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아사드 정권, 레바논 히즈불라 “이란의 완벽한 승리, 미국에 죽음을” 주장
  • 오는 11월 석방될 예정인 조너선 폴라드. 그가 석방된다고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냉각기류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美CNN과의 인터뷰 장면 캡쳐
    ▲ 오는 11월 석방될 예정인 조너선 폴라드. 그가 석방된다고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냉각기류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美CNN과의 인터뷰 장면 캡쳐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간첩’으로 알려진 조너선 폴라드(60세)가 오는 11월 풀려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세계 언론은 美정부가 30년 만에 조너선 폴라드를 석방하는 이유를 “이란 핵합의로 열 받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국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은 오바마 정부가 이뤄낸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그리고 독일 간의 ‘이란 핵합의’로 앞으로 이란은 영원히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조너선 폴라드의 석방으로 조만간 이스라엘과 미국 간의 냉랭했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내 유대계 사회, 美공화당 일각은 다르게 본다. 오바마 정부가 ‘순진하게(Naive)’ 이란의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비판을 한다.

    美워싱턴 소재 ‘중동 미디어연구소(MEMRI)’는 지난 16일 “이란 핵합의는 아사드 정권과 히즈불라 등 ‘악의 축’의 승리, 미국의 항복, 사우디의 패배”라는 장문의 리포트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MEMRI 측은 이 리포트에서 “이란의 동맹인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과 레바논의 히즈불라는 이번 핵합의를 ‘우리 동맹의 엄청난 승리(Huge Victory)’로 중동 지역과 전 세계 패권에 변화를 주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MEMRI 측은 “알 아사드 대통령은 이란 최고 지도자 하마네이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이란이 예전부터 고수한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레바논 히즈불라 의회의 무하마드 라드 또한 ‘이란은 이번 합의로 세계 역학구도를 뒤집을 수퍼 파워로 성장했다’고 추켜세우며, 이번 이란 핵합의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MEMRI에 따르면, 이란에 대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과 레바논 히즈불라의 축하 인사는 이들만의 수사적(修辭的) 표현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 美워싱턴 소재 씽크탱크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가 발표한 이란 핵합의 후 시리아와 히즈불라의 보도 리포트. ⓒMEMRI 홈페이지 캡쳐
    ▲ 美워싱턴 소재 씽크탱크 '중동미디어연구소(MEMRI)'가 발표한 이란 핵합의 후 시리아와 히즈불라의 보도 리포트. ⓒMEMRI 홈페이지 캡쳐


    레바논 일간지 ‘알 아크바르’는 “미국에게 죽음을”이라는 제목의 극단적인 반미 기사를 통해 이번 이란 핵합의를 “서방 세계의 항복”이라며 “이번에 이란이 이룩한 성취를 통해 전 세계에서 서방과 미국의 패권을 제거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MEMRI 측의 전언이다.

    시리아 관영매체 또한 이번 이란 핵합의를 “시리아와 히즈불라를 포함한 동맹국의 승리”라며 “미국과 서방이 아랍 진영에 박살났으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패배했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다.

    MEMRI는 또한 이들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이번에 이란이 핵합의를 통해 서방 세계에게 승리한 방법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앞으로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예멘에서 미국과 그의 아랍 동맹들에 저항하면서 이란과 같은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면서, 향후 이란, 시리아, 히즈불라, 하마스, ISIS 등과 같은 ‘악당 세력들’이 이란 핵합의 과정을 본 따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를 속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MEMRI 측이 “위험하다”며 사례로 든 시리아 관영 매체와 레바논 ‘알 아크바르’의 기사 가운데는 “서방 진영과 지금의 아랍 국가 체제를 붕괴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 시오니스트 정권을 박살내자”는 표현, 이란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독일 간의 합의를 ‘이란의 승리’로 “미국에게 죽음을 줄 기회”라는 표현도 실제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험악한 표현’만으로 이스라엘이 이란과 서방 진영 간의 핵합의에 반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그리고 美공화당 일부 인사와 지지자들은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치명적 실수를 되돌아보라”고 지적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내각회의(국무회의)에서 1994년 美-北 제네바 합의 당시의 영상을 장관들에게 보여줬다. 이 소식을 들은 오바마 美행정부와 이란 핵합의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네타냐후 총리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우려를 무조건 무시할 것만은 아니었다. 1994년 당시 기억을 한 번 되살려보자. 

  • 1993년 7월 10일 방한, 청와대에서 만찬을 가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내외. 이런 화기애애한 관계는 1994년 북한 때문에 크게 틀어진다. ⓒ美국가안보 아카이브 캡쳐
    ▲ 1993년 7월 10일 방한, 청와대에서 만찬을 가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내외. 이런 화기애애한 관계는 1994년 북한 때문에 크게 틀어진다. ⓒ美국가안보 아카이브 캡쳐


    1993년 초 남북 대화에서 북한이 ‘서울 불바다’ 협박을 한 뒤 한반도 상황은 일촉즉발로 치달았다. 남북한 간의 긴장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면서 극으로 치달았다. 1994년에는 미국의 ‘북폭 계획’으로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주요 핵무기 개발 시설, 미사일 기지에 대한 정밀폭격 작전을 세웠다.

    이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강력한 반발과 지미 카터 前대통령의 중재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터 前대통령의 중재로 김일성과 김영삼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나 싶었지만,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됐고, 정권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대표단을 보내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1994년 10월 21일 미국과 북한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북한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해 경수로형 원자로를 건설해주고, 완공 전까지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다. 이 합의에 따라 북한은 NPT로 복귀했고,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사찰도 받기 시작했다.

    이 합의 이후 클린턴 당시 美대통령은 “제네바 합의로 북한은 평화로운 핵기술을 보유하게 됐고, 한국과 주변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게 됐다”는 연설을 했다.

    이렇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발족됐다. KEDO는 한국과 미국, 일본, EU가 비용을 부담해 북한에 경수로 원전을 건설해주고, 원전이 완공될 때까지 북한에 석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KEDO를 통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에 지원한 돈은 한국이 14억 5,500만 달러, 일본이 4억 9,800만 달러, 미국 4억 500만 달러, 오스트레일리아 1억 2,200만 달러, EU 1억 2,200만 달러였다.

    90년대 후반 당시 KEDO 사업을 위해 파견됐던 근로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경수로 원전 건설을 위해 보낸 시멘트와 콘크리트, 철근 등 각종 자재와 중장비들을 군수 목적으로 전용하기 위해 빼돌렸다고 한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지 6년 뒤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한 뒤부터 KEDO 사업에 매우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재처리 시설을 국제사회 몰래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 났다.

    북한은 결국 2003년 KEDO와 관련된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그리고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 신포지구에 원전 2기를 건설하기 위해 보냈던 각종 장비와 자재들을 모두 몰수했다.

    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북한의 NPT 탈퇴와 3번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 기술의 이란, 시리아 판매 등으로 이어졌다.

  • 1995년부터 북한 신포지역에 건설을 시작한 경수로는 공정률 30%에 그친 채 공사가 중단됐다. 한국과 미국, 일본, EU 등 KEDO에 참여한 국가들은 4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날렸다. ⓒKEDO 홈페이지-38노스 자료 캡쳐
    ▲ 1995년부터 북한 신포지역에 건설을 시작한 경수로는 공정률 30%에 그친 채 공사가 중단됐다. 한국과 미국, 일본, EU 등 KEDO에 참여한 국가들은 4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날렸다. ⓒKEDO 홈페이지-38노스 자료 캡쳐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본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인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이란도 북한처럼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오바마 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만큼이나 ‘순진한(Naive)’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란이 미국을 포함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독일과 협상에 나선 것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시간도 벌고, 필요한 물자도 상당량을 얻었던 북한의 ‘노하우’를 배워 거의 비슷한 과정을 통해 핵무기 개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의 유대계 사회, 美공화당 일각에서는 이란이 서방 세계가 생각하는 ‘보통 국가’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 이스라엘의 ‘멸종’을 원하는 ‘종교적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이 따르는 신념은 시아파든 수니파든 관계없이 “이교도에게는 어떤 짓을 해도 범죄가 아니다”라는 율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의 유대계 사회, 美공화당 일각,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지금도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예로 들며, 이란 핵합의가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과 美민주당 진영에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깨진 것은 미국과 북한 모두의 잘못”이라는, ‘물타기식 해명’을 내놓고 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이 언론에 보도된 뒤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것은 북한이지만, 합의를 파기로 이끈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있었다”는 로버트 갈루치 당시 美국무부 차관보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란과 북한의 유사성, 중동 역사 등을 생각해 볼 때, 최근  28일(현지시간) 美정부가 ‘이스라엘 간첩’ 조너선 폴라드를 석방하기로 결정하고,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고 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유대계와 공화당의 우려가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주도한 이란 핵합의가 1994년 ‘美北 제네바 합의’의 재판(再版)이 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란과 시리아, 히즈불라와 같은 중동 테러조직들이 지난 30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서방세계를 속이는 노하우’를 서로 공유해 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으로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