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베라 커피숍을 나와 최득구 순경과 헤어진 후, 우리는 최득구 순경이 일러준 아드리아네 호텔을 찾았다. 아드리아네 호텔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드리아네 호텔 간판이 좌측 전방 상층에서 금세 눈에 들어왔다.

    아드리아네 호텔 가는 길도 수월했다. 유성이 관광도시이고 도로 정비가 잘 된 탓이겠지만, 대로변을 따라 직진하고 우회전하고 좌회전하고 하면 되어서 미로찾기 같은 구석은 전혀 없었다.

    '바다풍경' 맛사지 센터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드리아네 호텔이라는 훌륭한 이정표가 있었던 탓이었다. 최득구 순경과 헤어지고 '바다풍경'을 찾기 시작한 십여 분만에 우리는 이미 '바다풍경'의 정문 앞에 당도해 있었던 것이다.

    성규가 성급히 '바다풍경'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러는 성규를 지만이가 제지했다. 성규의 성급한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성급한 성규를 제지한 것은 지만이가 잘 한 일이었다.

    성급해서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은 신중하게 처리하는 게 좋은 거였다. 이런 속담도 있잖느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 말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말이 예부터 전해져 왔겠느냐 하는 거다. 옛 말에 그른 말 하나도 없다고,얫 속담에는 귀룰 기울이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도망간 아내를 찾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여자란 도자기보다 더 깨어지기 쉬운 무엇이라고 하지 않느냔 말이다. 성급하게 서둘렀다가 도망간 아내가 예서 또 도망가버리면 어찌 하느냔 거였다. 이중으로, 도망가고 또 도망간 아내는 다신 찾을 수 없는 거였다. 두 번 아내를 잃고 때 늦은 후회를 하는 것보다, 사전에 신중한 게 옳은 일이었다.

    성급하게 '바다풍경' 안으로 들어가려는 성규를 제지하고, 우리는 '바다풍경'의 정문 앞에서 사전모의를 했다. '바다풍경' 안에 들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어떻게 찾아낼지를.

    우선 우리는 맛사지를 받으러 온 손님 행세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이 곳에 몽골 여자 맛사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운을 띄우면서 몽골 여자를 맛사지걸로 부르기로 했다. '바다풍경'에 몽골 맛사지걸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셋 중 하나에 성규의 아내가 배당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부른 몽골 맛사지걸 가운데 성규의 도망간 아내가 없다면 그 땐 몽골 맛사지걸들에게 성규의 아내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이런 여자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몽골 맛사지걸들은 성규의 도망간 아내가 여기 '바다풍경'에 있으면 여기에 있다 할 것이었다. 있는데도 없다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리 신분을 의심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누구임을 밝히면 결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었다. 우리는 사진 속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 남편의 친구요 당숙이었으니까.

    우리는 '바다풍경' 맛사지 센터 안으로 들어갔고, 계획대로 움직였다. 맛사지를 받기 위해 맛사지 센터를 찾은 손님 흉내를 냈고, 몽골 맛사지걸을 요구햇다.

    "몽골 맛사지걸이요?" "그래, 여긴 몽골 맛사지걸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몽골 맛사지걸을 찾는 우리를 보고 맛사지 센터의 젊은 마담이 난색의 표정을 지었다. 자기네 업소는 결코 몽골 맛사지걸로 유명한 업소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직접 대놓고, 입으로까지 난색을 표시하지 않았다.

    몽골 맛사지걸을 들여보내주겠다는 맛사지 센터 젊은 마담의 언질을 받고 맛사지 방으로 들어섰지만, 정작 들어온 것은 몽골 여자가 아니었다. 성규와 지만이의 경우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각자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던 거니까.

    나의 경우에는 들어온 맛사지걸이 몽골 여자가 아니었다. 이 업소는 몽골 맛사지걸이 드문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몽골 맛사지걸을 찾는데 엉뚱한 나라 맛사지걸을 들여보낼 리가 없었다. 어쩌면 이 업소에는 몽골 맛사지걸은 한 명도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최득구 순경이 보았다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닮았다는 그녀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아닐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었다. 최득구 순경이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맛사지 센터에서 보았다고 하였을 때부터 나는 수상쩍었었다.

    동남아나 중국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몽골에서는 맛사지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몽골에서 맛사지를 받아보았다든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몽골 사람들이 맛사지 업종에 종사한다든가 하는 얘기를 나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맛사지 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은 더욱이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물론 손님으로 왔을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우리처럼 말이다. 그 때 최득구 순경이 그녀를 보았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이 업소는 남성 전용 맛사지 센터 같은데....

    "몽골 사람이야?"

     나의 방으로 온 맛사지걸에게 내가 물었다 스물 두 셋쯤 되어보이는 아가씨였는데, 밑이 짧은 아이보리색의 가운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둥그스름한 게 성형과는 먼 얼굴이었고, 얼핏 보아서는 몽골 여자 같기도 했다.

    "아닙니더."
    "난 몽골 맛사지걸을 불렀는데. 여기가 몽골 맛사지걸이 유명하다고 해서."
    "누가 그럽니까. 여기에 몽골 맛사지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한국 맛사지걸들 뿐입니다." "어, 그래,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했지."
    "누가 그러는데요?"

    최득구 순경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최득구 순경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건 그저 우리의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나와 지만이와 성규의 바람. 보다 정확히는 성규의 바람이었다. 그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이 곳에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가씨 고향은 어디지?"

    나는 말을 돌린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물었다.

    "왜요."
    "유성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사투리가 여기 충청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조선족이예요."
    "조선족?"

    조선족이라는 말에 나는 약간 아가씨에게 흥미가 생겼다.

    "조선족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디인데. 연길, 아니면 심양?"
    "하얼빈에서 왔습니더."

    조선족이라면 중국교포였다. 요즈음은 흔히 조선족들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음식점 같은 데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가운데 십 중 서넛은 조선족인 듯 싶었으니까. 그만큼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온다는 얘기일 터였다. 세계화 때문인지 아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귀소본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조선족들에게 한국이 희망의 장소인 것 만큼은 틀림없는 듯 했다. 그 희망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긴 희망이란 원래가 근거가 박약한 것이었다. 근거가 확실한 희망은, 이미 희망이 아닐 것이었다.

    음식점 같은 데서 자주 보긴 하였지만, 맛사지 센터에서 보는 조선족 아가씨는 또 새롭고 흥미로웠다.

    헌데, 요즈음 나는 조선족에게 감정이 좋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자그마치 오 년여 동안이나 공을 들였으나, 결국 못 쓰고 있는 소설 때문이었다.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써보겠다 하면서 탈북자들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훑어보았는데, 거기에 어김없이 조선족이 등장하고는 했다. 탈북자들이 등장하는 소재에는 조선족들도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족들이 탈북자들이 등장하는 얘기에서의 한 조연쯤 되는 것 같았다. 거의 모든 얘기들이 그와 같았는데,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해서 나오는 마당이 대체로 중국이었기 때문인 듯 했다.

    헌데, 탈북자들 소재의 얘기에 나오는 조선족들의 모습이 전부 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흔히는 부정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는 건데, 이유야 어떻든 보기에 안 좋고 거부반응이 인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곤경에 처한 탈북자들을 외면한다든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인신매매를 한다든가, 심지어는 멀쩡한 탈북자를 공안에 찔러 북한으로 압송되게 한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조선족들이 그런 악역을 맡는 게 돈 때문이라는 게 쉽사리 이해는 가지만, 같은 동포라는 차원을 떠나서라도, 어떤 인류에게든 그리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물론 모든 조선족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조선족들이 탈북자들을 불쌍히 여겼고, 미력이나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의, 돈에 눈이 먼 조선족들의 얘기였다. 헌데, 일부의, 돈에 눈이 먼 조선족들이 연못을 흐린다는 것이었다. 그게 조선족들에 대한 내 인상도 급기야는 나쁜 쪽으로 기울게 만들어 놓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