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침략·식민지배에 대한 반성, 과거사로 만들어버리며 ‘희생자’ 코스프레
  •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면서 과거 일제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반성을 ‘과거사’로 취급하자 정부가 “반성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라”며 비판 메시지를 내놨다. 

    아베 총리는 14일 발표한 담화에서 일제 시절의 동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 침략 지역에서의 잔혹항 행위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에 대해 합리화하는 행태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역사의 교훈 속에서 미래를 향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면서도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이 19세기 아시아에도 밀려왔고,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틀림없다”며 “아시아 최초로 입헌정치를 내세워 독립을 지켜냈고, 일러 전쟁으로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주장을 폈다.

    아베 총리는 20세기 초 일제 시대의 상황과 70년 전 패전했음을 설명한 뒤 “전후 70년에 즈음하여 국내외에서 쓰러져간 모든 분들의 영령 앞에 깊이 고개 숙여 통석(痛惜)의 염(念)을 표하는 동시에, 영원한 진심 어린 애도를 바친다”며 일제 침략행위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뭉뚱그려 이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베 총리의 속내는 그 직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늠할 수 없는 손해와 고통을 우리나라가 안겨 준 사실. 역사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300여만 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가족의 행복을 빌면서 전쟁터에서 산화한 분들, 종전 후 혹한의, 또는 작열하는 먼 이국땅에서 굶주림과 병으로 괴로워하다가 돌아가신 분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도쿄를 비롯한 각 도시의 폭격, 오키나와에서의 지상전 등으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히도 희생되었다”면서,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인해 무고한 인명이 희생된 것에 대한 애도는 그리 강한 어조로 말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90년대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과거사’로 취급하는 말이 이어서 나왔다.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사람인 아시아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다. 이러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었다. 이어진 말은 “전후 600만 명이 넘는 귀환자가 아시아 태평양 각지에서 가까스로 무사 귀환해 일본 재건의 원동력이 된 사실, 중국에 내팽개쳐진 3,000명 가까운 일본인 자녀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성장해 다시 조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사실,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의 포로 출신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을 방문해 서로 전사자들의 넋을 계속 위로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전쟁의 온갖 고통을 겪은 중국인 여러분과 일본군에 의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입은 포로 출신 여러분이 그토록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마음의 갈등이 있었고, 얼마만큼 노력이 필요했을까 그 점을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침략 전에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학살하고 피해를 입혔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본심은 연이어 나타났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어섰다”면서 “그 전쟁(태평양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비확산과 폐기를 목표로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점을 강조, 일제가 ‘피해자’ 인척하기도 했다.

    이런 아베 총리의 속내는 15일 아베 정권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전범들을 ‘합사(合祀)’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함으로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아베 총리의 이 같은 담화가 나온 뒤 14일,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행동을 보이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한국 정부는 15일 아베 측근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외교부는 15일 논평을 통해 아베 정권 내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적한 뒤 “어제 아베 일본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주년 담화는 지금의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어떠한 역사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밝힌 점에 주목한다”면서 “과연 일본 정부가 이런 입장을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해 아베 정권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 간의 과거사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외교부는 일단 외교안보 문제와 과거사 문제는 별개로 다룰 것임을 밝힌 뒤 “일본 정부가 이웃 국가로서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여정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한 연이은 논평에서 “일본 지도급 인사들이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의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만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의 이 같은 지적은 예상과 달리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지난 14일 아베 총리의 담화 발표 이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中공산당도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과거사’로 만들어버린 아베 총리의 ‘수사(修辭)’적 표현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베 총리가 발표한 담화에 대해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놓은 것은 지금까지 美정부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