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 칼럼> 조우석의 문화비평
    박 대통령, 국회독재 제압했던 이승만을 배워야

    '행정부·국회 갈등’ 닮은꼴인 1952년 부산정치파동에 담긴 진실

    조우석  |  media@mediapen.com
  • ▲ 조우석 문화평론가
    ▲ 조우석 문화평론가
      
    지금이야말로 ‘역사의 승리자’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직후 지난 1주일 동안 벌어진 당청 갈등을
    지켜보며 내내 떠올렸던 사건은 따로 있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이 그것인데, 무려 63년이나 떨어져있는 두 정치적 사건은 놀랍도록 닮은꼴이고 구조 또한 같다.

    6.26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벌어졌던 부산정치파동은 건국 직후 제헌헌법이 규정했던
    ‘국회가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를 없애고, 대통령을 뽑는 권리를 국민에게 돌려줬던 직선제 개헌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 헌정사의 분수령인데, 이번 파동도 결과에 따라 이 나라 정치환경을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정치파동과, 이번 거부권 행사는 국회 대 행정부라는 두 헌법기관의 대립이다.

    그때는 국회를 무릎 꿇린 이승만의 승리로 결판났는데,
    둘을 맞비교할 경우 지금의 혼란이 정리되고 새로운 통찰도 얻을 수 있다.

    부산정치파동을 인터넷 위키백과는 이렇게 정의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을 확실히 하고, 독재정권 기반을 굳히기 위해 한국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폭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구속한, 일련의 정치적 파행이다.”운운….

    민주냐 독재냐의 이분법 잣대는 안 될 말

    학교시절 우리도 그렇게 배웠다. 이승만이 집권연장을 위해 국회 간선제 방식으로는 재선이 불가능할 것 같으니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무리하게 헌정질서를 중단시킨 친위 쿠테타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부산정치파동을 민주냐 독재냐의 이분법의 잣대로 재단할 순 없다.
    그것이야말로 ‘전체에 대한 통찰’부족이며, 현대사에 대한 비하와 왜곡으로 연결된다.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숨겨진 깊은 차원을 읽어내야 한다.
    일단 부산정치파동은 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느 것이 한국 여건에 적합한가를 둘러싼 견해차에서 발생했다. 

    상식이지만 건국 직후는 국회가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였다. 그런 대통령 선출권을 국회는 행정부 견제의 수단으로 여겼다. 당시 국회는 야당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승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차제에 내각제 개헌까지 시도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판단은 달랐다.
    당시는 건국 직후이고, 전쟁상황이다. 또 정당정치가 막 시작된 시점에서 내각제 개헌이
    과연 적합할까를 이승만은 묻고 또 물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위해 대통령제가 좋다는 판단 아래 그는 국회에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후 역사가 보여주듯 이승만이 옳았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니던가? 

    결정적으로 당시 이승만과 국회의 힘겨루기 사이에는 미국이란 변수가 컸다.
    그게 부산정치파동의 또 다른 차원인데, 이걸 읽지 못하니 민주냐 독재냐 따위의 섣부른 잣대를 들이댄다. 즉 당시 미국은 이승만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6.25전쟁에서 빨리 발을 뽑으려던 미국은 이승만을 권좌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몄다.
    그 일환으로 북진통일을 외치는 고집불통 이승만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를 포섭해 움직였다.
    그걸 너끈히 파악했던 이승만이 초강수를 거듭했던 것도 너무도 당연한 자위권 발동이 아닐까?
    고사당하길 거부했던 그는 막바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무능-무책임-무소신 국회에 대한 응징은 너무도 당연

    또 땃벌떼-백골단 등 시민단체를 동원해 국회해산을 압박하는 등 최대한의 권력의지를 발휘했다.(이 대목을 두고 정치학자들은 질겁하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형 마키아벨리즘의 효과적인 구현으로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놀랍게도 아주 멋지게 들어맞았다.

    미국의 영향력을 업은 채 ‘국회 독재’를 완성하려던 국회의 음모를 이승만은 무산시켰다.

    이게 부산정치파동의 총체적 진실이다.
    정치학자 고(故) 김일영의 명저 <건국과 부국>(기파랑)이 그걸 보여주고 있고, 요즘 저술 중 빼어난 김용삼(미래한국 편집장)의 저서 <이승만의 네이션빌딩>(북앤피플)도 그 입장을 보여준다.
    현대사를 균형있게 보려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 이제 63년을 건너뛰어 지금 국회 대 대통령의 갈등 구조를 살펴보자.

    부산정치파동 때와 거의 똑 같다.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강제하는 국회법안이 입법부 독재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동안 무능-무책임-무소신 국회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던 걸 염두에 둔다면,
    이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조치가 아닐까? 특히 국회선진화법 이후 여당과 야당이 함께 나눠먹는
    진흙탕 국회는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했다. 역사적으로 봐도 의미가 있다.
    즉 건국 대통령에 의해 오래 전 완패를 당했던 국회권력이 대통령중심제를 다시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작업이기도 하다.

    요즘 선동언론으로 변질된 신문방송은 당청 갈등의 표면만을 요란하게 다루지만,
    이런 숨겨진 차원의 진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박 대통령의 거부 사유는 국회법 개정안이 국가행정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었고,
    여의도 정치의 무능과 국정철학의 부재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막다른 골목에서 강력한 정치력과 리더십 회복을 기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놓고 야당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반발했는데,
    부산정치파동 때나 지금이나 국회는 이런 식의 민주팔이를 능사로 하는 법이다.
    반복하지만, 이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누구를 찍어내고 축출하자는 게 아니라
    기회주의적 웰빙정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 지도부 전체를 향한 사자후(獅子吼)로 읽어야 옳다. 

    임기 중반 이후 적극적 통치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남북관계를 전진시키려는 큰 포석도 숨어있다. 사실상의 상왕(上王)이던 국회에 대한 급제동을 제대로 건 것이다.
    그동안 국회는 내각제 개헌 카드로 청와대를 압박해오지 않았던가?
    그런 음험한 개헌음모가 성공하기 어려우니 편법을 동원해 국회독재를 완성하려했던 게 요즘의 그들이 아니던가? 

    여기까지가 역사의 진실이고, 시민으로서의 상식이다.
    밝히지만, 요즘 나는 무섭다. 반세기 전 역사를 민주 대 독재의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려는 이 나라 지식인들의 단순무지가 두렵고,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려는 태도가 안타깝다. 

    또 작금의 정치상황을 당청 갈등 혹은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으로 몰고 가려는 이 나라 삼류언론이 벌이는 ‘선동의 굿판’또한 못내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숙명처럼 주어진
    나쁜 정치문화 환경을 뚫고 나가야 한다.

    답은 나와 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따라하기’밖에 길이 없다.

    63년 전 전쟁 중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승리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도 구조는 같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박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력과 리더십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참고로 조금 전 언급했던 김용삼의 책에 이런 대목이 눈에 확 띄는데, 대통령과 참모들이 더불어 음미할만하다.

    “소설가 고(故) 김성한 선생은 ‘무능한 통치자는 역사의 범죄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유능한 통치자는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 받아 마땅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