, 때문에 범죄의 예비·음모행위와 실행행위가 적발되면 범죄자의 국외강제퇴거 등 실효적 제재조치가 가능하다, 당신이 그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에요.”
    “마에다 유주루가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
    “당연히 자신은 일본 정부가 인정한 글로벌 인베스터(국제 투자가)라고 부인을 했죠. 만약 확증도 없이 의심스러운 진술만 가지고 체포·구금한다면 곧바로 대한민국 법체계가 국제사회의 조롱을 받게 될 것이고, 동시에 한·일 양국의 심각한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맞섰어요.”
    “밀고 당기는 심리전에도 능하군.”
    “더구나 자신은 한·일의원연맹 소속의 의원들과 동행임도 강조했고요. 그러자 팀장님이 마에다 유주루가 일본 공안조사청의 외사과 블랙리스트에도 올라 있다고 정보를 흘렸어요. 물론 그 구체성을 확인시키기 위해 공안조사청이 그의 세부적인 폭력행위와 마약거래 증거들을 오랜 기간 수집했다는 사실도 언급했고요. 그러자 시종일관 팀장님의 말을 무관심하게 흘려듣던 그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요구조건을 묻더라고요.”
    “그건 자신을 체포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소리잖아.”
    “그렇죠.”
    “히~유! 우리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로군.”
    “처음엔 팀장님이 장동하 영사의 피살사건과 자신이 연관됐다는 물증을 제시할 줄 알았나 봐요. 그런데 팀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 사건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선 거죠. 동시에 팀장님을 돈에 눈먼 인터폴 직원쯤으로 확신했고요. 물론 팀장님도 속아주는 척 넘어갔고요.”
    “확실히 사고모드가 달라. 상대를 자신이 있는 곳까지 끌어들이는 팀장님의 능력이 정말 놀라워. 상대가 스스로 마음의 빗장을 풀도록 만들었잖아.”
    “맞아요.”
    “어떻게 보면 섬뜩해. 그래, 팀장님이 제시한 요구조건은?”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네트워크를 활용하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헤로인 판매망 말이야?”
    “예, 마에다 유주루는 대가로 판매금액의 일정 비율의 할당을 요구했고요. 그러자 팀장님은 책임지고 일본으로 무사히 출국시켜준다는 약속까지 했어요.”
    “그런데 말이다. 내가 마에다 유주루라면 인터폴의 직원이 왜 그런 범죄행위를 하려는 건지 몹시 궁금할 것 같은데. 가장 먼저 이중첩자로 의심할 수밖엔 없잖아.”
    “사실 저도 그 질문에 피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팀장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못해 뻔뻔했어요. 어차피 자본주의 국가는 돈이 권력이고 능력이라면서 젊었을 땐 긍지만 먹고도 살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잖아.”
    “그 와중에 마에다 유주루는 팀장님을 역이용하려는 속내를 드러냈어요.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야쿠자와 접촉하는 일이 많아 가끔 오해가 생긴다고 변명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도청장치가 발각된 거야? 분위기로 봐선 발각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허술하지도 않았거든요. 도청장치도 최신형이에요.”
    “흠, 그렇다면 더더욱 미스터리잖아. 1차 접촉 때 발각되지 않은 도청장치가 왜 의심이 줄어든 2차 접촉 때 발각된 거지.”
    “그게 저도…….”

    바로 그때 보안센터 내 CCTV에 아주 낯익은 두 사람의 얼굴이 잡혔다. 순간 유진은 화면을 확대해 급히 중앙 모니터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객실 복도의 상황이 정밀하게 포착됐다. 동시에 재국과 유진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과 감탄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에 나타난 마에다 유주루의 얼굴에서는 도청장치로 인한 분노와 적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우려했던 상황이 정반대의 극점으로 치달아 있었다. 거기다 두 사람 관계엔 새로운 연대감까지 형성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재국과 유진은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제 목구멍의 뿌리가 타들어가는 갈증까지 느꼈다.

    “선배, 이걸 믿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그러게. 나 역시도 뭐에 홀린 기분이야.”
    “제가 아무리 극적인 것을 좋아해도 이건…….”
    “정말 예상 밖인데.”
    “모니터상으로는 팀장님과 마에다 유주루가 마치 오랜 친구 같은데요.”

    그때 호텔 직원들이 물을 끓일 때 사용하는 전기무선포트가 유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유진은 무심코 수위표시등을 받침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선이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의혹이 가열되어 끓어넘쳤다. 재국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재국은 참다못해 옆의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그 기화된 수증기가 외부로 막 분출되려는 찰나에 보안센터의 출입문이 열렸다.

    “팀장님, 재킷은 왜 들고 계세요?”
    “유진 씨는 날 생각하는 마음이라도 있지만 마에다 유주루는 그렇지 않잖아. 하긴 윈스턴 처칠에게 있어서도 친구는 이용가치를 의미했다고 하더군.”
    “팀장님도 이미 알고 계셨군요?”
    “후후후, 물론이지.”
    “죄송해요, 팀장님. 전 단지…….”
    “가만, 유진아.”
    “!”
    “팀장님, 그럼 혹시 스스로…….”
    “하여튼 재국 씨의 눈은 속일 수 없다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위험하고 무모한 생각을. 너무 극단적인 방법이잖습니까?”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잖아. 아마 안전한 루트만 찾았다면 마에다 유주루와 이렇게 빨리 은밀한 커넥션을 뚫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렇지. 저로선 도저히.”
    “재국 선배, 지금 팀장님이 도청장치를 일부러 노출시켰다는 말씀인가요?”
    “히~유! 그렇다고 하시잖아.”
    “맙소사!”
    “두 사람,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대해 알지?”
    “예, 다윗의 물매에서 날아간 돌에 거인 골리앗이 한 방에 쓰러졌잖아요.”
    “다윗이 승리한 이유가 뭔 줄 알아?”
    “종교적으로는 믿음과 지혜라고 설명할 수 있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심리학자가 보는 관점은 좀 다르더군.”
    “어떻게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보다는 자기가 아는 기존의 전투기술을 활용한다더군. 골리앗처럼 말이야. 그건 과거의 실패 경험이 이미 그의 행동을 제약하는 사고로 굳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하지.”
    “그럼 초보는 어떤데요?”
    “그에 비해 초보는 전투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과감한 시도를 한다는 거야. 즉 패배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기 때문에 어떤 게 승리를 가져오는지 탐색이 필요한 거겠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탐색과정을 통해 초보가 얻게 되는 것이 바로 기발한 발상이라는 거야.”
    “그럼 팀장님은 일부러 초보인 척했다는 말씀이세요?”
    “맞아. 그래야 프로가 좀 더 좋은 생각을 찾아내지 못하게 앞서 막을 수가 있거든.”
    “헐~!”
    “후후후. 아무튼 유진 씨가 심어준 도청장치는 바로 마에다 유주루의 깊은 불신을 제거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용도로는 최상이었어.”
    “어떻게요?”
    “최근 들어 나 역시 감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함정에 걸려들 만큼 난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건 이런 함정을 예측하고 빠져나가는 생존방법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그러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더군.”
    “가장 중요한 귀국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것 역시도 마음을 돌려놨어.”
    “정말요?”
    “응, 더 이상 주판알을 튕기지 못하도록 사건의 정보가 담긴 중요 진술을 해줬거든.”
    “어떻게 말입니까?”
    “지옥에 잘 왔다, 지금 호텔엔 수사관들이 쫙 깔렸다, 당신도 사건 당시 호텔에 있었기 때문에 참고인조사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내 직감의 초침은 솔직히 조작된 우연을 가리킨다고 말했지.”
    “상당히 직접적이고 위험한 거래인데요.”
    “상황에 따라 당신을 정치적 협상카드로 대신 활용할 수도 있다, 거기다 조사를 받으면 당신의 신분과 과거 범죄이력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나와 거래를 한다면 무사히 출국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겠다, 알아보니 천진(天津)행 항공권이 예약되어 있더라,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당신의 범죄이력이 밝혀지면 곧바로 중국 측에도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 더구나 마약사범에 대한 중국 당국의 처벌은 아주 강력하고 단호하다. 뭐, 그 정도.”
    “그러자 미끼를 덥석 물던가요?”
    “잠시 자리를 비우더군.”
    “그럼 혹시?”
    “충분히 예상했던 바야. 짐작대로 마에다 유주루는 류가흔과 통화를 시도했지. 하지만 확인전화는 유진 씨가 변환장치를 이용해 완벽하게 처리를 했어. 그래서 더 이상의 의심도 없었고.”
    “결국 두 분이 마에다 유주루를 출구가 없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뜨렸군요?”
    “사실 그것만큼 통제가 쉬운 것도 없거든. 아무튼 마에다 유주루는 당초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이었어.”
    “얼마나요?”
    “자신이 영웅이나 혼(魂)이 되려는 게 결코 아니었거든.”
    “그럼요?”
    “일본 국민 모두가 소속감을 갖는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였어.”
    “그건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건가요?”
    “아마도.”
    “아참! 후머스파티는 잘 끝냈습니다.”
    “파티 분위기는?”
    “겉으로 표시는 안 냈지만 내심 기대치 않은 선물에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재국 선배, 그건 그만큼 마에다 유주루의 신상정보와 범죄이력이 화려하다는 소리겠죠?”
    “북한과 중동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거래의 고리 역할과 국제적인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책 역할까지, 파일 속 테러리스트는 그야말로 재미로 방아쇠를 당겨도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는 최악의 테러리스트 중 1인이니까.”
    “재국 씨의 설명대로야.”
    “거기다 힘도 안 들이고 신병까지 확보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 또한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우리가 제공한 정보라 신뢰성까지도 높고.”
    “이스라엘 측으로선 자국에 위협이 되는 복잡한 테러망의 한 축을 단번에 와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겠네요.”
    “이를 말인가. 재국 씨, 모사드의 암살전문 비밀요원들의 항공편은 어떻게 됐어?”
    “마에다 유주루와 같은 항공편인 대한항공 A380의 프레스티지 클래스로 예매했습니다.”
    “A380이라, 흠!”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팀장님?”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입안 가득 모래를 씹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에~이, 그건 너무 쉽게 일이 풀려서 그럴 겁니다.”
    “너무 쉽게 일이 풀렸다고? 그래, 맞아!”
    “뭐가요?”
    “유진 씨, 마에다 유주루의 성격이 편집증적으로 의심이 많다고 했지?”
    “예, 맞아요.”
    “그래! 바로 그거야. 편집증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은 냉혹한 면과 동시에 교활한 면도 갖고 있지.”
    “그건 마에다 유주루가 팀장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또한 그런 심리를 역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요.”
    “그렇지. 그래서 못이기는 척 내 요구조건을 수용한 거야. 우선 사자굴을 빠져나가는 것이 그로선 급선무일 테니까. 즉 마에다 유주루는 상황을 정확히 읽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했어. 그리고 우린 마에다 유주루가 비밀암살조직인 다테노카이의 리더로 작전과 기획을 전담해온 인물이란 사실을 잠시 간과한 거고. 그래, 마에다 유주루가 귀국길이 바로 저승길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어. 오히려 모른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마에다 유주루는 비밀암살요원으로서 은밀해야 할 동선(動線)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노출시켰잖아. 따라서 마에다 유주루는 분명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신분세탁을 위해 제2의 도피처로 잠적할 가능성이 높아.”
    “제2의 도피처라고요?”
    “내가 마에다 유주루의 역량을 너무 과소평가했어.”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네요.”
    “재국 씨와 유진 씨, 이제 우리도 작전을 변경해야 해. 동시에 지금부터는 사냥이 치명적인 숨바꼭질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명심하고.”
    “예, 팀장님?”
    “재국 씨, 마에다 유주루의 과거 여행기록을 조사한 결과는 어떻게 됐어?”
    “아, 그거요. 중국의 북경과 심양을 비롯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태국의 방콕,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가 마에다 유주루의 주요 활동영역으로 밝혀졌습니다.”
    “북경과 심양,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쿠알라룸푸르, 방콕이라. 역시 그렇군.”
    “재국 선배, 방금 말씀하신 그 도시들의 공통점이 북한의 국적항공사인 고려항공의 취항지 맞죠?”
    “그래 맞아. 또한 지난번 나선특구에서 찍은 사진이 북한과 마에다 유주루의 특별한 관계를 설명했다면 이번 활동영역은 그 둘의 밀착 정도와 깊이를 설명해주는 단서라고도 할 수 있고.”
    “재국 씨, 마에다 유주루가 특정 날짜에 자주 갔던 특정 장소에 관한 분석 자료도 있어?”
    “하여간 이럴 땐 팀장님의 얼굴이 굶주린 사자 같다니까요.”
    “굶주린 사자?”
    “예, 인정사정 안 보고 달려든다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태국의 수도, 그러니까 방콕의 남동쪽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 파타야(Pattaya)입니다.”
    “파타야! 흠. 그렇다면 거기에 마에다 유주루의 비밀은신처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재국 선배, 거긴 국제 범죄자들의 대피소 아닌가요?”
    “맞아. 뇌물에 약한 경찰과 세상을 잊게 하는 총기와 여인, 그리고 도박과 마리화나가 넘쳐나지. 물론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애는 데도 최적의 장소고.”·
    “거기다 북서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말레이시아와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 범죄자들의 도주가 용이하다는 지정학적 위치까지 갖고 있어.”
    “그런데 팀장님, 아까부터 손에서 만지작거리는 건 뭔가요?”
    “궁금해?”
    “훗! 예.”
    “마에다 유주루의 선물.”
    “선물요?”
    “응, 유진 씨가 심은 도청장치를 건넸더니 답례품으로 이걸 주더라고.”
    “그게 뭔데요?”
    “일본의 닌자들이 사용하던 슈리켄(手裏劍)이야.”
    “그런데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으세요?”
    “그렇게 보여?”
    “예.”
    “솔직히 지금 이 물건의 적당한 사용처를 찾는 중이거든.”
    정원은 버펄로를 사냥하는 사자처럼 마에다 유주루에게 엄청난 집요함과 인내심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사자의 서’를 통해 장동하 영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열정도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런데 팀장님.”
    “왜, 유진 씨?”
    “최근 들어 문상원 기자가 다수의 탈북자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주요 대상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이, 삼십대의 젊은 여성들입니다.”
    “접촉 목적은?”
    “탈북여성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과 결혼, 그리고 인권(人權)에 대한 질문을 했답니다.”
    “특이점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흠! 평범한 것 같지만 문 기자의 질문내용과 대상이 가공하기에 따라 상당한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접근의도부터 빨리 파악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