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남수단 모르는, ‘자칭 전문가들’이 실제현상 왜곡아베 내각의 야스쿠니 참배, 해외역량 강화 위한 장기 포석
  • 한빛부대 창설식 당시 모습.
    ▲ 한빛부대 창설식 당시 모습.

    지난 22일과 23일,
    평화재건임무를 위해 남수단에 가 있는
    <한빛부대>가
    유엔을 통해 미군과 일본 자위대로부터
    탄약을 빌린 것을 놓고 소란스럽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이
    <한빛부대>가 탄약을 빌린 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두고도 난리다.

    이후 지금까지 언론, 정치권에는
    [자칭 수단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남수단을 둘러싼 [진짜 문제]와
    [왜 일본이 저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국내 여론이 왜곡될 수 밖에.

    남수단과 수단, 일본과 중국, 무슨 관계일까?


    남수단과 수단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이 나라의 내전을 알아야 한다.

    남수단은 2011년 2월 수단으로부터 독립했다.
    수단은 1956년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독립했다.

    수단은 이슬람계가 주류인 북수단,
    기독교계와 토착종교를 믿는 남수단으로 이뤄졌다.

    종교와 민족 간의 분쟁은 수단 독립 직후부터 시작됐다.
    15년 동안 계속된 [1차 내전]으로 100만여 명의 시민들이 살해됐다.

    1983년 남수단의 독립을 요구하는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등장하면서 [2차 내전]이 시작됐다.
    2차 내전은 30년 넘게 이어졌지만,
    세계는 내전 보다는
    수단 이슬람 정부가 공식 지원하던,
    [거대 테러 캠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테러 캠프]는 90년대 후반 사라졌다.

  • 다르푸르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희생자의 해골을 들어보이고 있다.
    ▲ 다르푸르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희생자의 해골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후 수단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끈 것은 2000년 중반이었다.
    2003년 수단 정부가 [수단인민해방군]을 소탕한다며,
    친정부계 이슬람 계열의 잔자위드 민병대를 동원해
    남수단 부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2007년 [다르푸르의 학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5년 동안의 [학살] 당시
    사상자는 30여만 명에 달했고, 270만 명이 피난길에 나섰다.

    이때 서방 언론들이
    중국 공산당 소속 공기업과 인민해방군이
    수십 억 달러를 수단 정부에 지원하고,
    잔자위드 민병대에 무기를 공급한 사실을 폭로해
    중국과 수단 정부는 국제사회의 큰 비난을 받았다.

  • 아프리카 기구(OAU)는 다르푸르 학살을 막기 위해 긴급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사진은 다르푸르 학살을 막기 위해 파병되는 르완다 평화유지군. [사진: 위키피디아]
    ▲ 아프리카 기구(OAU)는 다르푸르 학살을 막기 위해 긴급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사진은 다르푸르 학살을 막기 위해 파병되는 르완다 평화유지군. [사진: 위키피디아]

    당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자국의 생산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제3세계의 자원을 외화로 독차지하려고 시도할 때였다.
    명분은 [서방의 압제에서 해방]이었다.

    그 중 수단은
    풍부한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 등을 가진
    [자원부국]이었다.

    수단을 눈여겨 본 중국 공산당 정부와 인민해방군은
    거액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돈과 무기가 남수단 사람들을 학살하는 데 들어간 것이었다.

    중국은
    수단 정부가 남수단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지원하는 대신 석유와 금, 다이아몬드 등을 차지하려 했다.
    수단 지역에 거대한 농장을 건설하는 일도 시도했다
    (이때쯤 우리나라 대기업도
    수단 북부에 68만 헥타르 규모의 밀 농장을 구입했다).

    하지만 [다르푸르 학살]이 발각되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수단 정부가 장악한 북부 지역에는 석유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석유는 남수단 지역에 대량으로 매장돼 있었고
    북부 지역은 이를 채굴해 와 정제하고 수출하는 통로였다.

    이전까지 수단의 오랜 후원자였던 [아랍연맹]의 눈치를 보며
    꾸준히 공을 들였던 중국 입장에서는
    남수단이 독립할 경우 낭패를 볼 게 뻔했다.

  • 다르푸르 학살 당시 수단 정부를 지원한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비난하는 카툰. [사진: 유튜브 캡쳐]
    ▲ 다르푸르 학살 당시 수단 정부를 지원한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을 비난하는 카툰. [사진: 유튜브 캡쳐]

    하지만 2011년 2월 유엔의 감시 아래
    결국 남수단은 독립한다.
    이때 잽싸게 일본이 끼어들었다.

    일본은
    치안부재상태인 남수단에 공식 대사관을 개설하고,
    주변국과 분쟁을 일으키던 남수단 편에 섰다
    (우리나라는 수단 주재 대사관이 남수단 업무까지 본다).

    투자도 적극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수단에서 케냐를 거쳐 우간다까지 건설하려는 송유관이다.

    남수단은 독립한 뒤 이웃나라 케냐에게
    [접경지역 1만 3,300㎢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에 케냐는 남수단의 송유관 사업을 결사반대하며
    분쟁 직전까지 갔다.

    내륙국가인 남수단은
    이웃나라들을 통하는 송유관을 만들지 못하면
    경제발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일본이 나섰다.
    일본은 꾸준한 협상과 투자약속을 통해 케냐를 설득했다.

    지난 9월 12일 日<교도통신>의 보도 내용 중 일부다.

    “<도요타 통상>이 이르면 2014년에
    남수단과 케냐, 우간다 정부와 함께
    총 연장 2,000km에 이르는 송유관을
    착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도요타 통상>은
    남수단과 케냐를 잇는 송유관 건설을 위해
    빠르면 2013년 내에
    남수단과 케냐, 우간다 3국 정부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송유관 공사는 이르면 2014년에 착공한다.”

  • 주바-라무 송유관 사업제안. 남수단-우간다-케냐를 잇는 송유관 사업이다. [사진: 스트랫포 캡쳐]
    ▲ 주바-라무 송유관 사업제안. 남수단-우간다-케냐를 잇는 송유관 사업이다. [사진: 스트랫포 캡쳐]

    이 송유관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 50억 달러.
    대부분은 일본 기업이 조달할 것으로 보였다.

    일본 언론은 이 사업을
    [중국에 대항해 아프리카 진출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전략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그 외에 고려할 점,
    호전적인 남수단…한빛부대는 알았을까?


    이 같은 수단-중국 對 남수단-일본 간의 관계 외에도
    봐야할 점이 남수단 정부의 호전성이다.

    독립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남수단 정부는
    접경 국가들과 꾸준히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남수단-케냐-우간다 간의
    송유관 건설사업이 무산될 뻔한 것도
    남수단 정부가 케냐 접경지역을 내놓으라며 강짜를 부린 탓이다.
    이는 일본 기업의 대규모 투자로 무마됐지만 불씨는 곳곳에 남아 있다.

    남수단 정부는 군사력도 미미한 수준이면서
    수단 국경마을을 침공해 점령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11일 남수단군은
    수단의 헤글리그 지역을 기습 공격해 점령했다.
    이에 수단군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무장을 내세워
    헤글리그 지역을 탈환했다.

    이후 수단군은 보복으로
    4월 23일 남수단의 도시인 벤티우를 공습했다.

    이 전투로
    남수단군 수백여 명,
    민간인 수십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수단과 남수단 분쟁 당시 불타는 국경마을.
    ▲ 수단과 남수단 분쟁 당시 불타는 국경마을.

    이처럼 먼저 주변국가에 시비를 걸었다가
    번번이 얻어터지는 남수단 정부는
    포기하지 않고
    주변국에 영토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문제다.
    이번 남수단 내전은
    지난 15일 딩카족 출신인 <살바 키르> 대통령이
    누에르족 출신인 <리크 마치르> 부통령을 해임하자,
    부통령과 그를 따르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이후 누에르족이 주도하는
    남수단군 8사단을 주축으로 한 반군이
    남수단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고,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보르市 인근까지 점령하게 된 것이다.

    남수단의 치안 상태나 주민들의 호전성은
    이 밖에도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다.

    소 한 마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을 사람 수십여 명이 서로를 살해하거나
    외국인 또는 부유한 사람은
    경호원 없이는 돌아다니기 어려운 곳이라는
    언론 보도나 기행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방부와 외교부 등은
    이런 남수단 상황에 대해 잘 알고
    <한빛부대>를 보낸 것일까.

    잘못된 국내 언론의 지적
    “왜 자위대에서 탄약 빌렸나?
    차라리 미군에게 빌리지”


    이 밖에도
    현재 <한빛부대>와 국방부를 질타하는 여론 중에는
    [왜 자위대에게 탄약을 빌렸느냐,
    차라리 미군에게 빌리지]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남수단 상황을
    한 번이라도 [검색]해보지 않았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남수단에 있는 미군은
    [주둔군]이 아니라
    남수단에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美아프리카 사령부에서 [급파]한
    육군 1사단 2연대 소속
    긴급대응팀 병력 45명이 전부다.
    그 전에는 미군이 아예 없었다.

    내전 직후
    미국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려던
    <MV-22 오스프리> 수송기가
    반군으로 추정되는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아
    美해군 특수부대 SEAL 대원 4명이 총상을 입고
    수송기가 손상된 사건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 남수단 내전이 격화되자 美외교관을 보호하기 위해 급파되는 美육군 1사단 2연대 소속 긴급대응팀 병력의 모습. [사진: 美육군]
    ▲ 남수단 내전이 격화되자 美외교관을 보호하기 위해 급파되는 美육군 1사단 2연대 소속 긴급대응팀 병력의 모습. [사진: 美육군]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주둔 중인
    美아프리카 사령부는
    남수단 내전이 심각해지자
    1개 여단 병력을
    인근으로 파병할 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美육군 소속 신속대응팀 병력 150여 명은
    남수단이 아니라
    인근의 지부티에 머무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의 평화유지병력을
    남수단에 보냈지만 전투병력이 거의 없는 데다
    내전이 격화되자 곧 철수시킬 것이라고 한다.

    <한빛부대> 주둔지를 지켜주고 있는
    인도군과 네팔군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제식소총]의 종류가 5~7가지에 이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종류의 탄약을 안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빛부대>가
    <남수단유엔임무지원단(UNMISS)>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도 그랬다.

  • 남수단에서 정찰임무를 수행 중인 인도군. 들고 있는 소총은 7.62mm 구경의 FN-FAL이다. [사진: 힌두닷컴 캡쳐]
    ▲ 남수단에서 정찰임무를 수행 중인 인도군. 들고 있는 소총은 7.62mm 구경의 FN-FAL이다. [사진: 힌두닷컴 캡쳐]

    때문에 <UNMISS>에 탄약지원을 요청하자,
    유엔 측은 평소 전투병력에게
    풍족하게 탄약을 공급하는 미군에게 5,000여 발,
    전투를 아예 하지 않는 [주의]인
    일본 자위대에게 1만 발의 탄약을 빌려다
    <한빛부대>에 전달해 준 것이다.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탄약 꿔주기 폭로는 같은 맥락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가 아니라
    <UNMISS>로부터 1만 발의 5.56mm 탄약을 받았음에도
    <아베 신조> 日총리가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여론을 왜곡하는 이유는 왜 일까?

    수단-중국 對 남수단-일본이라는 역학 관계와
    일본 국내정치 문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기습참배까지 함께 생각하면
    [탄약 꿔주기 언론플레이]는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중국의 성장과 위협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여기다 [우리 일본이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미국이
    對中전선에서 한국과 힘을 합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극우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입만 사무라이]로 변한 지 오래.

    국내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유례가 없을 정도이고
    기업들은 소재산업과 해외 채권을 다량 보유한 기업을 빼고는
    정체 또는 몰락하는 상태다.
    출산율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젊은 층들은 활력이 없다.

  • 한국군 한빛부대가 일본자위대에 탄약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다는 언론플레이를 한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아베 신조 총리. 그 의도는 뭘까.
    ▲ 한국군 한빛부대가 일본자위대에 탄약을 빌려달라고 사정했다는 언론플레이를 한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아베 신조 총리. 그 의도는 뭘까.

    이런 상황을 [위기]라고 생각하는
    <아베> 총리와 그 추종세력들은
    주변국과 대척점을 지는 방식으로
    [정치적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친중국가][대륙세력]으로
    몰아가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극우파]로 취급하는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이
    [일본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실대로 인정하고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과거사 반성을 절대 거부하는
    <아베> 총리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한국 언론, 왜 우리나라 탓만 하나?

  • 한빛부대 경계병력의 모습. 10mm 이하 구경무기 규정 때문에 K-2 소총, K-1소총과 K-3 분대지원화기만 소지하고 있다.
    ▲ 한빛부대 경계병력의 모습. 10mm 이하 구경무기 규정 때문에 K-2 소총, K-1소총과 K-3 분대지원화기만 소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점을 고려하면
    현재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는 이해가 안 된다.

    <한빛부대>가
    위급한 상황에서 자위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유엔을 통해 탄약을 빌린 것을 놓고 왜 군을 비난하나?

    남수단 사태의 역사와
    수단-중국 對 남수단-일본의 관계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은 왜 한 곳도 보이지 않는가?

    해외파병을 하기에 앞서
    현지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자국민 보호를 위해 활동해야 할
    외교부가 손을 놓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왜 비판하지 않는가?

    <아베> 총리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예 배체한 채 왜 우리 군에 대해서만 비판을 하는가?
    일본 자위대가 무섭나?

    이런 한국 언론계의 [못난 태도]는 얼마 전에도 있었다.
    바로 중국 공산당 정부의 [방공식별구역 일방적 선포] 때다.
    그때도 국내 언론은 우리 정부만 비난했다.
    중국 공산당의 [행패]를 비난하는 언론은 보기 어려웠다.

    [뼛속까지 사대주의자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마도 그런 거 같다.
    아니라면 어찌 이리 비열할 수 있겠는가?

    이런 [비열함]이 영혼을 지배하는 듯한
    다수의 한국 언론은
    김정은 패거리의 협박과 행패,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만 비난하며,
    애꿎은 시민들의 불편을 외면하고 있다.

  • 2008년 4월 28일 중국인들의 폭동 모습. 당시 이를 비핀한 언론은 어디 있었나? 그래놓고 민주언론인가?
    ▲ 2008년 4월 28일 중국인들의 폭동 모습. 당시 이를 비핀한 언론은 어디 있었나? 그래놓고 민주언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