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국회에 바란다 - 문화 분야

     ‘한류문명’을 기초하고 발화시키는 20대 국회가 되어야

    이 대 영 / 중앙대학교 교수, 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   1. 문화상징과 문화유전자

      문화는 호모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가 상상을 통해 만들어놓은 온갖 상징체계의 총체를 말한다. 만약에 개와 고양이, 혹은 개미와 벌들도 상징과 기호를 통한 의사소통체계를 갖추었다면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인간에게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상징의 카테고리 내에서 협력하며 공동체생활을 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5천 만 명의 인구가 단일한 법과 교육제도와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시스템화 하였다. 이 모두가 사실은 상상놀이를 통한 상징의 힘이다. 이른바 대선이든 총선이든 각종 선거도 공동체가 약속한 사회 놀이이며 누구이든 그 승패의 결과에 따르게 되어 있다. 그것을 관장하는 기관이 선거관리위원회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누구는 여의도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누구는 다시 4년을 기다리며 지역을 일구게 되는 것이다. 투표라는 상징적 행위로 만들어진 문화시스템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문화라고 함은 공동체 내에서 오래도록 유지 전승되어 온 “지식, 신앙, 도덕, 법률, 관습 등 개인이 사유를 통해 습득한 습관이나 습속의 총체”를 일컫는다. 문화는 곧 해당공동체가 필요에 의해 유지 전승한 즉 유전한 생활습관의 총체이다. 이를 문화유전자1), 문화코드2), 문화거울3)이라고 부른다. 토인비가 주장한 것처럼 인류문명을 크게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으로 나눈다면 문화는 정신문명이다. 이것이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대한민국 국가공동체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 문화유전자의 핵심을 요약하면 조화, 균형, 평등, 나눔 등이다. 이것은 고조선 시대의 홍익인간, 제세이화, 이도여치 등 선조들의 사상에서부터 아주 오래도록 우리 민족의 피와 영혼과 문화체계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데에, 더불어 나누는 데에 익숙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가진 놈이 더 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어’라는 시쳇말이 단순한 유행어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도의 바르지 못한 사람’과 ‘인정머리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법치주의로 70년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사람에 대한 학연 지연 혈연 등 나와 가까운 사람에 대한 온정주의는 거뜬히 법치 위에 군림한다. 따라서 우리는 법치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인치국가에 가깝다.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친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20세기의 방식으로 21세기의 문화를 해석하려니 곳곳에서 신구갈등이 벌어지고 남녀, 노소, 지역, 계층을 가리지 않고 문화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화적 갈등은 곧 사상적 갈등과 투쟁을 의미한다. 보수와 진보가 바라보는 역사의 관점과 문화적 양상은 사뭇 다르다. 그것이 메이저와 마이너로 확연하게 나뉘면 공동체의 안녕이 위협받지는 않을 터인데, 사실 누가 메이저이고 마이너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공동체의 문화와 사상과 이에 따른 법과 제도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합의와 동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공약에 있어서만큼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획기적인 것이 없고 사실 큰 차이도 없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이든 문화 분야에 대한 공약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노동개혁과 사회복지가 화두인 때에는 더 그렇다. 문화는 생활과 생계와 생존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차 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지향하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과연 문화선진국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조금 잘 사는 졸부국가로 전락할지 그 전환적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2. 배타적 냉전 시대에서 공유와 소통의 시대로


      삶의 방식을 규정하여 보겠다. 오늘날의 삶의 방식의 과거와 분명히 다르다. 20세기와 21세기를 가로지르는 것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이른바 ‘아톰(atoms)’시대에서 ‘비트(bis)’시대로의 변화이다. 아톰은 말 그대로 원자 즉 물질이며 부피가 있고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비트는 보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꿈이요 신기루인 셈이다. 이에 따라 정치, 경제, 산업, 국방, 교육 등등 21세기 삶의 방식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물론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가 공히 겪고 있는 문제이다.

      20세기가 이념으로 대결한 배타적 냉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연대와 참여와 공유와 소통의 시대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정부가 정부3.0을 기치로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의 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부가 가진 모든 정보들을 공개하여 이를 비트로 재무장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0세기가 남성주의, 획일주의 ,배타주의, 가치주의, 중심주의로 발전해 왔다면 21세기는 그와는 대치되는 여성주의, 다원주의, 참여주의, 물질주의, 변방주의 등으로 그 생각의 형태 변이가 벌어지고 있다. 일종의 카오스적 문화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세기의 우리네 학교는 주입식 훈육기관이었다. 무조건 암기해야 했고, 잘못 질문하거나 지각하면 수업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혼이 나거나 쫓겨났다. 일제식민지, 해방과 분단, 625전쟁, 그 잿더미에서 허우적거리던 60년 대 초반, 인당소득 60불 내외의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이었다. 부존자원도 없다. 오로지 인재양성밖에 없었다. 획일적 교육에도 부모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자녀를 학교에 맡길 수 있는 것만도 행복했다. 그렇게 학생들을 기계를 찍어내듯이 육성하여 세계최단기간에 산업화의 일꾼으로 만들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천재들은 대학을 포기하고 공고와 상고로 진학하여 국가경제의 앳된 파수꾼이 되었다. 그렇게 ‘잘 살아 보세’를 외친지 불과 30년 만에 조선과 철강은 물론이거니와 건설, 전자, 의약, IT반도체 및 일반 식품소비재 및 금융과 유통까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동방의 작은 나라, 그것도 허리 잘린 분단국가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지식을 암기하며 잘 사는 나라의 법과 제도와 산업의 형태를 ‘따라잡기(catch-up)’하며, 외국의 좋은 정책이라면 우리의 상황에 맞는 것인지 아닌 지도 가늠하지 않고 무조건 들여와 적용했다. 그 덕택에 지금 해외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오히려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건만, 급속히 도시화를 겪으며 그 사이에 지역고유의 전통문화마저도 획일화되고 개인 간, 지역 간 소득편차와 문화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상은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적 국제 위상과 문화적 위상과 품격도 크게 달라졌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당장에 방송, 통신, 인터넷 미디어가 충돌하고 융합하며 뉴미디어 시대를 연다. 대학에서는 기존 학문계열을 혁파한 자유전공학부가 인기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고, 종교와 철학이 대화하고, 문화와 경제가 손을 잡는다. 통섭의 시대이다. 이념과 국경의 퇴색하고 지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지식의 저장형태도 바뀐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이 과거 문명의 수신국가에서 벗어나 세계 문명의 발신국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의 문화의 재발견이 요구된다. 역대 정부 중에 처음으로 현 정부가 4대 국정철학 가운데 문화를 선택하여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문화는 곧 해당공동체의 정신적 사상적 유산이자 법과 제도와 습속의 총체이며, 이것이 바르게 옹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경제적 위상은 사상누각이 되며 심각한 갈등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3. 국회는 공동체의 꿈을 생산하는 공장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권력의 삼권분립 형태를 시간의 순서로 나열하면 ‘어제(사법) - 오늘(행정) - 내일(입법)’의 형태가 된다. 사법은 공동체 구성원의 과거를 논하는 기관이다. 행정은 오늘의 일을 집행하며, 입법은 내일을 주관한다. 따라서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내일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하여 미리 예측하고 새로운 법을 만들어 구성원들의 미래지향적인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 즉 공동체의 미래의 꿈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공방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회는 공동체 구성원의 안녕한 내일을 고민하기보다는 아직 과거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시시각각 바뀌고 허겁지겁 미래를 대응하기 위해 법을 제·개정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을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행정부에서 요구하는 많은 법들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여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이익집단 및 군소권력집단의 영향력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군소권력집단이라고 함은 위의 3대 권력이 아닌 다른 3대 권력을 의미한다.

      요즘은 권력의 '헥사(hexa)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제정일치 시대에서 제정이 분리되고, 종교와 왕권이 권력을 다투고, 왕권은 프랑스 혁명 이후 입법 사법 행정 등 권력 삼권분립이 된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메트로폴리탄이 형성되고 서로의 소식이 궁금해지면서 언론이 등장한다. 온갖 정보를 실어 나르는 언론은 여론을 만들고 3대 권력의 끈과 연결된다. 제4의 권력이 된다. 제5의 권력은 포스트모던 이후 비정부기구 즉 NGO단체가 차지한다. 그리고 지금은 제6의 권력인 SNS 포함한 인터넷 네트워크가 차지한다. 모든 권력은 서로 교신한다. 따라서 국회도 다른 5개 권력과 긴밀하게 교통한다. 어찌됐든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다루고 있으므로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여튼, 대부분의 정당에서 이번 총선에서 내건 문화공약은 대동소이하다. 그 까닭은 문화에 있어서는 여야의 생각이 크게 다를 수 없다는 점이며, 한편 문화는 아직 우리 생활의 중심 논쟁 분야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문화를 예술의 유사어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화는 상상을 통해 사상과 상징을 창조한다. 생각과 언어와 습관을 지배한다. 

      각 당이 내건 공약은 각론에 있어서 조금씩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4) 대부분의 공통된 공약은 소외지역 유휴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폐교나 산업유휴시설을 활용하여 문화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생활 속 문화예술스포츠 활동을 활성화하고, 맞춤형 문화 복지로 지역문화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을 강화하고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한편, 창조적 예술가들의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만이 아니라, 보수 진보를 떠나 지난 20여 년간 역대 정부의 문화정책을 요약하여 보더라도, 문화예술분야 진흥, 소수자 문화 참여기회 확대, 전통문화 보존 및 계승, 문화외교 활성화 등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현 정부가 문화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대정부 최초로 국정 4대 정책기조의 하나로 ‘문화융성’을 제기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아직도 경제적, 신체적, 지역적 차이에 따른 문화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건전한 문화생태계의 조성의 선결조건인 문화 다양성 지수 역시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백세 시대’를 대비하여 노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중·장기적인 문화정책 또한 필요하다.


     4. ‘한류문명’을 기초하고 발화시키기 위한 여섯 가지 제언


      의석 숫자를 떠나서 각 당에서 공약한 것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화공약은 단순히 예술·체육·스포츠·관광·미디어의 일자리 창출과 문화인들의 지적재산권 보호 및 문화시설확대 등 종래의 문화공약의 범주에서 벗어나 시각을 달리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문화공약만큼은 선거 때에 표를 의식한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혹은 당연히 국가의 성장단계에 맞추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들로 한정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20대 국회는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고, 글로벌 문화경쟁시대에 발맞추어 전 세계에 한류문명의 발신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초를 다듬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경제수준에 비하여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것도 고려하여야 한다. 정신문화의 발흥을 준비해야 한다. 국회는 공동체 구성원의 미래의 꿈을 현실로 그려내는 화실이지 공방이기 때문이다. 크게 여섯 가지로 묶어 20대 국회에 제안한다.


      첫째, 문화중산층의 강화 및 풀뿌리 문화신경망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 및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기반이 되는 문화교육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문화중산층의 강화를 의미한다. 흔히 소득기준으로 중위소득 50-150%에 해당하는 부류를 중산층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여타 선진국은 소득 외 문화사회적 기준5)이 따로 있다. 우리는 그것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가늠한다. 소득은 늘어도 행복지수는 늘어나지 않는 현상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마침 「문화기본법」이 발효되었으므로 문화기본법에 명시된 문화실태조사의 체계와 규모를 대폭 확대하여 인구센서스와 유사한 ‘문화센서스’를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문화적 취향 및 문화지수 파악, 그리고 새로운 문화향유 패턴을 분석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통계시스템을 확보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초·중·고등학교 문화교육에 반영하여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법적 제도적 시스템을 해외로 수출하여 문화국가로서의 위상을 펼쳐야 한다.

     또한 우리의 전통적 습속이 남아 있는 생활문화공동체 운동 및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시민클럽을 활성화하는 법안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경제 선진국을 넘어 문화 선진국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있어서, 문화는 더 이상 삶의 부수적, 혹은 보충적 요소가 아닌 필수요소이며, 따라서 국민 누구나 전통풍속과 인문예술과 스포츠의 향유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문화교육시스템을 주창해야 한다.


      언어, 사회문화, 풍습 등 분단 70년 동안 체제를 달리하며 균열된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문화통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이 된다면 남북 간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수많은 단기적 문제도 발생할 테지만, 문화적 격차로 인한 갈등 및 사회적 문제가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사전에 문화통일을 위한 학술 연구 활동 지원 및 교류가 필요하다. 이는 남·북한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효과뿐만 아니라, 남·북한이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써, ‘통일한국’이 미래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연착륙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의 남북교류가 중단된 상태에서는 해외 한인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촌 한류문화벨트를 구축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신진연구가들의 해외 한인 연구 및 세종학당의 예산 확대 등 문화외교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국경을 넘어서는 것은 문화영토를 넓혀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우리만의 문화유전자에 걸맞은 문화법령 및 제도를 확보하여야 한다.


      문화의 경우 ‘시원(始原)’ 즉 ‘오리지널’의 외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모든 문화정책의 근원과 선례를 외국에서 찾고 모방 적용하여야만 안심이 되는 종속적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고, 무엇을 추구하여,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국문화의 정통성 및 문화원형에 대한 연구 및 지원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문화관련 업종의 증가와 문화 향유 방식의 변화 등 최근 문화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 보다 빠른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미래예측이 가능한 과학적 통계시스템이 필요하다. 한 지역의 문화적 특성은 경제적 여건과 인구 구조, 인구 유‧출입, 교통‧통신 수단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여건과 연관되어 있으나, 우리의 문화정책은 주로 문화시설 같은 하드웨어 증설 및 그 개선에만 중점을 두어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화중산층을 확대하고, 문화격차를 해소하며, 나아가 한류문명의 세계적 전파를 위해서는 시대 변화의 양상을 정확히 분석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국내‧외에 산재한 문화정보들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관리하기 위한 기준과 시스템을 마련하여야 한다. 우리가 만든 문화 통계 방식을 세계가 공유한다면 우리는 21세기의 문화선진국의 위상을 갖출 수 있다.


      넷째, ‘문화기본법’과 연계된 문화법령체계의 조정 및 행정난맥을 개선해야 한다.


      문화기본법이 2013년에 통과되었으므로 이에 따른 법령체계를 조속히 손보아야 한다. 법령은 미래를 담보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게임과 영상에 관련된 법안은 우리 콘텐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며 우수기업과 인력의 해외유출이 심각하다. 문화관련 법령체계는 단 시일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20대 국회 4년 동안 단계별로 완성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문화 빅 데이터 시스템을 시급히 갖추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경쟁의 시대이다. 우수한 문화 법령과 제도를 갖추는 것은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과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문화통계시스템을 시급히 확보하여야 한다. 그동안 선진국에 의존해 왔던 문화제도의 틀에서 벗어나는 첩경이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고도 세계 일곱 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하였다. 후발 개도국은 물론 세계가 주시해서 바라보는 롤 모델 국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고유의 법령과 제도가 거의 없다. 선진국의 법과 제도 및 과학 문명을 수입하여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외국의 문물에는 지극히 익숙해졌으나 우리 내면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고유 문화적 관습와의 충돌로 인한 문화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드라마, K-POP, 게임 등 한류의 붐을 타고 세계가 우리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상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의 원형적 사유와 문·사·철 등의 정신문화를 확대하여 ‘한류문명’으로 확장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이며, 세계사적 문화경쟁의 시대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사·철 연구와 전통고급예술의 현대화작업을 통해 대한민국 문화원형의 체계화와 대중화를 통해 세계 한류문명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 또한 해외 동포 및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궤를 포함하는 글로벌 한류연구를 통해 한류문명의 국내외적 연구 지평이 대폭 확장될 것이다. 20대 국회는 대한민국은 21세기 한류 신(新)문명의 발신국가로의 독창적인 위치를 다질 수 있도록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


      여섯째, 문화소외가 없는 지역문화 활성화 및 풀뿌리 ‘문화신경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의 수준이 높아지고 국민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의 획일화된 도시 중심의 문화를 한 단계 상승시키는 문화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이 살아 있는 지역문화를 적극 활성화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국가가 ‘지역문화진흥법(2013.12)’을 제정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문화시설들의 분포현황을 살펴보면 대부분 수도권 및 지역 대도시에 몰려 있고, 지방의 군 단위의 지역에는 문화시설이 태부족한 문화사각지대로서 문화적 혜택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 발표한 “지역의 문화지표분석 결과(2014.2)”에서도 군 단위 이하의 도시는 문화 시설 및 향유의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 여건이 열악하며, 문화시설의 종류와 규모도 다양하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영화스크린이 설치되지 않은 기초자치단체가 106개나 되며 이 중 대부분은 군단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영화 관람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84개 군급 도시의 91.7%인 77개 군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시설인 영화관이 없는 이른바 “문화시설 사각지대”로 나타났다.

      흔히, 문화시설이라고 함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문예회관, 영화관, 과학관 등인데 기본 설비 투자비가 거대하고 규모가 크므로 대부분 인구가 많은 대도시 혹은 지역의 거점도시에 건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인구수가 적은 읍·면 단위 이하의 농촌 및 산간도서 지역에서는 엄두를 낼 수 없으며, 문화시설이 지어진다고 하더라도 가동률이 저조하여 투자 대비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 따라서 문화다양성을 유지하고,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가 군소도시 소읍까지 전파될 수 있는 문화신경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각 지역의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고유문화가 도시에 진출하여 상호 교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읍·면 등 작은 규모의 마을에서도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아주 특별한 문화시설을 설치 운영하여 풀뿌리문화신경망이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사랑방’과 ‘문화정거장’ 확보를 통해 전국에 문화가 씨줄날줄처럼 엮이고 피돌기가 가능한 풀뿌리 문화신경망, 즉 ‘문화뉴런’ 정책을 제도화 하여야 할 것이다. 이처럼 ‘풀뿌리문화신경망의 활성화’는 지역 간 문화지체 및 정체 현상을 타파하고 계층‧세대 간 문화격차를 줄이고, 국민들의 문화적 고립 및 이로 인한 문화갈등 요인을 없애는 중차대한 일이다.

     


    1) 리처드 도킨스(Richard Dokins)는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생물학적 유전자 ‘진(gene)'과 문화적 모방능력인 ’미메시스(mimesis)'를 조합해 인간의 문화유전자(meme)를 주장한다.

    2) 클로테르 라파이유(Clotaire Rapaille)는 『문화코드(The Culture Code)』에서 나라별로 문화코드가 다르고, 쇼핑, 건강, 음식, 사랑, 직업, 정치 등 삶의 곳곳에서 제 각각 다른 가치관이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3) 이대영, 「세계인이 공유할 문화거울을 만들어야」, 『행정포커스』.Vol85 No.2, 한국행정연구원, pp.21-26, 2010, 참조.

    4) ▷(새누리당) 청년예술가 일자리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서 기업이 추진하는 문화예술사업 수요를 파악해서 청년예술들을 기업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연 10개 팀씩 2017년∼2020년까지 3천5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문화가 있는 날'을 확대하고 통합문화이용권 가맹점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장애인형 국민문화체육센터 건립을 지원해 시·도별로 1개씩은 확보하고, 중·소도시를 우선으로 근린 체육시설도 확대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체육인 복지와 권익을 위해서 체육연수원도 건립하겠다는 공약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화향유 확대를 통한 보편적 문화복지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화영향평가제 강화’, ‘문화예술교육 내실화’, ‘문·예·체·미디어 관계자의 특수고용 및 사회보험의 특례 확대’, ‘예술인활동증명제도 개선’, ‘예술인·스포츠강사의 처우 개선’, ‘민관참여 독립적 예술인복지기금 조성’, ‘예술인 옴부즈맨위원회 구성 및 공공기관 감사’, ‘청년 문화예술 종사자를 위한 창작환경도 개선’ 등을 내세웠다. 또한 ‘지역문화협동조합 설립 지원’, ‘찾아가는 문화예술 지원 확대’, ‘실버극장 등 어르신 문화 공간 확대’ 등도 공약했다. ▷(국민의당) ‘문화 다양성을 확보 및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을 앞세웠다. 문화콘텐츠 독점과 불공정 유통행위를 막고자 ‘저작권 보호제도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시설의 무분별한 건립을 방지하고자 ‘문화영향평가제 및 사정평가제 도입’하고, ‘청년 문화예술인 최저임금법 적용 강화’,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확대’ 등도 공약했다. ‘청소년 창의 문화예술교육 강화’ 및 ‘공교육의 문화예술교육 강화’ 등도 약속했다. 아울러 무분별한 지자체 체육행사 유치와 관련하여서는 ‘실효성 있는 국제경기대회 유치 심사제 도입’을 주장했다. ▷(정의당)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예술인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문화예술인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하고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 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5) 현대경제연구원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