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기사 나간 뒤 연락 와...주요 의혹 대부분 시인 "깊이 반성"
  • 본지가 22일 보도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의 석박사 학위 '사칭' 의혹 기사. ⓒ뉴데일리
    ▲ 본지가 22일 보도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의 석박사 학위 '사칭' 의혹 기사. ⓒ뉴데일리


    뉴데일리는 22일,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를 둘러싼 학력 사칭 의혹을 다룬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본지는 한국 대표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 박사 ‘사칭’ 5대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도정일 교수가 1983년 임용 당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으며, 그 뒤 다수의 강연과 신문 기고, 저술활동 등을 하면서, 여러 차례 자신의 최종학력을 ‘미국 하와이대 석박사’로 표기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본지는 도정일 교수의 석박사 학위 위변조 혹은 사칭 논란이, 본인과 학교의 명예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메일을 통해 도정일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도 교수는, 위 기사가 나갈 때까지 답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도정일 교수는 본지가 기사를 내보낸 지 몇 시간이 지난 뒤, 연락을 해 왔습니다.

    도 교수는 본지 담당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학력 위변조 혹은 사칭 의혹의 주요 쟁점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도정일 교수는 인터뷰에서, 학력을 고의로 사칭하거나 허위기재한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그는, 외부 기고와 인터넷포털 인물정보 등의 학력사항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정을 요구하지는 못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잘못은 충분히 인정하고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을 빌려,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습니다.

    다만 도정일 교수는 같은 대학 A 교수가, “학교 측의 자료를 열람한 결과 도정일 교수가 자필로 쓴 이력서에 석박사 학위 취득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도 교수는 박사논문 통과를 입증하기 위해, 경희대에 제출한 ‘논문심사위원 서명이 담긴 문건’이 2개라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그는 2개의 문건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올해 1월 학교 측에 제출한, 심사위원 5명의 서명이 모두 담긴 문건이 원본이며, 해당 문건을 그 동안 분실했다가 작년 1월 오래된 가방에서 다시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도 교수는 그 전에 증거로 제시한, 심사위원 3명의 서명이 담긴 문건에 대해서는 “당시 심사위원들이, 세 사람이 서명한 서명지 샘플을, (심사위원들의) 서명을 받아 (논문에) 첨부하라는 지시문과 함께 줬다”고 설명했습니다.

    도정일 교수는, 논문심사가 통과된 뒤 주석 및 참고문헌 정리를 하지 못해, 학위취득을 포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당시 인터넷으로 문헌을 정리할 형편이 못돼, 그쪽(하와이대)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보고 해야 했는데, 기한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도 교수는 “당시 강의를 무려 다섯 개나 했는데 부담이 컸다. (학위 취득을) 포기하다시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도 교수는 “지금 생각하면 잘못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할 기회가 있다면 하자’ 라고 쉽게 생각했다”며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본지는 도정일 교수의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 그의 답변을 아래와 같이 게재합니다.

    파란색은 기자의 질문, 굵은 볼드체 부분이 도정일 교수의 답변입니다.

    *************************************

  •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 사진 뉴시스
    ▲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 사진 뉴시스


    박사논문이 최종 심사를 통과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학교 측에 제출한 서면이 2개인데, 설명을 부탁합니다. 

    5명이 서명한 용지를 서울에 들고 와서 잘 보관해뒀다고 생각했는데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얼마 전까지 할 수 없이, 논문이 통과되던 날, 심사위원들한테서 받은, 3인의 서명이 있는 서면을 증거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달에 오래된 가방을 뒤지다가 심사위원 5명 전원이 서명한 서면을 찾아냈습니다. 이걸로 학교 측에 갈아주자 해서 교체하게 됐습니다. 이 서면은 1984년 8월 미국에 가서 직접 받은 겁니다.


    그러면 그 전에 증거로 제출한, 심사위원 3명의 서명만 들어있는 문건은 무엇입니까?

    당시 심사위원들이, 세 사람이 서명한 서명지 샘플을, 나한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줬습니다. 사인(서명)을 받아서 첨부하라는 지시문과 함께. 5명이 다 서명한 것은 그 후에 새로 받아서 가지고 왔는데, 찾지를 못해서.


    박사학위 논문은 최종 심사를 통과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참고문헌과 주석 등 마지막 정리를 하지 못했다는 해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교수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84년 여름에 논문을 끝내고, 서둘러서 서울에 복귀했어요. 그때는 이미 경희대학교 취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희대 강의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제가 가을학기 동안에 문헌 참고를 끝내고 뒤에 미주(각주) 붙이는 것들을 완벽하게 해서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와서 보니까 그럴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문헌을 정리할 형편이 못되고, 그것을 정리하자면 그쪽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보고 해야 했습니다. 논문기한이 가을 학기 말까지였는데 기한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할 수 없이, 시간을 좀 갖자 하면서, 가을학기 마감을 못 맞춘 거죠. 

    두 번째 학기에도 역시 마감을 서둘러서 못했습니다. 강의 부담이 컸고, 강의를 무려 다섯 개나 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마감을 지키지 못해서, 포기하다시피하고 만 거죠. 지금 생각하면 잘못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할 기회가 있다면 하자’ 라고 쉽게 생각을 하고. 게으름도 있었고.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공부하러 갈 때 나의 목적은, 학위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공부를 해보고 온다는 목적이었거든요. 논문을 통과시켰으니까, 끝난 것을 의미한다고. 형식적 욕구를 갖추는 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논문 통과라고 한다면 공부했다는 증명이 되니까,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지금은 삭제됐지만, 경희대 공식 영문 홈페이지에는 교수님이 1981년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걸로 나왔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런 기록 착오가 있었는지 모르는데, 81년도는 논문을 준비 중이었고,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에 이런 제목으로 논문을 쓸거다 신고한 때입니다. 81년에 뭘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논문통과 시킨 것이 84년 여름입니다.


    경희대 실수라는 건가요? 

    제가 그렇게 썼을 리가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1983년 봄 이력서에 ‘논문 디펜스 예정이다’ 이렇게 썼습니다. 따라서 학교 영문 홈페이지에 학위 취득시기가 81년으로 나온 건, 학교 측의 기재 착오일 겁니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할 이유가 없거든요.


    같은 학교 교수님의 주장을 보면, 교수님의 ‘자필 이력서’를 열람한 결과, 석박사 논문을 취득한 시기가 표기돼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 시기가 석사는 77년, 박사는 82년 등으로 기록돼 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된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잘못 알려져 있거나 학교 측이 잘못 기록한 것을 봤을 수 있습니다.


    1983년 봄 이후 이력서를 쓴 적이 없습니까? 

    83년 당시 빼고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때도 논문 방어 예정이라고만 썼습니다.


    조선일보 인물 정보에도 교수님의 박사논문 통과시기가 1983년도로 기재돼 있습니다. 

    조선일보 측에서 인물 정보를 만든다고 정보를 써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1983 그해에는 학위를 받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83년 통과라고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기록이 그대로 남아서 그렇게 써놨다는 사실도 다 잊어버리고 몰랐습니다. 

    83년 기록을 남긴 것이 실수였고, 얼른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때 당시 인터넷 인물정보라는 것이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사실도 몰랐을 때입니다. 제 나태와 잘못입니다. 미련하게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잘못은 충분히 인정하고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술과 기고문 등에 소개된 학력사항을 보셨을 텐데, 교정을 요청할 생각은 없었나요?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내가 쓴 책들에는 (학력사항을) 틀림없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명, 8명 다인수 저자들이 글을 모아서, 출판을 낸 곳이 있습니다. 이숲 출판사의 인문학 콘서트가 그렇습니다. 저자가 10명 가까이 됩니다. 

    이것도, 뭐가 답답하냐면 출판사 직원들이 빠르게 처리하다가 잘못 정보를 기재한 겁니다. 얼른 발견했더라면 고쳤을 것을 그렇게 된지도 모르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 7월 교수님께서 직접 기고하신 중앙일보 칼럼에도 학력이 ‘미국 하와이대 영문학 박사’로 나와 있습니다. 

    기자가 (그렇게) 써서 나도 깜짝 놀랐고 충격을 받아서 칼럼 쓰던 것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담당 기자가 내 학력을 소개하면서 그렇게 섰는데, 그걸 따지기도 뭐하고 그냥.


    2014년 7월에 확인을 하셨는데, 그 이후에는 왜 바로잡지 않았나요?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넉 달이 그냥 지나갔어요. 그 상태로 더 이상 칼럼을 써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칼럼을 중단했습니다. 12월 달인가 중단했습니다.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고.


    인터넷 포털 등 다른 프로필은 지난해 중반까지 그대로였는데요. 

    내가 참 미련하고 기민하지 못해서. 나 자신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게 누구보다도 나의 잘못입니다. 고의는 아니고요. 이렇게 된 것은 나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들, 이런 것들이 다 섞여서 오해를 사게 됐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