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여전히 남성우월주의 사회다. 물론 여권이 한국보다 더욱 신장되어 있는 서구 선진국에서도 은근한 여성 무시 풍조는 남아있다. 그런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인간은 원래 상대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판단이 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살아오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는데 평소 걸핏하면 남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짜증내는 사람치고 은근히 남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인 것이다.

    현실은 살벌한 생존투쟁의 장

    흔히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로 싸운다. 그리고 그 싸우는 과정에서 원래 갖고 있던 원한을 토해내며 더욱 싸움을 크게 만든다. 뒤이어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는 서로 등을 돌린다. 물론 조금만 감정을 참으면 된다지만 이미 원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재판의 대상이 되는 형사사건이 한국에서 연 20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한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하여간 한국 사회에서 폭력사건이 그만큼 많이 벌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폭력사건은 대개 감정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시를 당했다는 둥, 기분이 나쁘다는 둥 해서 벌어지는 감정싸움은 상호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먼저 화가 나서 때려도 보통 상대방이 맞기만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쌍방폭행으로 처리될 것이므로 별로 잃을 것 없는 쪽이 상대방을 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령 기업 내에서 간부들이나 사장들은 상대적으로 가진 게 많은 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별로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 기업의 간부들이나 사장, 그러니까 기업 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해관계 다툼이 벌어지면 통상적으로 노동자들은 사태를 감정싸움으로 몰고 가려 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하면 사용자 측이 자신들을 무시했다는 둥,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둥 하는 식으로 주장하며 싸움을 걸어 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 측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인 자본주의 원칙과 현행 법에 부합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사용자 측을 두들겨 패주면 이득이다. 보통 상대적으로 사회적 신분이 더 높은 사용자 측 입장에서는 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회사 이미지도 실추시키므로 입을 다물어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자들이 사용자 측에 의해 두들겨 맞아도 이득이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들을 학대한다고 못 가진 대중을 선동할 명분이 서니 말이다.

    우리 산업현장이 평온한 것 같아도 막상 현장으로 가보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살벌한 생존투쟁의 현실이 펼쳐진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에서 돈 있는 이들이 제조업에 나서려 하기 보다는 손쉬운 부동산 투자와 같은 것으로 돈을 벌려고 시도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수 있다.

    굳이 같은 돈을 갖고 왜 어려운 제조업에 나서려 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사람 구하기도, 부려먹기도 힘든 제조업에 왜 나설 것인가. 이러니 한국 사회에서는 고용도 생기지 않고 경제는 침체되어 가는 것이다.

    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동자 측만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이 저마다 얼굴이 천차만별로 다르듯 인간의 성격도 천차만별로 다르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와 노동자가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는 남성우월주의 못지 않게 마치 과거 조선시대의 양반-상민 문화를 연상케하는 신분질서 또한 엄격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생산직 노동자를 ‘공돌이’라고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화이트 칼라 노동자를 블루 칼라 노동자보다 더 대단하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런 정도만 갖고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분석해 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노무현 후보는 한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학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 생산직 노동자가 ‘공돌이’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 누구나 노력하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는 깨끗하고 공정하며, 탈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대중들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 취임 3주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중들은 위에서 내가 이야기한 것들을 이뤄주는 지도자를 또 다시 선택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보수사회가 주의깊게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그냥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자유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맞게 살면 다 잘산다’, ‘안락하게 살게 해준다’,‘선진화를 해야 한다’등등 기존 보수사회의 논리로는 기존의 한나라당 지지율에서 한 발짝도 벗어 날 수 없다. 한마디로 ‘빵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격언을 한나라당은 주의깊게 되새겨야 한다.

    한나라당이 끌어들여야 할 ‘5%’는 변화를 원하는 이들이다. 기존의 경직된 신분질서, 기존의 경직된 관념 등에 대한 보수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이란 말이다. 이들은 한나라당과 보수사회가 변하지 못하면 다시금 열린우리당 후보를 다음 대통령 후보로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 한나라당보다는 나으므로.

    자존심과 자만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쉽게 짜증내는 사람은 대개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다. 자만심이 강할 수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금만 하찮게 여기는 듯 해도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것을 ‘자존심이 강하다’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자만심이 강한 것이다.

    그리고 대개 이런 식으로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열등감을 잘 느끼고 또 원래 열등감도 많다. 사실 강한 자만심과 강한 열등감은 서로 통한다. 한마디로 극우와 극좌가 통하듯 말이다. 강한 열등감이 있으니 그것을 감추기 위해 강한 자만심으로 타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다. 원래 애초에 상대를 얕잡아 보고 있었는데 그런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하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자만심과 자존심의 차이를 좀 생각해 보고 넘어가자. 자만심은 자신만 귀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자만심은 보통 독선과 통한다. 한마디로 나만 선하고 바르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보통 논쟁을 해보면 독선적인 사람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틀렸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연과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그것이 누구나 당연할 것이다. 가령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어느 사람이 주장한다면 누구나 당연히 그것은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논쟁을 벌인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독선적이지 않은 자본주의자의 경우 대개 사회주의자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독선적이지 않은 사회주의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독선적인 자본주의자는 역시 사회주의자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고, 역시 독선적인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자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감정싸움이 되고 급기야는 폭력사태까지 불러 온다. 그래서 대개 자만심은 독선과 통하고 또 다시 독선은 파시즘과 통한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과도한 자만심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늘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자만심과 남성우월주의

    그런데 사실 보통 사람은 누구나 자만심을 조금씩은 갖고 살기 마련이다. 그런 자만심을 몽땅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물론 자만심은 없애려고 노력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만심-체면-자존심을 서로 엄격히 구별하고 신중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체면과 자존심도 서로 다른 개념이다. 자존심은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고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번듯한 면목’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체면과 자존심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체면과 자존심은 엄연히 다르다. 한국 사람은 체면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조금이라도 무시할까 두려워 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오히려 남을 덜 의식하고 산다. 상대방이 좀 흥분해서 감정섞인 발언을 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참을 줄 안다. 자만심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자존심이 강하면 자신감도 두둑하므로 상대방의 폄하에 쉽게 흥분하지 않는 것이다. 또 자만심 아닌 자존심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건 비웃건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을 밝힌다.

    보통 자만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자존심이 강하다고 착각하고, 체면 유지에 안간힘을 다한다. 하지만 오히려 체면 유지에 급급하면 할 수록 다른 사람들은 내심 그를 불신하고 비웃게 된다. 그러나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대우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타인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귀도 얇아 자신에게 조금만 우호적이면 쉽게 친해지고 조금만 비우호적이라도 쉽게 화를 내고 불신하는 습관도 있다.

    정리하면 남성우월주의도 이런 자만심의 소산이다.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사는데다 엄격한 사회계급 속에 갇혀 사니 스트레스를 받거나 조소를 당하는 일도 많다. 직장에서 권력자, 상사에게 봉변당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화풀이를 누군가에게는 해야 한다. 결국 만만한 상대가 여성이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다.

    한나라당과 자만심

    정치인 클리닉을 한다면서 무슨 자만심이 어떻고, 남성우월주의가 어떻고 하는 잡설은 왜 이리도 길게 늘어놓은 것일까? 다 이유가 있다. 바로 남성우월주의나 자만심 등의 문제는 한나라당과 보수사회가 주의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관행에서 한나라당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고, 97대선과 2002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한나라당에게서 자만심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나라당에 대해 혹독한 비판이 날아간다고 해서 한나라인들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동안 가졌던 자만심에 화살이 꽂힌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쉽게 이길 수 없다. 지금부터 긴장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이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방선거 역시 한나라당은 긴장을 풀지 말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 이변이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특히 경기지사 선거의 경우 김문수 의원은 당연히 당선되리라 믿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할 때 김 의원은 예선을 좀 더 힘들게 치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본선에서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대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오늘 이야기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오늘 이야기할 내용은 전재희 의원 클리닉이다. 전재희 의원(이하 전씨)은 김문수 의원이나 김영선 의원과 마찬가지로 경기도 지사 예비후보이다. 전씨는 김영선 의원보다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전씨가 이번 경기지사 경선에서 선전해서 김문수 의원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전씨가 선전하면 선전할 수록 한나라당 내의 남성우월주의 문화는 약화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전씨가 김 의원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낮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당내 경선에서는 조직이나 자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나 일단 여론조사 결과나 객관적인 전력수치로 봤을 때 전씨는 김문수 의원을 따라잡기 힘들어 보인다. 다만 전략을 잘 짜면 선전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운이 따른다면 김문수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경기도 지사 후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