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신임 원내대표 魯會燦의 면면

    “2012년 남북 정상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코리아연합’을 건설하고,
    2020년 ‘서울, 평양 공동 올림픽’을 거치면서 ‘코리아연방’을 창설하자”

    김필재  
     
    당 강령에서 6·15와 10·4선언을 비롯해 남북한의 선행 합의를 모두 존중·실천할 것을 밝히고 있는 정의당 원내대표로 노회찬 당선자가 선출됐다.

    한창민 대변인은 3일 공식 논평을 통해 “원대대표로 노회찬 당선인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며 “원내 4당 체제를 맞아 열정과 경험이 풍부한 3선의 노 당선자가 원내를 이끌 적임자라는 사실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 대변인은 “이 외의 원내 지도부는 차기 회의에서 원내대표가 추천하고 당선자 총회에서 인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차기 회의는 오는 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노 당선인은 워크숍 모두발언에서 “정의당은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으로 19대 때보다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며 “지지율이 지금의 몇 배가 되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온몸을 던져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노회찬 민노당 前의원, 2012년 '코리아연합' 주장
    '평화가 두려운 사람들이 천안함 정국 조성' / 金泌材(2011년 11월23일)

  • 사회주의자 노회찬 민노당 前의원.
    ▲ 사회주의자 노회찬 민노당 前의원.
      노회찬(現새진보통합연대 상임대표) 민노당 前의원은 1956년 부산출생으로 상당히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권이 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악기 레슨을 받은 사람은 全校(전교)에서 노회찬 혼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세계 명곡 365곡’이니 ‘500곡집’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노회찬은 또 고등학교 재학시절 한 해 개봉영화를 모두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영화광이었며, 친구들과 자취 아파트에서 電蓄(전축)을 가지고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샐러리맨들의 경우 電蓄을 사려면 짧게는 몇 개월에서 1년 이상의 월급을 지출해야 했다. 음반 또한 고가였기 때문에 서민들에게 電蓄은 ‘그림의 떡’이었던 시절이다. 
      
      노회찬은 경기고 1학년 재학 중이던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면서 운동권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 <씨알의 소리>, <다리>와 같은 잡지를 탐독했으며, 함석헌, 백기완 등의 인물들과 교류했다. 당시 경기고에서 함께 운동권 생활을 했던 동기들은 정광필 이우학교 교장, 이종걸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다. 
      
      1976년 경기고 졸업 후 대학입시에 떨어진 뒤 재수를 하지 않고 군에 입대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 한 뒤 학생운동에 가담했으며, 1980년 광주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2년부터 각종 시위를 주도하고 불온문서를 배포한 혐의로 수배되어 오랜 수배 생활을 했다. 
      
      1980년대 후반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전위조직 ‘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인민노련)의 설립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노회찬과 함께 인민노련 활동을 했던 인물로는 송영길 인천시장, 신지호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등이 있다. 
      
      노회찬은 인민노련 중앙위원, 격주간 <사회주의자> 편집위원으로 인민노련 활동을 주도하던 중 198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체포됐다. 노회찬은 법정에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고 1992년 만기 출소했다.

    2000년 민노당 창당 이후 초대 부대표를 맡았으며, 2002년 3월 정기 黨대회에서 사무총장을 거쳐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노회찬은 민노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선거에서 ‘7공화국 11테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신자유주의체제 해체와 ‘민주적 사회경제체제’ 확립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여기서 그가 제시한 ‘민주적 사회주의체제’는 다음과 같다. 
      
      “부와 경제 권력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제7공화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진다. 민주적 사회경제체제란, 소유의 사회화와 사회적 조절을 우위에 두고 다양한 소유와 시장적 조절을 보완하는 체제로서,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을 보장한다.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 공공적 소유, 협동조합 소유, 민주적 참여기업 등을 포괄한다. 사회적 조절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고용 복지향상을 위하여 생산자원과 소득의 재분배를 실시한다. 재벌을 해체하고, 대기업의 독과점을 규제한다.” (2007년 7월 17일 <7공화국 11테제> 中에서)
      
      노회찬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경제체제’에서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소유를 제한하고 적절히 소유와 시장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의 근원은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에서는 정부가 계획에 의해 소유와 시장을 조절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은 자신의 사회주의 이념을 단지 ‘민주적 사회경제’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그는 또 자신의 홈페이지인‘난중넷’에 게재한 ‘통일테제’에서 “제7공화국은 흡수통일에 반대하며,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으로 통일을 실현할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권영길․심상정 등과 함께 연방제 통일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코리아연방이 건설 될 때까지 7공화국은 통일의 첫 단계인 코리아 연합을 건설하고, 코리아 연방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힌 뒤,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 남북각료회담 및 남북국회회담의 상시적 개최, 코리아연합 건설을 위한 남북합의서 체결, 2012년 코리아연합 건설 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일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장애물로 ‘헌법의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을 예로 들면서 영토조항의 삭제 및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 한편, 노회찬은 2008년 심상정 등과 함께 민노당을 탈당, 사실상 민노당의 友黨(우당)이라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2011년 현재 새진보통합연대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자료] 노회찬 망언록 
       
      ▲ “지금 쌀 가격이 작년 대비 13%나 하락해서 80킬로 한 가마 칠 팔 만 원 대이다. 남아도는 쌀이 있는데도 빨리 쓸 생각은 하지 않고 2005년도 쌀 36만 톤을 사료용으로 쓰겠다고 한다.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니까 이제는 동물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건가. 즉각 대북지원으로 50만 톤 쌀 보낼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2010년 8월26일 전국여성농민대표자대회 연설) 
       
      ▲ “3월26일 천안함이 疑問(의문)의 침몰을 당하는 비극…(중략) 불충분한 가설들로 가득한 疑問(의문)투성이의 조사결과를 국민 앞에 발표...이명박 정부의 조급한 군사경제 보복조치들...한반도 21세기의 미래를 보장할 온갖 평화번영의 구조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2010년 5월26일 백범기념관. 노회찬氏가 참여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종교단체, 정당 비상시국회의’ 성명 중) 
       
      ▲ “이번 결과는 중간 조사 결과에 불과하다. 발표 내용은 설익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중략) 7월 달에 최종 결과가 나오는데, 5월로 서두른 이유가 무엇이냐, 만약 지방선거를 7월에 치렀다면 6월 20일에 발표할 예정이었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종교단체, 정당 비상시국회의’ 발언) 
       
      ▲ “이 상황은 자연스레 조성된 것이 아니라 평화가 두려운 사람들이 조성한 것이자,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조성한 것이다…(중략) 저 노회찬은 이명박 정부의 북풍 정치기도에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 국민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길 빈다.”v(上同) 
       
      ▲ “오늘 발표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들어보면 중요한 부분들이 추측으로 가득 차 있다…(중략) 길거리에서 돌 하나를 주워 가지고 구석기 시대부터 사용되던 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010년 5월20일 정부의 천안함 발표 관련 발언)
       
      ▲ “북한제 어뢰 파편이라는 것을 조사결과대로 100% 믿는다 해도, 망망대해에서 건져 올린 북한제 어뢰파편이 3월26일 그 밤에 천안함을 침몰시킨 원인이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上同)
       
      ▲ “2012년 남북 정상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코리아연합’을 건설하고, 2020년 ‘서울, 평양 공동 올림픽’을 거치면서 ‘코리아연방’을 창설하자”(2007년 7월12일 국회. ‘P+1코리아 통일방안’ 토론회 기조 발제) 
       
      ▲ “2020년 '코리아연방'을 건국하기 위해 임기 내 연례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2020 서울·평양 통일올림픽’ 유치전에 나서 ‘코리아연방’ 건국의 기초를 닦을 것” (上同)
       
      ▲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남북 상호 비방 방송을 중단했는데 미국은 대북 방송에 재정적 지원을 하게 된다. 이런 예산 지원이 남북 화해 협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2004년 10월4일 국회에 출석한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질의) 
       
      ▲ “국보법 폐지를 기정사실화해야 한다”(2004년 9월13일 국회 국보법폐지추진모임 4당 간사회의)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