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⑭ 미국의 계엄해제 협박...“내정간섭 말라” 외로운 투쟁

흥분한 美 "미군이 한국정부 장악, 대통령 구속” 검토

[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⑭ 미국의 총체적 협박...“내정간섭 말라” 외로운 투쟁


펄펄 뛰는 美 "미군이 정부 장악, 이승만 구속” 비밀작업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비상계엄하의 전쟁수도 부산, 이승만은 지난 4~5월 전국 지방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유분위기를 보장하기 위하여 해제하였던 전시 비상계엄령을 다시 내린 것이다. 

하루 세끼 밥벌이에 바쁜 시민들이야 생활화된 계엄령인지라 새삼 불편할 것도 없는 전쟁국가,
날벼락을 맞은 것은 국회와 국회의원들 뿐이다.
아니 정작 직격탄을 맞은 곳은 송도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었다.
 

작년 봄부터 트루먼 정부가 한국전쟁 정책을 ‘휴전’으로 궤도수정하면서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 한국대통령에 대하여 본국 국무성의 지침에 따라
1년 가까이 대책을 준비해 왔던 대사관은 비상계엄령과 국회의원 무더기 구속이라는
돌발 사태를 당하자 ‘공등 탑이 무너지는’ 충격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대사대리를 맡자마자 강타를 당한 라이트너는 계엄직전 본국에 가버린 무초 대사에게
급전을 날린다. 무초한테 인계 받은 시나리오에는 ‘비상계엄령’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분단국 서독에서 근무하다가 전임된 라이트너는 그러나
한국이나 아시아의 현지사정에는 깜깜한 유럽 우선주의 외교관,
휴전을 성립시키려는 국무성의 인사배치를 엿보게 하는 라이트너 대사대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자 불끈 일어섰다.



▶미국의 계엄해제 요구...이승만 “나보다 더 민주주의 근심하는 사람 없다”

그는 25일 계엄소리를 듣자 즉각 자리를 박차고 대사관을 나와 이승만에게 달려갔다.
뒷날 자신이 회고한 말처럼 ‘국무성 훈령을 받기도 전에’(even before I had instruction to do so) 대통령 관저의 문을 두드린 그는 이승만에게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계엄령 해제를 요구했다. 

“지금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전쟁을 하는 마당”인데
대통령의 국회 압박은 ‘늙은 마녀 사냥’이라고 몰아붙였다. 

라이트너의 이 막말은 당시 미국이나 강대국의 한국 멸시를 보여준다. 

라이트너는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언커크:UNCURK)을 만나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할 것에 합의하고 참전국들 대표와도 같은 합의를 끌어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첫 작품은 유엔은 대표한 언커크의 압력이다.


언커크는 28일 이승만을 직접 만나 계엄해제등 요구사항을 내놨으나 

이승만은 “최소한 2주일내에는 계엄령을 해제 못한다”며 곧 회답을 주겠다고 이들을 보냈다. 

언커크는 “우리는 유엔을 대표하여 헌법의 정치자유가 훼손되는 것을 원치않는다. 부산시의
계엄령을 해제하고 구속중인 국회의원을 전원 석방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흘 뒤 발표한 이승만의 회답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국회 내의 반대파를 대량 체포하여서까지 권력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평화협상’이라 속이며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공산도당 반란을 진압하려는 것이다...
(중략)....대한민국의 헌법을 침해한 것은 내가 아니요, 국회와 국회의원들이다.

이 나라가 진실한 독립민주국가로 확립되는 것을 보려고 나보다 더 근심한 사람은 없다.
이것은 내 평생을 통한 투쟁에 있어서 오로지 하나의 목적이다.

나는 지금 유엔 여러분의 원조와 협조로써 수립되었고 방어되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광범한 민주적 기초를 수립해주려는 일에 나의 여생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계엄 비방 ‘미국의 소리’ 방송 중단조치...대미투쟁 본격화

이때 한-미간의 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중앙방송(현 KBS전신)에서 계엄선포를 뒤집는 방송이 터져나온 것,
국회의원들을 구속하면서 ‘국제 공산당사건 비밀자금 연루자’라는 정부 발표를
몇차례 방송하였는데 이를 비방하는 ‘미국의 소리’ 뉴스가 27일 국영방송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정부는 즉각 유엔군사령부에 항의하고 유엔군사령부도 조사에 들어갔다. 

알고보니 중앙방송국에 파견된 미군 하사가 제멋대로 아나운서에게 원고를 넘긴 것. 

이승만은 주저없이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중계를 중단해버렸다.

정부 대변인은 “한국에 와 있는 유엔기관이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월권이요,
앞으로도 이런 행위를 계속하면 국외로 추방하는 것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이은 언커크의 계엄개입 성명을 내정간섭으로 겨냥한 이 강경 발표가
이승만의 지침을 따랐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중단 사건은 미국대사관이 펄펄 뛰고 한국정부가 완강히 버티는
국가대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원상회복이 안 되면 단교불사’까지 공갈하는 미국 측에 대하여
 이승만은 들은 척도 않고 무시하였고 정부도 보조를 같이 하였다. 

보름쯤 지난 후 미국이 ‘한국대통령 교체’ 방침에 타협 신호를 보내오자 

그때서야 이승만은 ‘반복불가’의 양해각서를 받고 ‘미국의 소리’ 방송을 열어 주었다.



밴플리트, 이승만을 ‘아버지처럼’...쿠데타 음모설 이종찬 총장 경질

같은 날 27일 밴 플리트(Van Fleet) 8군사령관이 부산에 내려와 이승만을 찾았다. 

강경파 외교관 라이트너를 동반한 밴플리트가 이승만에게
“계엄선포에 사전협의가 없어 저도 실망했고 미국 정부도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계엄선포 이유를 반복 설명하면서 최소한 2주일은 걸릴 것이라도 말했다.
“부산지역을 포함시킨 것은 모두에게 인기 없는 조치인줄 알지만 불가피했던 것이오.
장군이 원한다면 빨리 해제해도 좋소” 이승만은 맞장구를 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국회를 비난하였다고 라이트너는 본국에 보고한다. 

“일단의 깡패들이 우리의 적에게 매수 되어 국회를 장악한 다음
자기들 대통령을 뽑겠다는 음모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내가 대통령 이 되기 위해서 이 자들을 체포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했소. 이자들은 반역자들이오.
한국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대 문제임을 장군도 아실 거요.
저 몇몇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내가 한국과 민주주의의 챔피언이란 사실을 기억해 두시오.”  

'적과 내통한 국회'라고 말했지만 이승만의 내심은 '미국과 내통한 국회‘라는 말이다.  

국회가 5월25일쯤 ’장면 대통령‘을 선출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보고 받은 이승만이
선제공세로 비상계엄령을 내려 국회를 봉쇄한 것이다.

“육군 참모총장을 갈아야겠소. 이종찬이 나를 반대하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 알지요?”
이승만은 밴플리트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밴플리트가 모를 수 없는 쿠데타 음모.
계엄령 선포전 원용덕의 2개중대로는 병력이 모자라 신태영 국방장관이 이종찬 총장에게
2개대대를 보내라 지시하였으나 이종찬은 ‘군은 정치개입 안한다”는 명분으로 거부하였다.
육군참모총장이 국군통수권자에게 누구를 믿고 정면 도전장을 내밀 수 있겠는가.

벌써부터 경찰과 특무대를 통해서 이승만은 그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육본내 흥사단 인맥(평안도)이 평안도 출신 장면 측과 결탁, 미군과 손을 잡고 반역을 꾀한다'는 정보는 지난해 후반부터 들려오던 것, 밴플리트를 떠볼겸 견제할겸 던진 협상카드랄까.
. 이승만을 아버지처럼 존경한다는 밴 플리트는 진퇴양난에 고심한다.
한국국회와 미국대사관, 한국군내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미8군 사령관의 묘한 입장,
전쟁은 유엔군에 맡겨놓고 제멋대로인 한국의 정치실상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백선엽 장군이 어떨까요?” 잠시 이의를 제기하며 말을 돌리던 밴플리트는
육군참모총장의 후임까지 천거하며 이승만 편에 서고 말았다. 

그는 이승만을 ’장성보다 뛰어난 전략가‘로 평가하던 당시 미군장성들 가운데 하나다.

특유의 환한 미소로 이승만은 밴플리트와 굳게 악수하였다.
‘미군이 이종찬을 앞세워 섣부른 짓을 하지 말라’는 자신의 경고가 이것으로 성공한 셈.
역시 반공통일론의 동지이며 아들처럼 마음이 통하는 밴플리트 아니던가.
이승만은 그러나 그 즉시 이종찬 참모총장을 바꾸지 않았고
개헌파동이 끝난 다음달 7월22일에서야 백선엽 장군으로 교체한다.  


이종찬의 쿠데타 음모=1952년 이종찬(李鍾贊:1916~1983, 창원 출생)의 쿠데타 음모설은
그 윤곽이 무초와 라이트너의 회고담이나, 장면 총리 비서실장 선우종원의 회고록과, 

월간 조선(1988년 6월호) 등에서 드러나 있으며, 한국전쟁과 한미관계를 분석한 연구자들의
책과 논문에도 등장하고 있다. 라이트너 대리대사의 증언만 인용해보자.

“어느 날 밤 늦게 한국 육군참모총장 지프가 대사관 구내 나의 관사로 찾아왔다.
그는 다른 참모들의 의견도 같다면서 이승만과 내무장관(이범석), 계엄사령관(원용덕)을
피 흘리지 않고 연금한 뒤에 구속의원들을 석방시켜 다음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상관없고 정권에도 무관심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워싱턴에 보고하였다.”

월간조선은 ‘이승만 대통령 제거계획: 52년 6월초의 육본 심야회의’라는 제목으로
이종찬등 군인들의 쿠데타 계획과 미국 정부의 이승만 제거 공작을 함께 특집으로 보도하였다.

선우종원은 육본 작전교육국장 이용문(李龍文:1916~1953, 평양출생)이 찾아와
이승만을 측츨할 쿠데타를 제의한 일이 있다고 회고록에 썼는데 계엄령선포 이전의 일이다. 그때 이용문은 ‘미8군의 양해도 받았고 이승만은 없애야한다’고 말했다는 주장도 있다. 

육군내 평안도 흥사단 인맥의 중심인물이 이용문이오, 장면의 측근 선우종원도 평안도 출신.
이들이 언제부터 미국 측과 어울렸는지는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난 2월 한국을 다녀간 미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 존슨(Alex Johnson)이 남긴 기록이
어렴풋이나마 그간의 사정을 짐작하는데 참고가 될 듯 싶다.

“휴전협상에 대한 이승만의 반대가 너무 교활하고 열광적이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한국 국회의 개헌안 처리를 비롯하여
대통령 선출 문제 등을 다루는데 있어서 이승만은 정말로 ‘귀찮은 늙은이’다.”
존슨은 이때 이미 미국의 성급한 군관들이 이승만을 제거하고 한국 정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 제거 쿠데타 작전에 박정희가 끼어든 것이 역사의 흥미를 더해주는 이야기다.

이용문 국장 밑에 차장 박정희는 계엄 출병을 거절한 ‘군의 정치중립’ 훈령을 작성한 장본인,
돌이켜보면 ‘장면 옹립’ 쿠데타에 발을 담갔던 그가 불과 9년 뒤에 5.16쿠데타를 일으켜
‘장면 축출’에 성공하였던 아이러니는 격동하던 한국 현대사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일까.

연구자들은 이종찬이나 이용문이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대통령에 저항한 것운
미군에게서 배운 명분일 뿐, 당시 정치판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던 군부는
엘리트 의식과 정치적 우월감에 차 있었으며 생사를 함께하는 미군과 밀착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쿠데타에 끌린 것은 이승만의 주변에서 활개치는 원용덕에 대한 반감에 더 하여
개인적인 불만이 더 컸으리라고 본다.
신성모 국방장관때 정보국장 이용문은 ‘명령불복종’으로 옹진으로 좌천된 일도 있고,
정보비유용 혐의로 구속까지 되다 보니 친지에게 분통을 터뜨렸다는 기록도 전해온다.
“이게 군대야? 청년단이지...언젠가 쿠데타 일어날 거야. 두고 보라지...” 

▶“2 minutes or 2 months” 이 한마디가 말하는 뜻은...

라이트너 대사대리는 날마다 이승만을 만나고 날마다 국무성에 보고서를 보냈다.

“만일 미국이 한국정부를 지지하기로 한다면 더욱 강경한 대책이 당장 필요하다. 

*서민호를 제외한 모든 구속 의원들을 즉각 석방 시키도록 조치할 것..

*한국 국회가 자유스럽게 회의를 열수 있도록 보장 받는 일.

*유엔군이 국회의원들을 보호해야할 대책 등을 서둘러야 한다“

보고를 받은 워싱턴 국무성도 비슷한 지침을 내린다.

*헌정과 국회에 대한 미국정부의 계속적인 지지를 밝힐 것.

*장면과 신익희 등 국회지도자와 계속 접촉하고 민주절차 선거를 지지할 것.

요컨대 국회를 열어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 계엄령을 조속히 해제시키라는 것이다.

라이트너는 미국정부의 항의 서한을 받아 임시경무대를 찾아가 이승만에게 전하였다.

이승만이 말했다. “계엄령은 곧 해제할 것이라고 귀국정부에 보고해도 좋소.”

라이트너가 물었다. “곧 이라니 언제입니까? 혹시 이틀이나 2주일입니까?”

이승만이 대답했다. “그건 2분일수도 있고 두 달일 수도 있을 거요.”

영어 대화로 “It might be two minutes or two months.” 짤막한 대꾸였다.

영어의 달인이자 시인, 웅변가이자 외교의 귀신 이승만이 귀찮다는 듯 내뱉은 기막힌 한마디.
‘직선제 민주체제’를 만들려는 이승만에게 말단 대사대리는 상대할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강대국의 압력, 미국 정부가 일방적인 휴전을 포기하고 이승만 교체를 포기하고
‘미국에 순종적인 대통령’을 세우려는 내정간섭을 포기하겠다는 보장만 선언한다면,
‘2분내 계엄해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이승만은 항의서한을 던지듯 밀쳐버렸다.

라이트너는 물러서지 않았다. “공산당 자금과 국회의원 구속과 무슨 관계입니까?”

이승만이 심드렁하게 응답했다. “그건 내가 여러번 되풀이 말하지 않았소." 

라이트너가 물고 늘어졌다. “직선제를 반대하는 의원만 구속한 것 아닙니까?”

이승만이 눈을 똑바로 떴다.
“거짓말 마시오. 미국과 언커크는 우리 국내문제에 너무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소.
나는 나의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본국에 보고만 하면 되오.
내가 한국의 반역자들을 발본색원할 작정이라고 분명히 말하시오.”


미국의 한국 무시 ‘유엔군이 계엄 선포...이승만을 예비 구속하라’

오전 오후 임시경무대를 들락날락 흥분한 라이트너는 더 강경한 대책을 본국에 올렸다. 

동경의 클라크 유엔사령관이 이승만을 설득하러 온다는 연락을 받자,
문관인 외교관이 군사령관보다 더욱 무력적인 대책을 급전으로 보낸 것이다.

*이승만 내각에 협력을 요청하되 거부하면 이승만을 예비구속(protective custody)할 것.

*부산시내의 경찰과 한국군을 미군이나 유엔군이 장악할 것.

*국회의원을 석방하고 그 가족을 보호하고 국회 기능을 회복 보장할 것.

*긴급구호를 제외한 경제 원조의 중지를 선언할 것.

*미 해군 함정을 부산항으로 이동. 유엔군의 부산지역 이동.

*유엔군의 계엄 선포를 준비, 이에 상응한 한국군의 재배치. etc.

유엔군에 의한 계엄령 선포를 주장해온 라이트너는 클라크가 이승만과 담판하기를 바랬다.

“유엔군이 계엄령을 내리면 이승만은 국회해산등 반항을 하겠지만,
국회를 열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면 국민은 새 대통령에 따르고 이승만을 떠날 것이다.
이승만이 저항하기 전에 행동계획을 구체화, 즉시 시행해야 한다.”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 존슨이 이때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올린 보고는 한술 더 뜬 것이어서
미국 관리와 정부가 한국과 대통령을 얼마나 무시하고 무례하게 취급하는지를 알수있다.

“이승만은 언커크와 미국정부, 미8군사령관, 한국의 국회와 수많은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하여왔다. 한줌의 패거리 광신자들,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추종자들이 국회를 박살내고 고집통 이승만을 떠받치고 있다. 그들은 외국의 간섭에도 반대한다...(중략)...구속의원들이 공산당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원 중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공산당이나 일본의 돈을 받은 자가 있을 수도 있다....(중략)....이승만 반대진영에는 지도자가 없고 단합이
안되며 효과적인 방어수단도 없다. 한국 군부도 점차 불만에 차있다....”

이러면서 그는 “한국의 경찰권을 인수하여 유엔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가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할 것인지를 애치슨 장관이 결정해달라고 재촉하였다.


클라크 "어떤 경우라도 이승만을 궁지에 몰면 안된다"

이승만을 만나기로 한 클라크 사령관은 합참에 보낸 건의서에서 두가지를 제시하였다.

*이승만의 헌법 유린 행동을 먼저 간곡하게 설득해 볼 것.

*설득이 안되면 정권을 인수하여 과도정부를 세우는 것. 이 경우 지침을 달라.

그는 한국 국회에서 이승만이 당선될 경우엔 종전과 같은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라면서
어느 경우든지 군사정세를 악화시킬 우려가 크므로 이승만을 궁지에 몰아넣는 강공책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클라크도 전쟁 책임자로서 밴 플리트와 마찬가지로 휴전이든 아니든 한국전쟁 수행에
이승만의 리더십이 절대 필요하다고 판단한 주요인물 가운데 한명이었다.

6월2일 클라크는 부산에 날아와 밴플리트, 라이트너를 데리고 이승만을 직접 만났다.

부민동 대통령 관저에서 35분간 진행된 이날의 회담을 조선일보가 톱 기사로 보도하였다.

“우리들은 이대통령과 서로 통사정하는 회담을 하였다”며
“새로운 정치사태가 군사정세에 방해되지 않기를 당부하였다”고 밝힌 클라크는
“무슨 보장이라도 받았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훌륭한 회담”이라고만 얼버무렸다.

클라크는 합참본부에 이승만과의 회담 결과를 이렇게 보고한다.

“우리가 과격한 행동(유엔군 계엄령)을 하기 전에 외교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려면 엄청난 대변동(upheaval)이 아니고는

한국 국회의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해산 규정이 없으므로 나의 국회 해산은 합법”

3일 오전 11시 라이트너 대리대사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친서를 들고 임시경무대로 왔다. 

9시부터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국회 사건은 민의에 반하는 국회를 시정하자는 것이지
소소한 뇌물 문제나 정부반대 등을 이유로 강권을 발동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각료들에게
설명하던 참이었다. 라이트너가 가져온 트루먼의 각서를 받은 이승만은
“미국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받는게 아닌가 걱정된다”며 라이트너를 쏘아보았다.

각서를 다 읽은 이승만이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려 하자 라이트너가 붙잡는다. 

“한국 헌법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없는데도 정말 해산시킬 작정입니까?”

이승만은 제자에게 대하듯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번 사태에서 나는 민주주의 파괴자가 아니라 수호자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미국은 알아야 하오. 우리 국민은 언커크와 미국 대사관의 간섭에 분노하고 있으며,
대사관은 나나 국민들보다 공산주의자들의 편을 드는 것 같다고 국민들이 느끼고 있다오”

이승만의 어조는 금방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대사. 우리 민국은 태어난 지 4년도 안되었소.
미국과 달리 우리국회도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를뿐더러
헌법도 손질해야 하는 등 건국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걸 알아야 하오.
당신 말이 맞소, 우리 헌법엔 국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소.
대통령이  국회을 해산할 수 있다는 규정도 없고 또 해산할 수 없다는 규정도 없잖소.
그러니 국민들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국회를 해산하려 하는 것은
합법인 깃이오. 안 그렇소?”


트루먼 ‘협박’ 각서, 이승만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날 국무회의가 끝나갈 무렵 전해진 트루먼 친서를 읽고 들어온 이승만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이날도 이승만은 국회 해산에 이의를 제기하는 각료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던 뒤인지라
트루먼의 .편지 내용을 머릿속에 굴리며 입을 열었다. 

“국회 해산이 어렵다면 대안을 내놓으시오.” 이승만의 발언에 각료들은 눈을 번쩍 떴다.

내무장관 이범석이 나섰다. “국회의원을 모조리 체포해서 영창에 가두어버리겠습니다.”

국무총리 장택상이 소리 질렀다. “참 대단한 꾀를 냈구려. 나이 쉰 두살이나 된 당신이...”

두 사람은 경쟁하는 갈등관계, 건국정부의 총리 이범석과 외무장관 장택상은 지금 거꾸로 뒤집혀 장택상이 국무총리, 그 아래 이범석이 내무장관 자리에 있다.
다른 의견이 없자 이승만은 다시 국회해산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데모 군중이 부산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장택상이 트루먼 각서를 보여 달라는데도 이승만은 보여주지 않았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트루먼은 각서에서 이와같이 경고하였다.
‘만약 한국 대통령과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완화할 조치를 즉시 취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위급한 정세에 부닥칠 것’이라고. 한국전쟁의 칼자루를 쥔 미국대통령의 경고다.

이승만은 며칠 후 트루먼에게 답신을 보낸다.

“한국의 투표자들이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것은 정당한 민의이다.
한국은 지금 국회와 행정부가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요,
국민들이 민의를 배반한 국회와 민주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기 바란다.
미국과 우방들이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데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보다 민주적이고 민중을 대변하는 정부를 운영할 것이다.”

▶미국, 단계적 대응책...영국과 협력, 직접개입 준비 돌입

미국 대사관(국무성)의 강경책과 전쟁하는 군부 클라크의 신중론 사이에서
설왕설래하던 미국 정부는 우선 단계적으로 대응할 대책을 마련하였다.
처음부터 유엔군을 동원하여 이승만을 궁지에 몰아넣으면,
비상계엄령을 내리듯이 고집쟁이 늙은이가 또 무슨 돌발사태를 일으켜서
미국을 더 곤란하게 만들는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산 대사관과 클라크에게 지령을 내린 대책은 이렇다.

*밴플리트 사령관이 이승만을 지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합참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명확한 지시를 보낼 것.

*한국내 세력 간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하여 언커크의 활동을 강화할 것.

*미국인의 생명 또는 유엔군의 작전이 위협을 받게 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되면
 대사관의 제안, 즉 유엔군의 직접 개입을 실행할 것을 유엔군에 미리 요청해 둘 것.

*동맹국 특히 영국과의 협조로 직접 개입에 대비한 미국대통령의 성명을 준비할 것.


★비상계엄령 발동 열흘째, 국회의 일방적인 대통령 선거를 원천봉쇄한 이승만은
직선제 지지 국민 캠페인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부산은 날마다 데모대 세상이다.

참 이상한 대통령도 다 있지, 왜 이런 방식으로 세월을 허비할까.

말로만 국회해산을 떠들지 말고 비상계엄령 선포때 해산해버렸으면 되었을 것을.
전쟁국가 국군통수권자가 그 카리스마로 ‘친위 쿠데타’ 를 통해 개헌하면 될 것 아닌가. 
이범석 말마따나 국회의원들을 몽땅 구금하고 직선제 헌법을 공포해버리면 끝날 일을,
왜 그들과 싸우고 미국과 싸우고 공산군과 싸우며 힘든 길을 골라 골라 고생하는가.

‘부산정치파동’을 이야기 할 때면 이런 의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랬을까?

77세 독립투사 대통령 이승만, 오늘도 '1인투쟁'의 발길을 멈출 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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