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중국, 미국 주도 질서 거스를 능력 없다” 발언 사흘 뒤 고위층이 제안
  • ▲ 지난 17일 미국에서 열린 美中통상무역합동위원회(JCCT)에 참석한 왕양 중국 경제부총리(왼쪽). ⓒ美상무부 홈페이지
    ▲ 지난 17일 미국에서 열린 美中통상무역합동위원회(JCCT)에 참석한 왕양 중국 경제부총리(왼쪽). ⓒ美상무부 홈페이지

    지난 17일 美시카고에서 열린 제25회 美·中통상무역합동위원회(JCCT) 주제 발표 자리. 여기에 참석한 왕양(汪洋) 중국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미국조차 놀라게 했다.

    “중국은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 경제 질서에서 미국에 도전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미국의 주도적 위치를 존중한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 파트너이고,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국가는 미국이다.”


    왕양 중국 부총리의 발언은 지난 5~6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보여준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 참여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전략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다른 자리에서 중국 고위층은 전혀 다른 의도를 담은 이야기를 펼쳤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 국가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 경제지원을 제안한 것이다.

    왕이 중국 공산당 외교부장(장관급)은 지난 20일(현지시간), 親공산당 매체인 홍콩봉황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원한다면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 안에서 러시아를 지원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국제 정세에 좌우되지 않고 있으며 양국의 평등호혜 협력은 현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러시아에게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크림반도 강제합병으로 서방국가들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를 돕겠다는 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반대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우리는 러시아가 현재 맞고 있는 경제 난관을 극복할 충분한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러시아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이는 ‘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가오후청 중국 공산당 상무부장도 봉황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 “루불화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무역 결제의 안전성을 믿을만 하다”며 러시아에 대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러시아의 재정 위기 사태는 중·러 간의 에너지·제조업 협력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은 (러시아와의) 프로젝트에 따른 양국의 상호 이익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가오후청 상무부장은 또한 루블화 폭락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가 손해를 봤지만, 이것으로 중러 관계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루블화의 급격한 변동은 수 년 동안 있었지만 최근 상황은 서방의 대러 제재로 심화된 것이다. 현재 중-러 양국 경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광범위한 통화 스와프 제도다.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러시아와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중국이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서방국가들의 대러 제재 때문이지 러시아 정부 잘못이 아니다.”


    가오후청 상무부장은 “앞으로 중-러 무역규모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면서 러시아 정부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보였다.

    “중-러의 에너지, 제조업 등 대형 프로젝트 협력은 양국 산업의 상호보완성과 경제구조 등 기초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 현재 러시아 금융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 ▲ G20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화면 캡쳐
    ▲ G20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화면 캡쳐

    중국 경제부총리가 미국 통상 분야 고위층들 앞에서 한 말과 장관급 인사들이 홍콩봉황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이어보면, 시진핑 정권의 전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시진핑 정권은 집권 이후 ‘동아시아 패권’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선언(宣言)적’인 것으로 일본이나 미국, 한국과의 실제 무력 충돌은 없었다.

    반면 러시아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에서 서방 국가들과 직접 충돌을 일으켰다. 에너지 자원을 활용해 유럽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 절정은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을 얻은 친러 반군이 말레이항공 MH0017편 여객기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후 서방 국가들의 전방위 대러제재가 시작됐다. 러시아 혼자 제재를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가한 제재의 범위와 영향,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던 시진핑 정권은 “아직은 미국에 도전할 때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정치의 안정 또한 시급하기에, 차선책으로 ‘고립무원’에 빠진 러시아를 지원해 한반도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 또 다른 ‘유소작위’ 전략을 구사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 공산당이 이런 우회 전략을 구사할 경우, 최근 북한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러시아, 급격한 유가하락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남미의 ‘볼리바르 동맹’이 모여 새로운 ‘반미동맹’을 구축할 수도 있어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