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전사자, 국민의 정부 홀대 속에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아
  • ▲ 지난 2002년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 2002한일월드컵 브라질-독일 간의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오른쪽 사진은 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에 대한 장례식이 엄수되는 서울의 모습. ⓒ 자료사진
    ▲ 지난 2002년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 2002한일월드컵 브라질-독일 간의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오른쪽 사진은 연평해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에 대한 장례식이 엄수되는 서울의 모습. ⓒ 자료사진

"다른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이유를 붙여 엄청난 배·보상을 해주는데,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장병들에게는 쥐꼬리만큼 보상을 해준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는가."

   - 정갑윤 국회부의장(새누리당)


오는 29일 제2 연평해전 13주기를 맞이해, 이제라도 전사자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되면서, 김대중 정부 당시 우리 장병들이 어떻게 희생됐고,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잊혀진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나흘 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달성으로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었던 이날, 연평도 NLL(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경비정들이 대한민국 해군 함정을 향해 기습공격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조천형 중사, 박동혁 병장이 등 6명의 용사들이 희생됐고, 19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우리 군의 피해가 컸던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의 기습공격도 이유였지만, 당시 정부가 정한 이해할 수 없는 교전수칙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북한과의 친선관계를 유기지하기 위해 북한이 먼저 공격해야만 반격을 할 수 있는 교전수칙을 고집했던 것이다.

2002년 6월 30일. 애꿎은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당했음에도 김대중 정부는 산화한 애국장병들과 그 유족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북한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유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긴커녕 일본으로 출국, 일본국왕 내외와 함께 월드컵 결승 경기를 관람했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정부에서 전사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전사(戰死)와 순직(戰死)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공무 중 사망'으로 처리, 본인 보수월액의 36배만 지급했다. 고(故)박동혁 병장은 중사 1호봉의 36개월치 봉급인 약 3,100만 원, 윤영하 소령은 약 6,500만 원을 각각 보상받았다.

'말도 안 되는 보상'이라는 여론이 일면서 2004년 보상 기준이 '전투에 의한 전사'와 '일반 공무에 의한 사망'으로 세분화됐지만, 정작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 소급 적용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