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함께 당 미래 이야기 했던 후보… 정병국 후보도 정책 빌려 써
  • ▲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과 정병국 의원의 당 대표 후보자 단일화 기자회견 장면. 김용태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과 정병국 의원의 당 대표 후보자 단일화 기자회견 장면. 김용태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의 8.9 전당대회가 레이스 종반으로 갈수록 계파 전 양상으로 번지자, 잃어버린 '혁신'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말이 새누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혁신'을 키워드로 초기 전당대회 판세를 주도하다 물러난 김용태 의원의 선당후사 정신이 현재의 새누리당에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혁신 사라진 전당대회…굳어진 계파구도

    지난 3일 새누리당은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2차 합동 연설회를 마치며 전당대회 레이스의 반환점을 돌았다. 영남권 합동연설회에 이어 호남권 합동연설회에서도 후보들은 저마다 계파를 기준으로 상대를 비방하기에 바빴다.

    친박계는 단일화 움직임을 계속하는 비박계가 "새로운 계파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판했고, 비박계도 이에 지지 않고 "진박 마케팅에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내 계파는 친박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전당대회를 앞둔 후보들 본인에게 이런 난타전이 다소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1인 1표제 하에서 '확실한 아군'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계파에 기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행동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전대는, 장내는 물론이고 장외마저 시끌벅적하게 흘러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같은 날 광주를 방문해 "비주류가 당 대표가 되는 게 새누리당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비박계 후보로 분류되는 정병국 후보와 주호영 후보 간 단일화도 압박했다.

    친박계 역시 한 후보 캠프에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행정관이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심'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하기로 한 상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정작 제시돼야 할 새누리당의 미래와 비전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됐다. 급기야는 정견 발표 연설에서도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은 점점 비중이 줄어들었다. 한선교 의원이 새만금 사업을 언급한 대목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김용태 의원을 끌어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김용태 의원을 끌어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김용태 있었다면 미래 얘기했을 수도…

    이렇게 진흙탕이 된 전당대회에 만일 김용태 의원이 아직까지 후보자로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금보다는 생산적 논의가 많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의원은 '혁신'을 주장하며 초반 전당대회 판세를 주도했다. 최경환 의원과 서청원 의원 등 친박의 핵심이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 할 때는 강하게 나서서 비판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총선 패배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새누리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번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드 배치' 등 현안에 대해 선명한 보수색채를 강조했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와 청년 정책에 대해서도 보수적 시각을 분명히 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비전으로는 청년층을 주목하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먼저 전당대회 레이스에서 하차했지만 좋은 정책공약들도 갖고 있었다. 특히 '기초 의원 공천 폐지' 등은 지난 3일 호남권 연설에서 정병국 후보가 "김용태 의원의 공약"이라며 빌려 사용하기도 했다.

    김 의원이 말한 '혁신'은 단순히 몇몇 실세 친박계 의원들에 총을 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청년층과 거리감이 없는 당 ▲스타벅스처럼 소파 대신 탁자를 놓고 당론을 논의할 수 있는 당 ▲ 모든 국회의원과 당직자가 현장을 발로 뛰고 그 결과를 백서로 내놓는 투명한 정당 등을 새누리당의 미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젊은 당직자들이 와이셔츠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사회 각 분야 현장에 가는 정당을 상상해보라. 1년 단위로 결과물을 축적하고 백서를 발간하고 대책을 쏟아내는 역동적인 당을 상상해보자"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 젊은이들은 새누리당을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당 대표가 가서, 밤새도록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나아갈 길도 이와 같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원동력은 그의 단단한 지역 기반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의원이 3선을 한 지역구인 서울 양천을은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 28년간, 단 한 번도 여당 정치인이 배지를 단 적이 없었던 곳이다. 워낙 험지라 대야(對野) 전선이 먼저 형성돼, 계파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는 지역인 셈이다.

    ◆ 진정성 있는 혁신…선당후사 나섰다

    김용태 의원은 처음 당대표 후보로 나설 때부터 "뜻이 맞는 동지와 힘을 합칠 수 있다"며 선당후사(先黨後私)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의 궁극적 목표가 친박 패권의 2선 후퇴를 통한 본인의 당 대표 당선이었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그는 정병국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당 대표직에 대한 욕심보다 당을 바꿔야겠다는 혁신 의지가 우선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는 말로만 정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가 당 대표 후보에 출마하면서 임대했던 대하빌딩 10층 사무실은 현재 정병국 의원 캠프에서 사용 중이다. 물심양면으로 승리를 바란 것이다.

    김용태 후보 측 관계자는 "정병국 의원 사무실이 포화상태라 그렇게 움직이게 됐다"면서 "김용태 의원은 좀 섭섭할 수밖에 없겠지만, 공동의 선을 위해 양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김용태 의원은 단일화를 발표한 지난 29일 페이스북에서 평소 즐겨 쓰던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말라 (sin prisa pero sin pausa)'는 스페인 경구를 통해 "좋은 정치를 향해 더 힘차게 뛰겠다"고 말했다. 아직 48세인 김 의원으로서는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김용태 의원이 비주류로 분류되고 있지만,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청년과의 소통 능력 등 김 의원의 잠재력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을 것"이라며 "곧 여러 차례 큰 선거를 앞두게 되는 만큼 다른 곳에서 충분히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