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과오 조속청산" 한민당 김성수등 입각 촉구조선일보도 동조...김구는 "정부수립에 비분과 실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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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④ 양대 ‘민족지’의 ‘이승만 규탄’ 연합전선
8.15건국 전야...동아일보, 이승만에 "과오 반성, 전면 개각" 호통 사설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3.1운동(1919년) 다음해 일제(日帝)의 식민책략 전환에 따라
일간신문 조선일보(3월5일)와 동아일보(4월1일)가 잇따라 창간되었다.
태평양전쟁때 폐간되기까지 20년간 일본 총독부의 탄압과 싸우며
나름대로 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힘을 기울인 두 신문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양대 '민족지'(民族 紙)로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후 두 신문은 안타깝게도 양대 파벌에 기울어져
민족지의 정론(正論)보다는 정파적 정쟁(政爭)을 선도하는
정론지(政論紙) 역할에 함몰되고 말았다.호남 지주 재벌 김성수가 창간한 동아일보는 김성수가 창당한 한민당 쪽에,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던 조선일보는 김구의 한독당 쪽에,
1948년 건국 전후의 보도 경향을 살펴보면 두 신문의 성격이 한 눈에 드러난다.정당도 없고 신문도 없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두 정당의 공격 표적이 되었을 때
'입각실패' 불만을 대변한 두 신문의 집중공세는 과연 정도를 걷는 언론의 자세였을까.
아니면 식민지 36년만에 다시 세운 자기 정부도 총독부로 착각하였던가?아니면 500년 당쟁의 DNA가 되살아나 만만한 권력의 먹이로 보였던 것일까.초대내각에서 소외된 분노가 토해낸 이승만 공격은 조롱과 야유까지 비난 일색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에서도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지면을 직접 열어보기로 하자. -
▶최초의 국무회의, 동아일보는 보도 안해내각명단이 발표된 다음날, 중앙청 대통령실에서 사상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다음은 조선일보(8월6일자)가 1면 머리 기사로 크게 보도한 기사 내용이다. .<4일 조각이 완료됨에 따라 신생 대한민국의 제1차 국무위원회의는 어제 5일 상오 10시
중앙청 대통령실에서 이승만대통령이하 전원(이시영 부통령불참) 참집하에 개회하여
하오12시30분경까지 약 2시간에 긍하여 당면 제문제에 관하여 협의하고
제1차회의는 휴회하였는데 제2차 회의는 금 6일 상오 9시반에 속개할 것이라 하며
이후 매일 속개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동일 하오 3시에는 전각료가 인사차 국회를 방문하였다.한편 김동성 공보처장은 회의 결과를 다름과 같이 발표하였다.*시정방침에 관해서는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해서 국무총리가 연설, 시일은 미정.*대법원장에 김병로씨 임명 결정. *근간 대사령(大赦令) 발포(發布) 결정*대통령의 특사로 정사에 조병옥씨, 부사에 김활란씨를 구미각국에 파견 결정.유엔파견 대표는 추후 국무회의에서 결정하여 국회의 승인을 요청할 것이다.>한편 동아일보는 1면 왼쪽 상단에 국무회의 사진만 게재하였고첫 국무회의에 부통령 이시영이 수원으로 내려가 불참하였다는 사실만 썼다.<조각 완료와 더불어 그 결과에 대한 일반의 실망과 물의가 높아가고 있는데부통령 이시영씨는 국무위원 인선에 불만의 뜻을 품었음인지 첫 국무회의에도 참석치 않은 채지난 4일 돌연 수원 지방으로 휴양차 떠나버렸다.>이것이 국무회의 기사의 전부다. 한민당의 불만이 동아일보 지면에 나타난 첫 사례이다. -
▶동아일보 1면 톱 사설 “대통령은 과오 청산, 개각하라” 요구다음 날 동아일보는 1면 머리에 2단 제목 <측측(惻惻)한 국민의 심정>이란 사설을 싣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대통령의 과오는 빨리 청산할 수록 좋은 법"이라며전면 개각을 요구하는 긴 논설을 게재하였다.요지는 다음과 같다.(측측은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의미).<건국정부의 구성인물을 보고 국민의 실망과 낙심은 너무나 크다. 무거운 국민의 부탁을 받은
대통령은 오로지 민성과 민당의 소재를 통감하고 널리 중망이 높은 인물을 거용하야
정부를 구성하므로써.......(중략).....전국의 태안을 도모하여야 하겠거늘 그 조각 구상에는
몇가지 중대한 과오가 내포되었기 때문에 드디어 국민의 기대와 너무나 현격한 췌약정부를
출현시키고 말었으니 과연 이 정부의 역량으로서 얼키고 설킨 국보민정(國步民情)을
타개할 수 있을가 국민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는지라. 국민의 실망과 낙심은 당연한 일이다.
(중략)......여기에 몇가지 중대한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대통령은 자기의 우월성을 너무도 과시한 나머지 국회의 세력관계를 전연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모와 덕망에 있어서 유위유능(有爲有能)의 사(士) 없지 않거늘 조금도 포섭하지 못하고 차선삼선의 인사를 모래알과 같이 조합하므로써 만족하지 않았던가?.......(중략).......민성을 끝내 물리치고 그 사람들만을 기용하지 않으면 아니될 이유가 무엇이며
기상천외의 인사로써 국민을 아연케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은 도저히 납득하기 곤란하다.....(중략).....국민은 유위유능한 인물을 망라한 강력정부의
출현을 기대하였지마는 대통령의 과오로 말미암아 사실은 졸작 정부가 되고 말었다....(중략)...과오는 과오로 알고 개조하는데 발전이 있는 것이니 때를 재촉하여 일대개조의 결단이 있기를국민은 대통령에게 간원하는 것이며....(중략)....국민 앞에서 엄중한 비판과 감시를 받을 것이매 건국정부의 사명을 완수하여야 할 것을 부탁하여 둔다.>요컨대, 최대정당 한민당에 당수 김성수를 비롯하여 덕망있고 유능한 인사들을 등용하지 않은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오라는 것, 과오를 알았으면 조속히 청산하고 내각을 개조하라는 재촉이다.마치 왕조시대 원님이나 왕이 죄인을 잡아다 놓고 "네 죄는 네가 알렸다" 호통치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과장일까. 일부러 1면 2단 머리 사설로 쓴 것은 이승만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내는 인상이다. 한민당이나 동아일보나 국내파 기득권층이 해외파 이승만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은 사설은 "우리 말 안들으면 넌 죽는다"는 식의 경멸적인 말투와 협박까지 묻어나는 느낌이다. 멱살잡이 이권싸움이라면 몰라도 '국가 만들기'에 대한 인식은 있는 것인지. -
▶ 약체내각 개조운동 보도..."보강책도 물거품" 조롱 제목까지
하루 뒤 동아일보는 1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 두 개를 크게 보도하였다.
김성수가 무임소장관 교섭을 거절했다는 기사엔 3단제목으로
이승만의 약체내각 보강책도 '드디어 수포'로 돌아갔다며
조롱조 제목을 붙여 놓은 것이 눈에 띈다.▷‘무임소 국무위원 교섭 거절. 내각 보강책 드디어 수포(水泡)
<금반 조각인선에 대하여서는 국민의 분노가 날로 높아가고 있거니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미봉책으로서 국내 안정세력을 대변할김성수(한민당 대표) 이윤영(이북인 대표) 이청천(大靑대표) 3씨를 무임소 국무위원으로 내정하고 이대통령 비서 이기붕씨를 통하여 취임을 교섭하였던바 동3씨는 고려의 여지조차 없이 이를 거절하여 약체내각의 보강책은 드디어 수포로 도라가고 말었다.>▷약체내각 규탄 개조운동 전개. 이북인(以北人) 애련(愛聯)서 정치투위 설치<조민당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북 애련에서는 6일 오후2시부터 한민당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현국무위원 구성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야
임시 정치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으로 이종현 박사등 15인을 선정하였다한다.
그런데 동회 석상에서는 금번 국무위원 구성은 이대통령의 이북인에 대한 약속을 배반한 것은
물론이고 비서진을 강화한데에 불과하며 적재적소의 인재배치를 무시한 약체내각이라고
비난하는 격론이 전개되었으나 결국 유엔총회의 승인을 고려하여
도각(倒閣)국민대회까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내각개조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출신 인사들이 내각을 무너트리자는 ‘도각’ 대회까지 시도할만큼 분개한 것은이승만이 당초에 북한 출신 ‘이윤영 국무총리’를 임명했다가 한민당등 국회의 반대로 부결된 후, 주요 각료에 북한출신 인물이 등용되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규탄으로 보인다.
이윤영은 무임소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입각하지 못한 정파들의 불평불만이 쏟아지자 이승만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담화를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새 정부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른다. 두 번째 담화를 소개한다.▷미흡해도 지지하라. 이대통령 국민에 요청 (조선일보 10일자 1면 2단)<신국무위 구성에 대하야 정당 사회단체가 일치하야 약체내각이라고 비난하야 항간에 물의가
고조하고 있는데 이대통령은 9일 이에 대하야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미흡하드라도 정부지지 육성하라."-대통령 담화<3천만 동포 중에 독립을 위하야 당파를 희생하겠는가, 당파를 위하여 독립을 희생하겠는가.두 길 중에 한 길을 택하야 할 것이다. 파당을 가지고 정권을 잡으려고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민족이 살겠는가, 싸움을 버리고 정부를 세워야 그 민족이 잘 살겠는가,
민중은 유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 조각에 반대하는 사람의 이유를 듣건대
누구 때문에 독립이 지체된다든가 국권회복에 방해가 되겠으니 안된다는 말은 없고,
자기 자신이 참여치 못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3년간 외국 군정은 우리 마음에 합당애서 아모 말도 못했는가.
우리 손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이때 우리 정부가 다소 미흡한 점이 있드래도 육성해서국권 찾기를 급선무로 할 것이다. 선동적으로 파괴적인 행위는 바랄 수 없는 일이다.동포여, 아모쪼록 애국심을 발휘하라!>이래야 민족이 살겠는가, 저래야 민족이 살겠는가...이승만의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 담화.미군정으로부터 국권 이양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감투 싸움'만 걸어오는 정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이승만의 애국심 호소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조선일보 사설 “이 나라를 어데로 끌고 가려는가” 약체내각 비판
김구의 한독당에 참여했던 조선일보 역시 내각명단을 보도한 날 1면 사설로 비판하였다.▷조각의 빈곤(8월5일자 1면 1단 제목 사설)<신정부의 행정각부 장관이라고 조각 본부에서 발표되는 인물을 보고 그야말로 의외천만임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니 소위 조각의 방침이라고 할까 인물의 물색이 너머도 저조함에
세인은 아연하고 있는 것이다.....(중략).....지금 우리는 개별적으로 인물을 논평할 흥미조차
느끼지 않는다. 다만 일견하여 이 정부가 저렇게 조직되어가지고 이 나라를 어떻게 어데로
이끌고 나갈것인가 한심한 느낌을 금치 못하는 바이니....(중략)....그러면 국회는 앞으로 과연
초대의 내각 조직에 대하야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서 어떤 태도로 임하려는가.>조선일보는 이틀에 걸쳐 <조각완료와 각계 평>을 실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 인사들의 논평은 대부분 “실망...낙심...약체내각...” 등
부정적인 논평들이 줄줄이 이어졌다.예컨대 작가 박종화(朴鍾和)의 평: “조각의 진용을 보고 실망했다.
장관이라면 소위 천하를 다스리는 대신인데 등장한 인물을 보면 과연 적재적소라고 할 수 있을까. 홍일점으로 입각한 임영신 여사는 여성이 활약한다는 의미에서 찬성하나 왜 하필 영어 잘하고
외교수완 있는 여사를 상공장관을 시켜 죽이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이번 조각은 신정부의 빈곤을 폭로하는 것이다.”영어 잘하는 여성외교관을 외교가 아니고 상공장관을 시킨 이승만의 뜻을 모르는 말이다.이승만은 총리를 원하는 김성수에게도 재무장관하라고 요청하면서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아내야 하니 인망 높은 인촌이 적임”이라고 밝혔듯이,
임영신의 영어와 외교경험, 그리 여성이라는 무기로 미국을 공략하여 공장건설 자금을 많이 끌어오려는 목적이었다. 왕조시대 양반 같은 국내인사들이 이승만의 이런 용병술을 알 턱이 없다.초대내각 장관들은 40~50대가 주류였으므로 권좌를 노리다 허탕 친 구식양반계급으로부터
‘약체’ ‘기상천외’등 혹평과 질시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
▶동아일보, 1면 머리기사로 ‘개헌운동 전개’ 클로즈업▷대다수 국회의원 간에 헌법 개정운동 전개 (동아일보, 8월13일자. 1면 머리)
<신정부를 지지하기 위한 국회내 제1당조직공작이 전개되고 있다함은 기보한 바 있거니와국회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금반 이 신당조직공작을 계기로 국회내에는 또 다시3세력으로 분리되어가고 있으며 과연 신당이 제1당이 돨만한 국회세력을 포섭하기는 곤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중략)...한편 국회휴회를 이용하여 국회의 헌번 개정운동이 맹렬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 운동에 찬성자는 12일 현재 약 100여명에 도달하였다 하는데 앞으로 속개되는 국회에서 이 헌법 개정이 과연 될 것인지 또 3개 세력이 어떠한 논법을 전개할 것인가 극히 주목을 끌고 있다.>
역사적인 8월15일 건국선포식을 불과 이틀 앞두고 휴회중 국회의원들이 개헌 준비를 '맹렬히 진행한다'는 기사를 써서 1면 머리에 올리는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게다가 기사 앞부분은 신정부 지지정당 조직에 관한 내용인데 제목은 뒷부분 개헌움직임을 뽑았다. 일반적으로 제목은 기사 앞부분에서 뽑아내기 마련인데 굳이 뒤에 쓴 개헌을 주제로 선택한편집은, 마치 한민당의 간부 같은 인물이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
▶동아일보, 8.15 건국선포식 보도에 1면서 이승만 사진 빼다망국 38년만에 다시 나라를 세우는 대한민국 건국 선포식, 3천만동포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피땀 어린 자유민주공화국 탄생 경축잔치, 동아일보는 그 1면 보도에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사진을 한장도 싣지 않았다. 뒷면에 조그만 동그라미 얼굴사진 한장만 넣었다. 왜 그랬을까?조선일보는 이와 대조적으로 1면에 이승만 사진을 3장 게재하였고, 경축식사 연설문 전문을별도 내리다지로 실었다. 조선일보가 '이승만 지지'로 돌아선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이런 보도자세의 차이는 이 때에 두 언론사가 지니고 있는 '현실 인식'의 차이.일찍부터 상해 김구가 창당한 한국독립당(한독당)에 참여한 조선일보 사주(社主) 방응모는해방후 돌아온 김구가 막판에 '좌우합작 통일'을 명분으로 북한 김일성을 찾아가자 독자적인 노선을 강구했다고 한다. 김구의 강력한 총선 반대 때문에 한독당은 5.10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고,출마 희망자들은 '무소속'으로 나서야 했다. 조선일보 역시 엉거주춤 '중간파' 신세가 되었다.그러나 당시 김구의 언행에 대해서 계속 충실히 보도한 것은 조선일보였다.▶ 김구, 8.15 독립건국 소감은? "비탄과 실망이 있을 뿐이다"
1면에 게재하였다.김구는 "비분과 실망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에 실망과 회한이 공기를 뚫고 나가서 새로운 결심과 용기를 가지고 강력한 통일독립운동을 추진해야 되겟다."고 말하였다.
그는 조각에 대하여 이런 말도 하였다.
"“아모런 감상도 없다. 나는 그런 것을 필요로 느끼지 않는만큼 누가 무엇이 되든지 간에 상관할 것도 없고 또 이렇다는 소감도 있을 수 없다.파리 유엔회의는 김규식 박사가 대표로 간다. 남북한 정부문제에 관해서는 북한이 잘되었다거니 남한이 잘 되었다거니 서로 시비할 터인데 나의 주장으로서는남북한 시비를 버리고 대한 임시정부를
승인하라는 것이다."
참 답답한 양반의 말씀이다.
소련은 북한에 2년전 위성국 소비에트를 만들었고 그걸 안 이승만이 남한에 과도정부라도 세워 통일하자는 판에 "비분과 실망뿐"이라니, 게다가 임시정부 승인은 왜? 4월에 북한 갔을때는 김일성에게 임정 얘기를 한마디도 안했다던 김구가 다시 임정 주석으로 김일성과 손잡으면 대통령 되나? 이상주의도 아니고 낭만주의도 아니고 요즘 같은 서울의 강남좌파도 아닐테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노미..."신정부를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김구는 파리 유엔총회에 '대한민국 승인 반대, 임정 승인요구' 사절단을 보내려고 김규식에게 대표를 맡겼다는데, 정작 김규식은 "누구 맘대로? 난 못 간다"고 신문에 발표해버렸다. 김규식이 누구인가? 넉달 전 김규식이 김구와 평양가려 할때 이승만이 말리면서 하던 말, "갈테면 모스크바 스탈린한테 가서 담판 지어야지, 하수인 김일성은 만나서 뭐하느냐?" 이때 김규식이 답한 말 "지금 남북 협상 하지않으면 훗날 욕먹습니다."
그는 그래서 조선일보 기념사 요구에 '남한에서만 정부수립이 되면..." 운운 '남북의 합일'을 주장한다. 이때까지도 북한의 선포만 남은 인민정권 수립을 몰라서 하는 말일까?'분단 책임'을 미국과 이승만에 덮어씌우는 스탈린의 전술에 따라 대한민국 수립을 기다리던 북한 인민위원회는 다음달 9월9일에 명칭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바꾸어 선포한다.
그리고 6.25남침까지 남한의 미군 철수공작을 성공시키며, 정쟁과 빈곤에 허덕이는 '비무장 남조선'을 상대로 2년가까이 38선에서 침략전쟁 기습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