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미(反美)주의자들의 미국 유랑기

    舊통진당원들로 구성 된 대한청년평화사절단, 미국서 從北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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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포럼 회장/숙명여자대학 정치외교4)

 3월 16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탄 단체가 있다.
이른바 대한청년평화사절단(단장 정종성).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천안함 5주기(3월 26일)를 맞아
우리 ‘대한민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윽고 미국에 도착한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워싱턴 D.C.와 뉴욕 등에서  ‘대북전단살포반대’,
 ‘사드한반도배치반대’, ‘한미연합훈련중단’ 등을 외치며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울부짖었다.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평화시위’를 진행한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대북전단 살포반대를 위한 진정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접수하겠다면서
유엔 본부로 ‘쳐들어’ 가려다 저지당했다.
세계 각국 대표들이 모여 있는 유엔본부 내에서는
그 어떠한 내용의 시위도 불허한다는 기본 원칙조차 무시한 억지였다.

이들이 세계 각 국의 대표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진정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대북전단 살포가 한국인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 인권재단은 한국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탈북자를 지원하는
자금도 끊으라고 권고해야 한다”는 요지의 행동만큼이나 억지스러운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이튿날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워싱턴D.C.로 건너가 백악관 앞에서도 같은 내용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종북콘서트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국내에서 추방당한
신은미의 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으로 미국 유랑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얼마나 창피한 나라망신이란 말인가?

우선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연합뉴스 등이 말하듯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있는 단체가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이적단체인 실천연대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민권연대, 해산 된 舊통합진보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장 정종성은 舊통진당 서울 성북구의회 의원 예비 후보로 출마했었으며,
현재 앞서 언급한 서울민권연대의 공동의장으로 있다.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관악구 방문 때 기습 시위를 단행했던
한국청년연대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나머지 구성원들도 모두 어느 어느 좌파단체의 무슨 무슨 국장이자
작년 6·4지방선거 때 舊통진당의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전적들을 갖고 있는
범인(凡人)아닌 범인(犯人)이다.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의 경솔한 언행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필자와 같은 청년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첫째로는 ‘대한’의 이름으로 종북질을 해대는 퍼포먼스를 業(업)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이른바 ‘평화’를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국익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것이다.
뚜렷한 반미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은 김씨 왕조의 충성스러운 부역자다운 짓을 벌였다.
김정일의 대남 적화에 있어 필수불가결 요건으로 설정한 한미연합사해체, 주한미군철수 등을 미국까지 건너가 주장했다. 김정일이 지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일이다.

분단위의 평화는 砂上樓閣(사상누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로부터 50km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서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조차 박탈당한 우리 형제들이 있다.
우리 형제들은 김가의 비만한 독재 정치 하에서 매일 매일 고통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이 운운하는 ‘평화’란 대체 어떤 대상과의 평화란 말인가? 

 심지어 이들은 당당하지도 못하다. 이들의 페이스북이나 이력을 살펴보면
누구 한 명 당당히 “내가 舊통진당원이요, 내가 민권연대의 임원이요!” 밝혀놓은 자가 없다.
양심수(良心囚)라는 용어를 아는가.
윤리적·사상적·정치적 신념에 의해 투옥된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목숨 바쳐 민주화 운동을 한 선배들은 당당했다.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자유화를 위해 몇 번이고 감옥에 투옥되고 고문당하면서도
자신의 신념 앞에 당당했다.
그러나 이석기, 정종성 류의 사람들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그 종북질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늘 평화니 민권이니 민중이니 하는 이름 뒤에
본인들의 맨살을 숨기기 바쁘니 말이다.

 3월 26일은 천안함 46인의 해군장병들이 김정일의 그 무슨 발작하듯 일으키는
무력 도발로 인해 조국의 바다에서 산화 된 날이다.
필자의 생년월일은 91년 1월 7일로 46인 용사들의 친구, 동생, 누나의 나이이다.
실제로 한 사람은 필자보다 딱 일주일 뒤인 14일에 태어났으나
전우들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눈을 감았다.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던 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였을 수도,
이 부족한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었을 수도,
당신의 아들이었을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정말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3월 26일,
그리고 ‘왜’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이다.

 대한청년평화사절단은 3월 26일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 앞으로 곧장 이동해 기자회견을 단행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필자는 먼저 간 그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분노로 몸을 떨었다.
우리는 주적국가를 조국으로 여기는 자들이 구성한 당으로,
헌정 역사상 최초로 해산 된 통합진보당의 잔재들이
대한민국을 욕보이게 하는 일탈들을
더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