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여당 대표 최초로 봉하 찾으며 '통합의 정신' 공감 나섰지만…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일찍 입장해 앞렬 가운데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이처럼 평온하게 진행되던 추도식은 노건호 씨의 선동 발언 이후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일찍 입장해 앞렬 가운데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이처럼 평온하게 진행되던 추도식은 노건호 씨의 선동 발언 이후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맏아들인 노건호 씨가 부친의 6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에게 수위 높은 면박을 쏟아내며 스스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이날 노건호 씨의 발언은 평온하게 진행되던 추도식장에서 참석자들을 격동시켜, 결국 김무성 대표가 갖은 비아냥과 욕설을 듣는 단초가 됐다.

    김무성 대표는 23일 현 여권의 당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지난 17~18일 5·18을 맞아 광주행을 다녀온 것에 이어 계속되는 국민통합 행보의 일환이었다.

    그는 야당 인사들보다도 이른 시각인 오후 1시 40분 무렵에 추도식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첫째 줄 가운데 자리를 배정받아 홀로 앉을 무렵, 일부 참석자가 "김무성은 오지 마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작은 소란에 그쳤다.

    내빈 소개가 있을 때에도 참석자들은 김무성 대표가 소개될 때 차가운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 별다른 야유나 항의는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소개될 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진 것과는 대조적이었지만, 추도식은 전반적으로 평온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상주(喪主) 격에 해당하는 노건호 씨가 유족 인삿말 차례에서 김무성 대표를 정면겨냥해 십자포화를 날리면서 추도식장의 분위기는 일변했다.

    노건호 씨는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가 기밀을 뜯어뿌리며 읊어대고 아무 말 없이 언론에 불쑥 나타나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 같다"고 비꼬았다.

    이어 "(김무성 대표가) 국가의 최고기밀인 정상회담 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뿌리고, 국가 권력 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 세운다"며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하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 소리가 높아지고 추도식 참석자들이 점점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자, 노건호 씨는 분위기를 탄 듯 선동을 이어갔다. 

    노건호 씨는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하는 일도 없으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다"며 "오해하지 말라. 사과, 반성은 필요 없다"고 맹비난했다.

    '사과'와 '반성'을 언급한 것은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NLL 포기 발언'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무성 대표는 앞서 2012년 대선 유세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는 이를 "정치적 소신으로 사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이 23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 씨의 발언을 듣고 있다. 멀리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이 23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6주기 추도식에서 노건호 씨의 발언을 듣고 있다. 멀리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뉴데일리 임재섭 기자


    면전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발언이 계속되자 김무성 대표는 쓴웃음을 지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도중에 무어라 말을 건넸지만, 김무성 대표는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이 때문인지 김무성 대표는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노건호 씨와 악수를 하지 않은 채 맞인사만 나누고 퇴장했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나 새정치연합 인사들은 물론 심지어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마저도 노건호 씨와 맞인사를 한 뒤 악수를 나눈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노건호 씨의 유족 인삿말은 추도식 참석자들을 선동하기에 충분했다. 차분하게 진행되던 추도식은 노건호 씨의 발언 이후로 격동한 참석자들에 의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김무성 대표가 헌화를 마친 뒤 묘역을 떠나는 과정에서 물세례가 이어졌다. 지난 17일 광주에서 열린 5·18 전야제에 김무성 대표가 참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격앙된 군중들이 다시 한 번 물을 뿌린 것이다. 

    온갖 욕설과 야유도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김무성 대표가 차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 이러한 언동을 멈추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를 끝까지 따라가 "좋은 말로 할 때 김무성은 나가라"라고 소리친 박 모 씨는 〈뉴데일리〉 취재진에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그의 됨됨이에 화가 났다"고 했다.

    지난 17일 광주에서 열렸던 5·18 전야제에서도 김무성 대표를 향한 공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행사 주최측과 관계없는 사회자의 돌발 발언으로 촉발됐다. 이후 5·18 유족회가 지난 20일 직접 상경해 국회에서 김무성 대표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반면 이날 노건호 씨의 발언은 추도식의 상주에 해당하는 사람이 직접 소란을 불러일으키는데 가장 앞장섰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노건호 씨가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분석이다. 특히 유족 인삿말에서 "내년 총선에서는 노무현 타령 좀 안 하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이라며 이례적으로 '내년 총선'을 꼭 찝어 언급한 것은 시사한 바가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노무현재단에서 노건호 씨의 정치적 체급을 키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김무성 대표와 각을 세우는 발언을 하도록 한 것 같다"며 "혹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는 것은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이날 추도식 참석과 그 이후의 봉변 상황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가 오늘은 취재진과 연락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노건호 씨 유족 인삿말 전문

    6주기를 맞아 찾아준 많은 분들에 감사하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많은 분들께서 함께해 주셨다. 전국 각지에서 인상깊은 추모 행사를 했다. 콘서트·사진전·글짓기·그림대회 등 손 꼽기가 힘들었다. 다채로운 행사가 자발적으로 펼쳐진 것에 감격을 금할 수 없다. 고인이 주목한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는 정치인이 아닌 시민이 바꾸는 것이다.

    5월은 한국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민주주의의 달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시민과 귀빈이 찾아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자원봉사자와 추도식을 준비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많은 지역시민들께서 함께해 주셨다. 묘역 주변에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응원해 주시고 있다. 반드시 지역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문화 생활을 향유하며 민주주의의 과정을 되씹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겠다. 비록 참석 못하셨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해준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이 자리에 특별히 감사하고 싶은 분이 오셨다. 전직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면서 피토하듯 대화록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다. 권력으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가 기밀을 뜯어뿌려서 읊어대고, 아무 말 없이 언론에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 같다.

    혹시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 본인도 그간의 사건들에 대해 처벌받은 일도 없고 반성하는 일도 없으시니 그저 헛꿈이 아닌가 싶다. 오해하지 말라. 사과, 반성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제발 나라 생각 좀 하라. 국가의 최고기밀인 정상 회의록까지 선거용으로 뜯어뿌리고 국가 권력 자원을 총동원해 소수파를 말살시키고, 사회를 끊임없이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세우면서 권력만 움켜쥐고 사익만 채우려 하면 이 엄중한 시기에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국체를 좀 소중히 여겨달라. 중국은 30년 만에 저렇게 올라왔다. 한국이 30년 만에 침몰하지 말라는 법 있느냐. 힘 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 좋을 수도 있겠다. 나중에 힘 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은 어찌하려고 국가의 기본 질서를 흔드느냐.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해달라. 와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