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시진핑의 영국 국빈 방문 이어 메르켈, 올랑드, 네델란드 국왕 부부 중국 국빈 방문
  • 영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데이비드 캐머런 英총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신화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와 데이비드 캐머런 英총리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신화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일본과 중국, 중국과 EU 국가들 간의 움직임이 상반돼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은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중국의 ‘남중국해 행패’에 날을 세우고 있는 반면 EU 주요 국가들은 中공산당과 더욱 가까워지지 못해 안달이 난 듯 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 EU의 ‘중심’으로 평가받는 독일, 프랑스, 영국의 ‘친중외교’는 서방 국가들마저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단순한 ‘경제 살리기’ 차원을 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인다.

    지난 10월 19일,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는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등 왕실 주요 인사는 물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주요 장관들이 직접 시진핑을 응대하며 극진히 모셨다.

    4박 5일의 영국 국빈 방문을 끝내고 중국으로 돌아간 시진핑. 며칠 뒤인 10월 25일부터 29일 사이에는 빌럼 알렉산더 네델란드 국왕 부부가 중국을 방문했다. 130개 업체 250여 명의 기업인이 모인 경제사절단과 함께였다고 한다.

    10월 29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중국을 찾아 시진핑을 만났다. 메르켈 총리를 시진핑과 만난 자리에서 “독일에는 여왕이 없지만 중국 지도자의 방문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면서 양국 간의 ‘돈독한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지난 11월 2일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을 만났다. 올랑드 대통령은 기후변화문제에 관해 中공산당의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협상 과제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中공산당이 인민해방군과 해상 의용대를 동원해 ‘행패’를 부려 일어난 남중국해 갈등으로 미국과 일본, 남중국해 인근 국가들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서도 유럽 국가들의 잇따른 ‘대중 아첨외교’는 단순한 ‘경제 협력’ 문제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英·獨·佛·和 EU 4개국, 中과 주고받은 것


    시진핑이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HS2(고속철도), 원전 건설 등에 400억 파운드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을 찾은 다른 나라 정상들은 영국 정부와 경쟁하듯 中공산당에게 통 큰 협력과 투자를 요청했다. 유통 강국인 네델란드는 방중 당시 중국의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지목하며 온라인 상거래와 관련한 폭넓은 협력과 자국에 대한 투자를 요청했다. ‘일대일로 사업’과 AIIB 계획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시했다.

  • 중국을 국빈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中공산당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
    ▲ 중국을 국빈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中공산당 외교부 홈페이지 캡쳐


    독일의 경우 방중 기간 중 中공산당에 에어버스 헬기 100대 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유럽 금융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에 위안화 금융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제거래소를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프랑스는 ‘기후변화협약’을 명분으로 중국과 200억 유로 규모의 핵폐기물 재처리 협력 협정을 맺었다. 프랑스는 또한 中공산당에 국영 원전기업 ‘아레바’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미 수많은 원전 사업에서 협력 중인 중국과 프랑스 간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가 中공산당에게 요구한 것은 거액의 투자와 사업협력이었다. 中공산당은 EU 국가들에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위안화 특별인출권(SDR) 바스켓 편입, AIIB 확대, 일대일로 사업에서의 협력 등을 요구했고, 이를 얻어냈다.

    中공산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EU-中 FTA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라시아를 관통한 뒤 EU 국가들과 하나의 ‘경제권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FTA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中공산당의 계산으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등에 모두 8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중국이 미래에 얻을 이익에 비하면 사실 큰 것이 아니라고 본다.

    中공산당 정부의 외환 보유액은 지난 2년 사이 4,000억 달러나 줄었다. 내수 경기 진작과 경제성장률 7% 지키기, 환율 방어를 위해 막대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외환 보유고는 3조 7,00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中공산당은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 바스켓에 포함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준(準)기축통화’가 되면, 지금 EU와 제3세계 국가들에게 투자하는 수천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 및 서방 진영과의 ‘화폐전쟁’에서 유용한 무기가 생기는 것이다.

    남중국해로 궁지에 몰린 中, EU로 눈 돌린 이유


    中공산당이 EU로 눈을 돌린 것은 사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행보는 보다 전략적인 차원이라는 해석이 많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남중국해 인공섬 문제는 中공산당이 2011년 전후부터 주변국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문제다. 첫 희생양은 필리핀과 베트남 등 해군력이 매우 약한 국가들이었다.

    2011년 초 베트남은 스프래틀리 군도 가운데 자신들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고 있던 섬 일대에서 석유 탐사를 시작한다. 中공산당은 처음에는 ‘외교적’으로 항의를 하다 몇 달 뒤 관공선을 보내 베트남 석유탐사선의 해저 케이블을 절단해 버린다. 양국 간의 긴장은 점차 고조됐고 베트남은 2011년 6월 15일 병력 동원령까지 선포한다. 하지만 해군력이 약한 베트남은 中인민해방군과 해상 의용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결국 베트남 인근 섬에서의 석유 탐사는 中공산당 차지가 됐다.

    中공산당은 2012년 초, 민간 소형 상선과 어선으로 이뤄진 ‘해상 의용대’를 필리핀이 실질적인 영유권을 갖고 있던 스카보러 섬으로 보내 무단 점거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중국 어선들을 앞세운 무단 점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中공산당 소속 관공선도 대거 참여한 것이다.

    필리핀 정부와 국민들은 이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中공산당을 규탄했지만, 결국 섬을 빼앗기고 말았다. 25년 전 그렇게도 미군 철수를 외쳤던 필리핀 국민은 결국 미군의 주둔을 요청했다.

    이를 시작으로 中공산당과 남중국해 주변국 간의 긴장은 해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 美해군 신형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찍은 中인공섬. ⓒ美국방부 공개사진
    ▲ 美해군 신형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이 찍은 中인공섬. ⓒ美국방부 공개사진


    현재 국내에서는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의 암초에다 인공섬을 짓는 것만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실은 中공산당이 2014년 초부터 베트남과 필리핀의 EEZ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석유 탐사를 벌이면서 상황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中공산당이 인민해방군과 해상 의용대, 대규모 관공선으로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를 휘젓고 다녀도 베트남, 필리핀은 구경만 할 뿐이었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태국 등은 中인민해방군이 행여나 자기 앞바다까지 쳐들어올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러던 상황에서 2015년 일본 정부가 해외 파병과 집단자위권 발동이 가능하도록 ‘안보법안’을 통과시키고, 미국이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 적극적인 군사협력을 표명하면서 이번에는 中공산당이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다.

    中공산당과 인민해방군 지도부는 현재의 전력으로는 미군 전체는커녕 美태평양 사령부와 싸워도 승산이 없다는 점을 잘 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백전백패라는 점도 안다.

    中공산당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미국의 상대가 안 되므로 ‘반미’ 또는 ‘중립’ 의견을 표명해도 미국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새 동맹’을 만들고, 비군사적 측면에서의 경쟁을 추진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AIIB와 RCEP, 지정학적으로는 ‘일대일로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미국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 EU 국가들과의 협력이다.

    中공산당에 머리 조아리는 유럽국가, EU 해체 조짐인가?


    한편 EU 회원국이면서 NATO 회원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가 中공산당에게 마치 머리를 조아리듯 경쟁적으로 친밀함을 표시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경제 난 때문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는 냉전 시대에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이자 산업 경쟁력이 뛰어난 국가였다. 하지만 현재 이들 나라는 노령화와 대규모 이민자의 유입, 보편적 복지 때문에 생긴 사회의 나태한 분위기, 이로 인한 높은 실업률 때문에 적당한 미래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네 나라 정상이 中공산당 지도부를 초청 또는 직접 찾아가 ‘협력’을 강조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이들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여기서 EU의 균열을 찾아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에다 캐머런 총리까지 나와 시진핑을 환대했던 영국은 AIIB 가입과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시, 거액의 투자를 얻어냈다.

  • 중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中공산당 총서기. ⓒ뉴시스-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0년 전부터 中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기술수출 및 합작 사업을 해 온 프랑스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협약’을 내세워 중국에 첨단 환경기술과 원전 기술을 제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강조하면서, 中공산당과의 기술 협력을 약속했다. 메르켈 총리가 中공산당에 판매한 100여 대의 에어버스 헬기는 중국 항공기술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네델란드 왕실은 中공산당 지도부를 만나 ‘전자 상거래’ 분야에 대한 기술협력과 투자를 요청했다. 이는 유럽의 물류 허브인 네델란드의 특성을 십분 살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처럼 4개국의 대중 협력 전략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차이는 중동 난민 수용을 둘러싼 EU 국가들 간의 의견 충돌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눈여겨볼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최근 논란이 된 중동 난민 수용에 있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일부 인원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적으로는 중동 및 아시아에서 유입된 불법체류자들을 강제추방하고 이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보수당 정권은 2017년까지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는 목표도 세워둔 상태다. 영국은 EU와 ‘통화 통합’은 하지 않아 탈퇴를 해도 경제적인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

    반면 EU의 경제 중심인 독일과 프랑스는 중동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동유럽 회원국들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정책을 펴고 있다. 2014년 그리스 사태 당시에도 독일과 프랑스는 또 다시 구제 금융을 제공, ‘EU의 호구’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ISIS지지 세력들이 테러를 저질렀을 때도 불법체류자를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았고, 35년 전 미테랑 정권 때부터 실시해 온 ‘보편적 복지’ 정책도 바꿀 생각을 않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이 같은 태도 차이는 현재 경제 상황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국은 보수당 집권 이후 가파른 경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10%가 넘는 실업률에다 낮은 경제성장률로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2014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 불거진 폭스바겐 그룹의 배기가스 저감 장치 사기 사건으로 경제적 위험성은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영국은 자신 있는 분야인 ‘금융’을 통해 中공산당이 보유한 풍부한 외환을 활용하겠다는 심산인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中공산당의 돈과 자신들의 핵심 기술을 맞바꾸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차이점은 지금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간의 격차가 매우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과 주변 지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생길 경우 영국은 피해를 별로 입지 않는 반면 독일, 프랑스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처럼 EU의 핵심 세력인 세 나라 간의 격차가 커진다는 것은 결국 EU의 주도세력이 바뀌거나 또는 분열을 거쳐 와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