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정치, 길 잃은 교육..우남의 건국정신에서 해법 찾아야
  • [강연 전문] “우남에게 길을 묻다”

    [창간 10주년 기념강연①] 문창극 ‘우남의 나라 만들기’

    혼탁한 정치, 길 잃은 교육..우남의 건국정신에서 해법 찾아야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지난 여름 사태 이후 저는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제가 나섬으로 해서 공연한 잡음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태 이후에 두 번 모임에 참여했는데 다 학술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작년 워싱턴에서 한국의 통일 문제와 관련된 세미나에서 제 소견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한 열흘 전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 발전에 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뉴데일리의 [해방 70년 우남 이승만 대통령 탄신 140년 기념 세미나]도 학술적인 모임이라 생각해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제가 처음 강연을 하는 겁니다.
    저는 평소에 만남을 가질 때, 개인적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 그때 왜 그만뒀어? 국회인사청문회까지 꼭 갔어야 했는데.
    여기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도 그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마음 속에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과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때 저에 대한 비판이 너무 부당하고 황당했지만, 저는 그것이 저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그들의 잘못된 국가관,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걸 그냥 방치했다가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 올바른 국가관, 공정한 역사관, 이것을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없나하는 생각에, 최근 한 달 전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문창극의 역사읽기’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오늘 여기 참석한 것도 올바른 국가관을 만들고 전파하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리는 여기 오신 분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믿는 분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걱정 때문에 오셨을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저에게 주어진 제목은 ‘우남의 나라 세우기’ 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분들이 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제 뒤에 나오시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깊이와 폭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무슨 새로운 사실에 천착하는 것보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가치관을 우리 대한민국 장래, 미래와 연관시켜 여러분과 잠깐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남은 나라를 세우시고 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신 공도 있지만, 여러 가지 과(過)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그 과(過)를 지적하기보다는, 나라를 세울 당시 우남의 신념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0일 전 하노이 코이카 프로그램에서, 월남 CEO들과 거기 계신 한국인 기업인들에게 한국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해서 갔습니다. 강의 제목은 제가 정했는데 ‘한국은 과연 모델 국가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베트남은 지금 굉장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노이시는 지금 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크레인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우리 옛날과 같이 고속도로도 건설 중입니다.

    여러분이 가보면 ‘이 나라가 이렇게 젊은 나라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이 여기 공장을 지었는데 종업원이 9만명에 이릅니다. 이것도 모자라 매주 2,500명의 근로자를 새로 뽑는다고 합니다.

    관계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는데, 논산훈련소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훈련 후 공장에 투입하고 나면 다시 일주일 뒤에 2,500명이 들어오고. 이 사람들이 나가면 다시 2,500명 뽑는 시스템이랍니다.

    출퇴근 버스만 700대에서 800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수출하는 핸드폰이 베트남 수출의 17%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베트남은 ‘한국 같은 나라를 만들자’고 지금 활기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발전 속도를 보면 우리 지난날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1차 5개년 계획을 했던 62년, 그때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였는데, 베트남이 개혁정치를 실시한 86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84달러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1979년, 우리는 1,674달러, 2012년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16달러였습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앞으로 20년 안에 베트남은 우리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은 장래에 대한 확신도 넘쳐납니다.
    베트남은 지금 우리를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가 과연 베트남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 소득은 지난 10년 동안 2만 달러 대에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과거의 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지금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나도 우리 청년들은 겉보기가 그럴 듯 하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이러니 일자리는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 임금이 높고 우리 노동조합이, 집단 이기주의가 심하니까. 그러니 기업인들이 여기서 기업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여기 정치인들도 와 계시죠? 정치는 어떻습니까? 우리 정치가 지금 어떻습니까?
    저 때문에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우리 언론은 지금 어떻습니까 한반도 국제환경은 또 어떻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3세계 국가들이 우리를 보고 쫓아오겠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 나라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을 예로 들었지만, 여기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퇴로, 후퇴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가 잘 사니까 상대적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후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 후퇴만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탕에 지금 들어앉아 거기서 그 미지근함 속에 눈을 감고 지금 졸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신을.
    막힌 둑을 헐어내서 고이고 썩은 물을 뽑아내고, 신선한 물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게 정치혁명입니다.

    며칠 전 리관유 총리가 돌아가셨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돌아가셨다고 전 세계가 안타까워합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하며 안타까웠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이분들을 짓밟고 있습니다. 리관유 총리는 말레이시아가 쫓아냈습니다. 자서전을 보면. 말레이시아 반도 끝 쪽 조그만 섬을 갖고 독립했습니다.

    리관유 총리는 말레이시아와 싸웠습니다. 
    우리 이승만 대통령은 누구와 싸웠습니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을 세운 분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누구와 전쟁을 했습니까? 소련과 중공과 북한과 했습니다.
    리관유와 차원이 다른 전쟁을 했습니다.

    미국은 이승만 박사가 자기들 말을 안 듣는다고 쫓아내려고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붙잡고 설득해서 한미상호방호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박사가 닦아 놓은 터전 위에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미국 지도자들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스스로 물어봅니다.

    지금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리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 건국 선조들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했을까? 이것이 미국 지도자들이 반드시 스스로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미국 국민들은 나라에 대해 자부심이 있습니다. 
    전 세계 5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그런 나라를 만든 워싱턴, 해밀턴, 메디슨, 제퍼슨 이런 파운딩 파더들을 존경합니다.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리도 물어봐야 될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누구한테 물어보면 되겠습니까?
    감히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물어볼 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걸 우리 지도자들이 한 번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리더십 부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리더십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돈 받고, 이런 '정객'이 아니고 국가를 생각하는 진정한 정치가가 필요합니다.
    그런 걸 가진 정치인이 우리는 지금 필요합니다.

    리관유 수상이 추앙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0세기의 정치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건 그건 신념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는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해서 그걸 향해 어렵더라도 추구해나가야 합니다. 그럼 국민들은 힘들지만 저분이 저걸 끌고 가니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 하고 따라갑니다. 그게 진정한 리더십이자 스테이트먼십입니다.

    이승만 박사는 뭐를 가슴에 품었습니까? 
    이승만 박사는 자유민주주의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청년시절 감옥에서 ‘독립정신’을 쓰셨을 때도, 항상 자유민주주의를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으로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자유민주주의라면 아무 것도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 한국을 신탁통치 하려고 했을 때 그걸 깬 장본인이 이승만 박사입니다.

    미국은 뒤늦게야 특히 미국 국무부 사람이나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소련이 팽창하는 걸 보고서야 ‘이승만 박사 말씀이 옳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때 만약 이승만 박사가 안 계시고 미군이 철수 했다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전쟁 중에 한미상호방호조약 협상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박사가 말을 안 들으니 쫓아내려고 작전을 짰습니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흔들리지 않고 미국을 설득해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때 덜레스 국무장관이 서명하러 와서, 이승만 박사를 붙잡고 우리 미국이 당신에게 한 것처럼 어떤 나라에도 이 같이 양보한 적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200년 전, 구한말, 조선말과 비슷해져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2030년쯤이면 미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런 중국 부상에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푸틴은 또 어떻습니까? 김정은을 5월 달에 초대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도 동북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사드 배치를 가지고 중국에 이해를 구해야 된다, 그러지 말고 중국과 미국이 상의해 협상하도록 해라,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자기나라 지키는 일을 중국과 미국이 협상하게하자, 이게 말이나 됩니까?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승만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머릿속으로 물어보십시오. 이대통령은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자기 나라 지키는 것을 중국 눈치를 보고 중국과 미국 협상하게 하자니, 구한말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구한말에 러시아와 미국이 전쟁을 치를 때 조선 고종이 우리는 중립이다 외쳤습니다.
    외친다고 중립이 됩니까?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본한테 먹혔습니다. 나라가 자기 힘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경제 문제 때문에 중국 눈치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식자들은 저 사람은 해양세력이다, 대륙세력이다, 자기들이 지도를 갖고 세계를 다 꿰듯이 자기들끼리 나눕니다. 우리나라 우리세력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국제 정치라는 걸 단순히 권력 정치로 파악해, 힘이 센 나라에 가서 붙자는 게 옳은 논리입니까?

    힘이 센 나라에 무조건 붙어야 됩니까? 아니면 자유와 민주 이런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와 동맹을 맺어 그 동맹을 지켜가는 것이 옳습니까?

    우남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 나라는 지금 포퓰리즘때문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자유를 갖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나라가 분에 넘치는 복지를 약속할 때 파탄 날 수밖에 없습니다. 
    잘 알다시피 그리스 같은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가 중요하다, 선택적 복지가 중요하다.
    이승만은 어떻게 했을까요?

    농지개혁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게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북한이 무상분배해주니까 우리도 무상분배 해야 한다?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갔죠?

    그 당시 국회 소장파 의원들이라는 사람도 똑같았어요. 지주들한테 많이 받고 농민들한테는 조금 받고, 그 차액은 정부가 물어내자 이런 농지개혁을 통과시켰어요. 이승만 박사는 거부했습니다.
    나라가 재정이 없는데 어떻게 전부 다 이걸 대신합니까?

    그러니 이승만 박사의 농지 개혁은 지주들한테나 소작농한테나 똑같이 농지 값을 내게 하자, 이 대통령은 농지개혁을 통해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뭐라는 걸 가르쳤습니다.

    당시 농민이 80%였습니다. 여기에 소작농이 70%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인구의 50%가 소작농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여기서 이승만 박사는 자기재산 자기농토가 뭐라는 걸 깨우치게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땅에서 자기 땀을 흘려서 거기서 소득이 나면 자기 것이 된다,  
    이게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북한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뒤에 다 뺏어서 집단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일하겠습니까? 다 국가 건데.
    여러분, 북한에 가보면 논에 사람은 많은데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 해가 다 가길 기다립니다. 자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것은 사유재산입니다. 자기 책임 아래 자기가 사는 겁니다.  
    북한이 못사는 이유도, 소련이 패망한 이유도 이런 집단농장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러다가는 망하겠다, 시장경제를 들여오자, 정치는 공산독재를 해도 시장경제는 들여오자 했습니다. 베트남이 이걸 따라가고 있습니다.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남이 농지개혁에서 우리에게 준 교훈이 또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중산층이 튼튼해야 한다. 중산층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벌어 자기 식구를 먹여 살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중산층이 뭐냐, 이승만은 자작농과 중산층을 길러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칭찬했다고 하지만, 지금 방향이 잘못돼 사회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청년실업도 결국 교육문제입니다.

    사업자들은 인력을 찾지 못해 중국, 베트남으로 가는데 청년들은 직장이 없다고 합니다.

    우남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해방 당시 문맹률이 80%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재정이 없는데도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불과 10년도 안 돼서 문맹률이 4.1%로 급감했습니다. 중학교는 6.1배가 늘고 대학은 8.5배가 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번영은 우남의 교육정책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대학 교육을 시키려면 제대로 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도 할 일이 없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독일은 직업학교를 나와 자기소질에 맞게 선택하게 합니다.
    임금도 비슷하면 누가 대학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거 할 생각이 없습니다. 겁나니까 그런거 잘 못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전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배웠습니다;.
    ‘홈룸 시간’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치적으로 모든 걸 결정했습니다.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우남은 민주주의 교육을 시킨 학생들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학교에서 장기집권, 부정선거 안 된다고 배웠는데 이게 웬 말이냐? 아승만 박사는 몰랐을까요? 민주주의를 길렀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너는 독재자다, 이렇게만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우리 교육에 대해 이 박사에게 물어봅시다. 이 박사는 다시 이야기 할 것입니다. 
    민주시민교육을 다시 시켜야 된다. 그게 뭡니까? 대한민국 역사의 탄생을 가르치고 기본체제인 헌법을 가르치는 겁니다.

    이를 소홀히 하니 좌파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겁니다. 그래서 법치를 사람들이 우습게 여깁니다. ‘떼’로 주장하면 다 되는 겁니다.

    이 박사는 우리에게 민주시민교육시키라고 우리 마음에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지금 과거의 판입니다.

    정치에서 제일 쉬운 것이 과거를 들춰내서 비난하는 것입니다. ‘과거 포퓰리즘’입니다.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책임 떠넘기기’를 합니다. 이 나라 문제가 모두 과거정권 탓이고 지금 어려운 건 모두 재벌 탓이고 내가 공부 못하는 건 사교육 못 받은 탓이고. 
    내 잘못은 없고 모두 남의 탓 만 합니다.
    그러니 비판과 원망과 분노만 쌓입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고 이를 부추깁니다. 이러니 젊은이 마음속에 상처만 커져갑니다. 이러니 무슨 힐링을 해준다, 이러면 구름떼같이 몰려갑니다. 정치인 중에 힐링 안하겠다는 사람 없습니다.

    우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들춰내지 않고 미래를 지향했습니다. 그게 뭐냐, 반민특위사업을 예로 들겠습니다.

    우남은 이를 결정할 때 “무조건 친일분자 청산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로 민심을 가를 때가 아니다, 나라에 해가 될 뿐이다, 건국사업에 더욱 노력해야지 지난날이 앞날의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했습니다.

    그는 그런 과거보다는 앞으로 나가는 게 더 걱정이었습니다. 과거에 매달리는 게 아니고 미래가 급했습니다. 진짜 스테이트먼십은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로 전진하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 이승만 박사는 초기에 여야를 안 가리고 골고루 등용했습니다.

    지금 정치는 어떻습니까? 물론 이 박사도 말년에는 자유당 일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내각을 구성하는데 모든 파벌을 다 집어넣었습니다.

    1945년초 13개 부처 중 7개 부처 장관에 야당인사를 임명했습니다. 조봉암씨도 그때 들어갔을 것입니다. 만일 이박사가 우리 정치인들 향해서 말하면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파벌 싸움 그만하고 나라 생각하는 정치인 되시오” 이랗게 말 할 것입니다. 
    저는 우남의 나라 세우기가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과연 대한민국이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입니까?

    우남이 나라세울 때 신념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현재 문제의 답을 찾아야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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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 전문] ‘한다면 하는’ 이승만, 국익과 국민이 우선..미국과도 맞서

    [창간 10주년 기념강연②] 이호 ‘우남의 건국 정신’

    사형선고와 모진 고문에도, ‘민주주의 건국 혁명’ 꿈 꿔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우남의 건국 정신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 국가, 반공국가, 국민국가, 한미동맹이 그것이다.

    1898년 이승만은 민주주의 혁명에 참여했다. 
    이 사건으로 청년 이승만은 사형선고를 받고 한성감옥에 수감돼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 박사의 일기를 보면 한성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는 꿈을 꿨다는 내용이 있다. 우남은 50세가 넘어서도 23살에 당한 고문의 악몽을 잊지 못했다. 그만큼 당시 고문은 잔인했다.

    고문에 심신이 지친 이승만은 위안을 삼고자 성경을 읽었다. 조선의 왕족이고 조선 최고의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 받았던 그는, 기독교인이 되던 그날 감옥에서 “오 하나님 조국을 구원해 주옵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라고 외쳤다.

    그가 올린 기도는 “감옥에서 내보내 주옵소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앙을 왜 가질까.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누구나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이승만은 참다운 신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국무총리 지명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승만은 조국을 구원하는 길을 기독교 국가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승만은 조국 대한민국이 반공국가로 거듭나길 원했다.

    당시 러시아에는 붉은 왕조가 나타났다. 전 세계가 공산주의들의 선동에 넘어갔다.

    공산주의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전쟁에 나선 군인이 여자와 아이들을 마구 죽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다름아닌 6.25전쟁을 그린 그림이다. 제국주의자인 미국 군인들이 조선 민중을 파리 잡듯이 죽였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유명한 반미주의자였다. 죽을 때까지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97년 한국 경제가 휘청했던 바로 그 사건, IMF사태를 기억하시는가? IMF 창설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덱스터 화이트가 소련 첩자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유엔 창설의 주역이었던 미 국무부 고위 관료 엘저 히스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엘저 히스가 죽고 나서 소련에 기밀 문서를 보고했던 간첩의 동선과 똑같다는 점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되고 소련 공산당을 위해 스파이 노릇을 할 만큼 공산주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을 사로 잡았었다.

    이럴 때 인류 최초로 반공 연설을 하신 분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공산주의는 자유를 주지 않는 사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한다는 게 이승만 대통령의 지론이었다.

    탈북한 동포들에게 남녘에서 살게 된 것 중 뭐가 제일 좋은지를 물으면 자유를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은행에서 '돈 찾는 자유'를 거론하곤 한다.

    북한에서는 은행에 들어간 돈을 찾을지 말지를 공산당이 결정한다. 반면, 우리는 은행에 있는 1백원을 찾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은 신년사에서 당이 결정한 대로 행동하자고 말했다. 그게 북한이다. 북한은 모든 것을 당이 결정한다. 이 때문에 이승만 박사는 “공산주의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공산주의는 귀신이다. 자기나라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핵폭탄을 만드는 귀신, 그것이 공산주의의 실체다.

    공산주의 사라지기 직전, 고르바초프는 자본주의에게 졌다고 인정했다. 소련의 붕괴는 이승만 박사께서 100년 앞을 내다본 예언자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민국가다.

    예전에는 양반이 쓰는 갓이 있었고, 백정이 쓰는 패랭이 모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 백정이 장가갈 때 양반 갓을 쓰고 장가가다 걸려서 양반이 백정을 모두 해치려고 했다. 이승만은 이런 악습을 타파하고 평등의 나라를 건설했다.

    이승만은 조선인들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이승만이 위대하다 했던 조선 백성들을 상놈이라고 폄하했다. 그렇게 우리의 기운을 눌렀다. 재주를 펼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승만은 양반·상놈 차별을 없애고, 모두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차별을 없애기 위해, 누가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했다. 상놈은 고생해도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우니 먹고살 만한 배경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토지개혁을 통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머슴이 없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승만은 교육혁명을 강조했다. 1913년 하와이에 만든 한인학원은 남녀공학이었다. ‘남녀차별을 없애겠다’는 그의 신념이 이런 개혁을 이끌어냈다. 이승만의 시대를 앞서간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보다 먼저 여자 대통령이 나왔다.

    우리는 한미동맹 국가다. 6.25 전쟁을 도와준 미국이지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미국과도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반공포로 석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군을 통해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때 풀려난 반공포로들은 이승만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이처럼 이승만은 한다면 했다. 우리를 지켜준 미국이지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과도 맞서 싸웠다.

    이렇게 당당한, 한다면 하는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기에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6.25가 위대한 승리인 이유는 부대 단위로 항복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대한 국군 뒤에는 국가와 국민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이 있었다. 당시 이승만은 국군에게 ‘우리 동포를 구출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결하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다.

    이 조약을 통해 미군이 한국에 주둔했고, 한국은 북한과 공산주의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54년 한미동맹 이전 이 땅에서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등의 전쟁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한미동맹 이후 전쟁은 없었다.

    한미동맹을 계기로 한국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세력의 균형을 이룬 동북아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이승만의 업적이다.

  • ▲ ▲ 파블로 피카소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 ⓒ이호 목사 제공


    돌아다니다 보면, 이승만을 욕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난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약소국 지도자로 강대국을 향해 한말을 다한 사람이 과연 있느냐?”, “우리 역사 속에 민족의 번영과 동북아의 평화를 가져온 사람이 또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하면 그 누구도 반문을 하지 못한다.

    이승만 박사는 한다면 하는 결단력으로 우리나라를 이만큼 만들었는데, 지금은 종북세력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5천년 역사 속에서 1천 번이나 침략을 당한 나라가 지금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종북세력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아직 미완성이다. 
    이승만이 주창한 ‘민주주의 건국 혁명’을 이뤄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애국해서 건국 혁명을 만들어가는 데, 남은 모든 노력을 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