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황주홍, 안철수 신당에 디테일 더한다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국회의원 선거구가 모두 없어지는 미증유의 사태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가 여의도에서 실종된 상황이다. 국민들은 실제로 일하는 국회가 자신들의 삶에 피부로 와닿는 변화를 이뤄내기를 바라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레토릭(修辭, 수사)만이 난무하고 있다.

무기력·무능력·무책임의 3무 정치로 일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체제로부터 국민은 아무런 희망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항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2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조와 방향을 제시한데 이어, 27일 기자회견과 집중토론회를 잇달아 열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 역시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의원을 향해 "(신당의 정책 기조를) 다 듣고 나도 여전히 구체성이 결여되고 모호한 이념만이 잔상으로 남을 뿐"이라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실행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공박했다.

이에 '안철수 신당' 측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오늘 안철수 의원이 밝힌 '새정치'의 목표와 방향이 여전히 모호하게 들릴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새정치'라는 말 자체가 가진 모호성이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반드시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신당의 창당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병호 의원은 신당의 당명에 '새정치'를 넣는 것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 도대체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새정치'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구체적인 모습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

17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 황주홍 의원의 정치를 참조하라는 지적이다. 야권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라는 달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손가락이 황주홍 의원의 정치"라며 "안철수 의원의 기자회견이 개론서라면 황주홍 의원의 초선일지는 사례집"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 남용되고 있는 '혁신' '새정치'를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람이 황주홍 의원이다. 이는 황주홍 의원의 전남도당위원장 시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황주홍 의원은 지난 1월, 전남도당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도당 당무의 혁신에 착수했다. 그는 "도당 당비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1000원씩 낸 것을 모은 것인데 흥청망청 쓸 수 없다"며 도당 회계 전액을 당보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1500원짜리 스탬프 하나 산 것도 남김없이 도당 당보에 실리는 회계 보고에 기재됐다.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려다보니 그간의 관례부터 바꿔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김현호 전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수석사무처장은 "이전까지는 기준이 없었으니 도당의 상근 당직자들이 밥값을 마음대로 썼었다"며 "황주홍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로 당직자 식대를 점심 8000원, 저녁 1만 원으로 기준을 정했다"고 밝혔다.

당직자들의 반발도 물론 있었다. 일부 당직자들은 "뭘 그런 것까지 공개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한 당직자는 저녁 식대로 인당 4만 원을 지출했다가 황주홍 의원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주변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급자 마인드'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정치를 하다보니 효과는 곧 나타났다. 김현호 전 사무처장은 "당비를 1000원이든 1만 원이든 내는 평당원들 입장에서는 내역서가 공개되니 기분 좋아하더라"며 "옛날에는 당비 1000원을 내도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 당비를 좀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며 자발적으로 약정하는 당원들이 늘어났다"고 술회했다.

황주홍 의원이 전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안 전라남도의 권리당원은 2만 명 이상 증가했다. 모두 당보를 통해 회계 보고를 시작한 이후로 일어난 변화였다.

이렇게 평당원을 위한 수요자 중심의 당무 운영을 하고, 다시 그 때문에 평당원들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그려가고 있던 전남도당에 훼방을 놓은 것이 문재인 대표였다. 공조직을 무시하고 비선(秘線)에 의존하며, 불투명·비공개로 당무를 전횡하던 문재인 대표가 되레 황주홍 의원의 전남도당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3일 당내 비주류를 향한 '선전포고'를 한 뒤 황주홍 의원을 향해 "도당위원장직을 자진사퇴하되 이를 거부하면 해당 지역 의원들이 합당한 중론을 모아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남은 벌집 쑤신 듯 여론이 들끓었다. 김현호 전 사무처장은 "전남당원들이 선출한 사람을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끌어내리라는 식으로 당대표의 지시가 내려오니 다들 어이 없어 했다"고 밝혔다.

결국 전남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상경해서 중앙당에 우리의 뜻을 알리자'고 결의가 모아졌다. 문재인 대표의 당원소환투표를 요구하는 연판장에 7일 하루 만에 권리당원 2500명의 서명이 모였다. 이튿날인 8일 상경해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중앙당을 방문한 전남 지역 권리당원들은 문재인 대표의 소환투표 요구를 접수시켰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표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황주홍 의원이 탈당하자 문재인 대표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에 사로잡힌 전남에서는 후속 탈당이 잇따랐다. 영암·장흥·강진 지역위원회에서만 4000여 명의 권리당원이 탈당했다.

황주홍 의원이 도당위원장으로서 열심히 노력해서 2만 명의 권리당원을 순증시켜놨는데, 이렇게 열심히 모아놓은 구슬을 문재인 대표는 실로 꿰기는 커녕 남의 손을 탁 쳐서 다 바닥에 흩어버린 셈이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문재인 대표를 향한 호남 민심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바닥을 뚫었다는 지적이다. 김현호 전 처장은 "전남 당원들은 거의 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을 창당하던) 처음부터 당원이었던 사람들"이라며 "나도 당 생활을 20년 했는데 (문재인 대표 때문에) 막상 당을 떠나자니 어이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았다" "문재인이가 언제부터 우리 민주당의 주인이었느냐" "절이 떠나는 격"이라는 말들도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의 독선과 전횡 때문에 좌절된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의 혁신과 새정치 실험은 '안철수 신당'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호 전 처장은 "(현재까지 전남 의원 중 유일하게 탈당한) 황주홍 의원이 신당의 전남도당을 만든다면 투명한 회계 보고 등을 아마 100% 실천할 것"이라며 "그런 게 새정치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문후(文侯)는 사냥터를 관리하는 우인(虞人)에게 모월 모일 오시(午時)에 사냥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그날이 되자 아침 일찍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마침 조정에 축하할 일이 생겨 신료들을 모아 주연을 베풀게 됐다.

한창 주연을 베풀던 중 위문후가 문득 좌우를 둘러보며 "오시가 되려면 아직 멀었느냐"고 묻자 근신이 "지금이 오시"라고 답했다. 그러자 위문후는 주연을 파하고 사냥터로 향하도록 수레를 준비할 것을 명했다.

이에 조정 신료들이 "한창 주연의 흥이 올랐고, 또 비가 내려서 사냥을 할 수도 없는데 가실 필요가 있느냐"고 만류하자, 위문후는 "우인은 과인으로부터 명이 있었기에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과인이 직접 가서 취소하는 게 도리에 맞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냥터로 가서 우인에게 사냥을 취소한다고 말했다.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기렵우인(期獵虞人)의 일화인데, 편집자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로부터 위나라가 강성해졌다"고 짤막한 평을 남겼다. 부국강병의 요체가 의외로 간단한 것으로부터 비롯됨을 소개하는 일화다.

지금 '새정치'라고 하면 굉장히 크고 거창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달에 1000원을 내는 평당원들의 '알 권리'만 충족시켜줘도 이미 '새정치'의 시작이고, 그 혁신의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공급자 마인드'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는 정치에 국민들이 목말라 있다는 뜻이다.

황주홍 의원은 3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불신층과 무당층이 50~60%에 달한다"며 "제3의 정치 질서 출현을 학수고대하며 갈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안철수 신당'의 신선한 바람이 안철수 개인에 대한 지지와 인기라고 보지 않는다"며 "꼭 안철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제3의 길에 대한 횃불을 들고 봉기하면 50~60%의 국민들이 합세해서 대거 지지 대열에 동참하는 그런 분위기이며 여건"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안철수 신당'의 성패의 관건은 이 정치 불신층과 무당층들에게 어떻게 '제3의 길'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공리공담이나 비전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황주홍 의원의 전남도당에서 시도된, 당보에 공개되는 회계 보고처럼 피부에 와닿고 느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도 된다.

하고나면 간단한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반발과 진통이 적지 않았듯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기도 하다.

황주홍 의원도 "이런 (제3의 정치 질서 출현을 학수고대하는) 여건 속에서 가더라도 (진정한 새정치는) 대단히 엄중한 것"이라며 "극단적인 우파 정치나 좌파 정치는 차라리 손쉽다. 정말로 중도·중용·합리적인 국민을 위한 정치는 대단히 어려운 고난도의 정치 방정식"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그 길을 잘 가면 이것은 총선·대선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안철수 신당은) 이 나라의 정치를 제대로 일군 21세기 최초의 정치 세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