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린 밖에서 만난 쿠니무라 준(61)의 얼굴에는 영화 '곡성'의 강렬한 존재감 외지인은 없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와 부드럽지만 단호한 눈빛은 더함도 줄임도 없는 본연의 모습 그 자체로 왠지 모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꾸밈없는 답변을 풀어냈고, 이상하게 소탈하고 따뜻한 '할배'가 보였다.

    나홍진 감독의 6년만의 신작 '곡성'은 외지인이 나타난 후 시작된 의문의 연쇄사건과 기이한 소문 속 미스터리하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쿠니무라 준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소문의 주인공 '외지인' 역을 맡아 미스터리한 존재감으로 극에 긴장감을 높인다.

    "완성된 영화를 VIP 시사회에서 처음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와 매우 기쁘다. 스토리텔링 보다는 나홍진 감독 특유의 흡인력을 믿었다. '곡성'은 나 감동의 강점이 잘 살아난 작품이다. 제가 일본인이라 다른 배우들의 대사나 관객들이 웃을 때 이해를 못하지만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있다."

    쿠니무라 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갈증', '지옥이 뭐가 나빠', '피와 뼈', '킬 빌-1부', '이치 더 킬러' 등 80여 편의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일본의 국민배우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기타노 다케시, 미이케 다카시, 소노 시온 등 일본 대표 감독들을 사로잡아온 그가 첫 한국영화 '곡성'을 통해 나홍진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이 일부러 일본으로 찾아와서 시나리오를 줬는데 '곡성'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100% 이해는 안됐지만 저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 제안을 받기 전까지 나 감독을 잘 몰랐다. '곡성' 출연을 결정하면서 '추격자'와 '황해'를 재미있게 봤다. 개인적으로 스케일이 큰 '황해'가 더 좋았다."

  • 쿠니무라 준은 나홍진 감독이 "영화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인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고 말할 만큼 오랜 연륜과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으로 외지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는 산길을 구르고 뛰기를 반복하는 추격신, 폭포신 등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현장이 산속이라 산을 오르내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고관절이 있어서…(웃음) 폭포를 맞는 신이 있는데, 혼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중에 보니 크레인이 나타나 촬영하고 있더라. 여기까지 크레인을 어떻게 올렸는지, 스태프들의 고생을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을 못했다. 나홍진 감독은 어떤 신이든 끈질기게 촬영하고 '좀 더, 좀 더'라고 얘기하며 디테일을 요구한다. 그의 상상력은 폭과 깊이에 한계가 없지만 내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쿠니무라 준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레인'(1989)에 출연했으며, 할리우드 영화 '킬빌 1'(2003)에서는 다나카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남겼다. 미국, 홍콩, 프랑스 등 다국적 영화에 출연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의 제작환경과 어떤 차이를 느꼈을까.

    "시스템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감독이 많은 것들을 결정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나홍진 감독의 권력이 제일 강하다. 일본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파트별로 상의해 콘트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나 감독은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방식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쿠엔티노 감독은 제일 먼저 현장에 나와 흥을 돋우는 스타일이다."

  • 다음은 쿠니무라 준과의 일문일답

    - 한국 방문은 영화 촬영이 처음인가?
    서울에 온 것은 처음이다. 이전에 제주도로 여행을 갔고, 부산은 일본영화 로케이션 때문에 있었다.

    - 나홍진 감독의 현장이 힘들기로 유명한데, 알고 있었나?
    나 감독의 촬영장이 유독 힘들다는 사실은 촬영이 끝난 후 알았다. 한국은 모두 이렇게 혹독한 줄 알았다. VIP 시사회가 끝난 후 여러 감독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 감독이 한국감독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더라.

    - '곡성'의 헤드 카피가 "절대 현혹되지 마라"이다. 본인을 현혹시키는 게 있다면? 
    너무 많다. 항상 물건들에 현혹되고 있는데, 자동차를 좋아한다. 비싸서 사지는 못하지만 백자, 청자 등 한국의 전통적인 옛 물건들에 흥미가 있다.

    - 배우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와 연기한 소감은?
    한국배우들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멋진 배우들이다.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일광(황정민)이 굿판을 벌이는 신을 좋아한다. 마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 '곡성'이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처음으로 참여하는 한국영화라는 것과 모두가 힘들어하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곡성'으로 칸에 처음 가게 됐는데, 기대하는 것이 있나?
    두근두근하고 있다. 칸에 있는 관계자들이 '곡성'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레드카펫에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겠다.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