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의 대통령 직선제, 美 내정 간섭·당쟁 정치 아닌 '국민 주권' 찾아주기 위한 투쟁
  • ▲ 건국이념보급회가 건국 68주년을 맞아 16일 제66회 이승만 포럼을 개최했다. 서울 정동제일 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열린 이승만 포럼은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가 ‘대통령의 민주화 혁명, 또 하나의 독립전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건국이념보급회가 건국 68주년을 맞아 16일 제66회 이승만 포럼을 개최했다. 서울 정동제일 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열린 이승만 포럼은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가 ‘대통령의 민주화 혁명, 또 하나의 독립전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건국이념보급회가 지난 8월 16일 건국 68주년을 맞아 제66회 이승만 포럼을 개최했다.

    서울 정동 제일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李承晩)포럼에서는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대통령의 민주화 혁명, 또 하나의 독립전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부산 정치파동'으로 알려진 '발췌개헌'이 사실은 '이승만의 민주화 혁명'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 

    1952년 7월 4일 통과된 '발췌개헌'을 통해 제헌헌법의 대통령 간선제를 4년 중임 직선제로 바꾸었다. 한달 후 8월5일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투표를 통해 우남 이승만은 역사상 최초의 국민직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발췌개헌'에 대한 평가는 주로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실시한 개헌’, ‘이승만 개인의 종신집권 야욕을 위한 개헌’ 정도로 평가 절하돼 왔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은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며 "오히려 '발췌개헌'이 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막아낸 '독립전쟁'이자 국민 주권을 완성한 이승만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대한민국 '민주화'라고 하면 '반독재'를 앞세운 좌익 진영의 활동, 전두환 정권 당시 있었던 6월 항쟁 등을 떠올리지만, 실은 이승만 대통령이 '발췌개헌'을 통해 이룬 ‘직선제’가 최초의 민주화였다는 주장이었다. 

    인보길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첫 민주화 혁명이 언제 일어났느냐 묻는다면 1952년 8월 5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전 국민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은, 5,000년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를 이룬 날이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인보길 회장은 부산 정치파동에 대해 “총칼은 없었지만 대한민국 주권을 찾기 위한 독립전쟁이었다”고 덧붙였다. 

    인보길 회장은 대한민국이 내각제로 정부를 구성했다면 미국의 내정 간섭과 조선 시대 당쟁과 파벌싸움의 DNA를 끊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1952년 6.25전쟁 통에 이뤄진 발췌 개헌은 "전쟁 속 전쟁"이라는 지적이었다.
     

  • ▲ 건국이념보급회가 건국 68주년을 맞아 16일 제66회 이승만 포럼을 개최했다. 서울 정동제일 감리교회 아펜젤러홀에서 열린 이승만 포럼은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가 ‘대통령의 민주화 혁명, 또 하나의 독립전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개헌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싸워서 꼭 승리해야만 하는 세 가지 전쟁이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중국 공산당을 몰아내고 반공 통일을 해 건국을 완성하는 일, 국내에서 일어나는 당파 싸움을 몰아내는 일, 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한 싸움이 그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직선제를 통한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길고 긴 6.25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끝까지 싸워 한반도에서 완전한 반공 통일을 이루고자 했다.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눈엣 가시였다.

    미국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한국 정치인들을 원했고, 국내에는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세력을 꾀하고자 하는 사대주의적 관점을 가진 정치인들이 줄을 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내각제가 구성이 되면 국회 독재, 의회 만능이 되고 결국 조선 시대와 다를 바 없이 세력 경쟁만 하다 국민을 저버리는 일이 생기리라고 봤다. 

    이승만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 주기 위해 ‘직선제’를 꿈꿨다는 설명이었다. 

    인보길 회장은 “이승만은 국민의 힘을 결집해 직선제로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승만 대통령의 1952년 5월 23일 발언에는 그의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초와 라이트너에게 격한 어조로 선언한다. 나는 앞으로 기껏 몇 해 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오. 조국을 위해서 하고 싶어도 못다 한 일들이 많기는 하나 그 목표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한편으로 국민의 복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자기들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서 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 문제가 분명하게 되기 전에는 대통령 자리를 떠나기 않겠다.국민의 뜻에 따르는 단 하나의 길은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대통령을 직선제로 하는 것 뿐이며, 이 목표만은 대통령직을 떠나기 전에 이루고 말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도의회 및 시읍면 의회선거 등 지방 자치와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시작한다. 여기에 야당과 反이승만 세력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기 시작한다.

    1952년 국회의 '호헌 구국결의안'에서부터 ‘독재’라는 말이 나왔고, 직선제를 외쳤던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점차 장기 집권을 위해 개헌을 진행한 '독재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그러나 인보길 회장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 직선제’ 구상은 독립운동을 하던 때, 대한민국 건국을 구상할 때부터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부터 내각제에 비판적이었다는 것은 제헌 헌법이 공포되기 전 이승만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다.

    "대통령을 군주처럼 앉혀놓고 수상이 모든 일을 맡겠다는 것은비민주적인 제도다. 민중이 대통령을 선출한 이상 잘하든 못하든모든 국사를 대통령이 책임지고 해나가야 사리에 맞는다”(1948.6.7.)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뜻대로 직선제 개헌을 했지만, 이후 7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비난과 저주를 들어야 했다. '미국의 앞잡이','헌정의 파괴자', '반역자', '똥같은 X', '희대의 협잡꾼'….

  • ▲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인보길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이 ‘정치적 야욕’으로만 비춰졌던 이유가 국민 계몽을 꿈꾸며 대한민국의 '교장' 노릇을 하려 했던 행동을 언론과 역사가 오해하며 나온 결과라고 풀이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선 왕조 시절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 투쟁을 했던 구악을 청소하고 국민들의 의식을 개혁하고자 했다. 노예근성·사대주의를 청산하는 국민 의식개혁 캠페인의 선봉에 섰다. 

    칠순이 넘는 노인은 담화를 할 때면 언제나 해설을 붙여 국민을 교육하려 했다.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했던 이승만의 태도는 비난의 화살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는 “또 훈시조로 담화가 나왔다”며 이승만을 비판한 기사들이 있었다. 

    구어체를 구사하는 이승만, 할아버지가 아들이나 손자에게 해주는 조의 대화를 구사했던 이승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인보길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김성수, 신익희, 조병옥, 장덕수, 허 정, 이기붕 등 모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적게는 16살 많게는 25살이나 어렸다는 점도 이승만 대통령의 태도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보길 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시대착오였는지 따로 분석해봐야 한다”며 “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여태껏 무식한 노예처럼 살았지만 실은 너무 똑똑해 교육만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할 때 미국,일본보다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보길 회장은 “이씨 왕조의 종묘사직만 지키던 시대에 찌들어 국가 의식이 없는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만들어야 했다”면서 “이승만이 꿈꾸던 것은 교육혁명”이라고 했다. 

    인보길 회장은 또한 이승만 대통령을 '한국식 공화주의 창시자'라고 정의했다. 

    인보길 회장은 “직선제 개헌은 국민 손으로 권력을 만들어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실현한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화 혁명이었다”면서 "4.19 이후 이승만이 두들겨 맞기만 했던 것은 역사와 언론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인보길 회장은 “이승만은 보통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인간, 종교적 민족적 신념의 인간이었다”면서 "이승만의 개헌을 장기독재를 위한 음모로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보길 회장은 “앞으로 부산 정치파동을 '8.5 직선제 개헌'으로 바꿔서 기록해야 한다”며“국사학계가 역사를 창조한 주인공들의 의미를 제발 있는 그대로 살려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