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군 각각 의사 2명, 간호사 3명…민간 인력 인적정보 공개 원치 않아
  • 2012년 우간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파견된 美CDC 의료인력들. ⓒ뉴데일리
    ▲ 2012년 우간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파견된 美CDC 의료인력들. ⓒ뉴데일리

    지난 3월 서아프리카에서 발병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1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뒤 서서히 확산을 멈추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의료진이 사투를 벌인 덕분이다.

    WHO는 지난 10월 22일, 서아프리카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저지하다 감염된 의료진이 440여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때 사망자는 240여 명이었다. 

    WHO 등은 감염된 의료진 대부분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 투입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이 의료진과 장비를 투입,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에볼라 바이러스가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지(死地)'에 한국 의료진도 목숨을 건 싸움을 하러 떠났다.

    지난 13일 민간인 의사 2명, 군의관 2명, 민간인 간호사 3명, 군 간호장교 3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orea Disaster Relief Team, KDRT)’가 영국 정부가 제공하는 1주일짜리 교육훈련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는 오는 19일까지 영국에서 에볼라 대응 교육훈련을 받은 뒤 21일 시에라리온에 입국할 예정이다. 시에라리온에서는 22일부터 28일까지 현지 적응훈련을 하고, 29일부터 진료활동을 개시한다. 2015년 1월 24일, 진료를 종료하고 귀국할 예정이다.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떠나는 길은 조용했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신상정보 공개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민간과 군 의료인력 지원자는 파견 계획인원의 몇 배에 달했다. 그런데 이들은 위험한 임무에 지원하면서 가족들에게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감염돼 숨지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막으러 간다고 하면 어떤 가족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일부 의료 인력들은 언론에 의해 가족들이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부는 고심 끝에 ‘긴급구호대’ 인력들의 개인신상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 에볼라 확산 저지를 위해 시에라리온으로 가는 군 의료인력들이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에 신고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 에볼라 확산 저지를 위해 시에라리온으로 가는 군 의료인력들이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에 신고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긴급구호대’ 의료 인력들이 목숨을 걸고 시에라리온으로 달려가기로 한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가슴 속에 간직한 덕분이다. 하지만 국내 여론은 이들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의료진이 감염돼 돌아오면 한국이 위험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지난 10월 하순부터 나왔다. 중심에는 야당이 있었다. 지난 10월 21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를 한 우상호 새민련 의원은 “우리나라에는 에볼라 관련 연구시설이나 치료방법이 전혀 없다”며 의료진 파견을 반대했다.

    “에볼라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하는 치료시설로 가야 되는데 안전지대라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감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우상호 새민련 의원은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의료인력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국제사회의 의무라고 의료인력을 현지에 보낸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새민련 의원은 국내 의료시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를 파견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병원에 있는 격리시설이라는 것도 3급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격리시설이지, 에볼라 같은 4급 고병원성 바이러스는 못 막는다. 제발 안 걸려오기를 바란다고 국민이 기도해라, 그런데 너는 가라 이런 식이다. 이거야말로 대통령과 외교부의 안전 불감증이다.”


    우상호 새민련 의원은 “에볼라 현장대응을 배워와야 한다면 차라리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진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상호 새민련 의원뿐만 아니라 야당과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를 보낸다는 소식에 부정적인 목소리만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지키고 사는 의료인력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다 240여 명의 의료인력이 감염돼 사망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의 의료인력들은 서아프리카로 달려가겠다고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강대국의 의료인력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능력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특권”이라며,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 현장에 달려가고 싶다는 뜻을 계속 밝히고 있다. 

    이런 모습에 감동한 美타임誌는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확산 저지에 동참한 세계 각국 의료진(Ebola Fighters)을 선정했다.

  • 지난 11일(현지시간) 美타임誌는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확산 저지에 나선 의료진을 선정했다. ⓒ美타임 보도화면 캡쳐
    ▲ 지난 11일(현지시간) 美타임誌는 '올해의 인물'로 에볼라 확산 저지에 나선 의료진을 선정했다. ⓒ美타임 보도화면 캡쳐

    한국 의료인력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정부가 ‘긴급구호대’를 파견한다고 밝힌 뒤 “함께 가겠다”고 지원한 군과 민간 의료인력은 정부가 예상했던 30명의 4배를 넘었다. 정부는 이들을 고르고 골라 10명 씩 3차례에 걸쳐 시에라리온에 ‘긴급구호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방 강대국의 그들처럼 “내 능력으로 생명을 구하겠다”는 뜻을 가진 한국 의료인력들은 예상보다 많았지만, 이들의 심정을 이해해 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미 야당과 언론의 반대에 직면했던 정부도 의료인력의 안전을 위해 ‘에볼라 감염’에 대한 대비책을 2중 3중으로 마련하는 한편, 이들의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10일 영국 정부와 MOU를 맺고, 한국 의료진이 에볼라에 감염될 경우 영국 국민과 동일하게 유럽으로 긴급 후송해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패키지 지원’을 받기로 했고, 美국무부가 위탁 운영하는 ‘긴급 후송기’ 사용 계약도 마무리한 상태다. 

    또한 ‘긴급구호대’ 인력이 에볼라 감염 이외의 사건사고에 노출될 경우에 대비해 시에라리온 정부와도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의 사전훈련 현장을 돌아보는 정홍원 국무총리. ⓒ관련 보도화면 캡쳐
    ▲ 에볼라 대응 긴급구호대의 사전훈련 현장을 돌아보는 정홍원 국무총리. ⓒ관련 보도화면 캡쳐

    ‘긴급구호대’를 위한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을 도울 지원대도 파견된다.

    정부는 지난 9일 열린 ‘민관합동 해외긴급구호협의회’에서 결정한 사항에 따라 외교부, 보건복지부, KOICA 직원 등 3명으로 구성된 지원대(대장 원도연 외교부 과장)를 오는 16일 시에라리온으로 파견한다.

    이들 지원대는 시에라리온 유엔 사무소에 머물면서, ‘긴급구호대’가 현지에서 에볼라 저지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활동 중인 영국 국제개발부, 유엔과의 협의를 맡게 된다.

    ‘긴급구호대’ 의료인력들은 진료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3주 동안 격리생활을 자원했다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긴급구호대’ 의료인력들은 ‘甲질’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희생정신’을 몸소 보여줬지만, 한국 정치권과 언론은 이들의 ‘희생’을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