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충호' 2015.12월호 전재>

    민중사관의 뿌리는 북한의 주체사관이다
    = 역사 교과서... 그 편향과 왜곡의 원인 =
                
    이 동 호   미래한국 편집위원 

      교과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박세일은 지난 10년간 정부가 임무를 방기했다고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다 진작 시작되었어야 할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누가 한반도를 대표하느냐’하는 문제이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과 북한 공산집단이 한반도의 대표성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하여 왔다.
    교과서 전쟁은 이 전쟁의 한 부분이다.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져야 끝날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그 서막을 열었다면, 교과서 전쟁을 이제 이 전쟁이 본격적인 국면에 돌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 글에서는 앞서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교육현장에서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이른바 민주화 시위
    ▲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이른바 민주화 시위

    민중과 민중사관의 정체

      민중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에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학생운동이 학생운동의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도입하면서 부터이다. 공산주의는 역사의 주체를 생산의 주역이지만 생산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피억압계급으로 보았다. 이는 노동계급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30년대 식민지나라들에서 식민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제국주의운동이 벌어진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반식민지운동을 자신들의 세계공산주의혁명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그것이 반제반봉건인민민주주의혁명론이다.
    이는 공산주의혁명론의 제3세계에 대한 적용이었다. 

      인민의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제3세계 식민지 나라들은 서구 자본주의나라들과는 달리 농업을 비롯한 전근대적인 산업들이 주를 이루었다. 혁명의 주역이라고 평가하는 노동계급은 소수였다. 이들만 가지고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농민을 비롯한 전근대적 계급과 계층을 혁명에 끌어드리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노동자에 농민과 소상공인·소자본가·학생들을 비롯한 인텔리집단·종교인 등을 포함한 개념이 인민이라는 개념이다. 이 인민이라는 개념을 대한민국에 그대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6·25전쟁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가증스러운 민낯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 민중이라는 말로 새롭게 포장되어 등장한다. 
  • 1980년대 민족·민중운동을 앞세운 시가행진
    ▲ 1980년대 민족·민중운동을 앞세운 시가행진
  민중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에서 말하는 혁명의 동력을 말하는 개념이다.
혁명은 대상과 동력으로 나뉜다.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 극복해야 할 세력을 말하며 동력이란 혁명투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혁명위업 수행에 이바지해 나가는 계급·계층 가운데, 기본동력과 보조동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서 타도해야 할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대상은 미제침략세력과 그와 결탁한 매판자본가·지주·반동관료배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관계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민족해방민주주의변혁을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반민족적·반민중적 세력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동력은 노동자·농민·청년학생을 비롯하여 미제와 그의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중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자·농민·청년학생·진보적 인테리 등이 기본동력이다. 보조동력은 도시 소자산계층·도시빈민·애국적 민족자본가·애국적 군인과 하급관료 등을 말한다. 민중이란 이러한 기본동력과 보조동력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가? 북한의 혁명론이 포장을 바꾸어 민중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민중은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지식인 계층에 절대적으로 통했다. 반민중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그 사회에서 반역으로 통했다. 민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학생운동권과 지식인 사회에서는 절대적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너도 나도 민중이라는 말을 수용했다.

반면 역대정권은 반민중세력으로 타도대상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로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서둘러 미국이 한국으로 데려온 한국의 민중과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어떤가? 그 또한 미국의 앞잡이로 그가 이룩한 산업혁명은 미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노예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발전하면 할수록 점점 피폐해져서 급기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 민중사관을 비판하면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고 나선 역사학자들
    ▲ 민중사관을 비판하면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고 나선 역사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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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사관은 무엇인가?

     역사학계의 원로인 이기동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 교과서좌편향의 뿌리가 1980년대 국사학계에 대두한 민중사학에 있다고 진단했다.
    “편협한 민족 중심가 계급 중심을 앞세우는 민중사학의 정체를 알면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은 당연하다는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들의 한국근현대사 기본 인식은 반(反)외세와 반(反)자본주의입니다. 대외적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는 반일(反日), 광복 후는 신식민지 시대로 보아 반미(反美)가 중심이고, 대내적 측면에서는 민중 해방과 체제 타파가 목적입니다.”(조선일보, 2015. 10. 22 인터뷰)
      이기동 교수가 말하는 민중사학은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방법론을 말한다.
    민중사관은 북한이 정식화한 주체사관을 말한다.
    교과서 좌편향을 연구한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남한에 유입되면서 대두한 마르크스주의역사학의 일종입니다. ..민중사학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본적으로
    반봉건의 근대화와 반제국주의의 항쟁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 정 교수는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관”이라며 “한마디로 민중이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변혁을 모색하는 게 그 주요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을 여전히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의 근·현대사를 지배계급과 기층민중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관의 한 형태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조선pub, 2014. 1. 25 인터뷰) 

      이기동과 정경희의 말을 요약하면 대한민국 교과서과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이 대한민국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 지난 1996년 2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식
    ▲ 지난 1996년 2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식

    북한역사관의 도입의 시기는 학생운동에 주체사상과 그 혁명론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년) 등이 이 시기 설립된 역사관련 연구소 들이다.

    학생운동의 북한주체사상의 도입이 1984년 말이고, 학생운동에 일반화된 시기가 애학투 발족식(소위 건대투쟁)이 있던 1986년 이었다. 사실 한국의 역사학계는 북한의 역사관과 방법론에 대해 무지했다. 북한의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생운동에서 북한의 역사학과 방법론이
    소개되자, 들불처럼 갑자기 번진 것이다. 그 결과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대한민국에 출현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진행된 북한역사학 연구와 도입이 오늘 대한민국 교과서 좌편향을 이루어 낸 것이다. 

  •   그렇다면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은 무엇인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해설한 「민족자주화운동론Ⅰ」에서 조진경(가명)은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 즉 주체사관은 인간관, 철학원리와 긴밀한 내적 연관을 가지는 네 가지 기본명제로 구성되어있다. ...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의 주체이다. ... 인류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 사회역사운동은 인민대중의 창조적운동이다. ...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으로 요약 설명하고 있다.( 조진경, 민족자주화운동론Ⅰ, p332~p337, 백산서당, 1988. 11. 10. 서울) 
      주체사상에서 인민대중 즉 민중이 사회역사운동의 주체라는 것은, 주체가 없는 자연운동과는 달리 사회역사운동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해 발생·발전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민중의 주체적 힘에 의해 발전하여왔다는 것이다. 또 주체사관이 인류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인민대중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자연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투쟁하는 가운데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적 관계란 공산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지배계급의 사회적 착취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식민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수탈(자본가가 노동자를 수탈하는 것-이를 계급모순이라고 말한다)과 민족적 수탈이 중첩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적 수탈이란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지배(이를 민족모순이라고 말한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의 역사관에 의한 역사 기술은 민중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본가계급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역사의 발전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온갖 자주성을 가로막는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에서 동력을 가지고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중사관에 따른 역사기술이 민중의 투쟁사가 주를 이루는 것의 이유이다.
  • 한국에서 발간 판매되었던 북한의 현대조선역사
    ▲ 한국에서 발간 판매되었던 북한의 현대조선역사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는 북한의 혁명론
     
      현재 일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내용과 북한의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를 비교하면 그 서술방식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북한의 역사기술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의 기술방식이 똑같은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라고 설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제국주의 및 그와 결탁한 매판자본가들의 수탈과 이에 저항하는 한국 민중들 간의 투쟁의 역사라고 본 북한의 주체사관을 철저히 추종하는 사관이 민중사관인 것이다. 이런 기술 방식은 북한이 정식화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에서 말하는 사회성격과 혁명의 대상과 동력·임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역사 서술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세계사적 사건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혁명을 꿈꾸는 주체사관을 대한민국 학생들이 배워서는 안 된다. 8·15 해방 직후 북한 보다 훨씬 못한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시작했다. 7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유래 없는 3대부자 세습과 경제적 실패로 세계가 조롱하는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북한의 저주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공의 역사이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과 같은 성공스토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이 대한민국의 성공스토리를 모방하고 있는데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지는 세계사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성공을 넘어 아직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숱한 제3세계나라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다. 

      아직도 가난과 정치적 인권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3세계 나라들에게 대한민국의 성공경험을 설명하고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세계사적 책임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성스러운 책임과 역할을 누가 저주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