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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끙끙 앓고 있다.
집권 2년 차를 맞아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날로 강렬해 지고 있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특히 국정원 사태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한숨은 한층 깊다.
세간의 주목을 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은 어느새 국정원 증거 위조사건으로 확대, 재편되면서 여야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남 원장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청와대를 향해 해임 압박을 가하는 형국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속이 터진다”고 말할 정도로 청와대에서도 남 원장의 일처리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역시 발목을 잡는 건 6.4 지방선거이다.
◆ 6.4 지방선거 앞두고 인사청문회 강행?박근혜 대통령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의 사퇴 후 사흘 만에 후임인선을 발표했다.
강병규 전 행정안전부 차관으로 도덕성, 능력면에서 검증된 인사였다.
박 대통령은 안전성을 택했다.
지방선거를 두 달 남짓 남겨두고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빌미를 제공하진 않겠다는 의미였다. -
- ▲ 박근혜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 뉴데일리(청와대 제공)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경우는 그간 야당의 잇따른 공세에도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이 지난 18대 대선 개입 의혹을 받는 데 대해서도 문책보다는 자구책을 먼저 마련해 올 것을 주문하는 등 [회생]의 기회를 여러 번 줬다.
일단 신뢰하면 믿고 써 보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국정원 개혁안을 마련하던 중에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의 활동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과 동시에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했다는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섰다.
야당에서 남 원장을 질책하기 앞서 청와대가 먼저 부글부글 끓게되는 대목이다.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유감을 표명, 엄정수사를 지시했다. 이를 두고 남 원장에 대해 신뢰를 접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사건에 증거자료에
위조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조속히 밝혀서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 잡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 사퇴론 맞선 왕실장, 朴 대통령 '귀 역할'
이 같은 기류 속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11일 여당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식사정치를 시작한 것은 여권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오는 5월 원내대표 경선, 6월 지방선거, 7월 전당대회 등 굵직한 당내행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여권과 청와대의 간극을 좁히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여당 의원들의 뜻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아이러니 하게도 힘 있는 비서실장이라는 뜻에서 [왕실장]이라 불리는 김 실장은 끊임없는 사퇴설에 시달려 왔다.
실장으로 임명된 이래 최근까지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끊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각종 와병설은 청와대 내부에서 명예훼손까지 고려했을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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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11일 국회에서 초선의원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 뉴데일리(청와대 제공)
김 실장은 식사자리에서 “요즘 나에 대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던데, 춘추관에 확인해 보니 여의도 발(發)이라고 하더라”며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이에 한 의원이 “여의도에서는 청와대 발로 다 통하던데요”라고 받아쳐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의 사퇴설은 사실상 박근혜정부 흔들기로 연결돼 왔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장을 흔드는 행위는 사실상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김 실장은 이번 주 상임위 소속 별로 의원들을 만나 법안 처리를 당부하는 등 접촉을 다각화 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졌다. 12일에는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만났다.
민주당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남 원장 해임을 지방선거 깜짝 카드로 쓸 수 있다고 견제하고 있다. 청와대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신당이 창당하기 전에 빨리 털고 가자는 여당의 재촉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여당 관계자의 말이다.
지방선거의 여당 후보들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누구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이상을 기대할 것이다.
이 사태를 질질 끌고가면 결국 동반 추락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