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학칙개정' 지시…일부 대학 거부
  • ▲ 지난 달 28일부터 시행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식사비 '3만원'에 맞춘 신메뉴들이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지난 달 28일부터 시행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식사비 '3만원'에 맞춘 신메뉴들이 나오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부정청탁을 금지한 김영란법이 지난달 28일 본격 시행되면서, 취업이 확정된 대학 예비졸업생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은 예비졸업생들이 조기 취업할 경우, 해당 학생이 남은 학사일정에 출석을 하지 않더라도, 졸업을 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묵시적인 배려를 해왔다.

    학교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대개는 해당 학생이 교수에게 조기 취업 사실을 알리고, 출석이나 학점을 조정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취업계’를 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예비졸업생들은 마지막 학기 출석이나 학점 취득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입사만 확정되면 남은 학기 출석이나 교내 시험 응시 여부와 관계없이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이런 관행에 급제동이 걸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런 행위를 “‘부정한 청탁’의 하나로 본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

    김영란법에 접촉돼, 어렵게 잡은 취업 기회를 잃을 처지에 놓인 대학 예비 졸업생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전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모(24)씨 역시, 최근 한 기업으로부터 입사가 확정됐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그는 “취업계를 내고 일을 하려고 했지만, 김영란법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권익위는 이른바 ‘취업계’가 학점당 이수시간과 관련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4조를 위반 조작하도록 하는 행위로 청탁금지법 제5조 제1항 제10호의 부정청탁 대상직무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만약 교수가 조기 취업생들의 취업계 부탁을 받아줄 경우 김영란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6학년도 재학생 취업 현황'에 따르면 4년제 대할 62곳과 전문대 65곳 등 127개 대학에서 올해 12월까지 취업하거나 취업 예정인 재학생이 4,018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 중 72.4%(2,911명)는 남은 학기 동안 받아야 할 학점이 10학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청년들은 학점을 이수하지 못할 경우 졸업이 인정되지 않아, 휴학과 자퇴 혹은 취업을 포기해야 한다. 

  • ▲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조기 취업을 위해 교수에게 내는 '취업계'가 부정청탁이라는 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조기취업생들은 권익위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권익위 홈페이지
    ▲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조기 취업을 위해 교수에게 내는 '취업계'가 부정청탁이라는 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조기취업생들은 권익위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권익위 홈페이지
    권익위 홈페이지 '청탁금지법문의란'에도 김영란법 때문에 '취업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달라며 건의하고 있다.  권익위에 글을 올린 한 청년은 "취업에 성공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김영란법으로 취업계 자체가 청탁으로 간주된다고 교수님들이 허락을 안 해주신다. 마지막 학기 전공 두 과목 남겨놓고 학교 자퇴하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청년은 "듣고 있던 수업을 과제나 레포트로 출석을 대신하는 '취업계'가 공공연하게 가능했다. 취업이 어려운 만큼 대학에서도 재직증명서 등 확인을 받고 인정해줬다. 그러나 최근 김영란법을 사유로 들어 교수님들께서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렵게 얻은 합격 기회 이대로 날려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문의했다. 

    이밖의 글에도 '권익위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내용들이 올라왔지만, 권익위는 '부정청탁'이라는 해석을 다시 확인시켜줄 뿐 자세한 건 교육부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김영란 법 시행 이틀 전인 지난 달 26일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칙을 개정한 뒤 학생들의 취업계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교육부 방침에 따라 학칙 개정을 하고 있지만, 일부 학교들은 학칙 개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청년 실업률 10.3%라는 벽을 뚫은 '조기 취업자'들은 학교의 학칙 개정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지난 5월에 행정예고 됐음에도 교육부의 늑장 대응으로 '조기 취업생'들의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9월 8일 권익위 유권해석이 나오자마자 대처 방법을 간구했다"며 "시행령을 직접 바꾸는 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학 재량으로 학칙을 개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