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로서 정체성 논란 부추기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朴대통령 자리비우자 '냉큼'
  • 제68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4·3 평화공원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얘기를 나누다 웃고 있다. ⓒ뉴시스
    ▲ 제68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4·3 평화공원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얘기를 나누다 웃고 있다. ⓒ뉴시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3일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김 대표는 이날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제주4.3희생자 재심사 논란과 관련해 "아픈 과거를 다시 건드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또 "제주4.3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가슴 아픈 최고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누리당에서는 이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 4.3특별법 추진해 법을 제정한 바 있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때 국가추념일 지정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한 바 있다. 이제 과거의 비극을 상생과 화해로 승화시켜야 할 때"라고 했다.

    김무성 대표의 이 같은 언행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기조와는 맞지 않은 행태라는 비판이 적잖이 나온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내내 단 한 번도 제주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적이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2014년 3월 국무회의에서 추념일로 지정되기는 했다.

    당시 제65주기 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했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정부 여당으로서 국가추념일 지정과 4.3평화공원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보수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 특히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에 김 대표가 제주 행사에 참석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권 내부에서는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순방 기간 때마다 정체성 논란을 빚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앞서 김무성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면서 개헌론에 불을 지펴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또 지난해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에 경선룰과 관련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주장해 청와대와 정면 충돌을 빚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날 김 대표의 제주 행사 참석과 관련, "선거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국내에 없는 민감한 상황에서 김 대표가 꼭 행사에 참석해야 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당 대표로서 정체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이상돈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김세균 정의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정부 대표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뉴데일리DB
    ▲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뉴데일리DB


    김종인 대표는 추념식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주 4·3사건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정해진 지 3년이 됐는데도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 한 번도 참석을 안 해 유감스럽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의 불참과 관련, "아쉬움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논란의 추모 명단을 폭로하면서, 문재인 대표를 향해 "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사람들을 추모하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답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태경 의원은 "4.3 사건 희생자로 분류된 이들 중 
    북한 인민군 사단장을 지낸 이원옥, 북한으로 넘어가 해주 경찰서장이 됐다는 현만호,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 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 등이 추모 명단에 끼어 있다"며 "문 대표 이 사실을 모르고 참배했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알았다면 했겠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하태경 의원이 발표한 자료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돼 처음으로 치러지는
    제66주기 4.3 위령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나,
    4.3 추념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현대사의 아픔을 덮고 치유하기 위한
    4.3 추념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해와 상생이라는 것도
    시(是)와 비(非)를 가린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다.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데 누구를 용서하고 무엇을 용서한단 말인가.

    4.3 희생자로 선정된 사람들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경력의 소유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 인민군 사단장을 지낸 이원옥은
    1947년 가을 입산해 연락임무를 띄고 활동하다
    1948년 북한으로 건너가 6.26 때 인민군 사단장으로 내려왔고
    7천명을 거느리면서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이라 한다.

    그 외에도 북한 인민군으로 활동했던 김기추,
    북으로 간 후 해주 경찰서장이 됐다는 현만호,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
    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 등
    누가 봐도 제주 4.3 희생자로 보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문에서도 명확하게 확인된다.
     
    4.3 위원회 스스로도 사건 발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으로 대항한 무장대 수괴급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 자는
    희생자 범위에서 제외대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본 의원은 이들이 어떻게 4.3 희생자로 선정됐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당시 선정과정과 세부 심사자료 등을 요청했으나,
    해당 자료가 비공개로 분류되어 있어 공개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상하다.
    국가에 의해 공식적인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떤 이유로 선정됐는지
    그 이유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을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경우,
    누가 어떤 이유로 희생자로 선정된 것인지
    일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며,
    그들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서적들도 여러권 출판돼 있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서
    누가 어떤 이유로 희생자로 선정되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들을 추념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당시 4.3 위원회가 자신들의 부실한 심사과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비공개로 지정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희생자로 구분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4.3 희생자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정확히 밝혀낼 필요가 있다.

    재심의를 통해 가해자와 희생자를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4.3 국가추념일 지정도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물론 나아가 국민화합도 가능할 것이다.” 


    다음은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가 '재심의가 필요한 희생자'라며 공개한 명단이다. 

    ▲북한 인민군 사단장 이원옥

    1947년 가을 입산하여 연락임무를 띄고,
    1948년 이북으로 갔다가 6.25 때 인민군 사단장으로 내려옴.
    7,000명을 거느리고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

    ▲북한 인민군 김기추

    제주 출신 김기추. 1951년 부산 서면 포로수용소에서 목격.
    그는 포로 중에서도 똑똑해 소대장급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스스로 ‘낙동강 전투까지 참전했다가 잡혀서 포로가 되었다’고 말함.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도 사상 전향을 하지 않아 공산포로로 남았고,
    석방된 후 행방불명. 북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됨.

     

    ▲북에서 해주 경찰서장 됐다는 현만호

    현만호는 제주 좌파의 핵심 인물.
    제주에서 폭도로 있다가 6.25 때 인민군과 함께 월북,
    해주 경찰서장까지 했다는 조총련계 재일동포의 증언.
    현만호를 포함해 노형 출신 12명이 북한에 건재하고 있었다는 것.

     

    ▲남로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28, 사망)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사령관.
    입산 후 1949년 6월7일 이덕구가 체포되고 나서 사령관이 됨.
    1953년 4월 무장대를 토벌하던 경찰과 총격 중 사망.

     

    ▲남로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23, 행방불명)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1948년 6월16일 경찰관을 습격해 죽인 폭도.
    무장대 핵심간부로 관음사 전투 지휘. 끝내 산에서 자살.

     

    ▲무장대 주요 간부, 허영삼-김태길-김영찬-고인수-김만옥-문도공 등

    1951년 3월의 무장대 조직은 사령관 허영삼(남로당 제주도 당책 겸임, 안덕 출신),
    유격대 부대책 김태길(가명 문호철), 작전 참모 유모씨(이름 미상, 대구 출신),
    훈련관 모씨(성명 미상) 등과 제11지대(김영찬, 14명으로 3개조),
    제50지대(고인수, 가명은 소형삼, 18명으로 3개조),
    제1지대(김만옥, 14명으로 3개조), 제7지대(문도공, 14명으로 3개조) 등
    총 64명으로 지휘부와 4개지대로 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