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하고 싶지 않은 4.16 체험학습   
                                    
  • 최 윤 숙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회원
 학부모 교육원 회원
 푸른 도서관 운동본부 사무장                                                                                    
  
봄의 시작 개나리꽃. 매년 4월이 되면 길가에 가득 노란 개나리가 수를 놓는다.
아이는 즐거운 봄바람에 노란 개나리꽃 사이를 뛰어 놀았다.
살랑대는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듯 까르르 웃어대던 아이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노란 개나리꽃이 예쁘다. 노란 개나리꽃은 봄을 맞는 설렘이다.
봄의 문을 연 노란... 노오란... 개나리. 이내 꽃잎 날리며 흩어졌다.
노란… 노오란… 리본이 아프게 다가왔다. 

노란 리본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봄바람 살랑대는 거리에 노란 개나리는 노란 리본이 되었다.
봄을 맞는 소리에 설렘도 죄의식이 되었다.
자식에게 아픔을 대물림하고 싶어하는 부모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은 간절함으로 제 가슴을 치는 것이 부모이니까.

그런데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거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4.16 세월호 계기수업’이 그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투쟁과 선동으로 얼룩져버린 거짓이 아니다.
나라를 탓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부정적 책임론은 더욱 아니다.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교훈삼아야 할 것은
안전 불감증과 어른들의 이기적 탐욕이다.
그리고 애끓는 부모마음, 다시는 반복되어선 않되는 비극이다.
부모라면 고통스럽게 죽어간 자식을 떠올리며 기억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4.16 계기수업을 통해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체험을 통해 고통과 두려움을 배우라고 한다. 그들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세월호의 진실에 직면하도록,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4.16교과서로 수업을 하겠다.”고 전교조 교사들은 밝혔다.
 이미 진실은 밝혀졌는데,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하라고 한다.
‘응답하라! 대한민국!’을 외친다. 응답하고 있지만 듣지 않는 꼴이다. 
“박근혜 정권은 책임 회피를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다.
 쉽지 않은 막말과 쌍욕들을 대통령을 향해 쏟아 붓고 있다.
그런 기사들은 각종 언론이나 SNS를 통해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대놓고 북한정권을 찬양하는 기사도 비일비재하다.
그 밖에 수많은 기사가 국가와 사회를 막말로 비난한다.
무엇을 더 허용해야 언론 통제가 아니라고 할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진상규명은 커녕 추모와 기억조차 방해하는 정권과 자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라며
죽어간 아이들을 투쟁의 목적으로 부르고 있을 때,
죽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다.
공포스럽고 무서웠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5살 여자 아이는 하루아침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7살 오빠를 잃었다.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기 어려운 나이다.
살아남은 다섯 살 짜리가 홀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린 아무도 모른다.
한 명의 학생이라도 구하겠다며 죽어간, 스물을 갓 넘은 여자 승무원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소외된 유가족과 살아남은 자들의 신음소리와 눈물에는 관심도 없다.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이 아닌 투쟁은 잔인하다.
기억해야 할 것을 지우게 하고 지워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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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거리에 핀 개나리꽃, 팽목항에 핀 노란 리본 (사진출처 : 국민일보)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한다는 이유로
    4.16계기수업은 “창의교육”이 되었다.
    죽어가는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억울함과 불안이 체험학습이 되었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하여 새로운 트라우마를 갖게 할 위험이 높다.
    4.16 교과서에는 참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단원고 교감이 자살했다고 서술하였다.
    누가보아도 책임감을 갖는 것이 자살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자아 형성의 중요한 시기에 부정적 사고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초, 중등교육법 29조 1항에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교과용 도서로 수업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용 도서 즉 교과서는 전교조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6교과서의 저작권은 전교조가 가지고 있다.
    4.16 계기수업에 대한 진행 관련 제보가 있을 때 교육부는 징계조치를 내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교조 교사들은 교육권 침해를 이유로 교육부와 법적으로 싸울 계획임을 밝혔다.

    교육기본법 14조 4항에 ‘교원은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책임회피론으로 정부를 비난하고 비판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교육부가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4.16 계기수업을 금지하고 있지만,
    전교조는 선동이 아닌 진실왜곡이라는 이유로 4.16 계기수업을 강행하고 있다. 

    얼마 전 대법원 판결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는 국고 보조금을 반환해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전교조는 국고 보조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초, 중등 교육법과 교육기본법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은 없다.
    학생과 학부모가 반대해도, 4.16 계기수업을 강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들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교사가 원칙과 기본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학부모인 나는 걱정이 앞선다.
    다음세대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이 불법을 배우고
    기본과 원칙쯤은 가볍게 무시해도 된다고 습득하게 될까 두렵다.
     
    그들의 어긋난 교육열과 투쟁은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다는 팽목항만은 아니다.
    연평도와 백령도를 포함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자식이었고 남편과 아빠였다.
    그들의 죽음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편향된 교육은 참담한 사건을 “자작극”이라고 했다.
    거짓은 냉랭한 무관심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가슴에서 기억에서 잊혀지게 하였다. 

    그날의 끔찍했던 공포와 두려움에 갇혀 있었던 아이들을 교육을 통해 기억하기 싫다.
    노란 리본을 상징적으로 기억하기 싫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행복했었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마음이 아파와 눈물이 흘러도 아이들의 미소만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투쟁을 위한 거짓을 기억하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가슴 시리도록 아픈 진실을 가르치고 영원히 함께 기억하기를 원한다. 
    노란 것은 투쟁으로 얼룩진 리본이 아니라,
    봄을 맞이하는 설렘 가득한 개나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