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감정-비난등 표현 없어...외교 행적은 비교적 상세히 기록
  • <뉴데일리 시장경제신문/ 인보길의 역사 올레길-(83)>

    [이승만 일기] 독립운동 40년행적 나왔다

    해방 70년 만에 번역본 첫 출간...1904~44년까지 영어로 쓴 것


그 유명한 [이승만 일기]가 마침내 번역되어 나왔다.
 [Log Book]으로 알려진 방대한 일기. 111년전 한국을 떠나던 날부터 해방후 돌아오기 전까지 이승만이 40년간 쓴 영어일기, 망명생활과 독립운동의 긴 세월 역사일기가 해방 70년 만에,
그가 간 지 50년 만에 번역되었다.
1904년 11월 4일, 제물포(인천)에서 미국 이민선에 탄 이승만은 첫날부터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입헌왕국을 세우려 투쟁하다가 역모죄로 한성감옥에서 5년7개월간 옥살이를 마치고 석방된 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독립원조를 청하러 떠나는 길, 이승만은 미국 대학 유학이 주 목적이었다. 개펄이 질퍽거리는 제물포 항구,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떠나는 동포들을 싣고 가는 오하이오 3등선실, 배재학당과 감옥에서 익힌 영어로 일기를 쓴 목적은 무엇일까. 미국 알기, 미국과 친하기, 미국식 자유민주 공화국을 만들려는 혁명가의 수련 고행 길은 영어 일기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40년 일기는 모두 영어일기다.
  • 이승만 일기 원본들. 왼쪽 ‘Log Book of S.R.’이 적힌 파란 책이 처음 시작한 일기장. 작은 수첩 일기 겉장에도 ‘Book 5’ ‘Book 7’등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 이승만 일기 원본들. 왼쪽 ‘Log Book of S.R.’이 적힌 파란 책이 처음 시작한 일기장. 작은 수첩 일기 겉장에도 ‘Book 5’ ‘Book 7’등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 ▶이번에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이 펴낸 [국역: 이승만 일기]와 영문 영인본을 보면
    이승만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겉장에 ‘Log Book of S. R. since 1904’라고 쓴 첫 일기장을 비롯하여 이승만의 손때 묻은 여러 개의 수첩과 노트 일기를 보면, 개인 일기장이라기 보다 자료적 성격이 강하다.
    왜냐하면, 으례 개인 일기에 보이는 감상이나 타인 비난, 자기 속내 털어놓기 등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을 마치 남의 행적을 기록하듯 메모 식으로 적어 놓은 게 많다.
    예를 들어보자.
    ***1906년, 2월 25일 오후 7시, 태산아가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 시립병원에서 숨짐.(7 p.m. Taisanah passed away at the Municipal Hospital, Philadelphia. Pa,)
    ***1913년. 5월 14일 서울 집에서 부친 별세 전보를 받았음. (A telegram from home, Seoul, annauncing the passing away of my father was received.)
    ***1934년, 10월 8일 월요일 오전6시30분에 우리는 몽클레어 호텔 기념홀에서 결혼을 했다. 존 하인즈 홈스(John Haynes Holms) 목사와 윤병구 목사가 주례를 섰다. 킴벌랜드 부인과 남궁염 부인이 신부 들러리를 섰고, 킴벌랜드 대령과 레미어 목사, 프린스턴대학 옛 친구들이 신랑의 들러리가 되어 주었다.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 친구가 모두 와서 방명록에 축하의 말을 남겼다. 결혼식이 끝나자 호텔 다이닝 룸으로 가서 피로연을 가졌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호텔의 오케스트라가 신랑 신부를 위해 결혼 행진곡을 연주했다. (영문 생략)
    모두 이런 식이다. ‘슬프다, 울었다, 기쁘다, 행복하다’ 등 감정 표현은 놀랍게 절제하였다.
  •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집무중인 이승만(1921).
    ▲ 임시정부 대통령으로서 집무중인 이승만(1921).

    미국 배 타는 날부터 해방까지 40년간 영어로 일기 쓰다
    개인 감상 안 쓰고, 수많은 갈등에도 타인 비난 대목 없어
    10년치 누락...민주당정권서 압수 파기했을 때 없어진 듯

  • ▶멸사애국(滅私愛國)의 독립운동가,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성령 받은 기독교 정신‘으로 하늘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이승만의 영혼은 일기장에도 고스란히 보인다. 
    동지들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일기장엔 독립 외교활동과 외국 견문기 등은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특히 여권 때문에 겪은 일들이 눈길을 끈다.***1933년 8월 8일, 영사관으로 가자 영사는 식사하러 가고 없었다. 나는 기다렸다. 영사가 들어오자 부영사와 함께 내 여권을 보더니, 내가 한국인인데 일본 여권을 거부하고 미국 시민도 아니면서 미국 여권을 발급받은 사실에 매우 흥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내 여권이 많은 불편을 야기하기 때문에 외교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고 말했다.(후략, 영문생략)이승만은 윌슨 대통령이 권해도 미국 국적을 끝내 얻지 않았다. 당시 서재필, 안창호, 김구, 김성수 등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미국적, 중국적, 소련국적, 일본국적으로 살 때 이승만은 항상 무국적자였다. “대한민국이 독립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될 테니까”라는 말이 그의 이유였다.
  • 이승만 영문일기 원문 일부. 조소앙은 한자로 적어놓았다.
    ▲ 이승만 영문일기 원문 일부. 조소앙은 한자로 적어놓았다.

  • ▶이승만은 기록광(狂)이었다. 한성감옥에서 쓴 기록물은 또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옥중일기, 투옥경위서, 영한사전 편찬 기록, 감리교 역사와 청일전쟁등 번역책 5권, 비밀리에 옥 밖으로 써보낸 신문논설이 200여편, 채역집등 저서 3권, 미국 독립전쟁과 같은 독립정신을 백성에게 심어주려고 쓴 [독립정신], 감상문들과 편지들, 한시와 서예, 각국 조약문 노트 등등...종신 죄수로서 5년 반동안 세계에 유례없는 ‘옥중 창작물’을 생산해냈다.
    엄청난 독서량과 영어공부, 국내외 독립운동가들 중에 어느 누가 이런 기록을 남겼는가.
    [이승만 일기]는 40년중 10년치가 누락되어 있다. 이승만의 기록물등 유물은 4.19후 민주당정권(윤보선, 장면)이 이화장에 들이닥쳐 몰수해갔다. 양자 이인수에 따르면 극히 일부는 빼돌려 민간인 집에 오래 숨겨두었다고 한다. 민주당 정부가 파기한 유물 속에 일기장들도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이승만 기록들을 전국적으로 찾아내어 본격적인 연구를 서둘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