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티코프 일기> 남한 폭동 반란은 모두 소련의 지령이었다
  • [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⑤ 제주4.3폭동, 여순 반란...국가보안법 제정

    "반란은 정부 불신 탓" 국회, 거국내각 요구 공세

    인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 북한의 5차 핵실험 감행!
    일본은 방방 뛰는데 정작 우리 국민들은
    죽어도 좋다는 듯 태평세월이다.
    희대의 공산독재자 스탈린이 죽은지 63년,
    그가 이 땅에 만들어놓은 ‘스탈린 체제’에
    꽁꽁 묶여 살아온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북한을 마냥 키워주다가
    급기야 북한의 핵공격 공포에 벌벌 떨고 있다.

     ‘스탈린 체제’란 북한 단독정권 수립과
    38선국경화 분단고착,
    그리고 남한 흡수 통일전략이다.
    해방직후부터 남한을 공격한 테러 폭동 반란은
    70년이 지난 오늘날 핵강국이 된 북한의 핵미사일과 종북세력의 협공이 되어
    대한민국의 운명은 맹수들의 핵전장에 던져진
    한 마리 토끼 신세다. 이대로 우물쭈물 대한민국은 악마의 핵 벼락에 불타버리고 말 것인가?

    “한반도에 공산당이 있는 한 세계평화는 없다”며 단독북진 통일을 외치던
    이승만의 절규를  우리는 듣고 있는가.
    이승만이라면 지금 서울 상공에 핵폭탄이 터지기 전에 평양의 핵 공갈단 일당을
    벌써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밤새 소멸 시켰을 것이다. 전 세계의 박수를 받으면서.
    구한말 20대 시절부터 러시아 제국주의와 싸우고, 독립운동 40년 내내 소련의 공산주의를
    경고하며 “일본이 물러가면 소련이 한반도를 점령한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국에 그토록 간청했던 이승만,
    미국과 싸우고 소련과 싸우고 이 땅의 공산당과 싸우면서 대한민국을 건국했건만,
    고립무원의 침략전쟁에 유엔과 미국을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살려 놓고
    안보철벽 ‘한미동맹’ 만리장성을 쌓아주었건만, 우리는 그동안 무슨 짓들을 해왔던가.

  • 이승만 박사(왼쪽)가 김구를 하지 미군정사령관에 소개한뒤 함께 촬영(자료사진)
    ▲ 이승만 박사(왼쪽)가 김구를 하지 미군정사령관에 소개한뒤 함께 촬영(자료사진)

▶“미국이 길러낸 남한 공산당”...이승만은 ‘빨간 나라’를 인계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68년전 미군정을 이양 받은 날부터 공산당 반란군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
제주 4.3 폭동 반란, 남한정부수립 저지=총선저지 투쟁을 벌였던 스탈린과 하수인 박헌영의
 ‘2.7 전국 폭동’이 실패하고 제주도만 성공, 무차별 학살 공격으로 제주 총선은 무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즉시 ‘정부 타도’로 목표를 바꾼 반란군은
 ‘선전포고문’을 발표하고 총공세로 나왔다.
미군정이 만든 국방경비대와 경찰만으론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진압군들이 집단탈영하여 반란군에 합세하고, 부대장이 반란군과 짜고 정부군을 따돌리며
병력을 유인하여 전멸시키고, 부대내 장병들이 잠자는 연대장을 총살하고,
마을마다 약탈 학살 방화로 전소시키는 등등 공산군과 최초의 전쟁에서
대한민국은 막심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미국의 멍청한 군정3년 탓이다. 
소련이 우방이라며 남북좌우합작 정부만 세우고나면 한국을 버리고 철수하려던
미국의 안이한 이기주의, 반공주의자 이승만을 연금시키며 소련과 협상에 올인했던 미국은
남한 땅을 스탈린의 적화혁명 땅으로 내맡긴 채 ‘반공활동’을 일체 차단시켰던 탓이다.

남로당의 적화운동을 민주주의랍시고 방관하고, 국방경비대 모집에도 "좌우 환영"이라며 
사상검증이나 신원조회조차 금지시켰으니 공산당원들이 군을 장악하도록 허용한 꼴이었다.
제주도는 도지사가 남로당위원장, 제주읍장이 부위원장, 일찌감치 남로당 천국이 되어버렸다.
제주도뿐인가, 정치판을 비롯하여 전국 행정망과 사회각계는 군정3년간 좌익이 자리 잡았다.
뒤늦게 공산당을 불법화하였지만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정권이양을 앞둔 미군정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7%” 남한사회는 이미 빨갛게 무르익었고,
이승만이 물려받은 나라는 미군정이 키워낸 ‘빨간 나라’였던 것이다. 
  • 김일성(왼쪽)을 북한정권 두목으로 만든 소련 슈티코프 대장이 군복을 벗고 북한대사였을때 (자료사진)
    ▲ 김일성(왼쪽)을 북한정권 두목으로 만든 소련 슈티코프 대장이 군복을 벗고 북한대사였을때 (자료사진)
  • 스탈린 각본-<슈티코프 비망록>이 말하는 '폭동 반란'

    스탈린의 ‘9.20 민주기지론’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해방직후 북한을 점령, 6개월만에 ‘소비에트 조직화’ 완성,
    북한 단독정권 인민위원회 수립, 미국을 좌우합작협상에 묶어두고
    남한 전역의 주민 포섭을 착착 진행하였던 것이다.
    스탈린의 ‘한반도 위성국화’ 전략을 수행하였던 평양의 소련군정 슈티코프 대장이 남겨놓은
    유명한 일기장이 있다. 소련 붕괴후 공개된 이른바 <슈티코프 비망록>이 그것이다.

    ‘북조선 공산당 결성, 신탁통치 찬성, 미-소공동위 남조선 먹기 협상, 북한 민족세력 대숙청,
    남조선 파업 테러 폭동 반란 지령, 유엔감시 총선 거부, 남북연석회의 김구 이용,
    북한정권수립 선포 지연작전’ 등등 한반도를 난도질한 스탈린의 만행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비망록은 해방후 3년간은 물론, 6.25음모까지 남한의 모든 테러 파업 암살 폭동 반란에 관하여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록들이 가득하다.
    예컨대, 1949년 9월6일자 일기, 여수-순천반란 한달도 더 전에 쓴 메모는 이렇다.
  •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슈티코프 일기(자료사진)
    ▲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슈티코프 일기(자료사진)
  •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다음 사항에 대하여 설명한다.
    1. 남조선 군대의 장악에 대해 방법과 실천방안
    2. 경찰의 장악에 대해
    3. 탄약공장에 대해
    4. 인민들에게 소련정부의 결정을 해설하는 문제
    5. 남북조선에서 공장들과 농촌에서 무장혁명부대를 창설하는 문제
    6. 경찰의 무장훈련을 강화

    슈티코프는 남조선의 혁명사업에 당시 일본화폐 200만엔, 300만엔씩 제공했다고 적었다.
    슈티코프만이 아니라 로마넨코, 치스차코프, 레베데프 등등 평양의 소련군정 당국자들이 남긴
    메모와 증언들은 ‘김일성 가정교사, 조련사’로서, 또한 ‘최종결재자’로서 웃지 못 할 기록들이
    생생하다. 말 많은 이론가 박헌영을 제치고 마적떼 같은 행동파 33세 김성주를 뽑아
    스탈린에 추천해주고, 전설적인 항일투사 김일성 장군 이름을 따다가 개명해주고
    연설 연습에 발음 교정시키고, 옷 입는 법과 행동거지까지 훈련시켰던 '북한 만들기' 프로그램,
    가짜 김일성은 “사령관님 사령관님” 아침 저녁 문안드리고 식사시중 술시중에다
    슈티코프와 로마넨코의 구두까지 닦아주었다고 한다. 
  • 미소공동위에 협상하러 온 슈티코프(앞줄 중앙)가 서울의 좌익계와 함께. (자료사진)
    ▲ 미소공동위에 협상하러 온 슈티코프(앞줄 중앙)가 서울의 좌익계와 함께. (자료사진)
    ▶여수-순천 반란, 전남일대 ‘인민공화국’ 9일간 3천명 학살

     평양의 지령을 받고 때를 기다리던 여수 14연대 남로당 프락치들은
    제주반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제주출항 직전 기습반란을 일으킨다.
    탄약고를 점령하고 출동병력을 연병장에 집결시키고
    남로당에서 만들어준 각본대로 허위선동을 한다.
    “지금 경찰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온다. 경찰부터 타도하자.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 조국의 염원 남북통일을 달성하자.
    북조선 인민군이 남조선해방을 위해 지금 38선을 넘어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북상하는 조선인민군으로 행동한다.“
    이때 병사 3명이 ‘안됩니다’ 반대하고 나서자. 탕탕탕...주범 지창수는 즉결 총살한다.
    겁먹은 장병들을 몰고 나간 반란군은 밤새 여수시내를 손쉽게 점령하였고,
    이튿날 순천을 장악한 뒤 광양, 구례, 고흥, 벌교, 장흥, 남원 등 파죽지세로
    관공서마다 북한 깃발을 꽂으며  전남북일대에 ‘해방구’를 설치한다.
    날마다 인민재판에 끌려가 학살당한 주민은 여수에서만 1800명, 도합 3천여명이었다.

    비상계엄령을 내린 정부군은 토벌에 돌입, 9일간의 ‘인민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반란군들은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로 숨어버린다. 이들이 제1세대 빨치산이며.
    이들을 포함한 전국 빨치산을 영웅으로 그려낸 베스트 셀러 소설이 [태백산맥]이다. 
  • 군대내 공산분자를 숙청하던 시절, 김창룡(오른쪽 두번째) 백선엽, 이후락(왼쪽 두번째).
    ▲ 군대내 공산분자를 숙청하던 시절, 김창룡(오른쪽 두번째) 백선엽, 이후락(왼쪽 두번째).
    ▶ 대대적 숙군작업 5000명...박정희 소령이 전향한 이야기

    이승만은 대대적인 숙군(肅軍) 작업을 서두른다.
    6월에 반란 두목 이덕구를 포위, 총살한 뒤,  전국 군부대의 남로당을 찾아낸 결과
    5천명에 가까운 좌익분자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때 박정희 소령을 전향시킨 비화는 유명하다.
    숙군의 실무총책은 ‘빨갱이 잡는 귀신’ 김창룡(金昌龍:1916~1956) 대위,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가 박정희임을 알아낸 그는 신당동 지하방을 급습하였다.
    박정희는 45구경 권총 번호를 줄톱으로 뭉개고 있는 참이었다.
    “박소령, 남로당 조직부장 이중업과 군사부총책 이재복의 심복이니 조직을 잘 알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학살이나 국군공격엔 가담하지 않았으니 자수하시오. 우리 함께 나라를 살립시다.” 김창룡의 설득에 박정희는 말이 없었다.
    훗날 수사관들이 증언하듯이 두 사람은 외모와 성격등 닮은 점이 많았다고 한다.
    박정희가 존경했다는 형 박상희의 친구가 남로당 핵심 이재복,
    1년전 대구폭동 때 형이 사살되자 남로당에 들어갔던 박정희는
    결박당한 채 백선엽 정보국장 앞에 무릎 꿇는다.
     “제가 윈래 공산주의자는 아니잖습니까?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백 국장은 김창룡, 김점곤 등 여러명의 건의를 받고 박정희 신원보증을 맡기로 하였다. 
    “그때 숙군을 안했다면 6.25때 박헌영의 말처럼 군민봉기로 적화되었을 거요.
     그리고 박정희를 살려주었더니 그는 약속을 지켜 큰일을 해냈다. 참 다행이다.”
    올해 96세 노병 백선엽 장군의 회고담이다.
  • 여수-순천 반란사건때 연행된 사람들.(자료사진)
    ▲ 여수-순천 반란사건때 연행된 사람들.(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