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IIB 빌미로 일본에도 구애…日, '韓-中의 과거사 공격' 내세워 美와 관계 호전
  •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만난 아베 日총리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얼굴이 많이 펴졌다. ⓒSBS 관련보도 화면 캡쳐
    ▲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만난 아베 日총리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얼굴이 많이 펴졌다. ⓒSBS 관련보도 화면 캡쳐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는 그동안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일본과 중국 지도자가 만났다. 이들은 서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나눴다.

    비동맹 진영 최대의 모임인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中공산당의 시진핑 총서기는 ‘자칭 서양국가’인 일본의 총리와 손을 잡으며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등 양국 간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2014년 11월 APEC 회의 아베 총리를 무시하는가 하면, 얼굴만 봐도 굳은 얼굴로 쳐다보던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는 이번에는 웃는 얼굴로 아베 日총리를 맞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양국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자평(自評)도 내놨다.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는 자신의 집권 이후 수시로 나왔던 ‘과거사 직시와 진심어린 반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아베 日총리는 반둥 회의에 참석해 ‘일제 시절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는 ‘양국의 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중국 간의 관계가 돈독한 것처럼 행동했다.

    한편 같은 시각, 박근혜 한국 대통령은 남미를 찾아 소위 ‘비즈니스 순방’을 하고 있었다. 칠레, 페루 등을 돌며 이들 나라에 초급 훈련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동남아 10개국이 참여하는 ASEAN 국가 가운데 대부분이 ‘반둥 회의’의 회원국이다. 한국 국가안보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가진 나라들이다. 반면 페루, 칠레 등은 한국과 경제적 관계는 중요하지만 한국 국가안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나라는 아니다.

    다른 모습을 살펴보자. 아베 日총리는 오는 29일(현지시간) 美의회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다. 미군의 지배를 받은 지 70년 만에,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아베 日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상당한 공을 들인 사람들은 미국 내 ‘우파’이면서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었다. 반면 미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고 친근하게 여기는 정치인을 꼽으면 버락 오바마 美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구도가 생긴 데는 박근혜 정부 정책에 상당 부분 원인이 있어 보인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은 ‘국익’ 보다는 ‘명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과거사 문제다. 中공산당과 러시아 푸틴 정권이 북한 김정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들과 같은 목소리로 일본을 향해 ‘과거사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박근혜 대통령 간의 친밀한 관계는 박근혜 정부가 ‘친중정권’이 아닌가 하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미국이 동아시아 질서유지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아는 아베 정권은 이를 십분활용해 한국과 중국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독도’와 ‘과거사’를 왜곡해 교과서와 외교청서에 싣는 등의 도발을 계속했다.

    또한 한국과 중국이 함께 일본을 ‘공격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 조야(朝野)에 어필했다. 2014년 8월부터 시작된 中공산당 고위간부들의 ‘사드 협박’에 별 다른 항의를 하지 않은 점은 아베 정권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그 결과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美정치인들은 한국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베 日총리는 오는 26일 美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국내 여론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할 것이고, 아베 정권은 또 다시 이를 역이용해 美우파 정치인들에게 알릴 것이다.

  •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사진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면, 2014년 11월 中베이징 APEC 회의 당시를 함께 보면 된다. 이때 시진핑의 모습은 아들 잃은 모택동 표정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관련보도 캡쳐
    ▲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사진만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면, 2014년 11월 中베이징 APEC 회의 당시를 함께 보면 된다. 이때 시진핑의 모습은 아들 잃은 모택동 표정처럼 보인다. ⓒ조선일보 관련보도 캡쳐

    간략하게 몇 가지 사례만 언급했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간의 ‘파워게임’에서 한국 정부는 ‘장기판의 졸(卒, Pawn)’으로 전락한 듯하다. 이를 엿보게 하는 것이 바로 인도네시아 반둥 회의에서 시진핑과 아베가 친근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눈 것이다.

    中공산당 입장에서는 일본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한국을 부추기면, 손쉽게 한미일 삼각동맹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분열’이 더욱 가속화되어 한국을 미국에게서 떨어뜨려 놓는 결과를 만들어 놓으면, 서태평양을 장악한다는 ‘국가전략’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여기다 일본까지 AIIB에 끌어들인 뒤, “서태평양은 언감생심이다. 우리는 한반도 주변의 ‘중립화’를 원한다”고 미국과 일본에 요구하면, 中공산당의 1차 국가전략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하는 셈이 된다.

    아베 정권이 이끄는 일본 극우세력들도 中공산당과 공통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한반도 내 정치세력의 ‘무력화’다.

    국내 언론이나 학계, 정계에서 잘 말하지 않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일본의 정치인 2세 가운데 상당수가 ‘친중파’라는 점이다. ‘친중파’인 일본 정치인들은 10년 전부터 ‘제2의 한반도 분단론’을 주장해 왔다. 미국이 태평양 전체를 지킬 힘을 잃어버린 뒤 다가올 ‘다극화 체제’를 전제로 한 주장이었다.

    이런 계산이 10년이 흐른 현재에는 어디까지 발전해 왔는지 알기 어렵다. ‘친중파’ 일본 2세 정치인들이 中공산당과 과연 어느 정도의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中공산당과 日극우세력이 이처럼 한반도 주변을 놓고 각자의 계산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외교부는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아베 日총리 간의 정상회담으로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일본과 중국 관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제로섬 관계’로 보는 시각”이라면서 “우리는 그런 시각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한다.

    외교부가 브리핑에서 설명한 한국과 주변국 간의 관계는 ‘한일중 간 삼각협력’과 ‘한미일 삼각동맹’을 동시에 추진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라는 ‘부정적 외생변수’가 있는 현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외전략이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벌써 국내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한국이 19세기 말의 조선처럼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