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⑮ 무초와 클라크...무초와 김성수...국제구락부사건

"한국 야당에 실망" 무초. 클라크에 유엔군 개입 SOS

장택상의 맹활약 '발췌개헌안' 탄생...야당은 국제구락부 대회 박살...

[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⑮ 무초와 클라크...무초와 김성수...미국 어디로?

"한국 야당은 못믿어"...반정부 시위 좌절에 허탈한 미국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무초가 돌아왔다. 계엄령 선포전날 미국에 갔던 미국대사 무초가
2주일만에 부산에 도착하여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것은 6월6일 오후,
오랜만의 대화는 2시간 가까이 길어졌다..

모교인 브라운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귀국했던 무초는 난데없는 비상계엄령과
라이트너 대리대사의 긴급 보고를 처리하며 본국 상부와 사태를 논의하느라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돌아온 것이다.
부산 거리에는 ‘내정간섭 말라’는 새로운 벽보들이 부쩍 늘어났다.

<조속히 계엄 해제, 국회의 대통령 선거, 이승만이 당선되면 지지, 낙선후 반항하면
유엔군이 계엄선포 이승만 구금, 미군정 실시>--이런 복안을 가져 온 무초가
이승만에게 어디까지 이야기 하였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다만 이승만의 주장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대사, 미국이 나의 고귀한 목적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강경책을 쓰고 있다.
 언커크 등이 내정간섭을 노골적으로 하고 각국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세계가 나에게 대항하는
꼴이 되어 있으니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졌소.”

이렇게 말하는 이승만은 눈에 띠게 기력이 쇠잔해 보이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고
무초는 보고서에 썼다.
 

영국 공사 애덤스(Alec Adams)도 이승만을 찾아와 한시간 넘게 계엄령 해제를 촉구하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영연방국가들이 연합하여 압력을 가하였으며, 영국 국방상과 외무상이 곧 방한 할 것이라고 전해왔다

프랑스도 주한 대리공사를 시켜 정부각서를 이승만에게 전달하였고,
유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igve Lie)는 언커크 입장을 지지, 국회를 해산 말고
계엄령을 해산하라고 독촉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유엔 총장 멧시지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타임, 뉴스위크등 미국 주간지들은 이승만의 얼굴을 희화화하여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는 물론, 영국의 더 타임스 등등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입을 모은 듯이 이승만을 비난하고 “국회를 해산한다면 쿠데타적 수법”이라거나 “이승만을 보다 강력하게 압박하라”는 사설들을 줄줄이 써내고 있었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 특파원들은 미국대사관이나 언커크등의 이승만 압박 내정간섭 활동에 앞장 선 대변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재주꾼 정치인 장택상, 이승만과 '절충안'을 만들다

장택상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 좋고 수완 좋고 돈 많은 마당발 정치인 국무총리,
이승만이 총리로 임명하던 날부터 ‘묘책’을 찾아 특유의 정치활동에 들어간 그였다.
직선제와 내각제의 개헌안 정면 대립 국면을 돌파해야할 임무,
그것이 바로 이승만이 자신에게 부과한 숙제임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절충안을 만들자’ 이승만도 국회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절충안의 골자가
‘대통령 직선제’임은 물론이다.

그는 그날 이승만 대통령 앞에 그 절충안을 내밀었다.

그날은 트루먼 각서가 전달되던 날, 이승만이 보여주지 않던 트루먼 각서를
장택상은 미대사관 요원을 불러내 읽어 보았다.
그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협박' 각서에서 어딘지 ‘타협’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장택상으로부터 절충안을 받아 본 이승만은 창밖을 바라보며 10분 넘게 말이 없었다.

“자네는 이걸로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단 말이지?”

“예, 각하!” 재빨리 답하는 장택상은 자신감이 솟는다.
옛날 ‘선생님’은 이제 ‘각하’로 변하였다.
경상북도 칠곡의 명문가 대지주 셋째아들로 태어난 장택상은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 유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허정, 조병옥 등과 함께 이승만의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할 때부터 이승만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 대쪽같은 ‘선생님 대통령’의 얼굴에서도 타협의 희망을 본 장택상은
이미 국회 안에 직선제 개헌 지지세력을 상당수 확보해 놓은 터,
원내 이승만지지 국회의원 모임 ‘삼우장(三友莊)파’ 52명과
장택상의 친목모임인 영남출신 ‘신라회(新羅會)’ 40여명이 그들이다.
(삼우장파는 삼우장 음식점을 근거지로 활동하여 생긴 이름.) 

옛날부터 지역파벌은 피할 수 없는 한국정치 고질병,
그때나 지금이나 영남출신은 여당이고, 호남출신은 야당인 모양이다.
삼우장파와 신라회를 독려하여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두 세력 합해도 개헌선에는 30여표나 모자란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지침에 따라 장택상이 마무리한 절충안의 골자는 이렇다.
①대통령 직선제.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 뒤 국회 인준을 받는다.
국회가 3분의 2이상으로 불신임을 내면 총리는 사임.
③대통령은 총리의 제정으로 각료를 임명하며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 

이것이 이른바 ‘발췌개헌안’- 총리 불신임과 함께 총리에게 각료 추천권을 주고
각료는 국회동의를 받게 하는 조항이 내각책임제 개헌안의 요소를 가미한 것,
직선제를 관철하려는 이승만이 꺼내 든 타협의 카드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트루먼의 고압적인 항의 각서에 실질적인 응답 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이승만 '국회 해산 연기' 성명...국내외 '타협' 신호탄 올리다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들끓는 부산거리 시민들은 계엄이든 아니든 정치에 무관심이었으나
난데없는 소문들이 쏟아져나와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일본으로 도망쳤다느니 어느 유명인사들이 미국 망명신청을 했다느니, 국회가 곧 해산되면 선거는 언제하느냐는 둥,
종잡을 수 없는 루머에 특히 국회의원들이 전전긍긍 국회는 날마다 성원미달이다. 

끼리끼리 모여 ‘미국이 이승만에게 무슨 통고를 했다’는데 또 무슨 조치가 나올까,
설마 국회를 해산까지야 하겠느냐는둥 우왕좌왕하는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장택상 세력은 절충안 각파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알게 모르게 펴나가고 있었다.

이때 이승만이 또 하나의 ‘충격 성명’을 발표하였다.

“국회 해산을 연기하고 순리로 해결하겠다”는 성명은 조선일보가 톱기사로 보도한다.

[이대통령은 4일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국회를 민의에 따라 즉시 해산하기로 하였으나
민의를 차차 준행하는 국회의원이 생긴다하여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국회해산을 며칠 지연시키는 터이나 소기대로 안되면 부득이 민들대로 국회해산을
공포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7도에서 들어온 공문이 일치하게 국회를 해산시키라는 결의안으로
도의원 대표들이 와서 대통령에게 진정하며 결의를 표시하게 된 것이니
본대통령은 이 민의를 준행하기 위하여 즉시 국회를 해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으로는 민국의 초대대통령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다는
전례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 동시에 국회의원 50여명이 공개로 연명선언하고
민의를 거부하는 국회의원을 공개 성토하였으며 다른 국회의원들도 민의를 준행해야 한다는
분들이 여럿 있다 하므로 아직 해산령은 중지하고 국회에서 순리로 조정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며칠 지연하는 것이다....(중략)....내가 민중에게 설명코자 하는 바는
우리가 더욱 인내하는 마음으로 수일만 참아서 순조로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요. 이대로 못되면 부득이 합헌대로 공포할 것 뿐이다. 국회를 해산시키지 않고라도
그 결과는 민중이 요구하는 대지(大旨=직선제)를 실시함으로 결정될 것이니
며칠만 기다려주기 바란다.”

이 성명이 나가자 정국에 아연 ‘서광이 비친다’는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는
장택상의 개헌 절충안 내용을 소개하며 민국당의 움직임 분석등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음날 국회는 오랜만에 성원이 되었다.
국회해산을 보류한다는 성명을 듣자 숨었던 의원들이 모처럼 나타난 덕분이다. 


이승만이 ‘국회해산 보류’로 카드 하나를 버리는 체 ‘수일간 보류’ 단서를 붙이자
직선제를 요구하는 세력에 불을 댕긴 폭발력은 예상대로 더 크게 일어났다.
지난 지방의회선거로 국민의 정치력을 조직화한 이승만은 그 국민의 힘을 믿고 활용하여
 ‘국민이 주인되는 직선제 헌법’을 반드시 관철하려는 목표는 더욱 굳어졌고,
무초가 집요하게 촉구하는 미국 정부의 계엄령해제 요구엔 갈수록 요지부동이었다.

각도 의희 대표들은 날마다 대통령관저에 몰려들어 국회해산을 소리쳤다.

동아극장에서는 1천5백여명의 인파가 모여 전국지방의회대표자회를 개최,
이승만 지지를 결의하고 국회로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다.
‘민의 배반 국회는 즉시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라' 똑같은 합창 반복이다.

정부는 200개가 넘는 지방의회가 직선제지지 결의안을 채택하였다고 발표했다.

무초, 클라크에 SOS...'한국 야당은 뭐하느냐' 배후공작

무초를 다그치는 미국무성은 무초의 비관적인 보고서를 접하면서 강공책을 다시 마련한다.

“국회 해산 보류? 이것 말고 이승만이 달라진 게 없단 말이냐?”
국무성 차관보 히커슨(John Hickerson)은 유엔군의 적극 개입책을 재확인하였다.

*이승만이 계엄령을 즉시 해제하도록 독촉할 것.
*국회를 열어 언커크와 협력, 유엔이 바라는 타협을 이룰 것.
*이승만이 요구를 거부하거나 국회를 해산하면 유엔군이 계엄령 선포.

국무성 실무진이 작성한 이 ‘정세보고서’에는 몇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승만은 정신적 파산자. *이승만을 대신할 ‘국민적 대표인물(national brand)’이 없다면
빨리 대안 찾아야. *한국 육군총장의 주도로 군부와 지식층, 언론을 단결시켜 대처할 방안 등.

곁들여 ‘국회’ 항목에서는 “한국정치가 복원되려면 국회의 신뢰가 중요한데
일부 의원들은 무능, 부패, 파괴분자들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한다”고 지적하였다.

바위에 계란 치듯 이승만과의 메아리 없는 대면에 지친 무초는 결국 강공책에 기대었다.

유엔군의 직접개입을 다시 촉구하는 무초의 보고서는 ‘만약의 경우’를 열거한다.

*이승만의 국회해산 *이승만의 육체적 정신적 장애 발생 *이범석의 경찰 쿠데타
*부산 폭동 등의 상황에 대비하여 이승만이 반항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결행하라는 것.

무초는 어느 경우라도 어디까지나 미국이 아닌 유엔의 이름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 

이승만이란 철벽앞에 외교적 압력은 약효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하면, 무초로서 할 일은 다 했으니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가 행동에 나설 때라는 것,

그는 일본 대사를 통하여 클라크를 급히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클라크 사령관은 무초 대사를 만나지 않았다.
무초의 편지를 받은 동경주재 미국대사 머피(Robert Murphy)가 편지를 보냈다.

“...한국의 미국 대사관은 처음부터 국회 편만을 들었을 뿐, 이승만을 지지하는 일은 없었다고 클라크가 생각한다오. 클라크 사령관 대리인 히키 장군은 ‘한국 국회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이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할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있소. 미국으로서는 공정하고 현실적인 절충안을 목표로 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오.”
클라크는 북해도에 출장중이므로 대신 편지를 보낸다는 머피의 말을 믿어야 할까.

무초는 답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한국의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클라크에게 서운하고 실망했다는 투의 표현을 감추지 않았다. 클라크 사령관이 미국 군부와 국무성의 역할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거듭 만나자고 호소하듯 재촉하였다. 

“이승만은 절대로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오. 나는 알고 있소.
그럴 경우 미국은 매우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이며,
나는 유엔군 사령관에게 기대는 길 밖에 없소. 당신을 믿을 뿐이오.”
사실이었다. 무초는 더 이상 이승만에게 매달려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벌써 깨달았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데...미국의 휴전협상 성공을 위해서는 이승만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해야한다. 이승만이 스스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탄압하니 미군이 개입할 명분을 그가 만들어주지 않았나,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터인데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
절박한 강박감에 쫓기는 무초는 출장을 핑계로 자꾸 회피하는 클라크 사령관에게 화가 난다.

무초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부산 앞바다에 떠있는 병원선, 수없이 찾아간 김성수를 또 찾아간다.. 환자 아닌 환자 김성수를 문병 구실로 만나 대책을 떠보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인들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고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저마다 우두머리요, 이승만 못지않은 고집불통이요, 자기 주장만 늘어놓고
위기 대처능력도 없이 단합할 줄도 모르고, 끼리끼리는 거품을 품고 비난하다가도
막상 이승만 앞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들 아닌가.
게다가 민국당 지도층은 장면이 대통령 되는 것도 꺼려하니 어쩌자는 말인가.
오늘은 꼭 무슨 수를 내야지...장면이든 조병옥이든 김성수든 이승만보다는 쉬운 인물들이니까.
 

무초는 이날 병실 아닌 병실을 찾아가 김성수와 대화를 나누면서 넌지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미국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지만,
막상 한국의 반대세력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 참 곤란하다오.”

이와 같은 무초의 선동적인 말은 김성수의 비서실장 신도성(愼道晟)이 남긴 기록이다.

노련한 직업외교관이 직설적인 표현은 피하였겠지만 그 취지는 분명히 전달되었다.


국제구락부 사건...무초의 말에 용기 얻은 민국당, 호헌결의대회

민국당은 신바람이 났다. 미국 대사의 언질에 용기를 얻은 간부들은
날마다 헤이븐 병원선 김성수 방에 모여 한판 승부수를 은밀하게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장면 못지않은 미국통 조병옥 사무총장은 신도성, 유진산을 데리고
‘호헌구국(護憲救國) 선언대회’와 시가행진 데모를 하자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소요자금 4천만원(당시 화폐)은 정치자금 조달의 명수 조병옥이 맡았고,
선언문을 만들어 참가자들의 서명을 받았다.
참가자는 검거 위험 때문에 최소화하여 60~70여명, 민국당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안창호의 흥사단 계열 인사들과 종교계의 지도자들도 합의를 얻어냈다.
사임한 부통령 이시영과 원로 독립운동가 김창숙(金昌淑:1879~1962)을 비롯,
이동하, 전진한, 서상일, 백남훈, 서상일, 최희송, 김동명, 장기영, 유진산 등 주요인물들,
그리고 미군 병원에 입원중인 장면도 참가하여 앞장서기로 약속하였다. 

김성수는 불참하는게 좋겠다고 하여 제외했다.


끝내 나타나지 않은 장면...대회장에 청년들 난입 아수라장
6월20일 오후 3시, 부산 남포동 경양식집 국제구락부. 민국당 단골집이다.

문밖에는 대회를 은폐하기 위하여 ‘문화인 간담회’라고 쓰인 흰종이를 붙였다.

선언문에 서명했던 40여명이 모였다. 서명하고도 안나온 사람들이 20여명. 

문제는 장면, 선언문을 읽기로 한 장면이 개회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대회장 밖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30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장면을 기다리다 못한 조병옥은 대회를 시작,
민국당의 서상일이 개회를 선언하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끝났다.
이어서 선언문 낭독, 장면이 읽기로 했던 선언문은 누구 읽어야할까.
장면 대신 김창숙이 읽기로 하여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설 때였다.
걸어잠근 출입문을 박차고 한떼의 청년들이 뛰어들었다.
닥치는 대로 화분과 의자를 던지고 대화장을 휩쓸자 참석자들은 구석으로 몰렸다.
“웬 놈들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부들부들 떨며 조병옥이 소리 질렀다.

메아리 없는 호통, 청년들이 물러가자 넋 잃은 참가자들은 허탈감에 주저앉았다.

장면이 읽으려던 선언문은 김성수가 미국 병원선에서 구술하여 만든 ‘호헌 구국 선언문’이다.

“....바야흐로 중대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오직 일개인의 독재적 탐욕 때문에
국헌은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말살되어...(중략)....이 독재자가 민의를 칭탁하여
애국심을 운운하는 것처럼 가소로운 것은 없습니다....(중략)....우리 국민은 이 독재자의
집권 하에 있는 한, 아무런 행복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중략)....국가의 도괴와
민족의 멸망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일지결속해서 이 독재자와
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반역적이고 망국적인 독재자를 타도하는 것만이
우리가 국운을 만회하여...” 독재란 말이 되풀이 나오는 격문이었다.

김성수가 작심하고 이승만을 타도하자고 부르짖은 이 선언문은 그러나 읽기도 전에 휴가조각으로 변해버렸다. 국회 간선제로 대통령을 바꿔 정권을 잡으려는 야당의 몸부림은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민의가 독재냐? 국회가 독재냐?” “민의 무시 국회는 직선제를 즉시 통과시켜라”

대회장이 떠나갈 듯  외치는 군중의 함성에 참가자들은 길 건너 조병옥 사무실로 피했다..

이날 대회를 무산시킨 행동대원들은 대한청년단 리더 문봉제(文鳳濟)가 진두지휘하였다.
무초가 이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그 반응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장면은 왜 끝내 대회장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카톨릭계 경향신문사 사장으로 장면의 최측근중의 한명인 한창우의 증언을 들어보자.

“장면 박사가 대회에 안나와 병실로 가보았더니 넥타이를 맨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장박사는 ‘꼭 나가봐야겠다고 사정해도 병원 원장이 못 나간다는 거야. 자동차도 철수 시키고
나가려면 퇴원수속을 하라잖아’라고 말했다. 따라서 대회에 못 나간 것은 장박사 뜻이 아니라
전적으로 미군 병원 측의 책임이다.“

이것이 사실이든 변명이든 이날 장면은 미국 손안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총리 사임후 초량국민학교의 미군병원에 입원할 때도 미군 장교가 데려갔고, 계엄령 선포후
보다 안전한 대신중학교의 미군병원으로 다시 옮길 정도로 미국은 장면을 지키려 애를 썼다.

그렇다고 김성수가 건곤일척 이승만 타도 대회를 열었는데 그 약속은 깨도 좋은 것인가.

당시 정치권에선 간선제로 선거해도 장면이 대통령, 내각제 개헌되면 총리는 장면,
이런 인식이 굳어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장면을 적극 옹호하기 때문에,
미국의 힘을 빌지 않고는 거물 이승만을 꺾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정세구도를 잘 아는 장면이 ‘미국 핑계’로 대회를 보이콧한 처사를 어떻게 봐야할까. 


대통령 임기 8.15까지...지루한 정치파동에 비가 내린다

내각제 개헌 이전에 ‘대통령 선취’로 전략을 바꾼 야권이 ‘호헌 결의안’을 통과시켰던 것이
지난 11일, 그후 나름 치밀한 준비 끝에 열었던 국제구락부 ‘호헌-독재 규탄’ 대회마저
어이없이 깨지자 ‘간선제 헌법대로 대선을 치르자‘는 호헌 구호는 완전히 동력을 잃고 말았다.

좌절감에 신음하는 그들의 눈 앞에 대통령 선거의 시한 6월23일이 닥쳤다. 

그동안 논란을 거듭하였던 대통령 임기문제는 개헌대결에 얽히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였던 것, 

헌법에는 임기만료 한달전 새 대통령 선출을 끝내야 하는데 헌법과 무관하게 그 임기만료 날짜를 둘러싼 정파정략에 따라 세 가지 주장이 맞서왔기 때문이다.

①1948년 제헌국회서 초대대통령을 선출한 7월20일 이전 한달, 즉 6월19일이 임기만료.

②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한 7월24일 기준: 그러므로 6월23일까지 새 대통령을 뽑아야한다.

③8월14일 만료 주장: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 선포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여
세계에 건국을 선포하였으므로 8월14일에 임기가 끝난다는 논리였다.


이 논쟁 때 서이환 의원의 '인간 권리 발생 주기설'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진통설=모태가 진통을 시작할 때. *일부 노출설=태아가 나오기 시작할 때.

*전부 노출설=아이가 완전히 나왔을 때. *제호설(啼呼說)=아이가 울음을 터트릴 때.

서 의원의 묘한 설명은 ‘전부 노출설’ 즉 8월15일로 하자는 결론이었다.

이것은 물론 장택상 총리의 신라회등 이승만 지지세력이 이승만의 뜻을 받은 논리로서,
몇몇 의원이 구속의원들을 다 석방시켜 표결해야 한다는 반론을 폈으나
자유당 양우정(梁又正)의원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오늘(23일)을 넘기면 무정부상태가 됩니다. 여기는 반공국회요, 공산당에 연루된 의원들을
갖다 앉히자니 이 국회가 공산당 국회입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의사당은 반론 한마디 들리지 않고 조용하였다.
체신부장관을 겸한 조주영 의원이 낸 ‘8.15 긴급동의’는 83대 2로 통과되었고,
선거 지연에 따른 만약의 경우 국정공백상태가 생기면 현직 대통령이 계속 대행한다는
경과규정까지 채택되었다. 장택상의 활약은 과연 대단하다.

장마철이 시작되었는지 질척질척 비가 내리는 거리, 습기가 차오르는 부산의 여름은 

수많은 판잣촌이 쏟아내는 악취가 가세하여 숨막힐 듯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이 이어진다.

판문점 휴전 협상도 엎치락뒤치락 양측의 기선잡기 실랑이로 개점휴업상태나 마찬가지다.

어렵사리 국회에 상정된 두 개의 개헌안 역시 누구도 손대지 않아 낮잠만 자고 있다.

먹구름이 오가는 하늘 아래 변함없이 열띤 사람들은 직선제 개헌 운동원들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국회 주변에 진을 친 지방의회대표들과 청년단원들은
임시경무대로 몰려가 담판이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덤빈다.
이들은 관저앞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 자리에 나와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며
”국회해산이 될 때까지 단식농성“을 결의했다고 욱박질렀다.
이승만 대통령과 장택상 국무총리가 나와 이들을 달래는 연설을 했다.

“이제라도 국회가 마음을 돌려서 정부가 낸 개헌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 미래에 가망이 없다. 나도 국회를 해산하고 싶지만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여러분이 성공할 때까지 사고 없이 투쟁해주기를 바란다.“(이승만)

“그 동안 여러분의 요구에 답변할 말이 없어서 못 나왔다. 나는 국회와 정부가 타협해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지 못하면 사표를 내고 여러분과 같이
민의 관철을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장택상)


개헌 투쟁, 이제 내각제 개헌안을 내놓은 민국당은 호헌파로 변신하였다.

개헌파 이승만을 설득하고 협박하는 미국의 음모는 과연 어찌 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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