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는 함부로 액셀 밟지 마세요
  • 20대 국회 개원식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가운데 300명의 의원들이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 20대 국회 개원식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가운데 300명의 의원들이 국회의원 선서를 하고 있다.
    노란불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수석에 탄 선배가 타박했다.
    "야! 노란불에는 액셀을 밟아야지 답답하네"
    19대 국회가 한창 시끄럽던 어느 여름날. 이른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휴대전화 진동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A 의원이었다. 
    "이 기자 오해가 있는 거야. 지금 당장 만나." A 의원의 목소리가 급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을 하다 포착된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A 의원은 거듭 오해라고 주장했지만, 카메라에 포착된 사진에 오해는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은 팩트만 말하고 있었고, 다음날 조간에 실리는 것으로 확정돼 있었다.
    하지만 A 의원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졌다. 만나주지 않으면 통화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의원님 지금 어디세요?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아니야 지금 지역구야 내가 7시 30분까지 000식당으로 갈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역구? 퇴근 시간에 아무리 빨리 와도 3시간은 걸린다. 
    통화를 마친 시간은 5시 30분. 8시는 넘어야 도착할 거리였다. 업무를 마무리 하고 약속한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7시 20분. 30분쯤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에 식당 문을 열었다.
    웬걸? 먼저 도착한 A 의원이 나를 보면 방긋 웃고 있었다. 의원의 표정이 꼭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의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인사청탁에 대한 해명은 관심 밖이 됐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리 일찍 도착했지? 국회의원이니 헬기라도 탔나? 궁금했지만, 우선은 A 의원의 해명에 귀를 기울였다. "선의에서 한 행동이다." 뻔한 이야기였지만, 그 또한 충실히 들어야 했다.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시간 반 만에 여의도까지 오신 거예요? 비서님이 운전 잘하시나 봐요?"
    역시 A 의원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빨리 안 오면 내 해명도 안 듣고 기사 쓸까 봐 밟았지." 이해가 안간다는 내 표정에 마음 급한 A 의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노하우'를 털어놨다.
    "고속도로에서는 버스전용차로에 차를 올려"
    "그럼 카메라는요?"
    "내 차가 9인승 승합차야"
    "6명 이상 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팅이 진해서 잘 안 보여 아니면 내가 앞에 앉으면 단속 잘 안 해 "
    국회의원의 흔한 꼼수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의원이 9인승 이상의 승합차를 하나씩 운행하고 있다. 기자들 사이에 K 자동차 회사를 소유한 H그룹 일가인 J 의원이 선물한 것이 아니면, J 의원을 통해 싼값에 공동구매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국회를 3년 출입하면서 이 승합차에 6명 이상 탑승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럼 시내에서는요?"
    "신호는 급하면 어쩔 수 없고 카메라가 있으면 중앙선을 물고 들어가면 안 찍혀. 오늘은 오다 딱지 한 장 끊었어. 차마 의원 체면에 봐달라는 말은 못하겠더라고"
    억지로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기자랑 약속은 지켜야지 "약속이란 단어가 내 머리를 때렸다.
    약속(約束)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 또는 그렇게 정한 내용.
    국회의원은 임기 초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공표하는 의식으로 선서란 걸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서명한 선서문은 국회사무처에 보관한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며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린 그 날, 기자와의 약속은 지키기 위해 수십 가지의 불법을 다시 저질러 놓고 또다시 '약속'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그 상황에 유독 씁쓸했다.
    내가 노란불에 액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는 이유? 이곳이 300대의 국회의원 차가 바쁘게 다니는 여의도이기 때문이다. 바쁘신 국회의원님들이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노란불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는 곳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