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극좌와 극우가 주장하는 바는 정반대지만 행동양태는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나는 최근 논란이 된 조갑제 씨의 글 ‘안 싸우는 강남 사람은 좌파보다 못하다’를 보고 진보논객 공희준 씨를 떠올렸다. 조갑제 씨 주장의 논리나 공희준 씨의 주장 논리나 별로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우리 뉴데일리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희준 씨를 설명하겠다. 공희준 씨는 칼럼니스트로 서프라이즈 편집장을 했던 사람이다. 서프라이즈 편집장을 했던 사람이니 당연히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희준 씨(이하 공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 공희준 씨의 주장을 노무현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희준 ‘나는 진정한 의미의 파퓰리스트’

    그렇다면 공씨의 사상성향은 어떻게 될까? 내가 보기에는 공씨의 사상 성향은 중도좌파 성향이지만 본인은 그런 구분을 거부한다. 공씨는 자신을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스트’라고 소개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진정한 서민의 대변자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좌파, 우파 식의 구분을 낡은 것이라고 일축한다.

    현재 공씨는 미디어몹이라는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최근 홍준표 서울시장 예비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홍준표 국회의원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홍준표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한나라당 의원인 홍준표 의원 자체는 지지하지 않지만 서울시장 예비후보로서의 홍준표 의원만 지지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홍준표 후보를 공씨가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 홍준표 후보가 강북주민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씨는 홍 후보의 국적법이나 아파트 반값 공약 등을 매우 좋은 공약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나라-열린우리-민주당 후보 가운데 강북서민을 생각하는 유일한 서울시장 후보는 홍준표 의원이란 이야기이다.

    원래 한나라당을 ‘강남당’(강남주민-가진 자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이라고 치부하며 반 한나라 노선을 분명히 해 온 공씨가 한나라당 소속인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이유는 강금실 열린우리당 예비후보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한마디로 강금실 후보가 강남사람들하고 가까이 지내려드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거다. 그리고 애초부터 공씨는 강금실 후보를 ‘무자식 상팔자의 돈 많은 이혼녀’라고 비아냥거려 왔었다.

    홍준표가 진정한 서민후보?

    그런데 공씨의 논리는 사실 앞뒤가 안 맞는다. 홍준표 의원은 이렇게 강조한다.

    ① 나는 한나라당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해왔다. 그러므로 내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어야 한다.

    ② 그런데 공씨 논리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강남 주민의 이익만 대변하는 강남당이다.

    ③ 그러나 홍 의원은 누구보다 자신이 한나라당을 위해 충성해왔다고 말한다.

    ④ 이런 홍 의원을 공씨는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본인이 ‘강남당’인 한나라당이 싫다고 그리 강조해놓고는 이제와서 그 한나라당을 위해 충성했다는 홍 의원이 서울시장으로 좋단다. 공씨의 복잡한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보면 공씨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멀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조갑제 씨의 글을 생각해 보자. 조갑제 씨는 ‘안 싸우는 강남 사람은 싸우는 좌파보다 못하다’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3. 며칠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체육단련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4.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을 즐기면서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6. 친북좌파들은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싸웠다. 그들의 지향점은 틀려먹었으나 생명체로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도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

    7.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갑제 씨와 생각이 다르다. 조갑제 씨는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 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 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지만 이는 너무 지나친 생각이다. 그리고 극우 발상이다. ‘극우적 발상’이 아니고 ‘극우 발상’이다. 한마디로 파시스트 발상이란 이야기이다.

    ‘룸살롱 보수’를 위한 변명

    사실 한국 보수운동 진영에서는 ‘나서지 않는 가진 자’들에 대한 불만이 높다. 한마디로 ‘해외골프 보수’,‘룸살롱 보수’들을 비난하는 목청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그런 선을 넘어 대기업들을 공격하는 보수인들도 많이 늘었다.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내면서도 정작 보수진영에 돈을 잘 안 낸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의 의무실천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심지어 이런 비판은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나 진보좌파들도 늘상 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보수진영의 좋은 약점이 된 지 오래라는 이야기이다.

    정리하면 ‘룸살롱 보수’들이 비판을 받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경멸’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일이다. 내가 조갑제 씨와 생각이 다르다면 조갑제 씨를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갑제 씨를 ‘매우 경멸’한다면 너무 과한 일이 아니겠는가.

    조갑제 씨는 부유한 주민들이 주변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고 ‘못 가진 사람들에게 못 되게 군다’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어느 사람이나 자기 집 주변에 세인들이 보기 안 좋은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손해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한 생리다.

    정부가 조갑제 씨 같은 중산층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 빈민들을 돕기 위해세금을 두 배 내라고 요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조갑제 씨는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조갑제식 논리대로 하면 조갑제 씨는 반발하면 안된다.

    왜냐?

    가난한 사람들에게 못 되게 구는 것이므로.

    그리고 내가 볼 때 임대아파트 건립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조갑제 씨(이하 조씨)의 시각은 한마디로 ‘좌파 발상’이다. 자신의 사유재산 가치를 보호하겠다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