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균 어록' 註解書

      ‘민주노총’이라는 단체의 ‘위원장’이란 직함을 가졌다는 한상균이란 사람이
    조계사에 앉아 ‘성명’이라는 걸 발표했다고 한다.
    미디어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그 ‘성명’이라는 건
    몇 가지 영 설익은 소리들을 지르고 있다.

      “지난 해 4월 14일 살려달라고 외치는 국민을 진도 앞바다에 수장(水葬)한 정부는...”
    어쩌고 한 대목부터가 우선 그렇다.
    ‘수장’이라니, 정부가 배에 타고 있던 학생들을 물속에 장사지냈다 이 말인가?
    “그렇다” 또는 “그런 셈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의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살려 달라 절규하는 아이들을 정부가 ‘수장’ 했다고 하는 건...
    허참...그럼 폭력 시위꾼들이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인 전경을 마구 두들겨 팬 건
    무협(武俠)이라 해줘야 할까, 애무(愛撫)라 불러줘야 할까?

     “살인 물대포로 쓰러진 백남기 동지...”라는 표현도 썼는데,


  • 69세의 백남기 씨가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것이야 애석한 일이고
    그가 하루속히 깨어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한상균은 그가 “살인 물대포...”라고 표현한 경찰의 대응수단이
    왜, 어떤 원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는지의 ‘전반부’ 스토리 역시
    뚝 잘라먹지 말고 상세히 이야기해야 공정할 것이다.

     경찰이 차벽(車壁)이라는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 것은
    적법한 조치였다. 이 세상 어는 선진국 경찰이
    시위현장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지 않는가?
    선진국에서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침범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CNN 방송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 이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찰은 시위대가 자행한 일련의 폭력행위-즉,
    사다리로 경찰관 때리고 밀치기, 쇠파이프로 전경버스 유리창 깨부수기,
    불쏘시개 만들어 전경버스에 불 지르기, 밧줄로 전경버스 끌어가기 등
    폴리스 라인을 폭력적으로 허물어뜨리려 한 직후에야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한상균 자신이 “세상을 뒤집자” “전국을 마비시키자”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이 원인과 도발은 쏙 빼놓은 채, 그 원인이 초래한 경찰의 반응에 대해서만
    시비를 거는 것은 그래서 순 억지다.

      “박근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민주노총이다”라고 한 것도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지금 민노총 같은 걸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새누리당과,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뺀질이 공무원’들이다.
    그럼에도 이걸 뭉뚱그려서 ‘박근혜 정권’이라고 친 것은 그렇게 크게 잘못 된 표현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한상균이 한 가지 똑똑이 알아둬야 할 게 있다.
    그건, 민노총이 그렇게 폭력적이고 정권이 그렇게 속수무책인 걸 목격한
    적잖은 국민이 극도로 분노하고 각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광장의 폭력사태를 TV로 지켜본 국민 중 상당수
    (조사해보지 않아 몇 %라고 말하진 못하겠다)가 민노총 등 그날의 장본인들의 흉한 민낯을
    확인하고 “저건 아닌데...”라고 혀를 차며 새삼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상균은 이걸 두렵게 바라봐야 한다.
    민심을 등지고 독주하는 운동은 결국은 쇠퇴하게 돼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객관적 조건에 부합하지 않게
    냅다 외곬으로만 치닫는 투쟁방식을 그 쪽 동네에선 교조주의, 맹동주의, 소(小)영웅주의, 소(小)부루주아 급진주의, 소아병적 모험주의라고 부른다.
    1921~1923 기간에 샹하이를 중심으로 있었던 중국 노동계급의 폭동을 지도한
    이립삼(李立三) 노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립삼, 시양(施洋) 등의 노선은 당시 '최고도로 독한' 언사(言辭)로 시종했으나
    실제에 있어선 최악의 자살골로 귀결됐고,
    그후 이들의 모험주의는 내부에서 철저히 배척받았다.
    한상균은 이런 역사들을 알기나 하는지,
    짧은 식견 탓에 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급진-과격에 빠지다 보면
    운동도, 자신도, 패거리도 깻박치고야 말 것이다.

    “자본독재를 끝장내자” 운운 한 대목은 한상균 어록 중 장 유치하고도 코미디 같은 대목이다.
    시장경제 체제를 ‘자본독재’라고 부른 그 문구는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서 귀 동냥한 건지,
    이야말로 시대착오도 유분수지 지금 세상에 이런 서푼 짜리 극렬주의(extremism)로
    노동운동을 이끄는 데가 한국노동계 밖에 또 있을까?
    있다손 쳐도 그건 이미 대세나 유행이 아니고 일부 극소수의 지하문화(sub-culture)로나 있을 뿐, 한국에서처럼 거대 고임금 귀족 노조가 이 따위 극렬용어를 쓰는 사례는 거의 없다.
    ‘자본독재’를 끝장내면 그 다음엔 어쩌자는 건가?
    그 정반대로 계속 한앖이 가면 그건 ‘노농(勞農)독재’인데, 에이 오빠 설마...?

     "(당국의) 조계사 침탈 시도...“ 운운은 또 뭔가?
    지금 우리 경찰이 그렇게 용감한 줄 아는가? 그건 지나친 과대평가다.
    한상균 자신부터가 경찰 실력 알기를 개 코로 알기게
    쇠파이프, 사다리, 보도블록, 밧줄을 들고 쳐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런 경찰이 무슨 배짱이 있다고 감불생심 조계사 경내를 침탈할 것인가?
    그런 광경은 보고 죽으려 해도 없을 터이니 걱정 붙들어 매기 바란다. 

     이런 저런 궤변 늘어놓지 말고 한상균은
    자기가 지금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신분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한상균 그대의 신분은 범법혐의로 수배 중인 존재다.
    체포영장을 들이미는 공권력 집행자에게 순순히 몸을 맡겨야 할 뿐, 다른 일은 할 게 없다. 
    그런 그대와 공권력 사이를 뭐 '중재' 하겠다는 사람들이 더러 나서는 모양이지만,
    그건 씨알이 먹힐 소리가  아니다.
    공권력과 범법자를 대등한 양쪽 저울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에헴 하고 '판관(判官)' 노릇을 할 수 있는 자리란
    우리 헌법질서 어느 귀퉁이에도 없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