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클럽 토론서 "文, 선배지만 숙명…세대 넘어 시대교체해야" 주장
  • ▲ 안희정 충남지사.ⓒ이종현 기자
    ▲ 안희정 충남지사.ⓒ이종현 기자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어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진행자들의 각종 질문에 요리조리 빠져나면서다.

    안 지사는 내년 대선에서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도전장을 낼 뜻을 시사했다. 최근 올해 연말 내년 대선 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거듭 대선 출마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지사직을 유지한 채 대선 도전할 결심을 굳힌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영남과 호남, 충청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제1공약이었다"며 "그 공약을 실천하는 과정에 있다"고 답했다.

    "지난 근현대사 100년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21세기 새로운 정치지도자로 태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밝힌 안 지사는 구체적인 비전이나 다른 대권 주자들에 대한 평가에는 추상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뉴데일리DB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뉴데일리DB

    야권 대선주자 중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최근 대선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내 아래로 전부 집합'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본선에 나가지도 못하고 '문재인 들러리'로 전락할 있다는 초조함에 휩싸인 다른 대선주자들은 문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며 대세론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안 지사는 이런 주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제스처를 취했다. 
    상대 주자들에 대한 비판은 고사하고 오히려 칭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의 '페이스메이커'로 언급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문 전 대표가 젊은 후배와 경쟁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추켜세워줬으니 저도 용기를 내서 소신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내년 초에 일정한 시점이 되면 국민에게 포부를 말할 기회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확장성 면에서 다소 뒤처진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는 "명절에 경로당에 가면 고스톱을 치는 어머니들에게 '모두 따세요'라고 말한다. 도전하는 모든 후보에게 국민의 사랑과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고 에둘러 답했다. 
  •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뉴데일리DB
    안 지사는 특히 대통령에 대한 과오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도, 세 번의 질문을 받고서야 '소통'의 문제를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를 포함해 대통령이 너무 고집을 부리면서 일방적으로 간다는 걱정을 국민이 한다"며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통령이 좀 더 따뜻하게 소통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야권 주자들이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 발언을 쏟아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말에는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역대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지도자에 대해 후손들이 긍정적인 면을 보자고 제안한다"며 "시대의 지도자들이 부딪힌 과제를 딛고 전진한 것을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정적 발언보다는 긍정적인 화법을 통해 이른바 '착한 이미지'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현실정치는 '종북·좌빨'이라고 주장한다"며 "그 주장을 거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안 지사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와 북핵을 둘러싼 안보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애매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사드 문제는 찬반 정치 공간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국가 안보와 군 무기체계에 대한 군사전문가들의 정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드 배치를 찬성하면 안보를 걱정하는 것이고, 반대하면 불순세력이라고 규정하면 국가적인 안보체계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표면적 현상에 대해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것이다. 안 지사가 자신의 강점인 확장성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현재로서는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져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안 지사가 일단 모험보다는 안정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안 지사가 이미지 관리에 나서며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날 현장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한 참석자는 안 지사에 대해 "이렇게 말을 잘하는 정치인은 처음봤다"고 호평했다.

    반면 '수박 겉 핥기' 발언 뿐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진행자들조차 안 지사에 대해 "철학이나 정치학 원론과 관련된 강의를 듣는 것 같다", "평소 단호하고 분명한 이미지인데, 오늘따라 잘 피해간다"고 꼬집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