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 못 열리게 하려던 김일성, 아부 니달에게 500만 달러 주고 폭탄 테러 사주
  • ▲ 요르단 공군 조종사 뒤에 총을 들고 포즈를 취한 테러조직 ISIS 조직원들. ⓒ마즈 알카사스베 화형 동영상 캡쳐
    ▲ 요르단 공군 조종사 뒤에 총을 들고 포즈를 취한 테러조직 ISIS 조직원들. ⓒ마즈 알카사스베 화형 동영상 캡쳐

    이라크와 시리아,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에까지 세력권을 넓힌 테러조직 ISIS. 지난 3일에는 요르단 공군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26)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영상을 공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테러조직 ISIS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언론은 터키 남동부에서 사라진 김 군 이야기로 관심을 가졌지만, 대중들은 불법체류자에 섞여 들어온 테러리스트의 존재유무에 더 관심이 많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은 “한국 사회는 테러 무풍지대”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북한과 무슬림 테러조직 간의 관계를 알면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 사건이다.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2분경, 김포국제공항


    86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6일 전인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2분경,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5번 출입구와 6번 출입구 사이에 있던 쓰레기통에서 갑자기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이 폭발로 대형 유리장 11장, 형광등 20여 개가 깨졌다. 기물 파손은 적은 편이었지만 인명피해는 컸다. 입국하는 가족을 마중나간 일가족 4명, 그리고 당시 천정보수공사를 하던 공항관리공단 직원 1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현장을 수사한 군경 관계자들은 폭발이 수류탄 7개가 터진 것과 맞먹는 폭발력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의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당시 천정 작업을 하던 공항관리공단 직원 故유주환 씨의 몸이 폭발의 상당 부분을 가로 막았던 덕분으로 판단했다. 유 씨의 시신은 하반신이 사라질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 19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 직후 동아일보 1면. ⓒ舊신문 라이브러리 캡쳐
    ▲ 19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 직후 동아일보 1면. ⓒ舊신문 라이브러리 캡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 폭발을 ‘테러’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만약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쓰레기통에 넣은 뒤 즉시 출국했다면 오후 2시 50분에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출발하는 JAL954편이나 오후 1시 55분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떠난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여객기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일본인 관광객 24명을 연행하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뚜렷한 용의점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경찰은 물론 국가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까지 합세해 수사를 벌였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하고 ‘영구미제사건’으로 분류됐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9년 3월, ‘월간조선’이 김포공항 폭탄테러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사건의 배후 조종자는 김일성과 김정일, 범행을 지휘한 것은 무슬림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테러를 실행한 것은 서독 적군파였다. 테러의 대가는 500만 달러였다.


    김일성의 친구, 무슬림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월간조선이 지목한 김포공항 테러의 주범 ‘아부 니달’은 냉전 시절 PLO 출신 청부 테러리스트로 매우 유명했다.

    아부 니달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노선에 반발, 1974년 독립한 뒤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학살한 ‘검은 9월단’의 잔존 세력을 흡수해 ‘파타 혁명위원회’를 결성했다. 서방 세계는 그의 테러조직을 아부 니달 조직(ANO)이라고 불렀다.

  • ▲ ANO를 이끌었던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김일성의 절친이기도 했다. ⓒ英텔레그라프 과거 보도화면 캡쳐
    ▲ ANO를 이끌었던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김일성의 절친이기도 했다. ⓒ英텔레그라프 과거 보도화면 캡쳐

    아부 니달이 이끌던 조직은 전성기였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는 조직원이 500여 명까지 불어났다. 이때부터 아부 니달이 벌인 테러는 1985년 이탈리아 로마 공항과 오스트리아 빈 공항 동시테러, 1986년 팬암(APNAM) 여객기 납치, PLO 지도자 연쇄 암살, 19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파한 팬암 여객기 테러(일명 로커비 사건), 1994년 요르단 정무장관 암살 등이 있다.

    아부 니달이 지휘해 벌인 테러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400여 명이 넘는다. 부상자는 그 몇 배에 달한다. 이런 아부 니달이 북한과 손을 잡고, 1986년 김포공항 폭탄테러를 벌였다는 사실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비밀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스위스 베른 신문사의 무라타 노부히코 기자는 2009년 초 ‘슈타지 자료관리 독일연방정부 특명센터’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냈다고 한다. 보고서는 슈타지 22국을 지휘하는 동독군 프란츠 대령이 조사한 기록이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는 아부 니달이 북한 정권의 청부를 받고 조직원을 시켜 김포공항에 잠입해 폭탄을 설치하고 탈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아부 니달은 조직 서열 2위인 슐레이만 삼린에게 김포공항 테러를 지시했고, 삼린은 사제폭탄 기술자인 아부 이브라힘에게 폭탄 제조를, 그의 동거녀이자 서독 적군파 요원 프레데리케 크라베에게 폭탄 설치를 명령했다고 한다.

  • ▲ 아부 니달의 테러로 박살난 美팬암 여객기. ⓒ英BBC 과거 보도화면 캡쳐
    ▲ 아부 니달의 테러로 박살난 美팬암 여객기. ⓒ英BBC 과거 보도화면 캡쳐

    크라베는 루마니아 첩보기관이 만들어 준 위조 영국여권으로 김포공항에 입국한 뒤 사제폭탄을 국제성 5-6번 게이트 사이 스테인레스 쓰레기통이 넣고는 바로 홍콩으로 출국했다. 김포공항에서 폭탄이 터진 뒤 북한 정권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아부 니달의 계좌로 5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것이다. 


    아부 니달에게 배운 김일성, 그리고 KAL858기 테러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부 니달은 김정일이 아니라 김일성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1937년생인 아부 니달은 PLO 소속으로 활동하던 1972년, 의장 야셰르 아라파트의 명령에 따라 3월 28일부터 4월 8일까지 북한을 찾아 김일성을 만난다.

    이때 김일성과 아부 니달은 ‘빨치산 활동’에 같은 의견을 갖고 있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일성은 이후 PLO를 적극 지원해주면서 아부 니달을 ‘중동에 심어놓은 대리인’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아부 니달은 1974년 PLO를 탈퇴한 이후에도 평양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고, 테러리스트를 북한으로 보내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고 한다. 김일성과 친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아부 니달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이기로 한다.

    1979년 개인자금 400만 달러로 무기밀매, 마약밀매, 청부살인 및 테러, 납치 및 유괴 등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범죄회사 ‘SAS’를 설립하게 된다. 아부 니달은 이 ‘SAS’를 통해 레바논 여성 4명을 "대기업 비서로 취직시켜준다"며 유인, 납치해 김일성 정권에게 ‘기쁨조’로 팔아먹었다는 설도 있다.

    이 ‘SAS’는 80년대 중반부터는 연 매출이 1억 달러를 넘을 정도로 번창하게 된다. 동독 베를린, 북한 평양, 레바논, 키프로스 등에 사무소를 둘 정도의 국제적 조직으로 성장한다.

    아부 니달이 전성기를 맞았던 1980년대 중반, 김일성 정권은 김포공항 테러를 청부한 것이었다. 이때 아부 니달은 테러를 저지르면서 있었던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고, 북한은 이를 토대로 KAL858기 폭파 사건을 벌이게 된다.

    김일성 정권이 아부 니달의 김포공항 테러를 통해 배운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플라스틱 폭탄’으로도 불리는 C-4의 경우 당시 공항 X레이 감시기에 적발되지 않는다는 점,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서 온 여성에 대해서는 테러 관련 검색이 허술하다는 점이었다.

  • ▲ KAL 858기 폭파테러 이후 붙잡혀 한국으로 압송되는 김현희. 이 테러기법은 아부 니달 등 무슬림 테러조직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과거 국내 보도화면 캡쳐
    ▲ KAL 858기 폭파테러 이후 붙잡혀 한국으로 압송되는 김현희. 이 테러기법은 아부 니달 등 무슬림 테러조직으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과거 국내 보도화면 캡쳐

    이를 토대로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 폭파에 김현희를 일본인으로 위장해 투입한다. 당시 사용한 무기는 라디오로 위장한 C-4 폭탄이었다.

    김현희 일당이 사용한 C-4 라디오 폭탄은 파나소닉에서 만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폭탄을 사용하는 방식은 당시 무슬림 테러조직들이 많이 사용하던 것과 같았다고 한다. 즉 라디오 폭탄 옆에다 액체폭탄을 담은 양주병을 붙여, 위장도 잘 되고 항공기 내에서 폭발할 경우 기체 전부를 날려버릴 수 있도록 만든 구조였다는 것이다. 


    김일성에서 끝나지 않은 테러조직과의 연계


    김일성과 친하게 지내며 테러를 일으킨 아부 니달은 1998년 이집트 당국에 체포됐다. 하지만 당시 병이 위중한 상태여서 카이로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구금돼 있었다. 아부 니달은 자신에 대한 여론이 나빠져 사형당할 것 같이 느끼자 1999년 1월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 이라크로 탈출한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은 처음에는 아부 니달을 극진히 대접하지만, 이라크에 근거지를 둔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훈련을 거절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정보기관에 암살을 지시한다. 아부 니달은 이렇게 2002년 8월 19일 이라크 보안군에게 사살된다.

  • ▲ 2002년 8월 19일(현지시간) 아부 니달을 암살한 이라크 정보기관 관계자가 현장사진을 공개하며 자신들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2002년 8월 19일(현지시간) 아부 니달을 암살한 이라크 정보기관 관계자가 현장사진을 공개하며 자신들은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2015년 현재 김일성도, 아부 니달도 이 세상에 없지만,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포공항 테러의 실행범인 아부 이브라힘과 프레데리케 크라베는 2003년 4월 시리아로 넘어가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태생적으로 국제테러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김씨 일가가 이런 무슬림 테러조직 잔당들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정녕 낮을까. 현실을 보면 걱정스럽다.

    2014년 7월부터 두 달 동안 치러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교전 당시 김정은 집단은 하마스에게 각종 무기와 탄약을 팔겠다고 나선 바 있다. 또 다른 테러조직 헤즈볼라는 북한으로부터 땅굴 파는 법을 배워, 팔레스타인 전역에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땅굴을 뚫어놓은 상태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테러조직 ISIS가 시리아 군에서 빼앗아 사용하는 전차와 자주포, 야포, 개인화기 등 대부분이 북한제다. 이들과 김정은 집단이 앞으로 거래를 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김정은 집단과 무슬림 테러조직은 공동목표도 갖고 있다. 바로 반미와 서방국가 공격이다.

    무슬림 테러조직은 자유민주주의, 종교의 자유, 개인의 기본권 등을 ‘불경(不敬)’한 것이라며 배척한다. 김정은 집단의 주체사상도 비슷하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 자체를 거부한다. 

    이런 집단들이 과거 김일성과 아부 니달처럼 ‘뭉치게 될 경우’ 한국은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