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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라,
노무현인가 남재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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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남재준 국정원장이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을 공개한 게
잘한 일이냐 잘못한 일이냐를 따지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경위 여하 간에
그 대화록의 내용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는 본질문제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사람이 김정일과 만나
그런 기가 찰 자세로
그런 기가 찰 소리를 주고받았다니,
설마 하던 사람들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고
탄식한 사람들이 아마 숱하게 많았을 것이다.그렇다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한테는
진실이 까발려진 게
그 경위를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너무나 잘된 일 아닌가?요컨대 김정일 앞에서 보인
노무현 식 자세, 노무현 식 자세,
노무현식 발언, 노무현 식 마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만천하에 폭로된 게 정치적 [손해]라고 인식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한테는
이제라도 그게 청천백일 하에 들통 난 게 그나마
국가적 [불행중 다행]이라고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메울 수 없는 골은
8. 15 해방공간에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존속해 온
한반도 결전의 숙명적인 구조다.핵심은 바로 이거다.
다른 말 할 것 없다.한반도 정치와 한국 정치의 핵(核)은
그 [다행]이라고 여기는 진영과
[손해]라고 여기는 진영 사이의
타협이 거의 불가능한 싸움,
그것이다.
[노무현 식]은 좋은 것이라고 하는 진영과,
[노무현 식]은 나쁜 것이라고 하는 진영 사이의
건곤일척의 숙명적인 결전 말이다.[노무현 식]은 한 마디로 무엇인가?
그는 대화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그러면서 그는
전작권 환수에 따른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기로 한 것을
마치 [자주]인양 김정일 앞에서 자랑하고 있다.
전작권은 한미 대통령이 함께 합의하면서 운영하게 돼있는 것인데도.[노무현 식]에 반대하는 사람들로서는
그의 그런 현실인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나라 선배 세대의 대한민국 수립,
한미동맹에 기초한 6. 25 남침 격퇴,
산업화,
글로벌 화,
11위의 무역국가 달성 등등,
대한민국 네이션 빌딩의 발자취야말로
눈부신 [점진적 자주]의 길이었다.이와 달리,
북한이 걸어온 길은 [자주]의 이름으로 호도된 쇄국주의와 수용소체제,
그리고 북녘 동포의 파멸의 길이었다.
지금 제3국에 은신해 있는 27세의 탈북 시인 백이무는
그녀의 시집 <꽃제비>에서
북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하나님
만약 래세(來世)가 있다면
굶어죽기 전
얼어 죽기 전
이렇게 무릎 꿇고 엎드려서
눈을 감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간절히 기도 하나이다
만약 래세가 있어
기어코 이 몸을 다시 태어나게 하려거든
하나님, 다음 생애에는
제발 이 몸을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게 해 주소서이런 '두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북한과 달리,
20세기 역사상 유례없이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두고서
"점진적 자주의 의지조차 없는 것이었다"고 막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그래서 [노무현 식]을 좋아하는 진영과
그것을 싫어하는 진영 사이의 싸움은
남재준 국정원장의 대화록 공개가 잘됐느니 잘못 됐느니 하는
형식논리적이고 정쟁적인 입씨름을 능가하는,
그래서 그 따위 것으로 덮어질 수 없는,
덮어져서도 안 될,
훨씬 더 본질적인 싸움이다.
이 진짜 싸움을 전면에 에누리 없이 노출시킨 [명료화]라는 점에선
남재준 원장의 대화록 공개는
충분한 이념투쟁적 함의(含意)를 갖는 사건이었다.
이 투쟁은 어차피 피아(彼我)간에 피할 수 없는 싸움,
할 수 밖에 없는 싸움,
그리고 '무인(武人) 남재준'처럼
일신을 던져서 하는 싸움 아닌가?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