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오더 거부 선언하는데, 단체장은 오더 내리다니"
  •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친노본당의 수장 문재인 후보.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친노본당의 수장 문재인 후보.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2·8 전당대회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서울 지역의 친노(親盧) 구청장들이 대의원과 당원들에게 문재인 당대표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 메시지를 살포한 것이 드러났다.

    새정치연합 소속의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은 '노원의 새정치민주연합 대의원님께 노원구청장 김성환이 올립니다' 제하의 문자 메시지에서 "청와대 근무 시절 문 후보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며 "그는 참으로 겸손·청렴하면서도 판단력이 분명했고, 인간적으로 신뢰가 가는 분"이라고 추어올렸다.

    이어 "당대표로 기호 1번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며 "전당대회에 꼭 참여해서 문재인 후보에게 당을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살릴 기회를 달라"고 노골적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를 당부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뒤, 2006년까지 대통령 비서실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재직했다. 같은 기간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한 문재인 후보와는 함께 일한, 친노본당(親盧本黨)으로 분류된다.

    같은 당 소속의 이창우 서울 동작구청장도 동작구 권리당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당원의 한 명으로서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며 "기호 1번 문재인 후보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는 "청와대 행정관 시절 가까이서 바라본 문재인은 항상 정의롭고 공평했다"며 "권리당원 ARS 사전투표에 꼭 참여해, 문재인과 함께 반드시 이기는 정당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이 29일 열린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연석회의에서 우윤근 원내대표, 조정식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인태 의원은 현역 의원 36명과 원외 지역위원장 28명이 참여한 [오더 금지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오더 금지 모임은 지역위원장이 경선 과정에서 대의원을 줄세우거나 오더를 내리지 말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유인태 의원이 29일 열린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연석회의에서 우윤근 원내대표, 조정식 사무총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인태 의원은 현역 의원 36명과 원외 지역위원장 28명이 참여한 [오더 금지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오더 금지 모임은 지역위원장이 경선 과정에서 대의원을 줄세우거나 오더를 내리지 말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노무현정권 시절 대통령 제1부속실 행정관을 역임했으며,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일정기획팀장을 맡은 바 있다. 역시 친노본당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이외에도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과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이 관내의 새정치연합 소속 대의원·권리당원 등을 대상으로 노골적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를 당부하는 문자 메시지를 대량으로 살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할 때 시민사회수석이었던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당대표 선거에서는 기호 1번 문재인 후보를 선택해달라"면서 "최고위원 선거는 1인 2표제이니 먼저 기호 4번 이목희 후보를 꼭 지지해주고, 또 한 장의 표는 기호 2번 박우섭 후보를 추천한다"고 밝혀, 당대표·최고위원 경선에서 구체적인 '오더'를 내린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처럼 친노 성향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일제히 나서서 관내의 당원들에게 문재인 후보 지지를 당부하는 문자메시지를 살포함에 따라, 박지원 후보 측의 김유정 대변인은 3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장 '줄세우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문재인 후보 측의 구청장 '줄세우기' 행태에 격분한 박지원 후보는 당초 직접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당내 경선인 만큼 냉정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당내 경선에서는 가급적 정론관(국회 기자회견장) 마이크 앞에 서고 싶지 않았다"는 김유정 대변인이 대신 기자회견에 나섰다.

    김유정 대변인은 "일부 (친노) 구청장들이 당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문재인 후보 지지 문자를 보내고 있다"며 "이러면서 '친노~비노 청산은 나밖에 할 수 없다'고 공언하는 문 후보의 말씀은 무엇인지 진의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당대표 후보가 21일 서울특별시청 6층 시장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당대표 후보가 21일 서울특별시청 6층 시장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2·8 전당대회 당대표·최고위원 경선에서는 계파 갈등으로 인한 당내 분란을 막기 위해 현역 국회의원·지역위원장·당직자의 선거 캠프 참여와 공개 지지 선언이 금지됐다. 또한 유인태 등 36명의 국회의원과 28명의 원외 지역위원장이 '오더 금지 모임'(지역위원장의 대의원 '줄세우기' 금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캠프 참여·지지 선언·줄세우기에 관한 명문화된 금지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 측에서는 이 점을 들어 "기초단체장의 지지 문자 메시지 발송은 당 선거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유정 대변인은 취재진과의 문답에서 "기초단체장은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상식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단체장이 만약 공직선거에 개입하면 불법이지 않느냐"며 "(당연히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내 경선 관련 규정에서도 별도로 명문화된 조항이 없는 것일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다른 새정치연합 관계자도 "공정한 경선을 위해 현역 국회의원들과 원외 지역위원장들까지 나서서 각 계파 보스들의 오더 받기 거부와 줄세우기 거부를 선언하는 흐름인데, 다른 한편에서는 현역 단체장들이 오더를 내리고 있다"면서 "이렇게 (친노 진영에서) 무리수를 둘 정도로 (당대표 경선이) 초조한 상황인가"라고 되레 반문하기도 했다.

    한편 친노 성향의 서울 지역 구청장들이 이렇듯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문재인 후보 구하기에 나섬에 따라, 문재인 후보와 차기 대선 주자 자리를 놓고 잠재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반응이 주목된다.

    박원순 시장은 2·8 전당대회 당대표·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서울시청을 방문한 이인영 당대표 후보와 박지원 후보를 차례로 만났으나, 경선에 관해서 그간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