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자동차 노조와 전교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시장의 작동 원리나 사업의 문외한일지라도 많이 팔리는 상품은 생산을 늘리고 적게 팔리는 제품은 줄여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수요와 무관하게 생산자 편의에 따라 생산하면서 회사의 수익 확대와 그에 따른 사원 봉급 인상을 기대한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 수준을 넘어 제 정신이기 어렵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과 사용자 측이 4일 ‘물량 재배치’와 ‘혼류(混流)생산’ 등을 통해 생산 유연성을 높이는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한 일은 그 자가당착과 비정상이 한국 자동차산업에서 버젓이, 그것도 오랜 기간에 걸쳐 통해온 ‘코미디’를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준다.

    특정 차종의 수요가 줄어 가동률이 떨어지는 생산라인에서 주문이 밀리는 다른 차종을 만들게 하는 물량 재배치나 한 생산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만들게 하는 혼류 생산조차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는 이유 등으로 막아오면서 ‘회사 발전’ 운운해온 노조의 행태가 자가당착의 코미디 아니고 무엇인가. 파업 위협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휘둘렸다고는 하지만, 그 반(反)이성적 행태를 관행으로 용인하다시피 해온 사용자 측과 이를 알면서도 뒷짐지다시피 해온 정부 또한 시대착오적 코미디 연출 책임의 일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기아차 노사는 글로벌 경제 위기의 한파로 노동 강도를 따질 계제가 아닌 불황이어서 합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현대자동차·GM대우자동차 등의 노사도 그 합의를 뒤이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하나, 호황일 때라고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회사의 체력과 경쟁력을 더 튼튼하게 다져 위기 대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린 죄책으로 노사 모두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식의 자가당착과 반이성적 행태의 일상화가 자동차 노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초·중·고교 학생들의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책임지고 있는 교사 사회 일각의 행태도 그 전형의 하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합원 명단의 실명 공개를 거부하면서 마치 그 익명성을 지켜야 할 가치처럼 착각·오도하고 있는 것부터 그렇다. 창립 선언문에서도 ‘민주시민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에게 교원 스스로 민주주의 실천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교실’로 자처하고 나선 전교조다. 그 조합원들을 실명으로 밝히는 일을 떳떳해하긴커녕 꺼림칙하게 여기는 일보다 더한 자가당착을 찾기 어렵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와 조직은 거의 예외없이 구성원의 이름을 숨기지 않으며 굳이 숨길 이유 또한 없다. 범죄조직이나 음습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비밀 조직이 아닌 한 그렇다. 오히려 그 구성원의 구체적 면면을 자산으로 내세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비친다. 구성원 개개인 역시 해당 단체나 조직의 공적인 활동과 함께 자신이 그 일원인 사실도 스스로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정상이다. 구성원의 실명 공개를 명예훼손으로까지 치부하거나 구성원 스스로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단체나 조직은 존재 자체의 정당성부터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훌륭하다고 인정받아 얻은 존엄이나 품위인 명예는 사회적 평가에 달려 있고, 명예가 드높은 단체에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앞다퉈 몰려들게 마련이다. 사회적 평가의 결과인 명예는 가입자 증감 추세에도 반영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다르지 않다. 3차원 영상 디스플레이 분야의 세계 권위자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사벨리예프 박사를 비롯해 엘리트 외국인들의 한국 귀화가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해당 분야의 한국인 전문가인 사실이 더없이 영광스럽고 자신의 활동에 큰 득이 되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명단 감추기에 급급해하는 자가당착 행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상당수 조합원조차 등을 돌리고 있는 근본 원인과 함께 합법적인 단체로 존재해야 할 이유 자체에 대해서까지 교육계 안팎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배경부터 제대로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