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라다움'을 깨고 있는가?
     
     
법치가 묵살당하면 나라는 이미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 눈금에서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바닥에서 과히 멀지 않을 성 싶다.
이게 지나친 비관론이길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비관할 이유가 자꾸만 쌓여가니 어쩌란 말인가?
 
우선 지도층부터가 법치주의를 우습게 여긴다.
문재인 새민련 대표는 재보선 패배 직후 이렇게 말했다.
"우리당은 패했지만 국민은 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에(선거결과에) 굴하지 않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
굴하지 않겠다니?
다수 유권자(국민)의 준엄한 판결, 즉 법치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또 "국민만 보고 가겠다"니... 4곳 모두에서 다 져놓고, 그렇다면 대체 어떤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소리인가?
한 마디로, 국민이 이룩한 규범적 결과물을 '마음속으로는' 한사코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 아니고 뭔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되겠다는 '지도 층'이 이렇듯 규범을 우습게 아니, 나라의 나라다움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셈이다.
 
법치 경시(輕視)는 대중 차원에서도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 달 30일 광주지법 102호 법정에서는 피고인 4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자 방청객 한 사람이 재판장을 향해 "죽여 버릴 거야, 찔러버릴 거야"라며 소란을 피웠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유죄선고를 받았을 때도 똑같은 소란이 있었다.
전 같으면, 그리고 선진국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일이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나라의 나라다움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왜 이렇게 됐나?
왼쪽으로 기운 정권들도, 그렇지 않다고 하는 정권들도 '민중민주주의'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폭민(暴民) 현상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걸 부추기고 영합하고 방치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법치주의가 능멸을 당하고 '중우(衆愚)의 폭거(暴擧)'가 만성화 되었다.
 
이젠 누구도 오늘날 같은 일탈(逸脫) 현상을 응징하거나 바로 잡을 사람도 없고, 공권력도 없고, 정당도 없고, 국회도 없고, 행정부도 없다.

그리고 법적 규범의 견고한 마지노 선(線) 노릇을 해야 할 '법조(法曹) 3륜(輪)'마저 가면 갈수록 '민중민주주의' 세례를 듬뿍 받은 세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대통령 직(職)도 갈수록 더, 난폭한 광장의 '떼쟁이'들에게 아첨하는 포퓰리스트들이 차지할 판이 되었다.
 
이걸 두고 민주화?
우리 세대가 그토록 절절하게 염원하고 추구했던 민주화란 고작 이걸 보자고 한 것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느냐?"는 자위(自慰) 섞인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런 점도 물론 없진 않겠지...
그러나 공권력에 대한 폭민의 도전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 누구 정말 없나?
이런 세태를 향해 두려움 없이 "안 된다!"고 외치고 나설 반(反)포퓰리즘의 의연한 리더(대통령) 지망자 정말 없나?
그런 인물이 나와 빈사(瀕死)의 법치주의를 회생시키지 않고서는 나라의 나라다움은 좀처럼 바로 설 수 없을 것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