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떨어 국민 겁주고, 책임 뒤집어 씌워 권위 세워…수익 우선주의 보도?
  • 경찰·사건기자 초년병 시절, 수학여행을 떠나던 초등학교 관광버스 전복 사고를 목격한 일이 있었다. 부리나케 '데스크'에게 전화로 상황 보고를 했다. 대뜸 돌아온 대답은 "그래서. 몇 명이나 죽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는 학생이나 사망자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에 데스크는 무심한 말투로 "다행은 무슨, 중상이나 사망자 나와야 기사가 되지"라며 퉁명스레 전화를 끊었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아 다행인 것보다, 기삿거리가 안돼 아쉬워 하는 언론. 과거나 현재나 대한민국 언론들은 그랬다. 항상 자극적인 사건만 쫓았고, 심하게 말하면 호들갑을 떨면서 국민을 자극시키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무슨 일만 터지면 장님 코끼리 만지듯 들입다 큰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언론의 사명이 된 것 같다는 독자들의 평가는 씁쓸함을 넘어 절로 탄식이 나오게 한다.

    2003년 [광우뻥 난동]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뇌 송송 구멍 탁]으로 대표되는 [광우뻥 떼촛불 선동]을 복기해 보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날 것처럼 호들갑 떤 언론을 상기해보라. 대한민국 언론의 경망스러움을 온 세계에 여실히 보여준 치욕스런 과거가 아니던가. 그중에서도 비주류 언론의 뻥튀기와 선동은 한국 언론사에 그 유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는 주류언론마저 낯 뜨거울 정도의 저급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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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종식이 가장 큰 당면 과제이지만 메르스 사태가 끼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조속히 극복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을 비롯한 모두가 가급적 국민들에게 불안을 주거나 경제적 위축을 가져오지 않도록 모든 면에서 신경을 써서 대처해 주셔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발언이나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들에 대해서는 자제를 부탁드리고…

    - 박근혜 대통령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16일 현재까지 메르스로 사망한 사람이 20명으로 늘었다.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었던 사람들이라 '메르스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4차 감염도 생겼고 사망자 20명 중 2명은 현재까지는 특별한 기저질환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언론들의 보도 행태는 도가 지나치다. 대통령을 한숨 쉬게 만들만하다. 치사율 12.3%라고 국민들을 겁주기 바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워 마녀사냥하는데에만 여념이 없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는 하루 평균 5천여명이 감염됐고, 매일 5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사람들이 의외로 우습게 보는 결핵은 매일 100명의 환자가 생기고, 하루 평균 6-7명의 사망자가 나온다.(2013년 통계 기준) 결핵은 특히 공기 감염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메르스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게 전문의들의 소견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차분히 전달하는 언론다운 언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 16일 메르스 대응 관련 교육현장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염리동 서울여중을 찾아 학생들의 수업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뉴데일리
    ▲ 16일 메르스 대응 관련 교육현장 방문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염리동 서울여중을 찾아 학생들의 수업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뉴데일리



    언론들은 왜, 더 위험한 결핵은 우습게 보고 메르스 사태만 침소봉대 할까.

    <조선일보>의 최근 사설들을 보면 언론들의 이런 보도행태에 숨겨진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조선>은 15일자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삼성서울병원의 '收益(수익) 우선' 경영>이란 사설로 삼성서울병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 사설은 "삼성서울병원을 메르스를 확산시킨 최악의 진원지가 돼버렸다"는 과격한 표현과 함께, "정부도 삼성서울병원을 성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고 비난했다. 마치 정부와 삼성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조선>은 다음날인 16일자 사설에는 한술 더 떠 '삼성 메르스'라는 기상천외한 네이밍(naming)을 갖다 붙였다. 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여기에 방역 당국과 병원 간의 어떤 유착(癒着)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나중에 사법 당국이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고도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펄펄 뛰었다.

    메르스 사태 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사태 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삼성서울병원에게,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확인되지도 않은 의혹을 제기하며 무조건 '폐쇄'시키는데 힘을 쏟는게 <조선>의 보도 행태였다. 전국 암수술의 10% 가량을 담당하는 삼성서울병원이 폐쇄됨에 따라 벌어지는 다른 환자들의 피해는 전혀 고려치 않는 무책임함도 보였다.

    <조선>은 또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에 그룹 전략기획실 출신 경영혁신 전문가를 임명하고, 계열사에서 차출한 전문 경영인들을 병원 경영진 상층부에 포진시킨 것을 꼬집으며 병원이 매출과 이익을 앞세우는 '수익 우선 경영'이라고 매도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과는 다소 다르다. 삼성서울병원은  2012년에 427억원, 2013년 619억원, 2014년 551억원 적자 등 설립 이후 계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적자는 삼성 계열사가 매년 기부하는 돈으로 메우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SDS 등 각 계열사 인사들을 병원에 투입했다는 지적도 논리적 모순이다. 병원은 단순 의료 행위만 하는 곳이 아니다. IT 기술에 입각한 복잡한 의료 네트워크 구축, 호텔 경영에 버금가는 입원병동 관리, 의약품을 비롯한 복잡한 재고자산관리 등, 그 어느 회사보다 다양한 직군-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한게 종합병원이다. 전산 전문가들 입장에서 병원전산업무야말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입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집결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선일보> 사설은 그런 분야까지 의사가 맡아야 정당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맡으면 부당하다는 식 주장을 하고 있다.

  • 메르스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리더십이 도전받는다는 다소 황당한 기사. ⓒ 캡쳐화면
    ▲ 메르스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리더십이 도전받는다는 다소 황당한 기사. ⓒ 캡쳐화면

    <조선>은 왜 이처럼 무리한 논리를 동원하면서까지 <삼성>을 때리는 것일까. 무슨 속셈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서울병원만을 표적으로 삼아 집요하게 비판하는 것에 감춰둔 의도와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박원순 시장이 삼성서울병원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마치 자신을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포장하려는 '질 낮은 정치'라면, <조선> 역시 삼성을 비판하는 보도로 언론의 권위를 세우려는 '저급한 의도'가 숨어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이 세우려는 이 언론의 권위는 결국 수익과 직결된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은 언론사에게는 최대 광고주다. 기업을 때려 광고 수익을 올린다는 그야말로 수익 우선주의 보도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4일 보도된 <치명적 복병 엘리엇과 메르스로 도전받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라는 기사는 <조선>의 이런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삼성병원을 설립한 삼성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점을 꼬집어 메르스 사태 때문에 이재용의 리더십이 위기에 빠졌다는 다소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펼친다. CEO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비판 기사는 해당 기업에서 가장 틀어막고 싶어 하는 보도라는 점에서 메르스 정국을 이용해 <조선이 삼성을 때린다>는 짐작에 힘을 실었다.


  • 조선닷컴 캡쳐화면, 정치권이 메르스 사태를 이용해 표 확보하려 한다는 비판적 사설과 함께 삼성서울병원의 수익 우선 경영을 비판하는 사설을 함께 실었다.
    ▲ 조선닷컴 캡쳐화면, 정치권이 메르스 사태를 이용해 표 확보하려 한다는 비판적 사설과 함께 삼성서울병원의 수익 우선 경영을 비판하는 사설을 함께 실었다.

    더한 코미디는 그런 <조선> 같은 날 다른 사설에서는 메르스 사태로 표를 얻으려는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메르스마저 票 확보에 써먹으려 안달하나> 제하의 이 사설은 "여야는 일손이 모자라는 곳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호통치거나 홍보용 사진을 찍어 언론에 돌리는 데 열중할 게 아니라, 뻥 뚫린 방역 시스템을 어떻게 고치고 보강할지에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정치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 "유권자들은 이번에 메르스 사태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立地)에 유리하게 끌고 가느냐에 골몰하는 정치인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경고가 가득 담긴 지적을 덧붙였다.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이 사설의 비판 그대로 <조선>의 수익 우선 주의 보도를 비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08년 이후 8년간 단 한명의 감염자도 사망자도 나오지 않은 [광우뻥 폭동]에 부화뇌동했던 부끄러움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공익에 우선하는 언론의 사명을 자각한다면, <조선>을 비롯한 주류 언론들은 메르스 사태에서도 뜬금없는 기업 때리기에 몰두할게 아니다.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고 개선할지를 고민하고 그에 걸맞은 보도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광화문을 점거한 [광우뻥 폭동] 당시 조선일보 건물도 폭도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 당시 비과학적 주장과 미신적 믿음, 주술적 선동에 현혹되어 유모차에 어린 애들을 태우고 광화문에 등장한 [유모차 부대의 추억]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주류 언론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떼촛불]로 온 나라가 뒤집어 질 수도 있다는 그 교훈을 벌써 망각했단 말인가?

    조선일보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도 어떤 언론들이 메르스 사태를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 수익으로 연결시키려 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고 준엄한 비판을 내려야 할 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