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 53.2km 위험 구간, 2014년 10월 국정감사 이후 여태까지 보강 못해
  •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시민안전'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과연 그럴까. 사진은 2015년 8월 재난대응훈련 당시 박원순 시장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시민안전'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것처럼 행동한다. 과연 그럴까. 사진은 2015년 8월 재난대응훈련 당시 박원순 시장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지난 23일 ‘서울시 지진종합대책’을 내놨다. 2020년까지 5,500억 원을 투입해 공공 건축물과 도시철도(지하철) 등 주요 시설물이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시설보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 시내 주요 시설물의 내진설계 적용비율이나 내진설계 기준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아 전문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지진종합대책’에 따르면, 지하철 가운데 내진보강이 필요한 53.2km 구간에 대해 규모 6.3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보강할 것이라고 한다. 2017년부터 내진보강에 필요한 예산을 올해보다 200억 원 더 늘려 2020년까지 지하철 전 구간에 내진설계를 갖출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지진종합대책’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교량 및 지하차도 등 도로시설물의 약 82%에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2019년까지 내진보강을 완료할 것이라고 한다.

    내진설계 적용비율이 26.6%에 불과한 학교 건물 3,451개에 대해서도 서울교육청과 협의해 ‘내진성능평가’ 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015년 말 기준 내진 설계율은 공공 건축물 47.8%, 도시철도(지하철) 74.8%, 도로 시설물 81.4%, 하수처리시설 21.5% 등”이라면서 “이런 주요 시설물 내진성능 확보를 위해 서울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480억 3,8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의 ‘지진종합대책’ 발표 내용만 보면, 서울시는 경주나 울산 등지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없을 것 같아 보인다. 과연 그럴까. 사실 서울시가 발표한 ‘내진설계율’ 비율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불과 2년 전에 드러난 내진설계율과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20일, 국내 언론들은 국회 국정감사를 인용,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지하철 1~4호선 가운데 내진설계 적용비율은 고작 3.6%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건축전문매체 ‘엔지니어링 데일리’의 당시 보도를 보자. 이때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서울메트로가 관할하는 지하철 1~4호선 총 연장 146.8km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구간은 5.3km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메트로가 관할하는 지하철 1~4호선 노선 중 116.5km 구간의 전기, 궤도설비는 이미 ‘내용연수(권장내구연한)’ 20년을 넘어섰다고 우려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은 서울시가 발주, 2007년부터 2013년 말까지 수행한 ‘서울지하철 내진성능 기술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지하철 1~4호선 구간 중 서울역부터 종로 3가, 동대문에서 청량리, 강남에서 선릉, 잠실에서 성수 등 총 53.2km 구간, 전체 구간의 36.2%가 지진에 취약해 보강이 시급하다”면서 “강남역, 서울역, 잠실역의 경우 일 평균 10~2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만약 지진 발생 시 시설물이 붕괴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야말로 대형 참사”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 또한 당시 “서울시 지하철 시설 대부분이 노후되었다”며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박수현 새민련 의원은 “서울지하철 1호선은 1974년에 개통, 올해(2014년 10월 기준)로 40년을 맞았고, 2호선은 34년, 3호선과 4호선은 29년째를 맞아 내구성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서울지하철 1~4호선 총 연장 137.9km 가운데 116.5km가 개통된지 25년 이상 경과됐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박수현 새민련 의원은 “서울 지하철의 내용연수를 보면 전기, 궤도, 기계장치 등은 20년, 지하철 역 건축설비는 40년으로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

  • 지난 9월 20일 건설산업연구원이 공개한 주요시설의 내진설계율.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9월 20일 건설산업연구원이 공개한 주요시설의 내진설계율.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수현 새민련 의원이 당시 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울시는 우선 2014년까지 시 예산 6,432억 원을 들여 시설보강 투자를 하기로 했지만, 국비지원이 안 되면 재정확보가 어려워 사업이 장기화될 전망”이라면서 정부가 서울시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서울시에 ‘내진보강예산’을 지원해 줬을까. 2014년 12월 9일 ‘한국일보’의 “서울시-정부 갈등” 보도에 대해 이튿날 정부가 내놓은 해명자료를 한 번 보자.

    당시 국토교통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도시철도 안전 확보 필요성을 인정하여 지속적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왔으며, 그 결과 올해 예산 심사 시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형편과 안전문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5년 예산에 내진보강 227억 원, 스크린도어 설치 675억 원의 예산을 반영했다”면서 “국토부는 내진보강은 2018년까지, 스크린도어 설치는 2016년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향후에도 예산 확보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4년 12월 국토교통부의 해명은 솔직히 믿기가 어렵다. 2016년 9월 현재까지도 ‘내진보강’이 필요한 구간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는 ‘안전하고 스마트한 도시구축을 위한 노후 인프라 성능 개선’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서울 지하철 1~4호선 가운데 53.2km 구간의 내진보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언급한, 2016년 9월 23일 서울시가 내놓은 ‘지진종합대책’과 2014년 10월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나온 말과 지난 9월 20일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하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정부에서 예산을 제대로 안 준 것일까, 아니면 서울시 또는 서울메트로가 당초 예상한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서 문제인 걸까.

    여기서 서울시 도시교통본부가 2011년 4월 25일 석간용으로 내놓은 보도자료를 살펴보자. 당시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3월 11일 일어난 日도호쿠 대지진으로 국내 여론이 흉흉해지자, 서울 지하철에 대한 ‘내진보강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2016년까지 중장기로 계회괸 서울 지하철 1~8호선 내진보강을 2년 앞당겨 2014년까지 완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국토해양부가 2004년부터 기존 구조물의 내진성능 평가 요령 및 도시철도 내진설계 기준 등을 마련함에 따라 지하철 1~8호선 내진성능을 평가하고 보강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2007년 6월부터 단계별 평가용역을 실시해 왔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지하철 1~8호선 전 구간을 대상으로 내진성능을 진단한 결과 총 연장 335.9km 가운데 234km는 내진성능이 이미 확보됐으며, 1~4호선 구간 101.9km에 대해서는 현재 내진성능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이때 1~4호선 가운데 20.2km 구간에 내진성능이 미확보된 것으로 나타났고, 5~8호선 161.4km 구간 ‘대부분’은 내진설계기준이 제정된 시기에 건설돼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는 “현재 진행 중인 1~4호선 구간 81.7km의 내진성능 상세평가를 당초 2013년에서 1년 앞당긴 2012년에 완료하고, 내진설계 및 보강공사는 2016년에서 2년 앞당긴 2014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큰소리 쳤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가 이런 계획을 밝힌 지 5년 5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 지하철 1~4호선 53.2km 구간, 그것도 서울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서울역부터 종로 3가, 동대문에서 청량리, 강남에서 선릉, 잠실에서 성수까지 구간은 약한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소리다.  

    즉, 만약 서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살고 싶다면, 가장 최근에 건설한 지하철 9호선을 타거나 관련 지하철역으로 대피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이는 서울이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8일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이후 여태까지 시가 총괄할 ‘종합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원인은 ‘센서’에 있다”며 레이저 센서 입찰공고부터 내놓은 상태다.

    이 와중에 지난 9월 20일, 서울지하철 6호선에서는 40대 여성의 손가락이 절단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 여성이 급하게 지하철을 타면서 가방이 스크린도어에 끼었음에도 열차가 그대로 출발한 것이다. 가방을 꼭 붙잡고 있던 피해여성은 열차가 합정역을 출발해 망원역으로 갔고, 이 과정에서 ‘스크린도어 감지 센서’에 가방이 걸리면서 피해자의 왼쪽 중지 한마디가 절단된 것이었다.

    이 사고는 ‘감지 센서’의 문제가 아니라 ‘스크린도어 안전기준’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음에도 서울시나 도시철도공사 측은 “두께 7.5mm 이하의 물건은 센서가 감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폈다.

  • 2013년 4월 22일 MBC는 "한반도가 남한판 위에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MBC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3년 4월 22일 MBC는 "한반도가 남한판 위에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MBC 관련보도 화면캡쳐


    이미 스크린 도어의 미흡한 안전기준 때문에 수리인력 3명, 승객 3명이 숨진 상황임에도 서울시나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는 모른 척 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의 이런 행태가 ‘내진설계’라고 해서 다를까.

    지난 9월 23일 서울시가 내놓은 ‘지진종합대책’ 가운데는 ‘지진알림 앱 개발’과 함께 뜬금없는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 목표 달성’이 포함돼 있다. 미니 태양광 시설 확대, 에코 마일리지,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 등이 ‘지진대책’이라는 것이다.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지진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서울시 맞춤형 지진 종합대책을 적극 추진하여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실질적인 행동요령을 전파하여 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서울, 지진에 안전한 서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그 후의 대응, 5년 동안 자기네가 세운 계획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서울시와 서울 지하철 관계자들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2013년 4월 22일 MBC는 한국천문연구원이 중국 과학자들과 연구한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MBC는 “지금까지 우리는 한반도가 ‘유라시아 판’이라는 거대 지각 위에 있어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왔지만, 실은 ‘남한 판’이라는 훨씬 작은 지각 위에 놓여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내용은 한국천문연구원과 중국 과학자들이 정밀도가 높은 GPS를 이용해 지각판 이동을 연구한 결과였다고 한다.

  • 지하차도나 지하철 입구에 붙어 있는 '민방위 대피소' 표지. 앞으로 서울에서 재난재해가 일어나면 1~4호선은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하차도나 지하철 입구에 붙어 있는 '민방위 대피소' 표지. 앞으로 서울에서 재난재해가 일어나면 1~4호선은 되도록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C가 보도한 ‘남한판’은 북쪽으로는 함경북도 길주군 일대, 남쪽으로는 제주도 남쪽, 동쪽으로는 규슈 지방, 서쪽으로는 산둥반도까지 뻗어있는, 마름모꼴이었다. 이런 연구결과가 나왔는데도 과연 서울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 말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스크린 도어 사망사고’는 몇 명의 목숨이 오가는 일이다. 하지만 지하철의 ‘내진설계’는 최소 수백여 명, 최대 수천여 명의 목숨과 관련 있는 일이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가 ‘승객 안전’에 계속 무관심하다면, 서울 시민들은 갈수록 위태로워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