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칙적 답변 "우리 입장은 기존과 다르지 않아, 전제조건 없이 회담 개최해야"
  • 취임 후 처음으로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조선일보(뉴시스·마이니치신문)
    ▲ 취임 후 처음으로 양자 정상회담을 갖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 ⓒ조선일보(뉴시스·마이니치신문)

     

    시작부터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취임 후 처음으로 갖는 한-일(韓日) 정상회담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단호하게 거론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지난 29일 진행된 일본 마이니치(每日)·아사히(朝日) 신문과의 공동 서면 인터뷰를 통해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하자 일본 정부 측은 원칙적이면서도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안정적 관계 발전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국 사이에 중요한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전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금년에만 위안부 할머니 8분이 돌아가셔서 이제 47분만 살아계신데 금년 내 이 문제가 타결돼 이 분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일 관계는 우리 정부가 정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관계 악화의 책임이 사실상 일본 측에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를 어떤 식으로 매듭 짓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村山 談話),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河野 談話)를 언급하며, "역사인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도 일본 정부가 그러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지난 9월 일본의 안전보장 관련 법안이 처리된 것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대해 주변국들의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의 방위안보 정책은 평화헌법의 정신을 기초로 미·일 동맹의 틀 안에서 역내 국가간 선린우호 관계와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명하게 이행돼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에 대해 일본 정부 측은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이제까지 밝혀온 대로이며, 전제조건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 장관을 대신해 30일 기자회견에 나선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관방 부장관의 공식적인 입장 정리였다.

    일본 정부는 누차 군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함께 종결됐다고 평가하고 관련 사안을 더 이상 정치외교적으로 문제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생존 피해자들에게 납득할 만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요구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할 말은 다하겠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사실상 군위안부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첫 단추부터 매끄럽지 않다. 한-일 양국은 정상회담 일정 문제를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또한 정상회담은 환영 오찬·만찬 등 식사나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차가운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이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했던 일각에선 '시작도 전에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무려 3년 반 만에 어렵게 성사된 양자 정상회담이 서로의 이견만 확인하고 끝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과거사와 실질협력을 분리한 '투 트랙'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냉정하게 국익을 따져 북핵·통일 문제, 안보협력 문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등 현안과 과거사는 분리해 접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사전 의제 조율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으니 회담이 열려도 뚜렷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팽팽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결국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에 아베 총리가 어떻게 답변하고 반응하느냐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회담은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성의 있는 접근을 촉구하고, 이에 아베 총리가 준비된 답변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두 정상 간에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