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호 35호 전재> 격변하는 주변 정세-北 京 通 信

       힘을 가진 자의 행복(?)한 고민이 부럽다
    - 중국 외교전략을 둘러싼 ‘비둘기파’와 ‘매파’의 논쟁 -

    김 · 상 · 순 / 중국차하얼(察哈尔)학회 연구원/통일부 해외교육위원

  • ▲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스바오(環球時報)’
    ▲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스바오(環球時報)’

    우젠민(吳建民) 원장의 도발 : “세계는 평화와 발전의 공존시대”

    지난 2016년 3월 30일 중국의 외교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외교학원(外交學院)에서 “오늘의 세계를 정확히 인식하자”라는 제목으로 우젠민(吳建民) 원장의 특강이 있었다.

    프랑스 대사를 역임했고, 외교부 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인 우원장은
    “환추스바오(環球時報)의 문장은 때로 매우 극단적이며,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세계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시대적 대국을 보는 눈이 부족하고, 시대적 주류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비평했다.
    우젠민은 또한 퇴역 장군인 뤄웬(羅援) 군사평론가에 대해 “그의 매파(강경파)적 논점은 시대적인 착오를 하고 있다”고 비평했다.

  • ▲ 우젠민 전(前) 중국 외교학원 원장(연합뉴스)
    ▲ 우젠민 전(前) 중국 외교학원 원장(연합뉴스)


    우원장의 논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현 세계의 흐름은 과거 ‘전쟁과 혁명’에서 ‘평화와 발전’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시대적 화두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중국은 3불(三不) 외교전략, 즉 영토를 확장하지 않고(不擴張),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不覇權), 협력관계를 맺지만 동맹을 맺지 않아야(不結盟) 한다.
    많은 문제에 직면한 중국은 발전을 추구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시진파의 우젠민에 대한 반론 : “고상한 척하는 외교귀족의 병폐”

    우젠민(吳建民)의 비평에 발끈한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4월 7일자 환추스바오에서
    “우젠민 대사의 비평에 대해 후시진이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후시진은 “단지 그들만이 외교를 이해하고, 그들만이 외교를 주도해야하며, 언론이 한 마디
    거드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조성하고 민족주의의 화근이라고? 우대사의 생각은 전형적인 비둘기파로서, 소수의 전직 외교관의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단지 외교성과나 외국과의 우호협력의
    진전만을 보도하길 바란다. 문제를 건들지도 말아야 하고, 논지도 엄격하게 외교부의 기조에
    따라서 앵무새처럼 따라하면 된다는 거다. 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언론이 보도하지 않기를 가장 바라며, 가급적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덮으려는 어느 대사를 생각나게 한다.”고 맞받아쳤다.

    후시진은 “우대사가 환추스바오를 통해 자기 문장을 발표할 때, 동시에 그의 생각과 상반되는
    관점이 보도되는 것을 반대했다.”며, “이것은 민주와 다원적 시대정신에 위배된다”고 우젠민을
    헐뜯었다. “우대사는 외교계에서는 전형적인 ‘비둘기파’이지만, 국내 언론매체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오히려 매우 ‘매파’적 태도를 가진, 일종의 대중과는 동떨어져 홀로 고상한 척 하는
    고관(高官)의 전형이다.”라고까지 비판했다.

  • ▲ ‘환추스바오(環球時報)’ 총편집장 후시진
    ▲ ‘환추스바오(環球時報)’ 총편집장 후시진


    첸창밍(錢昌明)은 “첫째, 외교문제에 언론이 왜 목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것인가? 단지 외교관만 말할 수 있고 민간의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둘째, 지금은 아직도 제국주의 시대이자, 전쟁과 혁명의 시대이다. 대충 헤아려도 서방이 참여한 국지전쟁이 무려 23개이고, 아프간전쟁은 13년이나 끌었다. 셋째, 지금은 금융패권과 군사패권을 독점한 미국의 초강력 단일패권시대이고, 중국은 유사이래 가장 큰 위기를 정면으로 맞이한 시대이다.”라며 우젠민에게 반발했다. “평화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지키는 것이다”는 첸창밍의 논지와 비슷한 시각으로 뤄웬(羅援) 장군을 지지하는 군부와 연관된 인사들이 후시진을 지지하며 우젠민을 비평했다.

    우젠민의 반격 : “전체적 국면을 제대로 좀 보라”

    우젠민은 4월 8일자 환추스바오에 “남해문제는 감정을 안정시키고, 전체 국면을 보면서, 해결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후시진파를 공격했다. 우젠민은 “미국이 단지 중국을 불편하게 하려고 건드려야 보겠지만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전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이 문제의 본질을 전체적 국면으로 제대로 좀 봐야 한다.”고 후시진파에 반격했다.

    그는 “(환추스바오처럼) 서방의 언론보도를 맹목적으로 쫓을 필요도 없고, 너무 과장된 보도도 필요 없다. 국제관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전이되는 역사적 배경 하에, 아시아 각국의 굴기로 인한 영토분쟁이 남중국해 문제의 본질이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진행 중이고, 따라서 영토분쟁은 조정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첫째, 시대의 주제는 ‘전쟁과 혁명’에서 ‘평화와 발전’으로 변했다. 둘째, 남중국해에서 중미 모두 전쟁의 의지는 없다. 중국의 국방전략은 방어형이고, 아프간문제도 해결 못한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전쟁을 할 힘이 없다 셋째, 중미 간, 중국과 아세안 국가 간에 ‘발전’이라는 공동이익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남중국해 문제는 적절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남중국해 문제는 전체를 봐야 한다. 첫째, 세계적 측면으로 보면, 어떤 대국이나 국가 연합체도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자국의 정책목표로 삼지 않으며, 아시아의 성장은 모두가 바란다. 둘째, 남중국해 문제는 당사국간의 문제중에 하나일 뿐이지 전체가 아니다. 셋째, 각국의 입장은 다르나, 평화적 해결은 모두 찬성한다. 넷째, 각국의 다른 입장이 영원불변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우젠민은 강조했다.

  • ▲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 중인 인공섬(연합뉴스)
    ▲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 중인 인공섬(연합뉴스)

    우젠민 지지파의 반응 : 환추스바오는 편향성의 대명사

    천지빙(陳季冰)은 “환추스바오의 안중에는 세계가 서로 학살하는 암흑의 무림일 뿐”이라는 제목으로, 우젠민에 대한 후시진의 비판은 논박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했다. 천지빙은 “후시진의 우젠민에 대한 비판은 문제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문제를 편향적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다. 환추스바오는 이런 식으로 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매체가 되었다.”며, “환추스바오의 보도 방식은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적 음모론이 논점의 기본이다. 중국은 사방에 둘러싼 적대 세력들을 참살해야 한다는 식의 음모론적 논지는 아편처럼 쉽게 널리 퍼진다. 어떤 문제도 일단 동기가 의심되는 음모론에 이끌리게 되면 의미있는 토론 전개는 어렵다. 환추스바오가 환영을 받으면 받을수록, 중국사회와 세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지 능력은 왜곡되기 마련이다.”라고 환추스바오의 병폐를 지적했다.

    길림대학 손싱제(孫興杰) 교수는 “이러한 궤변이 환추스바오의 논점 흐리기 방식이다. 환추스바오는 민족주의의 감정을 자극하여 마치 애국적 언론인척 한다. 환추스바오는 이데올로기와 민중에 기초한 논지를 반영하는데, 이런 논점에 대해 일반 민중들은 비판을 목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대부분 수용한다. 환추스바오의 상업화는 상당히 성공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 대외정책이나 혹은 상황을 대변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고 비꼬았다.

    마리밍(馬立明)은 “후시진과 우젠민의 변론으로 본 중국 학술계의 유아병”이라는 제목으로 환추스바오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첫째, (환추스바오는) 국제관계에 대한 중국의 연구가 국가이익의 추구에서 출발해야 하고, 애국이라는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궤변이다. 학문은 객관적 논리를 존중해야 발전한다. 둘째, 중국의 전통 지식인은 권력 의존도가 너무 높다. 서양의 학문은 ‘도(道)’와 ‘권력’이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상호 균형을 이루지만, 중국은 ‘도(道)’와 ‘권력’의 구분조차 없다.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적 관점이 만연한 것이 중국학계와 환추스바오의 문제점이다. 미국이나 일본을 비평해야 정확한 정치적 논점이고, 미국이나 일본에 유리한 표현에 대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팔이 밖으로 굽었다’, 심지어 인터넷 댓글로 ‘매국노’나 ‘간첩’이라고 몰아붙인다.”

    양청자이(楊成在) 교수는 “중국이 만약 민족국가와 국가이익 중심주의의 자아한계를 초월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굴기는 단지 꿈일 뿐이다.”라며, “우리가 진정으로 우려할 것은 중국이 얼마나 세계를 이해하고, 외교수단으로 어떻게 일대일로와 연관된 국가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며, 우리의 연구가 협력 과정에서의 중대한 장애물에 대한 도전을 예견할 수 있는가에 있다. 중국이 세계에 보여줄 것은 정성이지 주먹이 아니며, 중국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의 입장이 아니라 전문성이다.”라고 강조했다. 

  • ▲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동해함대의 실탄 사격 훈련
    ▲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동해함대의 실탄 사격 훈련


    니화위(倪花語)는 “환추스바오의 극단적 경향이 국가를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제목으로 “첫째는 후편집장의 ‘언론의 태생적 매파(강경파)론’은 위험하고, 둘째는 전쟁의 위기와 반서방(反西方) 선전을 연결하여 조장하는 극단적인 행위로, 이런 태도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언론과 일치한다.”며, 잘못된 언론관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 언론처럼 국가를 위험한 지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제문제의 보도에 있어서 언론매체의 통제가 엄격할 뿐 아니라, 균형 경쟁 체제가 없이 전형적인 독점권을 행사하는 환추스바오의 특별허가권이나 독점권은 거대한 권력이다. 이런 권력에는 반드시 책임윤리와 평형능력을 가진 인재가 적합하지만, 오만한 후시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니화위는 “환추스바오의 극단적 주장이 득세할수록, 중국의 평화적 굴기는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게되며, 중국을 포위하려는 충분한 이유를 제공할 뿐이다. 13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데, 오히려 환추스바오는 ‘애국’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다.”라고 한탄했다.

    시안교통대학 국제평화 및 발전연구소 딩동(丁咚) 고급연구원은 “우젠민이 어떻게 후시진의 소우주를 뒤집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후시진은 도량이 좁아 사소한 일만 따지고 전체 국면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가 편집장이 된 후, 한 일이라고는 주인이 던진 쟁반을 스스로 물어오거나, 혹은 물어오는 척했던 두 가지 뿐”이며, “환추스바오는 줄곧 명확한 방향성과 편향성 보도를 했고, 후시진은 민주적 자유언론에 대해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엄청난 ‘선택적’ 이미지만 존재한다.”고 혹평했다.

  • ▲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 대사관 전경
    ▲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잡은 주한 중국 대사관 전경

    ‘우후의 논쟁(吳胡之爭)’은 중국의 외교노선에 대한 고민

    우젠민은 후시진과 환추스바오가 좀 더 거국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으로 세계의 흐름을 관찰하고, ‘평화와 발전’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주제에 맞는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후시진은 논점을 흐리고 민중을 자신의 편에 서도록 하는 환추스바오의 여론몰이식 보도로 우젠민을 공격했다. 우젠민을 ‘비둘기파’이자 구시대의 외교관으로 묘사함으로서 상대적으로 ‘매파’와 다른 언론매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누가 ‘애국적’인가를 논쟁의 핵심으로 삼아 민중들의 감성을 자극시켰다. 이번 논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필자의 예상대로 학계의 전문가들은 비교적 우젠민을 지지했고, 군부와 특히 네티즌들은 남중국해 영토분쟁과 관련하여 우젠민의 평화적 해결방식에 대해 심지어 ‘매국노’라고까지 몰아세웠다.

    당사자 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같은 감정싸움에서 시작되어 주변 학자들로 확대된 ‘우후의 논쟁(吳胡之爭)’은 점차 중국 외교전략의 서로 다른 방향에 대한 상호 평가로 발전하고 있다.
    힘을 가진 중국은 ‘동전 딜레마’, 즉 두 가지 복잡한 양면적 결정과정에서 한 방향을 선택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동아시아의 병자’로 손가락질 받던 과거를 회상하며 가진 힘을 써보고 싶은 유혹의 한 면과, 아직은 좀 더 평화적(?)이고 인내적 발전을 통해 글로벌 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다른 한 면 사이에서 중국은 고민에 빠져있다.

    ‘동전 던지기’라도 할지를 행복하게(?) 고민하는 듯한 중국을 베이징 현지에서 지켜보는 필자는 부러울 뿐이다. 게다가, 한반도의 ‘이전투구’를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은 무겁고 갑갑해 진다.
    우리는 언제 비로소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