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사(白衣社) 총사령, '염동진'이 염석진 모델
  • ▲ 백의사(白衣社)의 총사령이었던 염동진(廉東振)을 모델로 그려진 염석진(이정재 분).   ⓒ 뉴데일리
    ▲ 백의사(白衣社)의 총사령이었던 염동진(廉東振)을 모델로 그려진 염석진(이정재 분). ⓒ 뉴데일리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민족의 독립투쟁을 이끈 '위인'으로 묘사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염동진을 모델로 한 염석진은 극중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 찍혀 말년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최동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염석진이란 캐릭터는 백의사(白衣社)의 총사령이었던 염동진(廉東振)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본명이 염응택(廉應澤)인 염동진은 1932년 중국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를 졸업한 뒤 남의사에서 활동하다 1937년 관동군에게 체포된다.

    일각에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염동진이 일제의 모진 고문에 굴복, '밀정 노릇'을 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영화 '암살'에서도 염석진은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다 일제 수하로 들어가 과거의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양심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로 염동진이 일본군에 협조했다는 공식 기록이 없어 '일제 부역설'은 구전되고 있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1943년 평양에서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大同團)을 결성한 염동진은 1945년 해방 이후 반공 테러단체인 '백의사(白衣社)'를 결성했다.

    1946년 평양역에서 열린 3ㆍ1절 기념대회에 수류탄을 투척, 김일성(金日成)·강양욱(康良煜)·김책(金策) 등을 암살하려 했던 사건의 배후가 '백의사'였고, 이듬해 발생한 여운형(呂運亨)·장덕수(張德秀) 암살 사건에도 '백의사'가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백의사'는 당시 좌파 인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백색 테러리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김원봉이 좌파 무력집단의 거두였다면, '백의사'로 대변된 염동진은 우파 무장투쟁가들의 상징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백의사'는 6,25전쟁 기간 염동진이 사망하면서 자연 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