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제10민사부, 6.25전쟁 당시 대전 산내 학살사건 피해자 배상 판결
  • 2000년 미국에서 공개된 대전교도소 산내 학살사건 관련 사진. ⓒ美정부기록
    ▲ 2000년 미국에서 공개된 대전교도소 산내 학살사건 관련 사진. ⓒ美정부기록

    2000년 3월, 비밀해제된 美정부 문서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1950년 6.25전쟁 직후 대전 교도소 인근에서 전국의 좌익 범죄자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집단 처형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대전교도소 산내 학살사건의 증거자료다.

    최근 법원이 이 산내 학살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10부(재판장 강인철)는 6.25전쟁 직후 대전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 관련 수형자 36명의 유가족 8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현 정부가 80명의 유가족들에게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희생자 위로금으로 8,000만 원, 배우자에게 4,000만 원, 부모와 자녀에게는 800만 원, 형제자매에게는 400만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1억 3,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까지, 가족이 혼자 남은 경우에는 9,000만 원 이상을 정부로부터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판결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대전 산내 학살사건’ 희생자들의 성격 때문이다.

    ‘대전 산내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8일부터 사흘 동안 군 헌병대, 경찰, 방첩대가 대전교도소 재소자 가운데 1,800여 명 이상과 검거된 보도연맹원들을 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내초등학교 인근 산기슭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전 산내 학살사건’은 1992년 2월 월간지 ‘말’이 처음 보도한 뒤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정부는 군 지휘부와 방첩대, 경찰에 “적(북괴)에 부역할 가능성이 높은 강력 사범들을 가려내라”고 명령했다. 북괴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상황에서 적군에 가담할 사람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이 지시를 전달받은 전국 군부대와 방첩대, 경찰, 교도소는 여수반란사건 가담자, 제주 4.3 반란 가담자, 남로당 당원과 같은 반국가 사범과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강력범죄자들을 추려내 대전 교도소로 보냈다. 이 지역에 대기하고 있던 ‘처형 부대’는 7월 8일부터 산내 지역에서 이들을 처형한 뒤 암매장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일부 좌파 세력들이 ‘대전 산내 학살사건’을 ‘무고한 양민 학살’로 규정, 이들에 대한 거액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했지만, 반대하는 측의 조사 결과 이들이 ‘무고한 양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던 반국가 세력이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적법한 절차를 받지 않고 이뤄진 사법 살인’으로만 인정받았다.

    이런 ‘대전 수내 학살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제주 4.3 반란 사건으로 수감돼 있다 처형당한 사람의 수는 36명이었고, 이들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이긴 것이다.

    이번 재판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10년 6월 22일 대전교도소 관련 사건의 사망자들이 ‘희생자’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정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나기 전에 소송을 걸었으므로 청구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 결과가 전해지자 6.25 전쟁 당시 한국 정부에 의해 처형된 좌익 인사들의 유가족들이 비슷한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제주 4.3 반란 사건 관련자 중 대전교도소에 수감됐던 이들의 유가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보는 우파 진영과 정부 측에서는 향후 6.25전쟁 당시 한국 정부 또는 군, 경찰 등에 의해 처형당했던 좌익 인사들의 유가족이 ‘줄소송’을 벌일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재 좌파 진영에서는 ‘대전 수내 학살사건’ 당시 행방불명 또는 처형당한 사람이 7,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보도연맹 사건’으로 20만 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일부 단체는 6.25전쟁 전후로 한국 정부와 군에서 학살한 '무고한 민간인' 수가 100만 명을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0년 9월, 북한 인민군은 퇴각하면서 대전교도소에 수감했던 애국지사들과 민간인들 수백여 명을 학살했다. 이를 목격한 美종군기자가 넋을 잃고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美정부기록
    ▲ 2010년 9월, 북한 인민군은 퇴각하면서 대전교도소에 수감했던 애국지사들과 민간인들 수백여 명을 학살했다. 이를 목격한 美종군기자가 넋을 잃고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美정부기록

    우파 진영 일각에서는 6.25전쟁 전후 ‘학살 희생자’의 유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줄줄이 제기할 가능성이 높으며, 만약 정부가 이들에게도 배상을 한다면 그 금액이 최소한 조 단위를 넘어서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과는 별개로, 북한 인민군과 부역자들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