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욱 기자, 세월호 속으로 潛水해 들어가다!

    매일 5억 이상을 쓰고, 조명탄만 200억 원어치를 쏜 세월호 潛水수색 현장을 가다⑥

    오후 10시26분 入水, 視界는 5m, 선체는 매끈했다.
    도면만 보면 이 선체 안에서 왜 (屍身을) 못 찾나 싶었다.
    그런데 물 속에 들어와 보니 이 선체 안에서 어떻게 찾나 싶었다.

    이동욱(조갑제닷컴 기자)    
      

    임무 熟知(숙지)

    팀이 구성됐다. 기자를 리드하는 메인 다이버는 인천 해양경찰서 특공대 양재석 경장이었다. 그는 공수특전사 스쿠버 요원 출신으로 전역 후 산업 잠수사로 활동하다 해경에 투신한 30대 중반의 친구다. 기자를 엄호하는 임무를 맡은 페어 다이버는 같은 특공대 소속의 이경학 경장으로 학창시절 수영 국가대표 선수였으며 해군 SSU를 나왔다. 이들과 함께 임무를 브리핑 받았다. 임근조 과장과 박광호 팀장이 세월호 수색 계획도 앞에서 브리핑해 주었다.

  •         해경의 임근조 과장(총경)이 記者에게 작업지점을 설명하고 있다. 

    입수 순서는 메인 다이버, 기자, 페어 다이버 순이었다. 기자가 들어가는 곳은 세월호 4층 船首(선수)쪽 네 번째 창에서부터 선수 끝단까지. 수심은 25m 내외, 수온은 15도, 시계는 약 5m. 일단 하잠줄을 잡고 들어가면 절대 줄을 놓으면 안 된다는 주의를 여러 번 받았다.

    4층 선체에 도착하면 메인 다이버가 수중 카메라를 들고 이동하면서 길안내를 한다고 했다. 그가 안내선을 깔고 갈 테니 그 선을 바꿔 잡고 4층 선수쪽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이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유리창 깨진 곳이 나오는데 거기에 유실 방지망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C 크램프로 고정된 이 망들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기자의 임무였다. C 클램프는 긴 볼트로 조여져 있다고 했다.

    기자는 작업이 끝나면 조타실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4층 선수에서 조타실까지는 수심이 5~6m 더 나온다. 게다가 조타실 반대편(좌현)은 수심이 40m가 넘는다. 브리핑하던 임근조 과장이 기겁을 했다. 결국, 4층 선수끝단에서 조타실 쪽을 보는 것만 허락됐다. 중간에 선체 내부로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받기도 했다. 기실, 스쿠버로 좁은 격실을 들어간다는 것은 기자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무리한 일이라서 기자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살짝 보는 것은 허락을 받았다.

    기자의 잠수복은 스웨덴 제품의 세미 드라이(Semi-Dry·半 건식) 수트로 겨울이 아니면 어지간한 물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잠수복이다. 이 잠수복을 입고 수온 15도의 물 속을 들어가 본 적이 없어 보온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수트를 갈아입고 장비를 준비하는데 예측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자는 스쿠버를 언제나 싱글 탱크로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두 배의 용량을 메고 들어가는 더블 탱크를 메야 했다. 결국 잠수복, 오리발, 마스크를 제외하고는 호흡기와 부력조끼 등 주요 부착 장비를 해경의 장비로 써야 했다.

    싱글탱크에 연결되는 부력조끼는 기자가 항상 갖고 다니지만 더블 탱크의 부력조끼는 처음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색할 수도 없었다. 필자의 부력조끼는 눈을 감고도 어디에 버튼이 있고 무얼 잡아당기면 공기가 얼마나 빠져나가는지 환하다. 그러나 해경이 제공하는 윙 플레이트 방식의 부력조끼는 어색했다. 물 속에 들어가면 부력조끼 속으로 공기를 적당히 넣어 몸의 부력을 중성화시켜야 원하는 방향으로 몸의 이동이 가능해진다. 부력이 커지면 몸이 자꾸 떠버려서 부력을 이기며 이동하려면 공기소모량이 극심해진다. 초짜들이 물속에서 흔히 연출하는 광경이다. 게다가 그대로 상승하면 부력조끼 속의 공기부피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수면 가까이 도달할 때면 상승 속도가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잠수 사고로 연결된다.

    기자가 이 새로운(?) 부력조끼의 버튼들의 작동법을 외우려 하자 페어 다이버인 이경학 경장이 편법을 가르쳐 주었다.

    “기자님. 자신 없으면 부력조끼에 아예 공기를 넣지 말고 들어가세요. 어차피 선체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나올 테니까 가라앉는 편이 뜨는 것보다 낫잖습니까.”

    기자는 그의 조언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괜히 물 속에서 헛짓을 하다 공기 소모시키고 허둥대면 팀웍이 다 깨져 버릴 것이다. 기자는 얌전히 바닥을 기는 편을 택했다.

    정조 예정 시간은 오후 8시였는데 조류는 여전히 거셌다. 이걸 보는 방법은 다이빙 스테이지 끝에 내려진 하잠줄을 보는 것이다. 수직으로 내려져야 할 하잠줄이 약 40도 정도 기울어진 채 물속으로 잠겨있었다. 조류에 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하잠줄이 최소한 10도 정도로 바로 설 때가 잠수 수색 작업 시간이라고 한다. 조류가 1노트 이하로 떨어지는 때다. 잠수사와 팀장들이 수시로 하잠줄의 기울기를 체크했지만 쉬 바로서지 않았다. 이로써 본의 아니게 스탠바이 다이버의 고충을 알게 됐다. 공기탱크를 메지 않고 잠수복만 입고 있었지만 잠수복 속으로 땀이 계속 흘렀다. 호흡이 가빠져 하는 수 없이 잠수복의 지퍼를 절반 정도 내린 채 앉아있어야 했다. 게다가 초조했다.

    잠수 준비

    그렇게 기다린 지 2시간이 흘렀다. 깜깜한 밤, 바지선을 둘러싸고 약 1km 전방엔 채낚기 어선들이 빙 둘러싸며 불을 밝혔다. 잠수대원들에게 “낮에 들어가지 못해 잘 안 보이겠다”고 했더니 “이 수심에서는 낮과 밤의 차이가 없어요”라고 했다. 이건 상식인데 괜히 잘못 말했나 싶어 머쓱했다.

    대기하는 동안 임무숙지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세월호 선체의 이미지를 머리 속에 새겨 넣었다.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은 처음 접하는 환경 속에서도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정신집중훈련인데 현실에서는 무척 도움이 된다. 세월호 선체로 처음 내려앉는 순간을 반복 상상했다. 그래야 도착 직후 당황하지 않고 작업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입수 직전 이동욱 기자가 마스크를 쓰기 위해 침을 바르고 있다. 그가 메고 있는 노란색 공기탱크가 살짝 보인다.

    어느덧 시간이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박광호 팀장이 명령조로 “준비하시죠”라고 했다. 그때부터 기자는 긴장감이 아닌 미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기자 한 사람을 위해 대원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 장비를 메어 주고 버클을 채워주며 온갖 점검을 다 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기본점검조차 이들이 도맡아 했다. 그들로서는 그만큼 염려가 됐을 것이다. 안 그래도 해경이 해체되는 판인데, 기자 한 사람이 들어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통 붓는 격이 될 것이었다. 미안했다. 내가 메고 갈 탱크의 공기압 게이지를 확인해 보니 160mb였다. 보통 200mb를 채우거나 좀더 욕심을 내면 220mb를 채워 입수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기껏 160mb밖에 채우지 않은 것이다.

    박광호 팀장이 다시 명령조로 말했다.

    “물 속에서 100mb가 되면 무조건 상승해야 합니다. 알았지요.”

    보통은 50mb에서 상승한다. 물 속에 더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경으로서는 모든 것이 안전일 것이다. 기자는 군말없이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기자와 함께 들어가는 두 대원들에게도 “李 기자님 게이지가 100mb가 되면 무조건 상승해라. 알겠지?”라며 다짐을 받아 두었다. 수심 25m 내외에서 60mb로 버틸 만큼 버티다가 올라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다시 나에게 옥토퍼스(예비 호흡기) 사용법을 가르치려 했다. 내 공기가 부족해지면 상대방의 옥토퍼스를 빌어 호흡하는 것이다. 기자는 웃으며 “박 팀장이 초등학생 시절에 내가 공기통을 맸거든”이라고 하자 그도 하던 설명을 멈추고 웃었다.

    기자는 잠수가 또 다른 세상을 살다 가는 것이란 상상을 하곤 했었다. 물 속 세상을 지내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이듯이 물 속에선 공기주의가 기본 이념이다. 공기가 부족하면 죽음으로 내몰린다. 최소한의 공기확보는 필수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기를 아낀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상승하고 나면 탱크 속의 남은 공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점과도 닮았다. 그런데 모든 다이버들은 함께 잠수하는 사람의 공기가 부족할 때 자신의 공기와 나누어 쓰기 위해 예비호흡기를 갖고 다닌다. 다이버들의 예비호흡기인 옥토퍼스는 자신이 아니라 짝을 위한 호흡기다. 물 속에선 함께 잠수하는 짝의 공기압을 항상 체크한다. 부족한 듯싶으면 자신의 것을 물려주어 나눠 쓰다 상승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이 부족한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알아도 모른 체한다. 배려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물 속 세상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이기심의 노예가 되고, 죽음을 앞두고도 모은 돈을 나누지 않은 채 버티다 하직하곤 한다.

    그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자의 공기탱크에 기껏 160mb만 집어 넣은 채 잠수를 시킨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빨리 갔다가 빨리 오라는 얘기다. 가난하게 태어나면 일찍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게 물 속 세상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물 속 세상보다 이 세상이 훨씬 기회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노력하면 공기만큼 소중한 돈이란 것도 벌수 있고 모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오후 10시26분 입수하다

    잡생각이 달아났다. 메인 다이버, 기자, 그리고 페어 다이버가 한 줄로 다이빙 스테이지에 섰다. 주변은 별 하나 안 보이는 흐린 밤바다. 수평선을 에워싼 듯 채낚기 어선의 흰 불빛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스크를 얼굴에 내리고 호흡기를 물었다. 바지선에서 입수하는 방식은 공중을 걸어가듯 발을 벌린 채 물 속으로 들어가는 ‘워킹 다이빙(Walking Diving)’이다. 흔히 수면과 갑판과의 높이가 50cm 이상 되는 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메인 다이버 양재석 경장이 먼저 검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얀 포말이 조명에 빛났다. 기자는 그가 하잠줄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 입수! 빨간 면장갑에 노란탱크가 李東昱 기자 
     
    이윽고 기자의 차례가 왔다. 예의 발을 공중으로 내딛으며 물을 향해 몸을 밀었다. 인간의 신체가 기억하는 내용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보트 다이빙을 그렇게 많이 해봐서일까. 그 높이와 지금의 높이가 너무 달랐다. 한참을 떨어진다 싶었다. 그리고 엉덩이로 충격이 강하게 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이빙 스테이션 ‘현대 보령호’는 수면과 갑판과의 높이가 3m에 달했다. 기실 레저 다이빙에서는 이런 곳에서 입수하지 않는 위험한 높이이기도 하다. 밤 10시26분이었다.

    기자가 하잠줄을 잡자 페어 다이버 이경학 경장도 익숙한 자세로 입수해 나에게 왔다. 내가 잡은 하잠줄 한 쪽을 밀어 주었다. 이제부터 차례대로 입수다.

    메인 다이버가 입수한 뒤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야간 다이빙에서는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잠수하는 ‘헤드 퍼스트(Head First)’ 방식을 주로 쓴다. 한 손에 랜턴을 들고 수중의 장애물이나 도착지점을 살피며 내려가는 것이다. 통상 잠수는 입수할 때 빨리 내려가고 상승할 때 천천히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헤드 퍼스트’ 잠수 방식을 전문가들이 즐겨 사용한다.

    야간 다이빙으로 입수해 보면 바닥에 도달할 때까지 풍경은 검은 우주공간과 흡사하다.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의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열대바다라면 랜턴에 감광된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발광을 내며 지나가는 것 외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다가 목표지점에 랜턴 빛이 도달하면 비로소 허연 바닥이 다이버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식이다.

    한 손엔 하잠줄과 랜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스크를 눌러 귀에 가해지는 압력을 해제시켜 가면서 오리발로 킥을 계속했다. 이 자세로 25m를 내려가면 세월호가 보여야 했는데 이상했다. 분명 이 정도 내려왔으면 도착지점이 보여야 한다고 신체의 감각이 일러주는데 실제는 이상하게 아직도 깜깜했다. 하잠줄이 없었더라면 기자는 게이지의 수심을 읽으면서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의 게이지는 두 곳에 있었다. 하나는 공기탱크와 연결된 게이지였고 다른 하나는 마스크 우측 눈 밑에 달린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게이지였다. 두 손을 다 사용하며 내려가야 했으므로 공기 탱크와 연결된 게이지를 볼 여유는 없었다. 기자는 오른쪽 아래로 눈길을 돌려 수심을 읽었다. 17m. 이상하지 않는가. 바닥이 나올 때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감각적으로는 한 33m 정도 하강했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메인 다이버가 기자보다 5m 전방에서 선체와 만나고 있었다. 나중에 상승한 뒤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조류로 휘어진 하잠줄이 길게 늘어서서 우리가 이동한 궤적이 그렇게 길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자가 수직으로 잠수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 원 비슷한 코스를 그리며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체는 깔끔했다

    드디어 세월호 선체에 내려섰다. 하얀 선체가 손에 닿았다. 거대한 슬픔이 차갑게 드러누워 있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그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디쯤일까. 선체를 쓰다듬어 보았다. 아주 얇은 막같은 것이 덮인 듯했다. 물이끼류가 얇게 얹혀 있는 것이다. 흙탕물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선체 외벽은 아주 깔끔한 편이었다. 조류가 늘상 씻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 선체 내부로 들어가는 다이버

    일단 現 위치를 봐야 했다. 처음 입수하면서 선체가 어떤 방향으로 누워 있는지 숱하게 이미지를 그려두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부 개가 물어간 듯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내려오면서 몇 바퀴를 돌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 선수이고 어느 쪽이 선미인지만 헷갈렸다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 기자는 배의 앞뒤는 물론이고 아래 위도 구분이 가질 않았고 몇 층의 외부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 잠수해서 하잠줄을 설치하고 수색작업을 시작하던 잠수사들이 얼마나 어려웠나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기자를 엄호하는 이경학 경장이 노끈 매듭 하나를 기자의 왼손목에 채웠다. 약 3m 길이의 다른쪽 끝은 자신의 오른 손목에 감겨 있었다. 최소한 떠내려가도 혼자 보내지는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가 기자의 손목에 줄을 채우는 사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 해역의 물이 가장 맑을 때인 지금 현재 視界는 5m 안팎에 불과했다. 5m 밖은 깊은 어둠으로 채워져 있으니 도대체 145m짜리 선체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물 밖에서는 수중의 세월호 선체 사진이 왜 없는지 궁금했었다. 들어와 보니 수중 사진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도면만 보면 이 선체 안에서 왜 못 찾나 싶었다. 그런데 물 속에 들어와 보니 이 선체 안에서 어떻게 찾나 싶었다. (계속)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